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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합평회

영화평론가협회 합평회: <군도>와 <명량> 1부 박태식, 정재형, 이수향, 윤성은, 성진수, 안숭범, 이대연, 민병선

영화평론가협회 7월(5차) 합평회: <군도>와 <명량> 1부


2014-07-24 22.08.18

군도부터 하죠.


박태식 ) 이게 137분이더라구요. 어제 보니깐. 볼 땐 몰랐는데 아침에 쭉 보니까 137분짜리고, 그리고 이거 뭐 역시 극영환데, 활극 아니겠어요? 활극.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배우들이, 내가 세다가 멈췄어. 굉장히 중요한 강동원하고 하정우 두 사람의 축이고 그 외에 굉장히 많은 배우들이 등장을 하고, 거기다가 빠른 사람 활쏘는 사람 등등등. 그 처음에 막 그 음악이 좋아요, 음악이 아주 장쾌하게 잘했더라구요. 그래서 그 각각 특기를 가진 무슨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런 걸 보고, <7인의 사무라이>? <황야의 7인> 이것도 떠오르고, <놈놈놈>도 떠오르고. 그러니까 이 감독이 재미를 주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는걸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이게 뭐 철종 13년에 양반과 탐관오리들이 착취가 아주 극에 달했던 시절이다. 그런데 도입은 아주 좋았어요. 도입에서, 특별히 그 뭐냐면, 하정우가, 도치가 이런저런 사정을 거쳐서, 도둑 거기에 입산할 때까지는 진짜 괜찮더라고. 그리고 중간에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와요. 보셨죠? 회의를 하는 장면이 아주 민주적이었어요. 그렇죠? 거기서 각자 의견을 내서 뭐 어떻게 하고 뭐 그런 것들이. 그래서 중간에 한번 더 멘트가 나와요. 지리산에 가면 천국이라던데. 그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감독이, 물론 뭐 활극을 위주로 만들었겠지만, 어쨌든 조선시대 많은 강도떼들이 있었잖아요? 대표적인 게 임꺽정도 있고 홍길동도 있고 장길산. 이런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갖고 있던거에 대한, 그런, 그 도둑떼 그 사람들이 어딘가에 모여서 산속에 살고 하는거에 대한, 그런 여태까지 나온 소설들이나 장길산, 이런걸 보면 그런 걸 이상향으로 그리는 것들이 좀 있더라구요. 옛날에 수호전에 나오는 양산박 그런 것처럼. 그래서 감독도 그걸 이상적인 사회나 양반 상놈이 없고 민주적으로 뭔가 결정되는 그런 사회를 그리려고 했던 거. 그건 내가 분명히 알 수 있겠더라 이거죠. 그리고 뭐 중간 중간에 아주 재미있는 멘트가 있었는데, 소금기 많은 바다에 땅을 메워서 농사짓는게 부당하다. 강동원이 괴물이 된 이유가 또 한참 나오기도 하고.

근데 이게 제가 보기에는 뒤로 갈수록 지나치게 활극 쪽으로 많이 가다보니까 좀 기운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나 많은 플롯들이 등장을 해서 감독이 굉장히 많은 걸 설명하려 한다. 심지어 마지막에 가면 뭐가 나오냐면, 원래 싸움으로는 상대가 안되요. 강동원하고 하정우하고. 싸움이 안되는데 걔를 대나무 밭으로 불러서 큰 칼을 사용하면 걸리게 만들었다. 그런 고도의 싸움 전략같은 것도 등장하고. 그래서 감독이 아, 이렇게 하려면 두 시간 이십분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또 그 애기는 안죽이잖아요. 강동원의 그 표독한 성격 같으면 애기도 당연히 죽였어야했는데 갑자기 애기한테 인간적인. 자기 아버지도 죽인 놈인데. 그런 등등. 그래서 전 이 영화가 좀 길어졌다는 거. 언뜻 드는 생각이 <군도2>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쫙 하고 들어가는 그때까지 김성균이라는 사람이, <범죄와의 전쟁>에서 했던 그 구성원들을 그대로 갖고 왔더라고, 이 감독이. 이 사람이 나중에 아주 의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군도에 합류를 해서 말을 타고 쫙 달려가는 걸 보고 ‘아 이거 <군도2>를 기대하는 거구나. 이 사람이.’ 그래서 거기에서 마지막에 내건 슬로건이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둑이다.” 무슨 마치 화두같은 걸 하나 던지기도 하고. 저는 어쨌든 이 영화가 이 감독이 재미도 있겠지만, ‘군도’의 철학같은 걸 보려고 했던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이게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많이 집어넣다 보니까 서술이 중간에 조금 흩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도적

그리고 제가 요새 보고 있는 책 중에 사람다움의 의미라는 책이라고, 서울대학에서 박사학위 받은 분이 쓴 책이 있는데, 그 책에 보니까 ‘도’라는 개념을 설명했더라고요. ‘도’라는 개념을 얘기하는데, 그것이 춘추전국시대때 세 종류로 사람들이 나눠지게 된데요. 하나는 그 경제 외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인과 경작지를 가진 민 그리고 경작지가 없는 민. 경작지가 없는 백성들은 이향, 즉 집이나 고향에서 떠나게 되고 이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하게 되면서 ‘도’라는 개념이 등장을 했다는 거예요. 한자의 도라는 것이 처음부터 도둑놈 떼 이런 게 아니라 자기 땅에서 유리된 자들이 등장하면서 이 사람들이 어딘가에 정착하고 모여 살게 되면서 ‘도’ 라는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도둑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핍박당하는 민초들, 민생들 이런 사람들이 자기 땅에서 유리되면서 어쨌든 모여 살지 않겠느냐. 여기에 나오는 도라는 것이 완전 그 개념이더라고. 여기 사람들은 도둑질을 위해서 모인 사람이 아니라 어쨌든 소외가 됐어, 그래서 자신들이 모여서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으로 간다. 아무튼 저는 감독이 갖고 있었던 철학적인 면도 괜찮게 봤고 그리고 배우들도 괜찮았고 그리고 중간에 활극 부분도 상당히 재미있었어요.

도입 중반부까지는 뭔가 굉장히 힘차고 뭔가 보여줄 것 같은데 마지막에 가선 싸움이 너무 길어져요. 또 강동원이 갑자기 머리를 산발을 하고 나오고, ‘왜 저러고 나오지?’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밤에 보는데 여성관객들이 많더라고. 강동원이 그렇게 나오니까 꺅~하고 소리를 지르더라고. 여성분들이. ‘어 나는 쟤 왜 저러지?’ 생각했는데, 여성들이 ‘강동원 너무 멋있지 않니?’ ‘강동원 연기 너무 좋다.’ 영화를 강동원 보러 온 사람들이 많더라고. 강동원의 컴백작품이다. 이런 생각이 들고. 여러 가지 생각 했습니다.


민병선) 저는 말을 이어서 하면, 이 영화의 문제는 강동원 때문이다. 보고 나서 제일 궁금했던 건 흥행이 어떻게 될까. 오늘 개봉을 했잖아요. 반응을 한번 보고 왔는데, 최악이던데요? 흥행말고, 관객 반응.


이수향) - 아닌데요. 제 주변에선 그렇지 않은데.


민병선) 저는 인터넷 들어가서 리뷰들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까지 욕을 할 정도였나. 좋은 쪽은 알바같고, 별점 하나들은 본 사람들 같아요. 욕이 엄청 심하더라구요. 이정도까진가?


박태식) 욕의 대부분은 어떤 내용을 갖고 있어요?


민병선) 영화가 너무 재미없다. 졸립다. 시나리오가 엉망이다.


윤성은) 너무 알바같은데?


민병선) 근데 그런 알바를 쓰진 않잖아요.


이수향 ) 상대편에서 쓰지 않을까요?

