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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합평회

영화평론가협회 합평회: <명량> 2부 박태식, 정재형, 이수향, 윤성은, 성진수, 안숭범, 이대연, 민병선

2014-07-24 22.08.31


이수향) 저는 <명량>과 <군도>가 너무 다른 스타일의 영화여서, <명량>이 이렇게 까지 진지할 줄 몰랐는데 너무 진지해서 놀랐습니다. 요새 사극이 트랜드인게, <관상>이나 <광해>가 주는 ‘사극이면 안된다’는 편견을 깨고 잘되고 흥행도 하고 하니까, 충무로에서 사극이 붐이 된 것 같아요. 그 작품들의 특징을 보자면, 사극이 집중도가 현대물보다 떨어지는 것을 돌파하기 위해 코믹의 요소를을 집어넣어요. 그 많은 런닝타임을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잘 배려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군도>나 <해적>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명량>이 특이한 점은 그 부분들을 싹 소거를 하고, 오직 정공법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던데, 진지하게 우직하게 다가가는 거죠. 이것도 또 하나의 요새 원하는 스타일의 트랜드, 드라마 <정도전>이 인기가 많았잖아요. 하나의 또, 재 귀환하고 있는, 영웅을 잃어버리고 개개인의 힘이 합쳐져서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 꿈이 있지만, 꿈만으로 잘 안되는 시대에 또 어쩔수 없이, 누구 한명이 나타나서 우리 인생을 해결해줬으면 하는 불안함을 또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 채용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특징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김한민 감독의 전작 <활>이 역동적이고, 카메라워크나, 화살 날라가는 걸 잡는 게, 여러 가지 논란도 있었지만 훌륭했다고 보는데, 이 작품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배끼리 충돌하는 충파라든가 해상전투장면이 압도적이라, 저는 너무 재미있는 내용도 없고 해양 전투씬이 61분이라던가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해상전투씬도 별로 안 지루했어요. 저 같은 그냥 여자 관객이 봐도 재미있었고, 최민식 한명에게 완전히 압도적으로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라서 류승룡 보이지도 않았구요. 나머지 애들은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던 것 같고, 최민식이 밤에 꿈과 환상이 겹친 장면에서 원혼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원망스런 그런 걸 표현을 하고, 울면서 산발이 되서 쫓아가는 장면이 있잖아요.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군도>랑 <명량>이 둘 다 주인공이 머리를 풀어헤치는데 너무 다르다. 강동원의 미가 압도된 머리 풀어헤침과 최민식의 원한이 절절히 서린 영웅의 고뇌, 이건 진짜 산발인거에요. 진짜. 그게 너무 두 영화에서 머리를 풀어헤치는데 노리는 지점이 정확하게 정 반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개인적으로 재미있었구요. 최민식은 연기의 신이구나, 또 한 번 느끼면서, <범죄와의 전쟁>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최민식 말고 누가 또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성진수) <명량>하고 <군도>는 사극이라는 형태를 가졌지만 정확하게 다른 영화인데, 하나는 정사에 기반한, 역사적 사실을 극화시켜서 재현하는 측면이 있었고, 하나는 아까 퓨전, 판타지라는 표현이 있었지만, <군도>의 철종 몇 년이라는 설정이 그 영화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잡아내기 힘들 정도로, 그 설정이 ‘왜 앞에 내레이션을 하나’ 싶을 정도로 역사적 맥락과는 떨어진 판타지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이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분명히 틀린 지점이예요. 그런데 그것 외에도 이 <명량>이라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대중적인 지점에 있어서 또 하나의 큰 장르적인 정체성은 이게 전쟁영화라는 점에 있는 것 같아요. 특히나 우리나라 전쟁영화 중에서도 해상전을 다룬 전쟁영화. 그래서 이 영화가 보면 전체 스토리 흘러가는 게 당연히 이순신의 영웅적인 면모를 최민식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부각시키는 면도 있지만, 이 명량해전이라는 전투, 하나의 해상전이 어떻게 실제 이루어진 것인가, 가능한 것인가라는 백스토리와 실제 전술에 대한 설명, 전술의 핵심은 무엇인가에 있어서 정신적인 측면으로 그 전술을, 즉 외적인 전술이 아니라 내적인 전술의 측면을 표현하는데 포커스를 맞췄고, 그것이 굉장히 효과적으로 잘 전달되었다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 해상전투장면을 보여주는 스펙터클을 훌륭했지만 전체 전술을 보여주데 있어서는 설명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몇 가지 있긴 했어요. 왜 이렇게 한 줄로 서는 그러한 배들의 선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혹은 대장선으로 모이라고 하는 깃발을 올렸을 때 나머지 장수들이 안 오는 게 이게 전술의 일부인가 아님 그들이 지금 오기 싫어서 안오는 건가 라는 것에 대한, 이런 몇 가지, 자세한 설명들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전술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그것들이 색다른 재미로 다가왔어요. 일본에서 배가 오는 것과, 일본에서 류승룡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것이 극적으로 잘 표현되서, 그런 것들이 영화의 기대치, 단순하게 어떤 드라마나 이런데서 봤던 영웅의 모습만 강조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를 했는데, 그런 지점들이 영화적으로 잘 표현된 것이 영화에 큰 재미를 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꽤 잘 만든 전쟁영화, 전투를 핵심으로 하는 전쟁영화의 하나의 사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또 하나는 이 영화가 굉장히 대중적으로 가능성을 보이는 지점은 가장 대중들에게 어필이 잘 되고 쉽게 받아들여지는 멜로드라마라는 양식을 효과적으로 잘 취했는데, 물론 멜로드라마 양식이라는 것이 영화에 도입이 되었을 때 비판받는 지점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또 한편 대중들에게 굉장히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러한 선택들은 상업적으로 굉장히 선택이 잘 되었다.


이수향) 어떤 멜로드라마를 얘기하는지?


성진수) 멜로드라마적 양식이라는게 도덕적으로 보이는 한명의 주인공이 어떤 극한의 죽음에까지 이르렀다가 우연적인 사고로 살아내는, 이런 우연과, 지금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극한 상황을 보여주는 스페터클과, 이런 것들로 이루어진 것을 멜로드라마적 양식이라고 보는데. 그런 측면에 있어서 이 영화가 굉장히 그것을, 이 두 가지를 잘 결합해서 대중적으로 어필을 잘 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또 한가지는 제가 오늘 <명량>과 <군도>를 함께 이야기하려고 보니까, 이제 <명량>을 보면서 아까 두 배우의 삼발을 비교하셨는데, 그런 것도 있지만, 저는 굉장히 이 영화에서 어떤 서사 전개에 있어서 인물 배치가 굉장히 특이한 게 있었어요. 이순신이라는 한명의 사람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 심지어는 이순신이라는 인물과 적대적인 관계를 이루는 강력한 적인 류승룡이라는 인물도 서사적으로 큰일을 할 것 같지만 “리슌쉰!! 리슌쉰!”! 몇 번 외치다가 그냥 죽어버리는 상황이 되고, 모든 왜군 장수들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지나 계속 보고만 있고, 모든 백성들과 장수들과 사병들도 이순신이 뭘 하나 보고만 있는, 이런 굉장히 ‘뭐지?’ 스러운 인물을 보여줘서, 마치 한편으로는 이런 역사적 사건에 대한 증인으로서 그 모든 사람들이 역할을 한다라는 생각도 들면서 또 한편, 마치 관객인 내가 저 해상전투를 보고 있다시피 저들도 모두 관객의 위치에 놓여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굉장히 영화가 클라이막스로 가면서 특이하게 보였던 것은, 그렇게 수동적이고 어떤 하나의 그 능동적인 인물이 되지 못했던 주변의 인물들이 영화의 전투씬이 점점 더 극의 클라이막스로 다가가면서는 그들이 또 한명의 영웅으로 탄생되는 것 같은 그런 전개를 이 영화가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더라구요. 특히 그게 저는 굉장히 극적으로 다가왔던 게, 배에 뛰어 들어가서 왜군들하고 배에서 피터지게 사투를 벌이잖아요. 그때 카메라워크를 잘 보면 이쪽 배에 둥근 지점을 트래킹하듯이 쭈욱 훑어가면서 백병전을 보여주는데, 거기에 그 전까지 단 한번도 이 캐릭터 이름도, 전사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동안 반복해서 보여줬던 개개인의 수병, 스님, 의병, 장수 등 이런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을 마치 병풍처럼 전시하는 카메라워크를 보여주는데, 그런 카메라워크와 함께, 정말 이 영웅이 죽을 지점, 사점에 이르는 그 회오리 안에서 빠져들어 가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순간에, 정말 우연적으로 그들을 꺼내줘서 영웅을 탄생시키는 역할 자체를, 그동안 저 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하고 넋 놓고 있던 백성들을 하게 도입을 시키는거에요. 그렇게 한 번의 전투가 끝나고 나서, 배에 노젓고 했던 그 사람들의, 정말 그러한 장면들도 중간에 잘 삽입을 하면서, 그 사람들이 한 번의 전투를 끝나고 나서 단숨에 노고들을 잊으면서 뭔가를 먹으면서, 자기 스스로가 영웅으로 태어나는거 같은 대사들을 던지고 하는 지점들이, 한편으로는 영리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군도>하고 비교되는 지점이었어요. 왜냐하면 <군도>는 실질적으로 주인공들을 사실 하정우와 강동원이 연기한 인물로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그 영화가 처음에 포지셔닝한 것을 보면 인물들을 소개하는 방식을 보면, 그 군도 집단의 많은 사람들을 캐릭터를 하나하나, 이름까지 하나하나 다 소개해주잖아요. 그런데 그 영화가 서사적으로 쌓아가면서는 그들의 죽음이 너무나 허무하게,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왜 저기서 저렇게 죽어야 하는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스타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렇게 죽어가면서 이름을 잃어가게 만드는데, 이름을 가졌던 사람이 이름을 잃어가면서 영웅의 탄생을 완성하지 못하는데, 이 영화는 그거와 반대방향으로, 이름이 전혀 없었던 그 많은 엑스트라들을 영웅으로 탄생시키는 그러한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이라든지, 보여주기의 방식들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 독특한 지점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참 영리하게 관객들을, 어차피 영웅인 걸 미리 알고, 이 영화는 영웅의 탄생을 나타내는 영화가 아니라 이미 영웅이 된 이순신의 영웅적인 면모를 그냥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에, 사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평면적이거든요, 이 영화 안에서는. 그것을 보안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하나의 감정이입이 될 만한, 신처럼 다가가지 못하는 영웅이 아니라, 감정이입이 될 만한 캐릭터들을 굉장히 요령 있게 배치를 해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군도>에게서 기대했던 민란, 가지지 못한 자, 일반백성들이 가질 수 있는 통쾌함을 거기서는 이루려고 했으나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이 영화는, 전혀 그것을 기대하지 않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방법으로 이루고 있다는 것이 영화에서 특징적으로 읽혔습니다.