01


민병선) 배급사들이 서로 다 합의하는 거거든요. 다 자기들끼리 모임하고, 다 날짜, 심지어...그래서 이정도까지인가 생각이 드는데... 하여튼 영화가 드는 생각이 맛집하면 한 가지 음식을 잘하는 집이 맛집이라고 하잖아요. 메뉴가 수 십 가지인 집들 보면 음식이 대체로 맛이 없는 경우가 있잖아요. <군도>는 제가 봤을 땐 메뉴가 많아서 맛이 없다. 맛집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일단 들었어요. 이유가 뭘까 보면, 본인들이 많이 밝혔지만 서부극하고 무협이 퓨전화 되어 있잖아요. 전 그게 패착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서부극 중에서도 고전 서부극과 마카로니 서부극이 또 섞여 있지 않느냐 생각이 들었어요. 고전 서부극이 주로 선과 악의 대립을 다루잖아요. 고통받는 계급이 있고 영웅이 들어가서 악을 물리치는 구조잖아요. 그렇다보니까 영웅은 외부에서 경우가 많고, 고독하고, 갈등하고, 내면의 문제가 있고. 악을 물리친 다음에는 이 영웅은 마을에 거주할 수가 없는 거죠. 떠나야 하는 구조죠. <군도>는 내용적으로는 고전 서부극을 따라가는 것 같고, 외형적으로는 마카로니 웨스턴을 따라가는 것 같아요. 형식적으로 음향 등 여러 가지 구조라던지, 캐릭터들이. 마카로니 웨스턴은 보통 나쁜놈과 덜 나쁜놈이 싸우는 구조가 많잖아요. 선과악을 다루기보다는 ‘내가 너보다 조금 덜 나빠’하는 구조가 있잖아요. 이런 대결 구도라고 했을 때 정의보다 승리의 방식이 중요한데, 거기서 활극이 나오면, 사람을 죽이든 말든 가책을 받는 게 아니라 좀 더 오락적으로 재미있게, 한 번에 누가 더 많이 죽이느냐 이런걸 논의하게 되겠죠. 고민 없이 살인을 한다든지, 오락적으로 즐긴다든지, 그런 경우가 있죠.

<군도>는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고전 서부극을 따라가고, 전개과정은 마카로니 웨스턴에 좀 가깝다는걸 봐서, 내용과 형식이 보통 관념적으로 봤을 때 불일치하는 측면이 있다고 봐요. 거기다가 무협을 또 덧붙이다 보니까, 무협은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서사가 내부에서, 한 아기가 버려지고 가족이 악에 의해서, 악의 대상을 아는 상태에서 수련을 통해서 무예의 고수가 돼서 성장을 한 다음에 악과 대면하는 그런 서사구조잖아요. 도치를 중심으로 보면 또 그렇거든요. 이게 새로운 시도지만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그게 젤 궁금했는데, 관객반응이 저는 굉장히 안 좋게 보이더라고요.


정재형) 블로그라고 해야 하나? 리뷰들, 댓글이 오염된 거 아닌가 의심이 들어요. 과연 참고할 만 자료일까. 그 데이터를 믿고 통계를 낼 수 있는 것일까, 이 자체가 불안해요. <역린>때부터도 그런 게 있어서 ...


이대연) 저는 크게는 대동소이한데, 웨스턴과 무협이 만났을 때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흥미롭게 봤고, 취향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겠다 생각이 들어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사극에 웨스턴색깔이 강한 음악을 입혀놔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어요. 전 두 가지 점에서 봤는데 <군도>라는 제목이 일단 지향점 자체가 명확하잖아요. 어떤 도둑들이 왜 형성되었고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이야기 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 형식하고 내용이 좀 맞춰서 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봤을 때 형식면에서 키치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펑크음악같은 느낌? 거칠면서도 단순하고 경쾌하고 이런 느낌들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것들이 약간 주류문화적인 느낌하고는 틀리잖아요. 펑크가 주류음악에서 배제된 음악이기도 하고. 그런 느낌들을 살리기 위해서 일부러 장치를 만들어낸 거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젤 마음에 들었던 건, 그 여자 성우가 내레이션을 해주잖아요. 제 표현으로는 쌈마이 방식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굉장히 싸구려 느낌을 살리면서 무협지를 읽어주는 듯한 톤으로, 아주 정형화된 톤으로 읽어주는데, 저는 거기서 굉장히 즐거웠어요. 그래서 그런 형식들을 감독이 의도적으로 내용하고 맞춰서 가는 부분들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등장인물들이나 타이틀이나 등장인물들 이름들이 제시될 때 약간 원색의 촌스런 포스터 같은 그게 나오잖아요. 어떻게 보면 팝아트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냥 촌스러운 70년대 포스터같은 느낌도 나오는데, 그런 것들을 살리는 것 자체가 내용하고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위문화적인 특성을 살리려는 건 아닐까라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해보게 됐구요.

또 하나는 아까 말씀하셨듯이 임꺽정이나 수호지나 홍길동 이런 여러 가지가 생각이 나는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젤 가까운 건 임꺽정 이야기나 흔히 들었던 아기장수 이야기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다 이렇게 좌절이나 실패한 이야기들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실패가 좌절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극복이 되면서 나중에는 어떤 승리하는 성공담 같은 스타일로 나오죠. 어떻게 되는가 봤더니 일정부분까지는 그 기존의 실패담하고 같은데, 거기서 시간이 연장되면서 성공담으로 풀어간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도치라는 인물의 기능이 아주 영웅적인 인물로 비춰지지도 않고, 시간이 어떤 할애나 역할이 크기는 하지만, 아주 굉장히 영웅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거나 하진 않은데, 가장 큰 기능이 시간을 연장시키는 기능 아닌가. 안 죽고 살아가지고 나중에 그걸 성공으로 이끌어가는 그런 기능들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그 점을 흥미롭게 봤구요.

그러면서 사실 레미제라블이 생각이 났는요. 한국 영화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이 어떤가 생각해봤을 때, 레미제라블을 사람들이 봤을 때 힐링영화라고 많이 봤는데, 대선에서 진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이길줄 알았는데 지고 나서 흔히 멘붕에 빠져있을 때, 레미제라블을 많이 봤다고 하죠. 역사라는 게 한순간에 단위로써 끝나는 게 아니라 연속되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고 과정 속에서는 우리가 성공하게 된다는 차원에서 많은 힐링을 받았다고 느끼는데, <군도>가 그런 시간개념에 있어서 연장선에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구요. 이런 집단 도둑 이야기가 성공담으로 끝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런 걸 왜 지금 말하려고 했을까 라는 차원에서 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저도 후반부에 힘이 좀 떨어지지 않나 생각을 했는데, 기관포가 나오면서 아주 힐링이 많이 됐구요. 조금 더 그런 펑키한 색체를 더 많이 가지고 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좀 남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안숭범) 저는 다들 하셨던 말들을 연관시켜서 더 보태는 형식으로 할게요. 저는 이 영화가 잘 만든 것 같아요. 잘 만들었는데, 영화사에 남거나 올해의 영화로 기억되거나 그런 의미에서 잘 만든 게 아니라, 감독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하려는 전략과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전략과 의도를 생각했을 땐 잘 만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흥행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런데, 윤종빈이라는 젊은 감독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전제하고 이 영화를 봤을 때에는 전 실망한 부분이 더 많아요.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소재를 가지고 비판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무협의 측면이 있죠. 무공을 가진 협객들이 나오니까. 근데 좋은 무협영화들은 정신성과 철학성이 있죠. ‘무’와 ‘협’이라는 한자 단어 안에 함의되어 있는 정신성과 철학성을 갖기 마련이죠. 예컨대 김용의 대하소설이라던지, 실존 인물로서 역사적으로 황비홍이라든지 방세옥 이런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걸 가져가서 중국에서 좋은 무협영화를 만들 때 여운이 남는다는 거죠. 그런데 이것(<군도>)은 어떤 합 잘 맞추고, 액션, 시각적으로 즐겁게 보이게 위한 도구로서 활용된 무협이지 그 무협의 내면에 다른 의미가 있진 않아요.

두 번째로 웨스턴 이야기를 하자면, <놈놈놈>이 만주웨스턴이면, 이건 지리산 웨스턴이나 나주 웨스턴쯤 되겠죠. 아까 말씀하셨던 고전 서부극, 하워드 혹스나 존 포드 그런 서부극과 수정주의 서부극을 비교해봤을 때, 이건 고전 서부극인데, 거기에는 악이 한마디로 인디언들이잖아요. 미국의 개척정신이나 그것에 반하는 세력으로 서사가 시작되면 그걸 합의하고 보잖아요. 그런데 선악의 구조가 바뀐 거죠. 인디언의 무리라고 할 수 있는 군도. 그 무리들이 선의 입장에 서 있는 거니까 수정주의 웨스턴을 가져다가 쓸 것도 없고, 수정주의 웨스턴은 정치적인 올바름에 대한 자각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런 성격은 아니고, 분명한 선악구도를 가지고 있는 고전주의 서부극의 반대판본이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윤종빈에 대한 애정에서 이야기하자면, <범죄와의 전쟁>같은 경우에는 선악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모순된 시대사, 사회사에 압착된 개인사. 개인이 당시 한국사회 청년자본주의, 개발독재논리, 그런 한국사회의 어두운 부조리가 한 개인 안에 개인의 표정이나 생활습관 안에도 들어가 있는, 그 개인을 입체적으로 그리면서 사회 전체에 대한 해석까지 가능하게 하는 영화였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런 영화를 만들어놓고 그 다음 작품이 이런 영화다, 이런 영화라는 게 아예 못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그 전작과 약간의 수준차이가 느껴져요. 이번작품은 조윤을 악으로 포지셔닝하고 군도가 선이잖아요. 그런데 조윤은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입체적인 인물이에요. 서자출신인데다가 신분상의 한계로 최고의 무공을 지녔음에도 그다음에 진출하지 못해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탐관오리였는데, 방어기제로 전이, 전치죠, 자신의 자아실현 욕구가 무공을 가졌으니까 더 높이 올라가려고 했는데 그것으로 자아실현을 할 수가 없으니까 아버지보다 더 탐관오리가 돼서 착취해서 재산불리고. 자아실현이 방향이 바뀐거죠. 그런데 이 사람도 역린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또는 다른 해석이 가능한 인물인데, 군도를 선으로 놓고 그 대척점으로 이 한명을 놔두니까 그냥 악이 된거죠. 그렇게 해석돼서 양자의 대결구도만 가니까 이야기가 너무 평면적이에요. 그 부분이 아쉬웠어요.

강동원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강동원은 <형사>의 슬픈 눈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일단은 시각적으로 선명한 대비가 있어요. 대중영화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야죠. 긴 칼과 세련된 옷 입고 강동원 자체가 비쥬얼이 너무 좋으니까. 하정우는 얼굴에 굴종의 역사가 새겨져 있잖아요. 엄마랑 여동생 타죽을 때 머리 흉터를 가지고 있고, 긴 칼에 대비되는 소 잡는 백정 칼 양손에 두 개 들고, 허름하게 입고 대결을 펼친단 말이죠. 근데 우리는 아까 기관총 이야기 하셨지만, 그 순간에 우리는 돌무치를 응원하게 되요. 당연히 서사적인 수순을 밟아가잖아요. 그 장면에서 영화 안에 등장하는 다른 백성들도 그 하정우, 도치의 편에 서게 하고 영화관 바깥에 있는 관객들도 그 도치의 편에 서게 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에요. 그래서 2014년의 정치현실을 철종13년의 상황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면서 소위 말하는 정치적인 정서는 윤종빈이 말하고자 하는바와 아주 친연성이 있지만,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놓으면 사실은 영화적으로는 좋은 영화가 아닐 수 있다. 전 그렇게 생각이 들고, 약간 선전선동의 분위기가 굉장히 강한 영화로 느꼈고, 좀 있다 다시 말하겠지만, <명량>과 결이 다르지만 <명량>도 그런 부분에 있어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상입니다.


02


성진수) <군도>를 보고나서 무언가 말하자니 막막했어요. 전 <군도>에 대한 의견을 드린다기보다 <군도>를 보면서 이 영화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질문을 던진 것을 요약한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구요. 그런 내용들이 사실은 이전에 했던 말씀들과 크게 동떨어져 있진 않을 것 같진 않지만, 저는 아직도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정립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영화를 읽기 위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는지, 이 영화가 무엇을 성취했고 이 영화의 미덕은 뭔지, 이 영화가 성취하려 했지만 부닥친 한계가 무엇인지. 보통 영화를 보면서 이런 것들을 찾게 되죠. 그런데 이 영화는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지점이, 저에게는 없었어요. 그게 이 영화를 보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 이었어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출발해어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해야 할까를 생각해 봤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 들었던 인상적인 감상과 그 인상으로부터 튀어나오는 용어가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과잉’. 하나는 ‘패스티쉬’, 혼성모방이라는 말이 딱 떠오르는 영화라는 것이 인상이었어요. 여기서부터 시작해본다면, 이 영화는 분명히 시각적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스타일과 그 스타일로 성취하려는 이야기의 내용, 영화의 주요한 요소로써 스타, 혹은 캐릭터라고도 이 영화에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등장인물들, 이런 요소들(스타일, 이야기, 스타)이 하나의 유기체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서로 그 각자가 경쟁하는 그러한 영화로 저한테는 보였습니다.

근데 사실 종종 ‘과잉’은 고전주의 할리우드 영화의 환영성에 균열을 내는 지점으로서 포착이 되고, 그것이 뻔 한 영화를 뻔 하지 않게 읽게 하는 바로 그 요소가 과잉이 되는 그러한 지점이기도 해요. 대표적으로 더글라스 서크 영화를 볼 때, 뻔한 멜로드라마를 뻔 하지 않은 멜로드라마로 읽게 하는 가장 큰 지점이 그 영화의 형식이 가진 과잉적인 측면들인데, 과연 <군도>를 보면서 느꼈던 과잉을 그렇게 읽을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거기에 대해선 저는 좀 회의적인 결과에 도달했어요. 그게 어디서부터 출발했냐면, 이 과잉이라는 것은 감독의 자의식, 혹은 창작자 자의식의 하나의 표출의 지점이거든요. 그런데 이 <군도>라는 영화에 나오는 창작자의 자의식, 감독을 위시로 한 음악, 촬영, 제작 등 모든 창작자의 자의식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 자의식의 정체를 무엇으로 파악을 해야 하는가 생각을 해봤어요. <군도- 민란의 시대>라는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레퍼런스로 떠올린 영화가 <7인의 사무라이>였어요. 마케팅적으로 이 영화를 이러한 영화입니다라고 포지셔닝했던 것이, 카피문구로 표현하자면 “심장을 직격하는 전복의 카타르시스, 망할 세상 백성을 구하라” 이러한 포지셔닝을 했단 말이에요. 게다가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많이 보여주었 던 것도, 좀 전에 안숭범 선생님이 말씀하신, 시각적으로 날렵하고 세련된 강동원이 연기하는 인물과 거친 하정우가 연기하는 두 인물을 시각적으로 계속해서 보여줬기 때문에, 그러한 기대감을 만들어 냈죠. 그랬다면 이 영화엔 분면 그러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자의식을 숨어있었을 거에요. 창작자로서 하나의 격변의 시대를 포착해서 우화를 하나 성립하려했던 그런 자의식이 있었을 것이죠. 그런데 그런 자의식이 이 영화에 어떻게 들어가 있는가. 그것이 과잉과 어떻게 효과를 이루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봐야겠죠.