윤성은 ) 성진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더 감동이 돼서 메타비평을 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저도 어차피 우리가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역사적 인물을 생각을 했을 때, 이걸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이분을 영웅으로 다시금 재해석하는 것 보다는 그가 어떻게 지금 명량해전이라는 위대한 전투를 어떻게 승리로 이끌 수 있었을까라는 거였을 것 같아요.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이겼을까 전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고, 거기에 나머지 스케일이라던가 드라마가 더 붙으면 더 훌륭한 작품이 되겠지만, 제가 먼저 보았던 부분은 그 부분인데, 괜찮았던것 같아요. 그 부분이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저도 비슷한 맥락에서, 진짜 뜬금없이 무슨 스포츠 영화에 스포츠가 안 나오고, 전투 영화인데 전술하나도 없고, 이런 영화들 너무 많이 봐왔는데, 이 영화에서는 정말 감독님도, 보도자료를 보니까 거기서부터 호기심이 생겼다 말을 하셨던 것 같은데, 영화에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지에 대한 부분들이 만족 할 만큼 설명이 돼서 그것이 좋았다 생각이 들구요, 그리고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그리는데 있어서는 저는 솔직히 이제 거의 뭐 최민식에 대한 연기에 대한 호평일색과 최민식 없이는 이 영화는 있을 수 없다라는 평들이 이어지는데, 저는 그렇다고 해서 최민식이 보이진 않았어요. 저는 이순신을 봤지. 오히려 더 큰 칭찬일수 있겟죠, 본인에게는. 그래서 최민식이 연기를 잘해서 이 영화가 빛났다 이렇게 하기보다는 이순신 캐릭터 자체가 전반 60분 동안은 어떤 고뇌하고, 아프고, 고문 받고, 굉장히 인간적인 이순신 모습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장군의 모습까지 여러 가지의 맛을 골고루 보여줬던, 물론 새롭진 않지만, 그래도 이순신 영화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을 하고, 아까 전에 이 영화에 이순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역사적 증인처럼, 관객처럼 느껴졌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역린>이나 <군도>와는 다른 이 영화의 매력이죠. 주연과 조연을 확실히 구분해주는. 물론 우리가 당연히 일본군을 프로타고니스로 상정할 순 없고, 그렇게 감정을 이입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이 영화에서 그것을 최근 영화들이 못해주니까 오히려 이 영화에서 부각되었던 것 같아요, 장점으로. 최민식과 그 이외에 조연의 역할들이 잘 분배가 돼서, 물론 류승룡의 역할을 더 기대했었던 관객들도 있을 수 있고, 너무 힘없다 느낀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뚝심이, 결국은 이순신에게 굉장히 많이 실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최선의 선택으로 주연과 조연의 차별이 뚜렷하게, 확실하게, 많은 차이를 가지고 이뤄질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구요.

어떻게 보면 스타일이라든가 미학적 측면에선 솔직히 세련되지 않은, 앞에서 두 번쨰 줄에서 보다보니까 다시 봐야할 것 같은데, 실망스럽다기보단 의외의 장면들이 있었어요. 좀더 세련된 기술, 굉장히 CG에 많은 돈과 시간을 쏟은 영화인데, 아 조금 더, 아주 아쉽다 이런 부분들도 있었고, 카메라워크라던가 이런 것들도 분명히 <해적>이나 <군도>같은 작품들에 비해서, 조금 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것들도 어떻게 보면, 전 그런 생각했거든요, 어쨌든 해적이기 때문에 눈부신 날 햇살이 비추고 파란 바다에서 싸우는 <캐리비언해적>처럼 보이는 오락영화에서 보이는 그런 비쥬얼, 그게 그래도 사람들한테 감동을 주잖아요. 컬러풀한 색채라던가.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그 뚝심이 이 부분에까지도 작용을 해서 칙칙하고 어둡고 정말 예쁜 화면 하나도 안 나오고, 직부감 숏들도 어둡게 나왔는데, 바닷물 색 자체도 잿빛이잖아요. 그런 것 자체도 전쟁을 하던 그 날에 심리적 분위기까지 합쳐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그런 부분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바닷물 파랗게 만드는 게 뭐 어려운 일이겠어요. 요즘에. 그런데 그렇지 않고, 관객들이 그것을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이 영화에 분위기를 이끌어나가겠다고 하는 부분들이, 물론 평론가들이나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가지고 이었던 주제의식과 이 영화의 기획의도를 끝까지 잘 끌고 나갔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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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숭범) 저는 일단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잘 만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전례가 없는 해상영화로서의 스펙터클도 있고. 저는 일단 이 영화를 인물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인물의, 원톱으로 있는 영웅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관객을 공유시키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감독이 영화를 잘 장악하고 있다, 자기 영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잘 들어서 그런 면은 좋은데, 이것도 일단 비판적으로 좀 보면, 서사적인 기획은 자기 스스로는 헷갈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집단이나 국가에서 영웅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그 영웅으로 칭해지는 배경이 되는 정보들 이외에는 윤색되기 마련이에요. 예를 들면 이순신에 대한 다른 어떤, 이순신이 불한당이었다느니, 어렸을 때 문제가 많았다느니, 이런 것들은 알지도 못하잖아요. 이미 영웅, 위인이 된 사람은 신화가 되어있죠, 그 집단 내에. 그런 사람을 영화가 소재로 다룰 때에는 몇 가지 형태가 있는 것 같아요. 첫 번째가 더 신화화 시키는 거에요. 많은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압도적인 지지층을 관객층으로 흡수하기 위해서 아주 보편적으로 쉽게 타협하는 지점인데, 예컨대 서세원씨가 <도마 안중근> 만든 거. 아마 이승만 만들었으면 비슷하게 만들어졌을 거예요. 신화화된 인물을 더 신화화시켜서 거기에 애국주의적인, 민족주의적인, 정서적인 것들을 투여하면서 볼 수 있는 관객층을 집결시키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그 영웅이라고 하면은 그 영웅은 인간적인 면들이 많이 결락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인간적인 면모를 밝혀주는 방식이 있겠죠. 그런데 이것도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눠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변호인> 같은 경우. 인간적인 숨은 면모, 어떻게 보면 노무현은 어떤 특정 집단에는 많이 신화화되어있는 존재인데, 많은 유명 정치인들이 인간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많이 결여되어있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정치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복권시켜주는 거죠. 그런데 그거는 다시 신화화시키는 방식이에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목표는 신화화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변호인>은 서사적인 기획이 분명한 정치적인 영화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영웅의 인간적인 숨은 면모를 다루면서도 탈신화화 시키는 걸로 끝내는 영화들도 있어요. 예를 들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같은 영화, 작년에 개봉 한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서칭 포 슈가맨> 같은 거. 아니면 스필버그가 만든 <링컨> 같은 경우도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렇게 영화를 찍으면,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면서 신화화 시켜야지라는 아주 의도적인 전략이 없어도 그 영화가 끝난 다음에 관객들이 그 여운을 느끼면서 신화화 될 수 있어요. 이건 더 고도의 전략이고 영화가 더 나아가는 거죠. 그런데 또 안 좋은 것 중에 하나가 그냥 탈신화화 시키는 거예요. 그 영웅을. 영웅의 다른 정보들을 가지고 그 영웅의 다른 면을, 이게 자극적인 거죠. 정치적인 영화일 수 있는 거죠, 다른면으로 보면. 제가 서사적인 기획을 잘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 점은 뭐냐면, 도대체 의도가 여기서 어느 지점에 있는가를 평가내리기가 어렵더라고요. 꼭 어느 지점에 있어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그 영화가 감독이 이 영화를 어떻게 장악하고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은 이해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거죠. 예를 들면 이순신의 감정선을 따라가는데, 이순신의 면모가 많이 드러난 것 같진 않아요. 이순신이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의 정보에서, 정보의 총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대신 미덕이 있는 부분은, 아까 말씀하셨던 민초들이 배를 끌어당기면서, 사실 약간 오글거려요 어떻게 보면. 언덕에서 만세 부르고 손 흔들고 이런 부분들이 사족처럼 오글거리긴 한데 의도는 이해하겠어요.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누구나 알고 있는 영웅의 배면에 익명의 영웅들을 복권시키는. 전체적으로 사실 옳은 방식인데 약간 오글거리는 부분이 있죠. 그래서 여튼 저는 서사적인 기획이 자기가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영화의 노선을 평가내리기가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아까 카메라를 이야기하셨으니까 덧붙이자면 카메라는 전투장면을 리얼하게 찍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은 좋은데 앞부분과 뒷부분에 편차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앞부분에 촬영을 좀 못한다고 느꼈어요. 그냥 인물을 잡으면서 감정선을 동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하다가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방식으로만 최소한도로만 촬영이 임하다가 나중에 스펙터클을 보여주기 위해서 전술적인 전체상황을 조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환된 촬영된 역할이 좀 큰데, 그 전까지는 촬영이 좀 어설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한 영화 안에서 한 촬영감독이 찍었는데도 편차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후반작업이 아니었으면 영화가 어설프게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대연) 저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인상 깊게 본 장면이나, 영화전체가 인상 깊었다는 면이 없어서, 사실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치마저고리 흔드는, 그 장면에서 잠깐 눈물이......


이수향) 말도 안 돼. 오글거리는 장면인데......