또 하나는, 분명히 창작자들의 또 다른 목표라고 볼 수 있는 액션 활극이라는 것이 있어요. 즉 ‘칼의 웨스턴. 무협의 한계’라는 카피, 영화를 보면 딱 눈에 보이는, 무협영화, 웨스턴영화와 활극이라는 우리나라 60~70년대 액션영화들, 혹은 사무라이 영화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 이런 것들을 하나의 상업적인 코드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와 창작자들의 의식, 이런 것들이 보이죠. 그런데 이런 모든 자의식들이 영화 안에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새로운 시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이루어졌는가 라는 생각을 해 볼 때, 그것이 저에게는 그렇게 와 닿지 않았고 부족했다고 봐요.

그것은 한 명의 관객으로서, 평론가로서, 저의 자의식과 부딪혔던 부분들이 있기 때문인데, 그게 영화 표면에 너무나 드러나는 시네필의 자의식인거에요.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이 재밌게 보았음직한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적인 형식의 테크닉들, 옛날 홍콩, 일본, 우리나라 활극 영화들에서 보이는 칼을 부딪히는 액션들을 끌어 왔으나, 새롭게 혼합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지는 못하고, 그런 영화들을 보았을 때의 감상이나 흥분을 영화에 그냥 쏟아 부은 것 같은 거죠. 그러한 프로페셔널하기 보다는 아마추어적인 시네필의 자의식이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나 도드라져 보였어요. 한편의 장편영화, 그것도 졸업영화나 저예산영화가 아니라 제작비 100억 넘는 거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를 만들면서, 창작자들이 퇴행적이고 시네필적인 자의식을 영화에 충만하게 표현하는게 도리에 맞는가? 이걸 좋게 말하면 키치적인, 아까 하위 문화를 표현하는 세계를 만들려고 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세계에 더 깊고 치열하게 빠져야 했던 것이 아닌가? 소위 말하는 오타쿠적인 세계로까지 빠져들어가서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하나의 새로운 자기만의 세계를 적립하려는 정도의 더 모험적인 시도가 있어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저로서는 쉽게 옹호하거나 지지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영화들에 있는, 내용과 스타일들을 가져와서 상업영화에서 완성해 보려했던 시도, 노력에 대해서는, 기존의 비슷한 것만 반복하려 했던 우리나라 상업영화들을 만드는 시도들에 비해선 새롭다고 봐요. 그리고 이런 시도들이 꺾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가 어느 정도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은 정말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또 하나 그런 시도들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스타일적인 과잉 이런 걸 떠나서, 기본적으로 서사가 충실하게 엮여 있지 못했다라는 점인데, 그건 말하자면 너무나 복잡하고 더 많이 길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 측면이라서, 여기서는 이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스타일적, 이 영화가 선택한 형식적 요소들, 이 영화가 인용한 이전의 많은 영화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 영화의 성취 정도에 대한 저의 아쉬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지지하는 그런 영화라고 말씀드리는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윤성은) 저도 앞에서 말씀하신 부분들을 모아서 조금 다른 관점으로 봉합을 해보려고 하는데요, 저는 안선생님과 성선생님의 이야기와 조금 더 연결시켜서, 저는 나름대로 평론가들 입장에서 봤을 때 윤종빈이라는 감독이 화두에 올라있고 올라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 감독이 정말 기록될 만큼, 기록될 가치가 있을 만큼, 떠들썩한 그런 데뷔작을 만든 감독이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워낙 히트작을 내놓은 감독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많았고, 저 역시도 그랬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일단 인터넷에서 보기로는 명량보다도 10억 정도 더 들어간 160억대의 상업영화입니다. 그 점을 정말 강조하고 싶어요. 윤종빈 감독이 160억을 들여서 만든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이것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영화를 평가할 때 있어서.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상업적인 성공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작품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윤종빈 감독, 30~40억대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도 많은 압박을 받고 있는데, 160억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제작사나 투자사들로부터 받고 있는 그 압박에 대해서 절대로 좌시할 수 없는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왔던 문제점이라든가 허술함들이 저는 사실 그런 많은 압력들로 인해서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내러티브가 허술한 것은 비판을 피해갈수 없겠지만, 예를 들면 강동원이 강조된 점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사실 처음에 하정우 중심으로 가려고 했던 영화의 방향성을 점점 더 강동원의 입지와 영향력이 강조가 되면서, 두 사람다 주연이긴 하지만 하정우가 조금은 더 묻혀버린 효과까지도 낳게 되었는데요. 강동원이 전작에서 보여줬던 많은 모습들, 머리 풀어헤친 걸 산발이라고 표현을 하셨지만, 사실 샴푸광고가 들어와야 되는 비쥬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성관객들에게는 하나의 팬서비스가 되는 거죠. <형사>나 <전우치>에서 멋있었던 그런것들을 재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이 강동원이 강조됐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영화가 산만하고 격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스타를 강조하기 위한 압박이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 좀 반대급부로 윤종빈을 좀 변호해볼게요. 전 제 나름대로. 윤종빈 감독이랑 사진한번 찍었지만 아무런 관계가 아닙니다. 친척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에서 패스티쉬와 과잉이라고 보신 그 스타일적인 측면이 저는 윤종빈 감독이 자기를 남기기 위한 하나의 흔적이라고 봤거든요. 오히려 반대로. 그게 뭐냐면, 상업영화는 이렇게 만들어야 해, 장르적으로 이렇게 가야하고 이런 어떤 수많은 감놔라 배놔라 하는 사람들 속에서, 윤종빈 감독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본인의 <범죄와의 전쟁>이나 <비스티보이즈>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보여줬던 시니컬함 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것이 내레이션에서 굉장히 두드러진다고 봤거든요. 키치적이라고 보였던 약간 진지하지 못한, 그런 부분들이 시네필적인 그런 단어도 나왔었죠, 저는 그런 것들이 윤종빈이 어쨌든 ‘그래 좋아. 그러면 내가 이때까지 만들어왔던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영화를 지금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왔는데, 그렇다면 나 이것도 잘 만들 수 있어’ 라고 하고 싶다 라는 거죠. 근데 거기에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은 자기의 고유한 영역을, 오히려 사람들은 감정적인 몰입을 요구했겠지만, 저는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몰입감을 줄여주는 차가운 시선들을 읽으면서 이것이 윤종빈 감독의 스타일이 남아있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부분이 이 영화에서 모던한 부분이라고 보여졌구요. 마치 우리가 마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서 허진호 감독에게 열광을 했었지만, 그는 최근에 위험한 관계를 만들었죠. 그거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나 이런 것도 잘할 수 있어.’ ‘내가 무슨 리얼리즘 감독이라고, 좋아해왔지만 이렇게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역량도 발휘할 수 있어.’ 이런 생각이 드는, 그것보다는 훨씬 더, 좀 한톤 낮춘 영화이기는 하지만, 윤종빈 감독의 재능이 그래도 많이 보여졌다고 생각해요. <범죄와의 전쟁>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지만, 그의 재능은 높이 사고 싶고 이 영화에서도 충분히 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히려 모순점이라고 생각은 드는데, 너무나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상업영화로서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저는 솔직히 조선명탐정을 보고는 울었던 사람이에요. 노비들이 그 노비문서 찢을 때 저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 정도로 그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군도>를 보면서 저는 아까 읽었던 그런 모토들이 와 닿지 않았고 굉장히 차갑다, 이성적으로 만들었고 남성적으로 여기에 군도들이 이렇게 희생당하고 사실 사회 외부에서부터 자라서 자기네들의 이상향을 침입 받았을 때 이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이런 지점들에 있어서 눈물이 나거나 가슴이 아프거나 하지 않더라구요. 이것이 오히려 윤종빈감독이 원했던 바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 생뚱맞은 질문이긴 한데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다른 분들이랑 이야기를 해봤는데 이 부분이 저는 좀 해결이 안되는게 뭐였나면, 강동원이 왜 아기를 맨 마지막에 살려두지 않은것까지 아까 군도2 말씀하셨잖아요 이게 뭐 속편을 예고하는 것인지. 근데 아기를 그냥 살려두는 거랑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얘를 안고 싸운단 말이죠. 정말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을 하는데.


성진수) 제가 그거에 대해서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이 영화가 정말 많은 영화들을 인용하고 있잖아요. 그 마지막에 탁탁 쏘는건 <장고> 장면이고, 심지어 거기서 저는 그 사람들이 교수형 당하려고 할 때 ‘설마 저 멀리서 활을 쏴서 저 선을 끊지는 않겠지?’, 이 생각을 할 정도로 정말 인용이 많은데, 아기를 안고 싸우는 장면에서 외팔이 검객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것보다는 이 영화에서는 강동원이 연기하는 극중 조윤은, 그 인물이 그려온 캐릭터의 형성된 모습으로는 설득력이 있는 행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인물이 애초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이라기 보다는, 굉장히 이중성을 가지거나 다면적인 측면을 가진 인물로 그려져 있기 때문에, ‘아기까지는 죽이지 않을 정도의, 그런 일말의,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은 아니다’라는 것을 남겨두는 요소로서, 그 영화 안에서는 조윤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해온 영화의 서사라면 가능하다는 생각한다.


윤성은) 저도 아기를 안 죽이는건 이해할 수 있는데, 안고 싸우는 게 좀 걸렸거든요.


박태식) 아기를 안죽인 게 한 번 더 있죠, 동생을.


정재형) 안 죽인 것 보다는 못 죽인거잖아요


03


안숭범) 저는 그것도 상업적인 의도 같은데. 안 죽이는건. 왜냐하면 강동원에 대한 지지세력들이 많이 있는데 강동원을 옹호해주기 위해서는 아기를 죽이면 안 되죠.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이뎌연) 저는 그 부분에서, 참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하정우랑 강동원이 아기를 안고 싸우는데 강동원이 선한 인물이고 하정우가 악한 인물처럼 비춰졌거든요.


윤성은) 아기를 안고 싸우는 게 훨씬 더 강한 임팩트가 있다,


이수향) 저도 이 영화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들이 많아서 거의 겹치구요.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말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개인적으로 안선생님 의견과 굉장히 많이 동의를 하구요, 영화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원래 윤종빈 감독을 좋아하는데, 사실 말하면 전작에 대한 기대치에는 충분히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서사상의 빈 부분이 많고 약점이 굉장히 많지만요. 좋았던 걸 먼저 이야기해 보자면 방금 윤성은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이 영화를 작가주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감안해야 하는 일정부분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윤종빈이라는 감독 개인이 가져야할 스타일이 있지만 또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있고 그런 부분에서 타협을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부분을 보자면 사실 굉장히 많습니다. 아까 내레이션부분과 관련해서 이것을 굉장히 키치적이고 비급적이고 활극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저는 초반 내레이션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길고 너무 서술형이고, 이게 조금 더 재미있으려면 초반부터 조금 더 웃기게 가든지 포인트를 좀 더 세게 줬어야 됐는데 초반에는 키치적 느낌이 강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중반이후부터 갑자기 웃기는 화자처럼 변하더라구요. 그래서 내레이션 부분이 조금 어색했고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윤지혜가 남자애 둘을 숨겨주잖아요, 근데 왜 그 아이만 안고 가느냐 이거죠. 걔네가 데리고 있는데 더 안전한데, 아기를 안고 싸우는 게 말이 안되는 거죠. 싸우다가 결국 그 아이를 뺏기고 죽게 되는 느낌까지 가잖아요, 결국 죽는건 아니지만. 그럼 갇혀있는 두 명은 죽었나보다, 근데 걔들도 살아있더라구요. 이런 식으로 이 작품에는 서사적인 공백이 많아요.

또 밸런스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 영화는 너무 강동원의 영화에요. 하정우가 섭섭할 정도로, 개인에 대한 호불호, 강동원에 대한 취향을 떠나서 감독이 너무나 많은, 이 영화의 흐트러진 부분들은 전부 강동원 때문인데, 사실 초반 내레이션이 길어진 것, 쓸데없이 인물들의 전사가 초반에 지저분하게 흐트러진 것도 강동원을 너무 자세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그랬다.  그냥 버려졌다 데려왔다 이정도만 이야기하면 되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겪었고, 색주가에서 어떻게 컸고, 이런 것들을 너무 지저분하게 보여줘요. 그래서 영화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연기에 있어서는 하정우의 연기가 나무랄데가 없다고 생각해요. 초반에 바보같이 나왔을 때 너무 재미있었고, 나중에도 똑똑해지진 않지만, 조금 더 각성된 인물로 나오고 18살에서 20살이 되면서 조금 더 나아지죠.


박태식) 거기가 제일 재밌잖아. 나 스무 살이야. 난 스물 둘이야. 어린놈의 쉐끼가 ... (일동 웃음)


이수향) 그러니까요, 그 부분이 젤 재미있잖아요. 하정우는 영웅이 안됨으로서 비중은 낮아지지만, 강동원하고 놓고 비교했을 때 연기가 사실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감독이 강동원을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중적인 고려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건 분명히 그 머리 자르는 장면하고도 연결되죠. 보고는 강동원 생각만 나더라구요.