일동 웃음


이대연) 아니,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는 건지. 저는 이거 보면서 뭐가 떠오르냐면, 옛날에 <미스터고> 봤을 때가 떠올랐거든요. 전 <미스터고>의 주제가 CG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의 주제도 그냥 전투인거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칼의 노래>나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도 다 봤고, 정말 역사스페셜도 다 찾아보고 했는데, 그럼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조명한 거였으면 최소한 지금까지 나왔던 데이터들을 충분히 반영을 하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지점을 가져가거나 했어야 했는데, 그거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안 가져간 것 같아요. 전혀 새로운 내용도 없었고. 그리고 다른 인물들이 생동감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치마저고리 빼고는 저는 개인적으로 여기 이 영화의 인물도 없고 역사도 없다고 봐요. 사실 최민식의 연기를 사람들이 칭찬을 하는데, 거기에 최민식이 아니라 그 누굴 갖다 놨어도 그 정도는 나왔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분량 자체가 그렇게 막 저기하지도 않고 전투장면에서 누가 그냥 가만히 서있으면 다 그냥 커버되는 부분도 있었을 거 같아요. 과장된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최민식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게 굳이 그래야 하나 싶었어요.

그냥 이 영화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투 장면을 난 이렇게 찍을 수가 있어’ 라는 것이 다인 것 같아요. 그럼 전반부 60분의 서사는 뭐였느냐? 후반부를 밑도 끝도 없이 들이밀기는 좀 쑥스러우니까 그냥 갖다 놓은 거 같아요. 사실 그것도 되게 제가 볼 때는 이해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어요. 시작하자마자 고문을 당하거든요. 그런 고문당하는 장면이 나왔어야 되어 있는가? 전체적인 맥락속 에서 없어도 굳지 뭐 저기한 것 같고, 이순신이 고문당한 것도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아까 안선생도 말씀하셨지만 어떤 역사적으로 굉장히 유명하고, 너무 유명해서, 더 이상 유명해질 필요가 없는 인물인데, 그걸 굳이 했을 때에는 ‘왜 했냐’라는 질문이 당연히 나올 텐데, 여기는 그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요소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싸우는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거죠. 그러면 그 싸우는 장면이 제대로 나왔느냐 했을 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너무 많은 거에요, 전투장면자체가. 예를 들어서 조선군은 판옥선이고 거긴 참조선인데, 그 두 배는 붙지 않아요. 이순신이 전승할 수 있었던 건 배를 거의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거든요. 포를 쏘고 도망가고 포를 쏘고 도망가고. 그게 왜 가능했냐면 조총이 조선화포보다 사거리가 짧아요. 그때 이 영화 보면 제일먼저 전투가 어떻게 시작하는가 하면, 조총이 먼저 날아오면서 전투가 시작되거든요. 그러니까 전혀 이게 알 수 없는 장면들이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조선군이 조총을 사용하지 않고 활을 사용했던 이유는 사거리가 길고 명중률이 높아서였는데, 여기는 조총이 사거리도 길고 명중률도 굉장히 높아서 저격수도 있구요. 이미 그건 조총이 아니죠. 또 이런 장면도 있는 것 같아요. 판옥선이 있으면 일본군이 싸우는 방식은 뭐냐면, 앞이 뾰족하기 때문에 배를 들이밀고 적선을 반파시켜놓고 거기에 뛰어올라가서 백병전을 하는 것이 일본군의 전술이었기 때문에, 일본에는 거의 수군이 없고, 수군이라고 해도 거기 탄 병사들은 육군이었어요. 그러면 일단 백병전을 시작하면 조선군이 이길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하면, 저건 이긴 전쟁이 아니라 진 전쟁 같은데 저기서 이길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뭐가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는데, 영화가 얼마나 리얼리티를 말해주고 있느냐라는 점도 좀 저기 했구요. 또 하나는 옛날에 가장 문제되었던 것 중 하나가 <명량>이 제작된다고 소문이 났을 때, 스틸컷 하나가 나왔는데 이순신이 가지고 있는 칼이 일본도였죠. 그래서 논란이 됐던 부분이 있었는데, 고증을 많이 했다는데, 도대체 그럼 무슨 고증을 한것인가라는 부분에서 말을 하고 싶고, 저도 처음에는 이게 전통사극에 가깝지 않은가 라고 했는데, 전투장면을 봤을 때, 이건 좀 판타지에 가깝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또 하나 제가 보기에 가장 거북했던 것 중에 하나가 아까 그걸 구경하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이 나왔는데,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그걸 보면서 참 희한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걸 보면서 두 가지를 느꼈는데, 하나는 그 이순신의 아들이 회인가요, “도대체 아버님은 두려움을 어떻게 이용하신단 말인가” 그러면서 일본 만화에 나오는 내레이션처럼 독백처럼 혼자 이야기 하다가 “아, 저래서 그런것인가” 이런 톤으로 하는 그런 걸 봤을 때 형식적으로 일본 만화를 떠올리게 한다는 생각이 좀 들었고요. 또 하나는 저 하얀 옷 입은 사람들은 저 땅에서 마치 한일축구전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저걸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그 사람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를 얻어서 하는 일이 뭐냐면 영웅을 살리는 일이었거든요. 저는 그 장면이, 그 사람들이 용기를 얻어서 나가서 싸운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한일은 자신들의 영웅을 구해내는 수동적인 어떤 그런 모습들을 보인거가 개인적으로 상당히 불편한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군도>와 비교가 자연스럽게 된 것 중에 하나가 <군도?가 영웅의 모습들이 나오긴 하지만 상당히 약하고, 제목에서 떼도둑, 의적의 모습, 그것이 확장되는 백성의 모습을 주된 어떤 저기로 가져간 거에 비하면, 똑같은 어려움 속에 있는 상황에서 영웅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좀 차이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개인적으로는 후반 전투장면이 흥미롭긴 하되 한국에서 해전장면을 저렇게 찍은 유례가 있었나 생각을 하면, 저는 기억이 나질 않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 있고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역사 스페셜의 확대판? 역사스페셜 보면 전쟁 장면 같은 것은 CG 그래픽으로 표현해주는데, 그 그래픽 전투장면의 어떤 확장판 이외에 이건 뭘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좀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고 싶어요. 이상입니다.


민병선) 역사 스페셜과 같은 회사가 만들지 않았을까?


이대연) 일본군 배들이 부감으로 보이는 장면은 진짜 역사스페셜하고 뭐가 다르지 저게?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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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선) 요샌 화두이기도 하고, <트랜스포머>같은 건 화면비율이 70%가 CG가 들어가도 너무 자연스러웠는데, <명량>같은 건 한 20%, 전체 화면으로 봤을 때, CG 들어가는 부분이, 그런데도 너무 눈에 튀더라고요. 아직 기술이 좀. 오히려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40억 짜리 영화에 CG가 왜 이렇게. 기술적인 부분이 아마 이 영화 전체적인 부분을 많이 좌우를 했을 것 같아요. 옛날에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배가 이렇게, 뗏목 같은 배가 와서 접안하는 거 그거하나 찍는데 하루 종일 걸렸데요. 근데 결국 포기했다고 하더라구요. 포커스를 못 맞추겠다고 하더라고요. 하도 흔들려서. 물이 계속 흔들리니까. 그런 판에 이런 해상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정말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마 많은 계획과 생각이 있긴 있었을 텐데, 그것이 구현이 못된 이유가 아마 그런 게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일단 들긴 들더라구요. 예를 들어 아쉬운 게 그런 해상전투, 60분간의 해상전투가 지금 얘기들이 나오셨지만 좀 밋밋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명량에서 무슨 전술이 있나라고 했지만 결국 전술적으로 보이지는 않거든요. 오히려 보이는 전술이 아까 말한 일본의 전통적인 전술, 즉 빠르게, 배 자체를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빠르게 만들어서 배에 빠르게 다가오도록, 접근할 때 조총을 쏘고, 옆에 붙인 다음에 올라타는 백병전, 그게 일본식. 옛날 일본 해군의 특징, 그런 것이 오히려 영화 속에서 보이지, 우리 조선 수군의 전술이 좀 안 보이는 느낌이 있고, 그래서 영화가 전반적으로 좀 밋밋한, 그러니까 이순신도 좀 밋밋하고. 왜냐하면 이순신이 밋밋한 이유는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아마 저렇게 캐릭터가 구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들지만, 하여튼 뭘 해도 좀 아쉽고 밋밋한 쪽으로 갔었던 것 같구요. 그래서 아쉬운 점들은 좀 많이 있지만, 이런 정통 사극으로서 요런 영화는 저는 굉장히 잘 만들었다는 생각은 해요, 일단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올해 제가 명량을 가봤거든요. 거길 가봤는데, 바닷물이 색깔이 진짜 그래요. 회색이야. 그리고 영화속에서 할아버지랑 바위절벽에서 바닷물 보는 장면들, 그게 딱 관광지거든요. 거기, 거기서 찍었더라구요.


정재형) 거기가 물살이 그래요?


민병선) 휘돌아가는 게 어느 정도냐면, 제가 가서 보고 놀란 게, 거기서 낚시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낚시를 뭐로 하냐면 잠자리채를 가지고 해요. 낚시대가 아니라, 물살이 세니까 물고기가 올라오다가 정지가 되요. 그러니까 왜 서있지? 하는 느낌이 들어요. 서로 힘이 붙는 지점이더라고요. 그런데 이 물고기가 뚫어야 하니까 꼬리를 너무 세게 치니까 상체가 떠요, 그때는 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순신이 바다 바라보는 그 옆에 횟집이 있어요. 그 주인 아저씨가 바로 건져서 회를 떠주는거에요.


일동 웃음


민병선) 물살이 그렇게 세요. 그래서 아쉬운 게, 아까 민중에 대해 아까 얘기 나온 부분이 두 가지 설이 있잖아요. 명량 앞바다의 민중은 쇠줄을 잡았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안보이잖아요. 그리고 또 하나가 저도 아쉽더라고요. 왜 이렇게 꼭 월드컵도 아니고 관전하듯이 했을까, 왜냐하면, 또 하나의 설이 배가 12척밖에 없으니까 적이 봤을 때 우습잖아요. 그러니까 100채를 뒤에 놨데요. 그런데 그게 가짜배라는 거에요. 그거를 백성들이 했다는 거에요. 패선이나 그런 것들을 이용해서 배가 뒤에 많은 것처럼, 우리 성 뒤에 이렇게 숨어있는 것처럼 해서 한 번에 못 들어오게 그런 걸 줬다는 설은 있는데, 영화 속에서 그런 걸 안 쓰더라구요 그런데 차라리 저렇게 쓰는게 효과적인가라는 생각은 안들더라구요.


이대연) 거기 철줄을 묶었던 자리들이 있잖아요.


민병선) 그리고 거기 관광지에 유명한 상이 있는데, 너무 감동적인데, 그런 걸 왜 안 썼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뭐냐면, 3대가 같이 죽은 거에요.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대가 다 그 전투에 갔다가 다 거기에서 돌아가신 거에요. 그게 동상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민중적인 모습을 좀 더 부각시켰으면 요새 트랜드에 그게 더, 이순신은 유명하고 너무 잘 아니까,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이제 또 예전에 어떤 미국분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이렇게 위대하신 분을 왜 모르느냐, 서구에서 우리는 모른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왜 알리지 않느냐 라고 하는 얘기도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런걸 보면 좀 배의 전술을 잘 살려서 이순신 장군의 이런, 왜냐면 이게 전세계 유명한 4대해전이라는 해전이 있잖아요. 그리스의 살라미스 해전이 학익진, 한산대첩이랑 똑같아요. 지형지물과 섬을 이용해서 후퇴를 하면서 나중에 그걸 하거든요, 그리고 그담에 유명한 넬슨 제독의 전투 있잖아요. 넬슨 제독은 이순신하고 거의 비슷해요. 똑같이 해전하다 전사 하는 것도 비슷하고 그분이 돌아가실 때 한말, ‘나는 나의 의무를 다했다’ 이 말이 영국의 정신적인 뭔가로, 이순신 장군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처럼 비슷해요. 근데 넬슨 제독이 한 전투가 요번에 명량에서의 충파전투랑 거의 흡사하거든요. 예전에 에스파냐와 영국의 전투가 있어요, 2대 해전 전투인데 그때 함포사격전투가 원거리에서 함포사격으로 적을 괴멸하는 그 전술이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이 조선 수군이 그걸 쓰거든요. 일본배가 오면 떨어져야 해요. 그래서 함포를 쏘고 물러나고, 그리고 포가 떨어지면 이쪽방면으로 회전하는, 이쪽방면으로 도는 그런 전술을 쓰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일본배는 붙어야 하니까 그 포를 뚫고 오다가 괴멸당하는 구조지, 붙으면 일본이 이기는 거거든요. 전술상 걔네가 유리한 방향이기 때문에. 그런데 넬슨제독이 그걸 쓰더라구요. 거북선처럼 보통 종대로 선다고 그러나, 적을 뚫고 들어간대요, 그래서 적을 T자로 만들어서 함포사격으로 적을 괴멸시키는게 넬슨식 전투인데, 그 전에는 한명도 그 전술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넬슨이 그렇게 쏠 줄 몰랐으니까 그거에 다 속절없이 당해버렸대요. 그래서 영국이 해가 되지 않는 나라가 되는 초석이 되었다는데. 외국에서는 그런 유명한 전투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재생산이 되는데 이순신을 몰랐대요. 23전23승의 12척의 배로 330척의 배를 괴멸한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러니까 그 누구도 당신은 너무나 위대한 해군 막 이랬더니, ‘야 이순신 앞에서 그런 얘기 하지 마라’ 뭐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고. 또 제가 기사를 보니까 도고 함장인가 이분이 이순신의 전술을 보고 배의 전투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해서 러일전쟁 때 이걸 쓰더라고요. 그래서 러시아함대를 격파시키더라고요. 그러면서 나의 덕은 이순신의 전술이다. 그게 좀 아쉬웠어요. 60분간의 전투를 전술과 뭐 이런 게 좀 보일 수 있었으면. 앞의 60분간의 전반부는 이 8년인가의 전쟁을 압출을 해야 되는.

그래서 저는 한국 사극이 이 부분을 논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왜냐면 한국 사극이 서사, 내러티브가 역사적 팩트와 어떤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 창조되는 부분을 엮을 때 내러티브를 쓰는 방법이, 내레이션이나 자막을 써서 자꾸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그 부분들이 과연 효과적인지 모르겠어요. <군도>도 그렇고 이순신도 그렇고 크게 효과적인 것 같지 않은 것 같고 지루하거든요. 근데 또 설명도 안돼요. 뭔지도 모르겠어요. 이순신이 왜 감옥에 갔다 나와서 저렇게 하는지, 7년 동안 감옥에서 죽을 뻔 하다가 나왔는지, 그런 걸 하나 모르잖아요, 영화를 봐도 모르거든요. 원래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하는데 애석하게 이거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요. 사극이 계속 열풍이고 블록버스터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사극이잖아요. 그것도 저는 문제라고 봐요. 하여튼 사극을 어떻게, 역사적인 재해석하는 문제에 있어서 내러티브를 항상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뭔지 좀 궁금하구요. 하여튼 그래서 요런 부분들을 좀 아쉽지만, 하여튼 영화를 총평으로 하자면 그래도 가족이 다 볼수 있는 영화라, 저는 <군도>에 더블스코어로 이기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윤성은) 근데 재미있는 것이, 다들 아쉬운 점을 이만큼 말씀하신다음에 총평은 괜찮았다, 이게 이순신 영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성진수) 아까 말씀하신 역사적인 팩트를 전달하는 데 좀 모자라다는 점. 팩트도 말씀하셨지만 배경이 되는 것이 모자라다. 설민석 선생님의 동영상 강의를 보시면, 이게 왜냐면 <역린>때도 그거를 홍보로 많이 했구요. <명량> 설민석 치면 이 전사가 너무나 재미있고 영화만큼 흥미진진하게 설명을 해줘요. 영화사에서 홍보영상으로 만든 거에요. <역린>때는 1탄을 영화 개봉 전에 만들고, 개봉한 이후에는 그 이후의 이야기로 두 개를 만들었는데, 지금 이것도 1탄이라고 나온걸 보면 분명히 나중에 추가설명이 있을 것 같아요. 영화적으로 소화 못하는 걸 마케팅으로 소화를 하는 것이 흥미로웠고, 일단 그 강의가 영화만큼 재미있다는 사실.


박태식) 저는 윤성은 선생님이 전화를 해주셔서 <명량>을 봤어요. 제일 앞자리에서 봤어요. 최민식 얼굴이 이만하게. 난 앞의 두 분하고 좀 비슷한데요. 제가 옛날에 해군전쟁사라는걸 읽었어요. 거기서 굉장히 재미있었던 건 사실 니미츠 제독이 일본하고 싸울 때, <도라! 도라! 도라!>인가 거기서 박살을 낸. 근데 그게 이순신장군의 전법이라는 게 교과서적인 것이더라고요. 넬슨도 이순신 최고다, 그런데 우리는 전쟁을 할 때 해군을 떼어놓거든. 붙지 않아요. 붙는다고 하는 건 옛날 로마에서도 붙었다고. 로마에서는 갈고리선이라는 것이 있어요. 붙어서 갈고리 걸어놓고 수평이동을 하는 거야, 그렇게 하는 로마의 전술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거를 보면서,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원래는 우리 전술하고 좀 다른 건데’. 그래서 내가 감독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감독은 한번 여태까지 나왔던 모든 영화 중에서 제대로 된 해전 장면을 한번 보여 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시간 동안 한번 몰입을 쫙 끌어당길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고, 그러다보니까 정확하지 않은 역사적인 거에 대한 얘기가 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이걸 보면서 재미난 게 있었는데 제가 중학교 때 본 영화 중에 <성웅 이순신>이라고 있어요. 김진규 나오는 거. 중학교 때 봤어요, 입석으로. 그런데 완전히 그 영화 망했거든요. 내가 지금 중학교 때 본 기억으로 봐서도 별로였어요, 그땐 영화평론가도 아니었지만. 이게 전쟁을 하려면 전쟁얘기를 확실히 하든지, 아니면 성웅을 그리려면 성웅을 확실히 하든지. 이상한 깃발 몇 번 올라가더니 이 영화가 끝나더라구요. 그래서 아마 이 영화감독이 그런 걸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한 시간 동안 제대로 된 해전장면 한번 보여주겠다는 그런 의도라면 성공한 것 같아요. 아마 사람들이 해전장면 진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그런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그것이 사실유무를 떠나서 상당히 재미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난 여기서도 아들이 말하자면 내레이터 같은 거야. 아버지의 말을 대신해서 물어보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이 사람(아들)이 ‘충’에 대해서 ‘임금이 임금답지 않은데 충성하면 뭐 합니까’ 하니까 이순신이 ‘임금한테 충성하는 게 곧 백성한테 충성하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쨌든 역사의식 같은걸 보여주려고 노력을 했다. 그렇지만 역시 중요한건 제대로 된 전쟁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게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내가 관객이라면 <군도>보다는 <명량>을 한번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진진한건 사실이에요. 이순신이 고문당하는 것만 보다가......