전 이 영화를 크게 두 가지로 보는데 이건 나머지 영화들이랑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윤종빈 감독이 왜 이런 방식을 택했나 생각해 본다면 윤종빈 감독의 개인적인 스타일에는 분명히 사회적인 의식, 사회적인 비판 포지션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이 영화는 대중적이고 이 영화를 통해서 대중적으로 굉장히 성공했다는 칭호를 받고싶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 두 개를 섞다보니까 미비한 부분들이 나오는 건데, 사실 전 이 부분에서 군도를 왜 높게 평가하냐면 <명량>이나 <해적>에도 이런 사회비판적인 시선이 계속 침입을 해요, 영화에. 근데 이것이 자연스럽게 뽑아내느냐 봤을 때, 두 영화는 너무 거슬려요. 특히 <해적>이 많이 거슬리고. 그거에 비하면 <군도>는 전체적으로 대사 하나, 두개로 해결해 보려는게 아니라, 굉장히 미묘하고 미세하게 부분부분 시퀀스에 다 넣어요. 예를 들자면, 탐관오리들이 결국 무관 세력들이고 그 잔당들이 모여서 나주 일대를 탐관오리들이 크게 장악을 하는 모습이라든가, 하정우가 상투를 자르는 걸 즐기잖아요, ‘신체발부 수지부모’ 이런 부분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있는 거죠. 또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있었던 구휼미를 횡령한 부분이라든가. 소금이랑 연근 밭을 개조할 때도 너무 또렷하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냥 둘 때가 나을 때도 있는 법이야”, “나라에 녹을 받은 있는 놈들이 더 결탁을 해서 고혈을 빤다”라던가 이런 식으로 대사로 보여주는 부분들이 있어요. 특히 마지막에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적이다” “더러운 땅에 연꽃이 피어오르는 것은 신의 뜻인가, 연꽃의 의지인가”, 중요한건 이제 뭔가 바뀌기 위해서는 연꽃들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이 영화를 제가 고평하는 이유는 <군도>는, 지금 근래에 나온 영화들이 이런 시각을 조금씩 넣고 있는데, 저에게는 그게 참 재미가 없는 게, 왜 진짜 진정성 있게 그런 시선을 담보하고 있다고 느껴지기 보다는 다소 ‘어? 이런거 약간 먹히는데’ 소재주의적으로, <변호인> 이후로 이런 걸 사람들이 상업적으로, 대사 몇 개로 둘러쳐버리려는 유치한 의도가 느껴져서, 차라리 그걸 빼고 담백하게 만들지 왜 이도저도 아니게 유치하게 그럴까 생각이 드는 거에 비해서, 윤종빈이라는 감독은 전작에서도 그렇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색채가 그렇고 이런 부분을 미묘하게 넣고 있는데 , 감독은 두 개를 다 가지고 가고 있는거에요. 근데 이걸 너무 교조적으로 심하게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영화도 재미가 없고 이 대작에 할 짓이 아니니까, 전체적으로 굉장히 대중성을 강조를 합니다. 제작보고회에서 감독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이 영화는 그냥 그동안 너무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힐링을 주고 싶다. 재미있게 보고 즐겼으면 좋겠다. 더 이상의 뭐 그런 건 하지 말아달라. 이런식으로 말을 하는 부분, 강동원을 유난히 강조하는 부분, 이런 점들을 보았을 때 감독이 자기가 생각하는 내피가 있고 그걸 외연으로 가리고 싶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양면을 미묘하게 읽어낼 수 있으면 좀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로써는 윤종빈 감독의 영화치고 아쉽게 느껴졌던 부분은 스타일의 실종이라는 부분이죠. 이 영화는 완전히 활극이죠. <장고>가 너무 많이 떠오르고 타란티노적인 장면들도 굉장히 많구요. 그러다보니까 우리의 고전 전통인 탐관오리, 민관을 웨스턴 스타일에 버무려서 해놓는 게 오히려 요새 유행하는 느낌이라 재미는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우리만의 스타일, 윤종빈만의 스타일은 어디로 갔느냐 라고 봤을 때,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범죄와의 전쟁>에서 보여준 시대를 그리는 방식에 있어서의 냉정하고 날카로운 느낌. 그러면서도 제가 최민식의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김응수 검사를 구워삶아보려고 하다 잘 안되니까 종친회를 이용해서 할아버지한테 엄청 잘해준 다음에 딱 팔짱끼고 차에서 내릴 때, 최민식의 표정이라던지. 저는 이 장면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거든요. 이런 식으로 허를 찌르는 한방 같은 느낌, 그런 게 이 영화에는 좀 없어요.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크게 나쁘진 않은데, 뭔가 그런 감독이 가진 날카로운,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그런 부분이 저한텐 별로 안보여서 좀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정재형) 저는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 저는 이렇게 생각이 들었어요. 도치와 조윤은 쌍둥이와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두 인물을 쪼개 놨다.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을 했는가. 둘 다 의적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데, 백정 출신의 의적이었던 임꺽정과 서자출신의 홍길동이 아마 도치와 조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이 영화가 도치가 주인공인데, 결국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 극의 치명적인 결함이 누구를 주인공으로 하느냐 문제에 있어 밸런스가, 굉장히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도 느끼지만, 특히 마지막에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도치가 주인공으로 갔지만 관객들은 사실 조윤에 동일시를 느꼈거든요. 그 부분은 좋게 보면 두 사람에게 똑같은 비중을 주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강동원의 많은 팬들로 인해서 사실 실패했다. 이런 비극이 되지 않았을까 좋게 해석할 수 있고, 나쁘게 해석하면 연출 자체가, 지금 이 주인공을 차라리 조윤으로 했으면, 홍길동같이, 조윤이 마지막에 도적이 된다든지,  조윤을 마지막에 죽이지 않고 도적으로 변신하는 모습으로 끝났다면, 이런식으로 뭔가 조윤이 주인공이 됐으면 이 영화가 조윤의 영화가 되었으면, 그럼 큰 문제가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관객들이 하는 이런 이야기까지 들었어요. “왜 강동원을 죽이느냐” 굉장히 속상해 하더라구요. 제가 정리해서 말하자면 그분은 주인공을 조윤으로 착각한 거에요. 그리고 사실 강동원때문에 영화를 보러온 것 같구요. 물론 하정우씨 입장에서 섭섭할지 모르지만, 하정우씨 팬들도 있었겠죠, 분명 이 영화는 조윤의 입장으로 많이 끌려갔어요.


04


윤성은) 주인공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프로타고니스를 말씀하신 거죠? 전 주연은 두 명이라고 보거든요.


정재형) 왜냐면 조윤은 죽잖아요. 결국 극을 마무리하는 것은 하정우란 말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지적한건 관객 입장에서 추상적인 부분을 얘기하는 거에요. 거기서 굉장히 나쁘게 말하면 감독이 연출을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으로서는 잘못연출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학적인 측면에서 제가 지적하고싶은 부분은, 이 영화의 서사에 있어서 굉장히 치명적 결함은 주제의식을 승화시키지 못했다. 도치를 통해 주제를 승화시키려고 한 것에 약간의 패착이 있다고 느낀 건, 의적으로서의 내적인 이미지가, 이미지를 구축해온 것이 도치는 너무 없고, 의적으로서 주인공이 수행해 나갈 수 있는 배경이 너무 약해요. 조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거죠. 그런면에서 조윤의 백 스토리는 대단히 훌륭해요. 그래서 이 영화는 사실 감독의 역사의식의 어떤 패착을 보여주냐면, 도대체 윤종빈 감독은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느냐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요. 사실 이것은 루카치가 역사소설에서 이야기했듯이, 민중영웅, 서민영웅, 왕이나 귀족의 영웅이 아니라 서민 영웅상을 그려냈다는 면은 민중지향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서, 조윤의 이야기가 너무 강한 거에요. 조윤은 사실 서얼의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동안 간간히 뿌려졌던 부정부패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실 다 날라가는 거죠. 끝까지 가지고 가는 건 조윤이 아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동정적 이미지로 관객에게 어필하고 결국은 조윤의 이미지로 엔딩을 찍거든요. 그러면 그동안의 역사의식, 서민적인 영웅의 이미지, 의적들의 이미지, 그런 이상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다 사라져 버려요. 그리고 조선 정세에 대한, 엄청난 세금징수에 의한 민란이 일어났던 배경들은 다 사라져버려요. 오로지 굉장히 가정 비극적인, 서얼의 불만을 품은 문제적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귀속되어 버리니까 역사의식의 숭고미가 없어지는 거죠. 강하게 새로운 역사의식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그것을 너무 가정비극적인 작은 스케일의 문제적 인간을 그리고, 마지막에 동정심을 부가함으로 인해서 관객들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으로 남기고, 완전한 주인공을 도치시켜버리죠. 도치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죠. 사실은 국가 질서를 전복시킨다는 의미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상쇄, 감쇄시켜버리는 이런 연출미학을 보인다는 거에 대해 아쉬움이 있어요.