정재형) 저는 어떤 측면에서 좀 보고 싶은가 하면, 이순신은 대단히 정치적인 소재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왜냐하면, 사실 이순신을, 역대 정권에서 영화를 선호했던 정권이 두 정권인데, 하나는 박정희 정권이고 하나는 노무현 정권이에요. 그래서 그 당시에 이순신이 많이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박정희 정권 때는 물론 망했지만, 김진규 선생이 제작, 주연까지 했던 영화가 있었죠. 그리고 사실 박정희의 아이콘이었죠. 현충사 등 해서 박정히 하면 이순신, 이순신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전 국민적으로 추앙하는 추모 사업을 많이 했구요. 그런 점에서는 굉장히 좋은데, 그것을 상당히 비판하는 입장에서 보면 정치에서 이순신이라는 아이콘을 상당히 동일시시키면서 외로운 지도자 상을 부각시키는 정치적 도구로 이순신을 성웅화시켰다는 비판을 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리고 그 시절에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의 뇌리에는 이순신은 정말 구국의 영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구국의 영웅이에요. 인간적인 면모가 전혀 없죠. 그래서 그때 당시의 영화가 안됐을 거에요. 단체동원을 했을지언정 일반적인 관객들은 재미가 없는 거죠. 너무 교과서적인 인물이니까. 사실 제작자의 포부와, 그래서 더 많이 들을까 했는데, 사실은 또 단체동원이나 좀 했고, 일본사람들이 안 봐서 망했을 수도 있는. 그리고 그게 또 어렵지 않습니까, 촬영하기도. 그 당시도 돈을 많이 들였는데 그걸 뽑아내질 못해서 망했던 사례가 있죠. 그만큼 대중한테는 오히려 인기가 없는, 왜 인기가 없었냐, 너무 국책적으로 강요를 하니까. 그런 이미지를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었죠. 그러다가 노무현 정권 때 이순신이 다시 부활되는걸 보면서 이순신을 이렇게도 또 어필할 수 있구나. 그래서 어떻게 보면 외로움 역시 지도자와 부합되는 이미지이긴 한데 그때는 야당에서 정권을 잡다보니까 이순신이 그 당시에 굉장히 억울하게 몰려서 백의종군 했던 거라던가,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서도 나라를 구하려 했던 그런 부분이 굉장히 노무현 정권에 정통성, 이런 것을 설명해주고 받혀주는 그런 식의 역사적 인물로 부각이 되면서, 소설이나 드라마로 많이 나왔죠. 기억으로는 김명민 주연의 <불멸의 이순신>도 아마 그 시기에 제작된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 김한민 감독이, 지금의 정권에서는 박근혜정부로 왔을 때에는 이순신은 전혀 조명이 되지 않고 있다가 사람들의 머리에서 이순신이 지금 크게 이슈화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금 사극의 열풍 속에서도 전혀 엉뚱한 전통사극을 다루고 있고, 다들 퓨전 판타지 사극을 하고 있는데 이순신 영화를 하고 있죠. 이순신을 찾는 것도 아닌데,  코드도 아닌데 만들어서, 제가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왜 만들었냐고 물었더니 이순신을 만든 이유는 공론이 분열되어있는 상황에서 통합을 이야기할 수 있는 키워드로서 이순신이 가장 역사적 인물로 떠오르지 않는가 본인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런 어떤 역사의식을 김한민 감독이 넣으려고 했다는 건 읽을 수는 있겠더라구요. 지금 시대정신을 그렇게 읽었다고 본거에요. 지금 여야가 분열되어 있고 정치적으로.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선조에게서 버림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충성하고 그 충성의 뜻은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유교적인 질서 하에서 나름대로의 역사의식을 이 영화가 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영화는 뭐니 뭐니 해도 이순신 선전하는 거는 정치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에요. 스필버그의 <링컨>, 존포드의 <링컨> 이런 영화들이 정치적으로 해석되어지듯이, 어떻게 이순신이 해석되는가가 관건인거 같아요. 이 영화를 보는 대중적인 관심은 다르겠지만, 결국은 이것을 만드는 제작자의 입장, 상당히 정치적인 배경이 있다고 보고, 김한민 감독이 밝혔듯이 이것은 지금의 정치적인 상황을 비유하고 싶었던 그런 역사의식을 갖는다고 봅니다. 이게 사실은 전투영화라는 관객들의 기대와는 달리 영화는, 또 모르겠어요 만든 거에 대한 총평을 해야겠지만, 의도는 분명히 전투도 중요했고, 또 중요시한 것은 이순신의 내면적인 갈등, 자기가 굉장히 어려움에 처해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거에 맞춰져 있다는 걸 좀 느끼겠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서부터 고문을 당하고 자기가 왔을 때 거북선이 불태워지고, 장군이 도망가고, 계속 위기가 닥치는 거죠. 그러면서 이순신 장군이 혼자 굉장히 외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고 그러면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 많이 강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통해서, 이순신을 감독은 그렇게 해석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순신 장군이 그런 의미에서 상황이 굉장히 자기에게 불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백성을 위해서 당신이 끝까지 자신의 어떤 일을 놓지 않고 끝까지 갔다. 그리고 자기의 내면의 싸움은 바로 그 아들이 계속 질문했던, 그게 상당히 지루하기도 하고, 왜 그런걸 강조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문맥에서 본다면, ‘아 그 두려움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것이다’ 라고 이 내러티브이 서사의 복표를 분명히 한 거로 보여요. 그렇게 해서 결국은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돼서 결국은 장수들이 용기를 갖게 되고, 백성들도 용기를 갖게 돼서 장군을 구하고, 이런 식의 서사맥락을 찾아가려고 한 설정들인 것같이 느껴져요. 그 부분과 좀 어떻게 보면 과잉이지만 굉장히 강조되어있는 해전, 두 가지가 주축인데. 이거에 대한 완성도가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잘 됐으면 일단은 과거 이순신의 이미지에서는 탈락된 굉장히 인간적인 고뇌를 갖고 있는 이순신의 모습이 상당히 부각이 돼서, 이게 한일전의 류승룡과 최민식의 싸움보다는, 최민식과 내부의 싸움으로서 더 많이 부각이 돼서, 관객들에게 전달이 돼서 굉장히 그런 어떤 영화로, 나쁘지 않다고 보이거든요. 그런 것들이 크게, 과거의 너무 성웅적인 이미지에서 인간내면의 어떤 갈등의 존재로 됐고, 백성을 위한 마음 이런 부분들을 읽게 하죠. 예를 들면 명량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이순신 장군이 하늘이 도왔다는 말을 했는데 그 숨은 의미는 백성이 도왔다는 걸로 해석을 하고 싶어요. 아까 말씀을 하시는 부분에서도 나왔지만, 과연 백성이 어떻게 도왔고 그리고 그 역학관계가 얼마나 치밀하게 백성과 이순신장군의 교감 이런 것들이 잘 그려졌을까? ‘아, 닭살이 돋네’ 내지는 한마디로 굉장히 인위적이네 기계적이네 그 교감을 갖다가 연출해낸 부분 같은 것들이 과연 관객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군도>같은 경우 비교하자면 자연스럽잖아요. 민중의 활약 같은게 자연스러운 것에 비해서, 이건 사건을 전개하는 에피소드들이 좀 작위적인게 문제이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좀 떨칠 수가 없어요. 너무 의도는 정확하게 깔려는 있는데 연출이 부자연스러운게 나타난다, 그거는 민중과 이순신장군의 교감에서뿐이 아니라 전투신에서도 진일보한 것을 기대했는데, 저는 불멸의 이순신 100부작을 다봤거든요, 거기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단지 바뀌었다면 해전보다는 육박전하는 장면, 백병전에서 좀 투박하지만, 전 세련되지 못한 걸 좋게 봤거든요, 요즘 자주 보는 중국무협을 본뜬 듯한 신기에 가까운 곡예를 보이는 무술 대신에 굉장히 투박한 칼과 몸의 부딪힘 같은 것들은 참 힘이 있다고 나름대로 전 좋게 평가하고 싶어요. 그런 부분은 신선함이 와 닿은 부분인 반면에, 기대를 했던 해전은 굉장히 긴 시간인데도 저는 이게 동일한 것들이 반복이 되니까, 포가 정면으로 중앙한번 나와서 배를 격파시킨다든지, 함포사격하고 그런 것들이 너무 많이 봐왔던 드라마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아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어찌 보면 이 해전을 총체적으로 기획하는 기획력이 뭔가 새롭게 해전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분에 있어서 조금 실망했다고 할까요? 실망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더 이 영화의 백미를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들구요.

사실 전 역사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주제의식이지 사실에 대한 정확성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이 전투를 어떻게 재현하고 사실이 어쨌다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진 않아요. 많은 부분이 제가 알고 있는 역사사실하고 떨어져있는 부분이 많아요. 많지만 크게 문제 삼으면서 보진 않았어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전체적인 면에서 보고 싶었던 거지, 역사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그런데 그 부분이 좀 미흡했다. 그래서 아쉬워요. 의도는 했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런 부분이 좀 느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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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숭범) 저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는데 몇 가지 다른 의견이 있어요. 뭐냐면 아까처럼 인간적인 이순신이 저는 아직 많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봐요.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예컨대 전쟁에서 두려움을 갖고 명령불복종을 하려는 사람을 단칼에 베어버리잖아요. 사실 인간적인 이순신보다 참군인 이순신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더 크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부각되었다기보다는 백성이 영웅을 위하는 마음이 더 크게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김한민 감독이 중립적, 중도적인 정치적 노선들을 잘, 2014년의 정치현실이 너무 분열되어 있으니까 봉합하려 했다기보다는 약간 중도좌파적인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왜냐하면 이순신이 차지하는 위치가 국가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 충성하는 인물은 원균이라고 봤어요. 그 사람은 왕이 서한을 전달하고 그렇게 했으니까 뭐 데리고 와라 하는데, 이순신은 자기가 군인으로서 결단을 내리는 거죠. 내가 지금 여기를 놓고 육군에 합류하는 것은 군인으로서의 자기의 양심과 철학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내가 생각했을 때 백성들을 위한다면 여기서 백성들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을 봤을 때 왕에게 충성하고 그런 것 보다도 그런 포지셔닝이 우파적인 성향은 아니죠.


이대연) 저는 그게 오히려 우파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들거든요. 약간 사기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충이라는 건 백성을 향한 것이다, 어쩌구 이야기를 하는데, 왠지 사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도 결국은 ‘충’이거든요. 해석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왕으로 갈 수밖에 없잖아요.


안숭범) 저는 그런 거 같아요. 우리가 오늘날 정치현실에서 약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충위가 또 나뉘는데, 비판의식 진짜 강한 사람들은 기득권들을 엎고 정치현실을 바꿔버리는 정도까지 나가려고 하죠. 사실 <군도>의 의지는 거기까지였어요. 그런데 그보다 조금 더 완화된 중도좌파들은 그냥, ‘아! 이런 현실이, 박근혜라든지 정책 입안자들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드니까, 제대로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 리더를 원한다’ 이정도 수준, 요게 제가 보기엔 중도좌파의 포지션인데 지금 이순신이 가지고 있는 포지션이 그 민중들이 끌어주면서 영웅을 만들어주는 그 지점, 그 지점은 불명확하지만 약간 중도노선에 있는 약간 왼쪽에 있는, <군도>같은 경우는 굉장히 노골적으로 좌파다.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김한민 감독이 나이는 더 많죠. 그런데 윤종빈 감독은 자전에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걸 증명해보인거에요, 반복적으로. 그래서 약간 여유를 보이면서 자기가, 사실 많이 여유를 보인 영화라고 생각해요 <군도>는. 이런 영화를 한번쯤은 찍어도 되는 포지션인 것 같아요. 그런데 김한민 감독 같은 경우는 굉장히 열정 있고 너무 무거워지긴 했는데,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일관되게 김한민 감독이 어떤 걸 잘할 수 있고 영화 연출자로서 특징이나 개성이 아직까지 확인이 안 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 <명량>이 아쉬운 것은 이만큼 많은 물질적인 지원과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물론 문제적인 소재긴 하지만 그래서 다루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순신이라는 소재를 가져와서 배경을 놓고 했는데도 자기 색깔을 크게 많이 안 드러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워요.


박태식) 이 두 작품에서 오늘날 가지고 있는 전복적인 함의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게 일정부분 감독들은 갖고 있다고 봐요. 왜냐면 지금 한국의 영화감독들이 자신들을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이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어떤 때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지금 이 두 영화가 정치적으로 읽을 수 있는 코드가 분명히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영화가 영화적으로는 재미있지만 정치적으로 뭔가를 얻어낼 만큼 아주 숙성된 아이디어들은 아직은 못 미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이 역사물을 만드는데 있어서 이 감독들의 내공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니까, 우리가 이걸 보면서도 재미는 있지만 뭔가 이게 언밸라스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게 그것 때문이 아닌가. 역사물만 20, 30년 만들었다면 이순신도 훨씬 멋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 사극에 대한 굉장히 많은 관심과 이런 게 생겼잖아요, 이런 관심이 아주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이게 앞으로 10년 20년 지나면, ‘10년 전에 비하면 역사물 제대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아직까지는 내가 보기엔 그렇게 심오하게 무언가, 내 느낌에 아직도 무언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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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연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해보자면, 저는 역사물이, 어쩌면은 우리나라의, 이건 성급한 제 나름대로의 판단이지만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거든요 최근 일, 이년 동안, 역사물이 한국의 고유한 장르일 수 있지 않겠나, 잘 받혀준다면,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역사물에 대해서 나름대로 애정을 갖고 관심 있게 보고는 있는데, 저는 이제 그런 한국적인 장르 이런 관심도 중요하지만 잘 만드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그 잘 만든다는 건 다른 장르작품 만드는 것과 보편적인 거죠. 작품의 완성도. 저는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게, 지금 정치의식, 역사의식 이 부분을 말씀하셨는데, 이순신의 소재든 군도 소재든 이런 소재들이 어떤 정치성, 당대성, 현실인식, 또 역사의식 이것과 무관할 수가 없어요, 역사물은.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주제의식을 동반하는 장르일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이게 굉장히 문제가 되는 부분을 어느 지점에서 지적을 하고 싶은가 하면, 대기업이 만드는 블록버스터와 역사물이라는 것의 결합이 일정정도 한계가 있다고 계속 느끼거든요. 이게 저예산 영화였다면 달라졌을 텐데, 고예산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부담감, 이런 것들이 감독이 견디질 못하고 계속 투항하면서, 둘 다 다 무거운거에요. 산업적 무게와 역사의식의 무게, 이거에 대한 욕심이 다 있는데, 윤종빈, 김한민이든 크게 한번 터트려 보고 싶은 거죠. 작가의식이 동시에 있는거에요. 그런데 이것이 한계를 드러낸다는 거죠. 결과적으로. 그거 왜 그럴까? 윤종빈같은 경우 너무 많은 토끼들을 풀어놔서 정리가 되지 못하고 있고, 김한민은 사실은 좀 미흡하고, 오히려. 하나는 너무 과잉이고 하나는 너무 부족한거죠. 그런데 그것이 다른 역사물에도 동일하게 나타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이 어떤 운명적인 거 아닌가, 블록버스터가 지향하는 목표와 역사소재를 통해서 뭔가 정치의식을 자기주제를 진지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작가의 의욕과잉 이런 것들이 두 개가 조화가 될 수 없는 건데, 그거를 결합하려 하는 부조화 아닐까 생각이 들구요.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거는 저의 좀 추상적인 견해죠. 사실은 제가 분석을 할 수 없는 저의 추상적인 직감이구요. 그거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분명하게 보고 있는 부분이라고 느껴지는 거는 이런 거죠. 지금 이 두 영화를 봤을 때, 너무 왜 이들이 실패하수밖에 없는가라는 것은, 너무나 거시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고, 우리가 한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관객이 어떤 영화들을 점점 현대인이 요구하냐면, 이제는 영웅을 그리든 성웅을 그리든 자기에게 와 닿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지금 거시적으로 선악의 다툼을 그려요, 그냥 거시적으로. 도둑과 의적, 부패한 관료를 그린다구요, 안돼요. 너무 거시적이고 식상한 주제에요.. 그 안에서 그들의 갈등이 있는데 거기서 구체적인 어떤 에피소드를 잡아야 해요. 정말 서얼이면 서얼의 문제가 어떻게 정치적인 문제로 심화되어 그것이 어떻게 민중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로 더 깊이 들어가는 게 맞다고 봐요, <군도>도. 근데 군도 집단을 계속 그리고 있는거에요. 유토피아를 대립시키고 있어요. 부패한 정부와 유토피아. 그리고 이 정부를 언제든 갈아엎겠다. 이 정부는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그러니까 너네 조심해. 이런 경고만 계속 내리는 거에요. 그런데 그런 것은 프랑스 대혁명 주제와 하나 다르지 않거든요. 세상은 머지않아 좋은 세상으로 바뀔거야, 그런데 그건 하나의 이상주의적인 주제죠. 그런데 그게 블록버스터는 맞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블록버스터에는 맞기 때문에 결국에 명량도 그런 점에서 실패했을 거라고 보는 거에요. 인간 쪽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여전히 애매하거든요. 오히려 진구와 이정현의 단순하면서도 끈끈하게 있는 에피소드처럼 이순신의 그런 에피소드들로, 작은 에피소드로 들어가서 커다란 주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되어야하는데, 여전히 이순신이라는 인간이 분해가 안 되어 있는 거에요. 계속 큰 인물로 남아있고 거시적인 주제로, 역시 해전의 승리자로밖에 묘사하지 못하는, 이순신을 다루는 데에 있어 더 이상 그렇게 그리지 못하는 거죠. 김훈이 조금 다르게 했죠, 소설에서.  어떤 여자를 등장시켜서 계속 에피소드를 갖고 가는 사적인 어떤 걸 했는데, 그런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그게 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순신을 이 거대 서사 안에서 해체시킬 필요가 있죠. 옛날에 사적인 것을 다 삭제하고 굉장히 공적인 역사의 영웅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된 이순신으로부터는 상당히 작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음모와 정국의 정치적인 억압 속에서 한 인간이 버텨낸다는 거시적인 주제로 간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 태도가 주제를 좀 더 이야기를 작은 이야기로 해서 더 긴밀한 어떤 주제와 세부적인 주제, 거대한 이순신에 관련된 거대한 주제가 아니라, 세부적인 주제로 해서 새롭게 해석을 해주는 영화가 돼서, 지금 이 시대에 이순신이 살아있게끔 해줘야 된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는 정치 영화로는 실패한거죠.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영화가 된거죠. 어떤 국회의원이, 정당이 이 영화가 제시하는 거시적인 주제가 내가 지향하는 이상주의 일치함으로 이런 영화가 좋은 역사 영화라고 이용당하는 많은 영화들의 하나가 되지 않겠나,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안숭범) 저는 두 분의 의견에 동의하는데, 한 가지 윤종빈에 대해 갖고 있던 애정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거 하나를 말씀드리면요. 처음에 <용서받지 못한자>를 찍었을 때 제가 무엇을 느꼈냐면, 군대라면 집단이 어떻게 보면 일사분란하게 아주 효율적으로 적에게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강력한 규율이 작동하잖아요. 그게 용인되고. 그런 규율이 작동하는 공간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훼손될 수 있는가, 내무반 안에서도 병장급들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규율이 작동하는 환경 안에 있기 때문에 자기가 그 밑에 사람들을 갈구거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해요. 환경이 그 인물을 만들어가는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 있죠. 그 다음영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는데, <범죄와의 전쟁>도 개발독재사회 전두환 정권 시대의 구호가 개인의 신분상승욕구와 어떻게 타협하는지, 그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자세하게 잘 보여주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가 실망스러운 건 윤종빈이 잘할 수 있고 강점이 있고, 그 사람의 고유한 브랜드라고 생각하는 색깔이 조윤이나 도치, 이 두 인물에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겉멋이 굉장히 많고 여유가 있고 과잉이라고 표현되었던 그런 부분들이 아쉬워요