사실 이건 많은 변명할 거리가 있어요. 윤종빈 감독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저도 한마디 거들면 사실 윤종빈 감독으로서는 한계를 넘을 수 없는 어떤 불가피함이 있지 않은가. 왜냐면 이건 블록버스터거든요. 블록버스터는 절대 그러한 지경까지 가기에는 굉장히 버겁다. 그런 전례가 헐리우드도 별로 없다. <아이언맨>에서 그런 역사의식 보이기 힘들거든요. 적어도 중간급, 미들급 영화에 나와야, 우리식으로 40~50억 정도 떨어져야 경제적 부담 없이 감독이 어느 정도 보일 수 있죠. 할리우드도 마찬가지이고 우리나라도 그래요. 이건 산업적인 마진의 문제라고 보이고, 윤종빈이 전작보다도 훨씬 더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게 아닌가. 이것도 하나의 이유고, 사실 <범죄와의 전쟁>과 <군도>는 전혀 다른 영화잖아요. 퓨전 사극이라고 해야 할까요? 퓨전 영화의 스타일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전작과는 별도로 떼어놓을 수밖에 없는 스타일의 모험인데, 대단한 변신을 했는데 이 변신이 결과적으로 그런 역사의식을 숭고하게 드러내는데 있어서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라고 물었을 때, 별로 도와주지 못했죠. 오락적으로 100% 작용했다고 보고, 주제의식을 승화시키는데 있어서 그것은 별개로 작용했기 때문에. 그런 것에 굉장히 힘을 많이 소진한 영화. 두 마리의 토끼로 이야기하자면 한 마리는 도망갔고 한 마리는 잡았는데, 전 사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에요. 저는 요즘 관객에게는 그런 식의 팬서비스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이것을 무겁게 갔다면 관객들이 또 얼마나 거부감을 느꼈을까. 긍정, 부정을 논의 하는게 아니라 제가 객관적으로 보자면 저는 굉장히 좋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관객들이 굉장히 부담스러워 했다는 걸 동시에 느꼈어요.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더라는 거죠. 제 주변의 한정된 관객이긴 하지만 저도 그걸 보면서 느낌이 있었어요. 맞다, 이런 식의 시도를 과감하게 하는 영화들이 그동안 있었는가? 그런 점에서 보면 윤종빈의 시도가 굉장히 놀랍다는 거죠. 사극에서 마카로니 웨스턴의 기관총의 경박함을 가지고 관객들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자체는 높게 사고 싶은데 그 의도만큼 잘 전달되었는가라는 측정, 평가부분에 있어서는 한국관객들이 사실 인색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이게 타란티노의 나라도 아니고, 세르지오 레오네의 나라도 아니고, 그렇게 개방되어 있는 나라가 아닌데, 시공을 초월한 식의 판타지적 부분들을 당황스러워 하는 것 같더라구요. 평론가 레벨에서 느끼는 것과 관객의 레벨에서 느끼는 그런 평가는 좀 다를 것 같다. 갈릴 것 같다 생각이 들더라구요.


성진수) <군도>를 이야기하면서 아까 밸런스 이야기를 했는데, 형식의 실험에 있어서 밸런스가 흐트러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형식의 실험을 하려면 서사는 굉장히 전통적인 멜로드라마 서사를 가지는 게 훨씬 안정적인 선택이었다고 봐요. 그렇다면 인물의 밸런스에 있어 사실 제가 판단하는 바로는 강동원이 올라서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하정우가 연기하는 도치라는 인물이 형성이 안된 게 문제라고 느꼈었어요. 강동원이라는 스타를 평면적인 악인이 아니라 입체적인 악인을 그리는 것이 훨씬 더 관객들에게도 좋고, 관객들이 이미 <다크나이트> 등의 영화들을 보면서 선호했던 측면들이 악인의 입체성이거든요. 그래서 오늘날 많은 영화들에서 악인이 입체적이지 않은 인물은 없어요. 강동원을 과하게 그린 게 패착이 아니라, 조윤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쏟은 정성만큼 도치를 만들었어야 해요.


이수향) 맞죠, 근데 그럼 영화가 세 시간이 되는데


성진수) 근데 솔직히 이 영화가 세 시간이 되는 이유는 인물을 구축하고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선택한 몇 가지 형식적인 과잉들을 전시하기 위해 소비된 시간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오프닝에 그 사람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게 굉장히 키치적이고 신선한 형식일수 있지만, 그 정도의 시간들을 몇 가지는 빼도 되는 것들이 있었어요. 그 내레이션에도 소비하는 거. 그 정도까지 과잉으로 안하고 그 양념을 조금만 줄였어도 사람들은 ‘오히려 신선하다’, ‘이야기는 오히려 친숙하네’, ‘카타르시스도 느껴지네’, ‘아, 강동원이 악인이지만, 아릅다게 그려졌지만, 죽는게 슬프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굉장히 통쾌하네’ 이런것들이 복합적으로 잘 버무려진 하나의 상황이 ...


정재형) 저도 동의해요. 스토리나 이런 것들이 훨씬 더 단순했으면 , 스토리나 인물이 선악이분법적으로 굉장히 단순한 무협활극이었으면 그 스타일이 크게 방해되지 않겠죠. 상승작용을 했겠죠. 그런데 사실 이건 아까 두 분이 말씀하신대로 너무 많은 거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덫을 놓은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보니까.


박태식) 처음에 이 사람들이 탐관오리들의 목을 자르는 영화 도입부가 마치 007같잖아요. 그렇게 시작했으면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갔어야 했어요. 이런 방향 말고, 진짜 007처럼 그렇게 갔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수향) 그런데 윤종빈이라는 개인이 그렇게 일차원적으로 그리기에는 감당하기 싫은 부분인거죠. 너무 자의식이 있는 거에요. 그게 밸런스의 문제라는 거예요.


정재형) 그래서 전 사실 한국영화미학의 문제를 건드리고 싶어요. 왜그러냐하면 세르지오 레오네는 절대 역사의식을 그렇게 담지 않거든요. 그런 것에 대한 대가적인 면모를 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한 그림을 그리는데 그것을 관객이 역사적으로 해석을 하든, 오락적으로 해석을 하든, 그거에 상관없이 어떤 스타일의 과잉으로 단순한 이야기로 활극을 재미있게 보여주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세계와, 사실 이 영화는 역사의식을 담고 있는 리얼리즘 영화에 어울리는 내용들인데, 굉장히 내용의 컨텐츠가 굉장히 풍부하잖아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러면 진중한 역사 리얼리즘 영화로 가면 되는데, 가벼운, 전혀 엉뚱한 마카로니 웨스턴 접목시켰거든요. 이런 영화가 없어요. 드물죠. 그런 실험을 왜 하는가? 나는 이런 거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어요. 그건 굉장히 단순한 계기로 하는 것 같아요. 일단은, 가볍게 풀자. 지금의 시대가 코미디의 시대고 퓨전의 시대니까 가볍게 풀자. 그런데 나는 그게 미학체계에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보여요. 새롭게 해석한건 없어요. 사실은 마카로니 웨스턴의 장면들을 그대로 복사해서 넣은 거에요. 어떻게 보면 짜깁기 하다시피. 새로운 건 없어요. 새롭다는 것은 무협과 마카로니가 서로 통할 수 있구나 그런 것인데, 그런 개연성은 많이 있어왔고 개연성이 있죠. 그렇다면 마카로니 웨스턴이 아니라 진중한 서부극의 형태로 갔으면 어땠을까? 이런 가능성도 있을 수 있었죠. 어쨌든 성진수선생의 얘기는 스타일과 역사극의 무게, 진지함이 밸런스가 맞지 않다는 거 아니에요. 전 그것도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미학을 깊이 들어가면 한국영화감독들이 과연 미학을 구사하는데 있어 근거들이 정확한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어요. 요즘의 시대가 뭐든지 짜깁기하면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가. 그렇다면 사실 나는 경종을 울리고 싶다. 그렇지 않다. 무조건 갖다 집어넣고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짜깁기 영화의 예로 <광해>를 들 수 있는데, 광해는 훨씬 잘 만들어졌어요. 왜냐, <광해>는 그것이 진지하면서도 짜깁기죠. 베끼다시피 했는데, 그러면서도 그것에 대한 밸런스를 맞췄어요. 그걸 과격한 실험을 하진 않았잖아요. 판타지라는게 이것처럼 그렇게. 사실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게 황당무계한 서부극인거죠. 그 자체가 황당무계한 거죠. 그 자체를 가지고 관객을 즐겁게 한 대표적이 사조인데. <광해>가 했던 코미디는 그렇지 않거든요. 인물을 코믹하게 간 것뿐이지 그런 과장, 판타지는 없었어요. 만약에 그런 여러 가지 과장된 판타지 코미디를 했었다면, <광해>의 역사의식은 상당히 많이 거세되었을지도 몰라요. 그것도 비유컨대, 그런 예가 떠오르네요. 사극은 기본적으로 진지하기 때문에 문제인데, 그 무거움을 어떻게, 이 시대에 부박한 풍조에 맞게끔, 지금 코미디가 대세니까, 코미디로 가야할까 생각할 때, 그것은 하나의 과제인 것 같아요. 이번에 윤종빈 감독은. 그래서 관객의 평이 몹시 궁금한데, 관객은 분명히 제 주변의 관객은 당황스러워했어요. 저는 굉장히 재미있게 봤어요, 매니아들은 재미있게 볼 것 같아요. 패러디 효과도 있으니까. 지금의 관객에게 마카로니 웨스턴은 향수가 아니라 새로운 스타일이라고 봤을 거에요. 그렇지 않아도 인물에서 오는 혼선이 있는데, 과연 이 영화를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역사성으로 봐야할까. 저는 그저 그런 ‘서민들 뭐 그렇지’, ‘항상 하던 이야기’로 보지 않았을까. 많이 방점을 두려고 했던 의적들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도적정신, 도적사상, 유토피아 정신, 전복적인 구조 이런 것들에 대해 읽을 수 있었을까, 나는 절대 읽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주인공은 도대체 뭐야’,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왜 죽어야해’ 이런 상실감. 이런 것들이 거꾸로 말하자면, 주인공을 도치시켜서, 강동원이 주인공이었다면 그 상실감이 만족감으로 왔을 거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두어서, 물론 제가 원하는 역사의식은 아니지만, 만약 제가 영화를 재구성한다면 강동원이 나중에 도적이 된다면, 더 뻔하지만 더 멋있는 영화가 될 수도 있었겠죠. 서얼의 개인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각해서 도적이 된다면, 그 검객은 대단한 검객이잖아요. 그런 이야기도 상상해 볼 수 있고, 여러 가지 상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데, 어떻게 보면 이것은 블록버스터로서의 한계가 가장 결정적인 거 아닌가 생각해요.