이수향) 저는 한명의 영웅을 그리지 않고 민중들을 동원하는 부분을 인상적으로 봤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부분이 애매해서 이 영화의 질을 많이 떨어트린 부분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정현과 그의 남편이 옷을 흔들고, 그 사람들이 눈물을 쥐어짜는거에요. 저는 김한민이 그 정도 급까지 아닌 것 같은데, 너무 서사를 망가트리고, 말도 안 되고, 짚불 타고 있는, 배를 그쪽으로 가고 안가고 전쟁에 절대적인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은 지켜보고 있다가 옷 하나 흔드는 거 요거하나. 이 영화가 밋밋하게 느껴졌다면, 감동을 잘 살려낸 부분은 의병들과 스님들이 바꿔가면서 살이 찢어져가면서 그걸 밀 때 감동이 있어요.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너무 평이하게 저러면 안 되는데, 지켜보다가 옷을 좀 흔들다가 끝나는 점도 아쉬웠고, 또 뭐가 밋밋하냐면 결국 똑같은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하냐면, 개인적인 생각은, 영화가 보고나면 이 영화가 만든 특이한 지점이 김한민이 새로 재해석한 이순신에 대한 게 있으면 일반인들도 잘 만들었네 이런 생각이 들죠,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에서 전혀 새로운 게 없어요, 그러니까 보고 나서 특이한건 없는데 해상장면은 괜찮은 거 같은데 이 정도 얘기밖에 못 하는 거에요. 아주 못 찍었다는걸 떠나서, 뭔가 이 영화만이 가진, 그 정도가 안 될거라면 허구를 더 기입해서 사연을 만들던지. 심지어 이순신의 아들은 내레이터로서 좋은 역할을 하긴 하지만, 이순신이 자기 아들은 진작 저 깨끗한 뭍에 놔두고 자기와 자기 부인들만 죽어라 사나 그러냐는 말이죠. 그러니까 영화 자체로 봐서 허접한 영화는 아니고 어느 정도 역량을 갖춘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민중을 아예 소거시키고 단독영웅으로 가던가, 아니면 민중의 사연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춰주든가, 애매한 지점이 있어요. 아까 처음에 영웅을 그린 여러 단계를 그리셨잖아요. 어디에 넣기도 애매해요. 한쪽으로 가고 있지도 않고. 그 부분이 영화에 밋밋한 인상을 주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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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그게 안느껴져요? 치마를 흔드는게 그게 보라고 흔드는게 아니야.


이수향) 이정현을 넣었는데 분량을 좀 만들어줘야 되겠고, 진구랑, 그래서 좀 구겨넣은게 아닌가


윤성은) 아니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 장면은 이 영화의 너무나 핵심이야. 이순신과 더불어서 이 장면이 없으면 안되죠. 억지스럽다는건 맞는데 이건 서사에서 너무 중요한 부분이죠. 이게 없으면 서민들은 진짜 한일축구 관전하는 사람밖에 안 되는 거죠. 그게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그렇게 짚을 실은 배를 막아냈고 그래서 다음에 행동을 하잖아요.


이수향) 그러니까 그거를 좀 더 잘 살려냈어야...


윤성은) 그건 맞는데, 구겨 넣은 건 아닌 거죠. 서사의 너무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이대연) 그러니까 이순신은 없어도 되는데, 진구는 없으면 안되는 거죠.


일동 웃음


이수향) 제 말은 감독이 의도는 있었는데 만듦새가 조금 허접했다 이 말이에요.


정재형) 전체적으로 미흡한 거에요. 의도는 다 보여서 비난은 못하는데 감동이 적으니까 굉장히 억지적인 장면도 있고, 미흡하고.


성진수) 저는 의도가 뚜렷하게 보인다는 게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군도>를 보면서 이 영화의 애매했던 부분은 ‘지금 나보고 웃으라는건가’ 이런 장면이 너무 많았어요. 코드를 내가 억지로 맞추려면 맞출 수도 있는데, 의도를 드러내려면 그거를 그렇게 숨기지 말고 이게 최소한 상황적인 대중강요를 하려면 자신의 의도를 자신 있게 드러내야죠. 물론 그게 시니컬한 감독의 측면으로 읽는다면 세련되고 모던하게 보일 수 있지만 많은 장면에서, 예를 들어 주진모씨가 하는 연기들은 ‘웃으라고 하는 거야?’, 내레이션의 부분도 독특하고 키치적이고 어디서 인용이 된 것도 알겠지만 ‘저걸 나에게 어떻게 받아 들이라는 거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모호했어요. 관객으로서. 그런데 이 영화(<명량>)는 투박하다고 말하는 건 바로 그 지점인 것 같아요. 이 지점은 조금 억지스럽더라도 일단 의도를 전달하려고 하는 거에요. 그리고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에 대해서 당신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영화안에서 그러한 것들이 느껴졌다면, 느끼세요. 라고 그렇게 투박하고 직설적이고 그렇게 하는 방식들인 거죠. 그게 어떤 것이 더 좋다 나쁘다 가치 판단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대중적이고 편안한 영화라는 생각이 사실 들었어요.


정재형) 그러니까 윤종빈은 김한민의 언어감각보다 훨씬 뛰어난 거죠. 지금 공감하는 연령이 다른거에요. 그런데 굉장히 낮게 뒀어요. 그래서 30~40대가 넘어갈수록 웃음코드가 막힐 거구요, 그 포즈들이 웃음 구다리가 있거든요. 저도 한 서너 번 웃었는데, 사실 같이 웃은 거거든요. 어떤 사람은 웃지 않는 장면이 많았어요. 그런데 공통적으로 웃는 게 서너 장면 있었어요. 이게 상당히 세련된 영화라는 걸 증명 한거에요. 예를 들면 20대 애들은 스파게티웨스턴 장면은 별로 웃기지가 않아요. 40~50대만 해도 스파게티 웨스턴을 본 사람들은 그게 너무 웃기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산발적으로 웃음이 나올 수 있는 장면과 공통적으로 웃음이 나올 수 있는 장면이 뒤섞여있어서 세련되고 풍성한 영화인데 비해서, 이거는 굉장히 그에 비하면 미니멀리즘 영화고. 딱 정제되어 있고 사실은 딱 몇 개 사건의, 줄거리도 없어요. 몇 개 있고, 그나마 진구와 이정현도 빼면 사실은 없어요. 간곡한 얘기가 하나도 없어요 거기는. 그러니까 이순신의 굉장히 공적인 역사들로 그려져 있기 때문에 간절한 얘기들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굉장히 크게 가면서 그거를 감동으로 끌어올리려한 연출의 노력이 보이죠. 솔직히 말하면, 김한민이 들으면 안되는데, 그게 너무나 안타깝다고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고, 한편으로는 좋게 이야기하면 좋게 보고 싶은데, 아 이런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뚝심있게, 투박하게 가는 것도 미덕이 될 수 있겠다, 그것은 오히려 거꾸로 <군도>같은 영화가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너무 세련되려고 하는 한국 영화가 그런 영화들이 많지, 이렇게 김한민 같이 대작을 다루면서 현란하지 않게, 단순하게 하려는 영화가 없잖아요. 사실은 그거는 굉장히 좋게 보는 거고, 적어도 이런 정도의 스펙타클을 만든다면 화려한 부분도 있어야 한다, 세련된 부분도 있어야 한다고 감독에게 주문하고 싶은 거죠. 왜냐면 결과적으로 이런 부분에 있어선 실패했으니까.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를 이렇게 단순하게 간다고 했을때 이게 결과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살지를 않았어요. 진구의 간절함, 진짜 오는데 왜 이렇게 긴장을 하게 하는지, 폭격을 해야 하나, 너무 장식이죠. 저는 사실 그 장면 지루하더라구요. 저도 보면서, ‘이게 왜 중요하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까짓 게 뭐 그리 중요해 , 빨리 파괴해버리면 되는 거 아냐?’ 그런데 그걸 계속 긴박감을 주면서 하는 것들이 억지스러웠다. 이미 게임은 끝났는데 너무 긴박하게 시간을 끌고 가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이미 결과를 다 알잖아요. 가기 전에 폭발할 걸 다 관객들이 알아서 긴박감을 주지 않아요. 그게 큰 패착인거에요. 그 장면은 숨겨놓은 다이나마이트가 아니에요. 더 긴박하게 장치를 숨겼어야 했는데 사실은 거기서는 그 서스펜스 장면이라기보다  애절함이 증폭되는 걸 만들려는 건데, 만들어지긴 했어요. 굉장히 억지스럽게. 그래서 나는 사실 이정현이 발가벗는거 아닌가.


안숭범)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어디까지 벗어야 하는 건가?

정재형) 그런데 커트가 바뀌더라구요. 이제 벌거벗는게 나오는 구나. 저걸 정말 보여주나.  그런데 안 보여주더고요. 그럼 이게 뭔가.


성진수) 이 두 영화가 서로 굉장히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데, 가능성이 있지만 2% 부족한 거 같아요.


이수향) 저도 공감하는 게 김한민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지 몰랐어요. 그래서 기대를 너무 안 해서 그런지 사실 고평을 하고 싶었어요. 왜냐면, 김한민의 전작을 보면 스타일이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재미있고 빠르게 속도감 있는 전개도 그렇고.


안숭범) 이전은 사건중심 영화고 이건 인물중심 영화고


성진수) 이건 심리영화에 좀 더 가까운 측면이 굉장히 많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수향) 김한민 감독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이런식으로 나올 줄 몰랐어요. 제 생각보다 너무 진지하게 나와서. 이게 미덕이라면 미덕인거에요. 이 시대에 이렇게 정공법으로 우직하게 대단하다, 용기 있다.


정재형) 나는 사실 예술영화와 오락영화를 철저하게 구분하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지난번 <경주>라든지 이런 영화들이 지향하는 지점과 블록버스터가 지향하는 지점은 굉장히 다르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감독이 투항할 수밖에 없고 그 안에서 최소한의 자기발언을 하는 거지, 이걸 예술영화처럼 만들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봐요, 이런 자본주의 상황에서. 그런 입장에서 봤을 때 나는 과연 이런 블록버스터의 투박함을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인가. 물론 관객이 많이 들 순 있어요. 극장의 점유율이나 이런 불공정을 통해서.

저는 그런 측면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순수한 입장에서 상업오락영화와 예술영화의 차이가 무언가, 저는 <경주>같은 예술영화는 홍상수가 됐든 김기덕이 됐든,  보이지 않는 현실의 세계에 대한 열망을 계속 충족시켜줘야 된다고 보거든요. 현실을 잘 그리는 걸로는 예술영화의 직무를 다했다고 보지 않아요. 사실은 초자연적인것부터 시작해서 정말 플라톤이 이야기한데로 이데아를 보여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관념적이고 더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보여줄 수 있다고 보는데, 사실은 상업오락영화가 갈 수 있는 길은 뭐냐는 거죠, 궁극적으로. 그들이 갈 수 있는 최고의 선은 무엇일까. 박진감 있게 현실을 현실답게 제대로 해석해서 제대로 대중을 끌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대중의 친화감. 대중을 가르치려하는 계몽적인 거라든가, 어떤 주지주의적인 태도는 마땅치 않다고 봐요. 그 현실을 재해석해야 된다는 건 주지주의의 영역에 들어가면 안되거든요. 그건 정말 대중주의적인 것이 지향하는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해요. 왜 대중을 이야기하면 질이 낮아야 됩니까, 왜 현실을 감춰야 되고 도피가 돼야 합니까, 난 이러한 공식이 굉장히 잘못되고 있는 어떤 특정 유파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표적인 게 할리우드의 오락미학이죠. 현실이,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덮어버리고 어떤 개인주의, 영웅주의로 끝난다던가. 이건 아니라고 봐요. 예술영화는 꼭 드러내는 게 예술영화다 이런 식의 이분법은 미국식 사고고, 저는 보편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이나 한국을 떠나서 영화라는 건 분명히 예술적 동기와 오락적 동기가 있다고 보는데, 오락적 동기라 해도 감동이 있어야 하고, 감동은 관객이 느끼는, 공감할 수 있는 주제에서 나오는 거고, 주제는 깊을수록 좋은 것이고. 저는 현실을 초월하는 플라톤적 이데아를 추구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그러나 현실 안에서 현실이 감춰진 부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현실을 온전하게 재현해 낸다는 게 얼마나 심오한 것입니까? 그러한 부분을 분명히 추구해야 되는 예술가들의 책무가 있는데, 대중예술가라는 걸 스스로 자기비하해서 자기 스스로 돈만 벌면 된다는 식으로 대중의 수준을 너무 낮게 상정한다던가 하는 것도, 윤종빈이든 김한민이든 그들이 취해야 될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또 그들이 너무 자기 오만과 자기 멋에 의해서 사업구조를 망각하는 것도 전혀 격이 맞지 않는다고 봐요. 차라리 그렇다면 중저예산 영화 속에서 자기가 제한된 관객 속에서 자본의 간섭 없이 얼마든지 그 길을 가는 많은 선배 동료감독들이 있는데, 그 길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되는 것이고. 오락영화라면 관객의 높은 기대치가 있는데, 거기 부합하려고 굉장히 재미있고 탄탄한 오락영화이면서도 현실 해석에 있어선 주제가 심오하다는 소리를 듣는 영화를 만들어야 되는데, 그런 부분에서 <군도>나 <명량>이 그러했는가는 영원한 논쟁거리가 될 거에요, 보는 사람에 따라서. 전 사실 가혹하게 말하자면 미흡하다. 발전가능성은 있겠지만 그러한 지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영원히 반복되는 거겠죠. 저는 미학과 주제의식을 구사하는데 있어서의 혼란들이 그런 점에서도 정리가 되어야 할 것 같구요.


이수향) 윤종빈이 기대보다 못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해적>까지 보고나면 윤종빈한테 미안해요. 포지션도 완전 다르지만, (<군도>는) 시니컬할 수도 있고 숨겼을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게 나아가는 의식이 있는 반면에, <해적>은 자기네 영화라 맞지도 않는데 뜬금없이 의식이 있는 척 하는 대사를 막 넣어요. 되게 인위적으로. 


정재형) 그래서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충무로의 영화 예술가들이,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한데, 굉장히 역사의식이 희박하다는 걸 알게 되요.  60년대 한국영화에선 역사영화가 주종을 이뤘거든요. 굉장히 한국이 잘 만드는 나라에요. 왕조역사부터 시작해서 서민들 역사까지 역사적 소재들을 가져다가 가장 대중적으로 했고, 대중들도 좋아했고 많이 만들었고. 그런 측면에서 사극이 한국적 장르로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나 혼자 추측을 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사실은 굉장히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하죠. 좋은 영화들이 나와서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모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화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면에서 보면 사실 역사가 역사의식이 약해요. 결국 감독은 해석을 하는 사람인데 해석력이 약하다는 거에요. 정사에 입각해서 정확하게 만들라는 이야기와 정 반대인거죠. 전 신윤복을 여자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역사의식이라는 건 문학적으로 비유하자면 시성, 메타포 같은 거죠. 영화는 산문이 아니라 시(詩)다. 시성(詩性)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영화가 풀어져 나가는 것 같아서 산문이라고 비유하지만 사실은 시라는 거죠. 압축되어있고 의식을 분명히 메타포화해서 보여주거든요. 고도의 상징화되어있는 장치란 말이죠, 영화의 양식이라는 게. 그렇게 보면 그 수준이 굉장히 높아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좀 약하다. 개인적으로 그런 것들을 많이 생각해요. 실제로 그런 시스템이 되어있지 않아요. 사실 해석을 하기 위해 역사고증을 받아야 하는데, 사실 우리는 정사에 입각해서 잘 만들어야 된다는 것 때문에 고증을 받거든요. 그런 태도도 잘못된 거죠. 일단 그 때 당시의 많은 사실, 레퍼런스를 얻고자 하는 거죠. 자기가 해석하는데 어떤 것들이 유리하면 그것은 쓰고, 어떤 건 버리고 이런 취사선택을 하는 건데 우리는 지금 단계가 약간의 리서치를 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명량>에서 쇠줄을 안 한건 리서치를 해서 뺀 것 같아요. 최근 학설을 통해 밝혀졌거든요. 밝혀졌다 하더라도 넣으려면 넣을 수 있는 건데, 그런 것들에 대한 취사선택이 본인이 어떠한 중심이 약하니까, 역사의식이 약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정말 백성의 뜻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백성친화적인 소재로 에피소드를 더 압축, 상징화 했어야 됐죠. 지금은 심하게 이야기하면 너무 70년대 그림이에요. 박정희 때 그런 에피소드가 많았거든요. 백성과 장군을 수평적인 관계에 놓고 그릴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은데, 여전히 장군을 보필하는 거잖아요. 이런 건 조금 시대에 떨어진다는 거죠. 지금은 장군도 인간이고, 장군도 술 먹고 취해서 주정하고, 누구도 장군이 될 수 있는 지금 21세기의 인식을 보여줘야 하고, 장군도 외롭고 민중도 외롭다, 외로운 사람들이 어떤 지점에서 도울 수 있다. 이런 식의 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면 좀 나을 텐데, 지금 치마를 흔들고, 장군을 구하고, 이런 건 여전히 장군에 대한 과거에 우리가 가졌던 각인되었던, 위대한 분, 저분이 다치면 안 돼, 저분이 있어야 돼라는 거에 대해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거 아닐까요.


윤성은) 저는 오히려 이 영화에서 이순신을 구하려고 했던 건, 그 장군이 죽으면 전쟁이 끝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순신이 죽으면 안된다는 게 아니라 어쨌든 지금 우리가 믿을 거 하나는 장군이고 장군이 죽으면 이 전쟁이 끝난다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구르지마가 죽었을 때 승패가 기울었던 것처럼요.


정재형) 저는 파격적으로 생각을 해본다면 왜 이런 스토리는 생각을 못하냐면, 이순신의 아이디어를, 김명민의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보여줬거든요, 거북선은 이순신이 만든 게 아니다. 이런 걸 줬어야 된다는 거죠. 말하자면 계속 지금 영화의 서사 에피소드가 과거의 것과 크게 변하지 않았단 말이에요. 그거에 관객들은 계속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어요. 그 논리대로라면, 그럼 계속 그 관계는 깨지지 않아요. 이순신은 사실은 중요한 걸 개념적으로는 알아요. 아 지금에 와서, 이순신도 인간이지, 슬프면 울었겠지, 그런데 중요한건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잖아요. 뭐냐하면 그 우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건,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자기가 한 게 아니라는 거에요. 진짜. 그래서 관객들이 놀라야 돼요. 그럴 때 김한민을 다시 바라 볼 수 있죠. ‘어?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한 게 아니네, 진구가 했네.’ 이런 인식을 줬어야 된다는 거죠. 이순신 장군은 공을 대표한 사람이다. 교묘하게 바꿔치기하는 해석을 했으면 훨씬 놀랍죠, 사실은.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괴로웠구나. 자기가 이 전쟁을 하나의 나약한 군인으로서 대적해나가야 된다는 점에서 외로움을 느꼈고 너무 힘들었는데 정말로 민중들이 나를 도와줘서 내가 장군으로서 모든 걸 해결한 것처럼 했고, 그게 맞는 거에요. 말하자면 그들이 이순신 장군을 정말로 도와서 이순신 장군 일을 대신하는 장면을 보여줬어야 해요. 그런데 그것이 지금도 그런 의도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마치, 지금 그 논리대로 우리가, 저분에 대한 존경심은 계속 있으면서 그 시각으로 계속 가니까, 그게 아니라 정말로 자발적으로 자기가 들어가는 시각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좀 치밀하게 더 에피소드화 해서 보여줘야 하죠.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 이 영화는 이순신장군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거에요. 그들의 갑을병정의 에피소드들이 많이 들어가야 해요. 제가 이야기한데로 스토리텔링이 되려면, 이야기자체가 굉장히 복수 캐릭터화 된 것처럼 가야해요. 진구와 이정현 에피소드처럼 그런 사람들이 대단히 많아서 지금의 분량보다는 굉장히 이순신이 줄어들어야 되는 거에요. 사실은. 그러니까 이게 한계가 있는 거에요. 여러 가지 한계가 있는 거죠. 원맨 히어로를 버릴 수도 없고, 이순신이 주인공인데, CJ에서 만든 영화면서, 최민식이 역할이 적으면 최민식이 맡을 이유도 없고, 예를 들면 그런거죠. 지금 류승룡을 깎아 린 것처럼 최민식도 굉장히 깎아내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영웅의 전쟁이 아니라 사실은 더 다른 내용의 전쟁이었다는 거로 스토리를 간다면 다른 사람들도 많이 부각 될 수 있는 스토리로 갔을 텐데, 여전히 이순신을 탑으로 놓고 가려고 하다보니까 사실은 더 지나쳤죠, 이 영화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는데, 오늘은 여기서 마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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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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