2014-07-24 22.08.02


이대연) 대립하는게 사실은 백정하고 서얼이지, 양반은 아니거든요. 저는 아직도 왜 이런 설정을 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조공자는 홍길동처럼 보이고 도치는 임꺽정처럼 보이고. ‘프레데터랑 에어리언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 이런 것처럼 ‘홍길동하고 임꺽정하고 붙으면 누가 이겨’ 이런 느낌으로 다가와요. 사실 도치란 이름은 산속에 들어가서 받게 되잖아요. 조윤같은 경우는 조공자라고 불리고. 한사람은 이름을 부여받은 사람이고 한사람은 이름보다 성이 중요한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정작 이 두 사람이 싸울 때 양반들은 없거든요. 전 어떤 느낌을 받았냐면, 예전에 임상수 감독의 <하녀> 보면서 부자의 와이프와 하녀인 전도연과 갈등을 하잖아요. 정작 부자는 빠져있거든요. 굉장히, 뭐랄까, 무섭다고 느꼈는데, 싸우는 게  누구나면 하층민 사람들이 싸우지 실제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체는 싸움에서 배제되어 있어요. 이 영화에서도 싸우는 사람들은 서얼과 백정이 싸우는 거지 양반은 배제되어 있거든요. 그렇다면 민중이라는 게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재미있게 하자는 설정인지 의식하고 한 건지 모르겠는데, 결국 이 영화가 민중이라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가 하고 봤을 때, 거기서 물음표가 찍힐 수 있는 부분들일 수 있을 것 같고. 어쩌면 감독이 굉장히 시니컬한 태도로 의도한 거라면, 어떻게 봐야될지......


정재형) 이대연 선생님 이야기가 맞아요.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있는데 감독이 그렇게 만들었는지가 의문이에요. 내가 동의하거든요. 결국 양반이 빠져있고, 결국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싸우는 판 인거죠, 그게 모순인거죠. 그렇게 메시지를 주려고 했다면 그렇게 읽고 나와야 하는데, 사실은 이대연 선생님 말을 들으니까 그렇다는 거지, 들어갈 때는 조윤의 서얼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다보니까 백정으로서 원한감이 조윤한테 가고, 이래서 서로 머리를 잡고 밑에서 애들끼리 싸우는 비극의 참사, 안타까운 상황인거죠. 서로 애절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다른 해석으로 간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부분도 굉장히 좋은 해석인데 , 분명히 그런 구도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증발되있는 느낌이 들고 그러니까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남죠.


민병선) 이 영화는 그래서 ‘민란’이 아니라 ‘군란’이에요, 군란.


윤성은 ) 아까 말씀하신 부분 중에서 강동원의 캐릭터는 정말 치밀하면서 입체적인 악역을 만들어서 동정심까지 끌어낼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놓고 하정우는 너무 죽었다 말씀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그렇게 약해지게 된 게, 제가 기자 시사회를 갔을 때 하정우는 솔직히 그냥 존재감만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더라구요. 아무 짓도 안했는데, 누더기 걸치고 나왔는데 웃더라구요. 배우로서 하정우와 강동원은 너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갭을, 레벨을 맞추려는 부분을 없지 않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하정우는 굳이 치밀한 캐릭터를 만들어줄 이유가 없고,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부터 사람들을 장악하는 힘이 있는 카리스마가 있는 배우고, 강동원은 예쁘게 생겼지만 배우로서 카리스마는 하정우보다 훨씬 못하다는 그런 측면에 있어서 그런 두 사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수향) 저도 덧붙이자면, 안 선생님께서 강동원이 무관으로 잘 안되서 탐관오리로 입장을 바꿨다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보기보다는 처음부터 이 사람의 인생은 아버지의 대한 인정욕망 그 하나였던 것 같아요. 무관이 되려던 것도 혼자 잘돼서 성공하려 했다기보다 아버지한테 인정 못받으면 사회적으로 벼슬이라도 받아볼까 했는데 그게 잘 안돼서 내려온 거죠. 조윤이 가진 인정욕망이 계속 강조가 되는데, 마지막에 동생의 아기를 살리잖아요. 그게 관객들에게 혼란을 주는 거죠. ‘쟤 뭐하는 짓인가, 저 사람을 좋아해야 하나 미워해야하나’ 그런 혼란을 주는 부분이 장점으로 따지자면 사실 재미있어요. 일차적이지 않고 입체적이고 재미있고. 또 문제적인 발언을 하잖아요. 사실 이 영화를 통틀어서 주인공이 괜찮은 대사를 한건 이거밖에 없는 것 같아요.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생을 걸어본 자가 있거든 나서거라!”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강동원한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어요. ‘그래, 사실 그렇잖아’라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 사람의 인정욕망이든 삐뚤어진 의식이든 간에. 이런 측면에서 강동원이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구축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강동원이 가진 연기력의 한계를 조금 봤어요. ‘슬픈 눈’으로서 가지는 그 엄청난 미적인 아름다움, 영화내적으로 풍부하게 하는 시각적인 효과는 있는데 발성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민초들 앞에서 소리 지르는 장면이 있어요. 목 잘린 사람들 놓으면서 '너네도 이렇게 될 수 있으니까 조심해라' 이런 식의 발언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오그라들 정도로 연기를 못하더라고요. 낮은 톤으로 작게 이야기를 할 때는 괜찮았는데, 확 소리를 지르니까 특유의 사투리 섞인 발성이 나오면서 한계를 느꼈어요. 그렇게 따지자면 윤성은 선생님 말씀이 맞는게, 하정우는 굉장히 축소가 되어있고 강조가 안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포즈 하나하나 존재감이 남다르고, 처음에 그 바보연기 했을 때 전 영화 통틀어 제일 재미있었어요.


그럼 시간 관계상 이제 <명량>으로 넘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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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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