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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합평회

씨네톡 <경주>참석자: 박태식, 정재형, 민병선, 이대연, 성진수, 윤성은, 이수향



6월 씨네톡 <경주>

 

정재형: <경주>부터 시작해 보죠.

 

민병선: 일단 <경주>는 재밋게 봤습니다. 영화를 보러 가는 김에 <트랜스포머>를 같이 봤거든요. 시간이 거의 비슷하더라구요. <트랜스포머>는 왜 이리 길지, 왜 이리 길지 하고 봤는데, <경주>는 오히려 단숨에 보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경주>가 잘 나온 것 같다. <트랜스포머>는 보다가 좀 잤어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미술에서도 본질이 뭐냐. 그렇게 나가다 보면 결국은 점하고 선만 남더라. 추상이 되고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영화도 어느 정도 내공이라고 할까, 경지라 그럴까, 그런 데에 올라가면 이미지만 남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장율 감독의 <경주>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아, 이분이 어느 경지에 오른 게 아닌가, 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의 이미지가 갖는 순수성이랄까요. 이미지만 남는 순수함. 그런 느낌들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업적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 부럽다,라는 느낌도 들고. 이번엔 <경주>지만 예전엔 <이리> 이런 영화들을 봐도, 과거의 기억속으로 자꾸 찿아가는 것 같은데,  좀 퇴행한다는 느낌은 받지 않고, 이미지의 순수함 같은 게 결정체처럼 남아 있다는 그런 느낌을 자꾸 받아서, 이런 영화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윤진서가 왔다 가는 장면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영화가 극을 구성해야 잖아요. 예를 들어 카메라나 편집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구성을 위해서 다 컷이 있어야 되는데, 이미지만 남으니까 그런 것들이 다 시시해지는,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구나 하는 판단이 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윤진서가 떠나는 장면 조차도 없거든요. 그냥 의자에 앉아 얘기 하다가  끝나거든요. 꼬리처럼 붙는 장면, 우는 장면, 이런 어떤 것들을 다,  긴 영화인데도 그런  것들을 다 배제해버리고, 이미지를 통해서 보려고 하니까 촬영기법, 어쩔 수 없이 풀샷 아니면 롱샷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류의 영화들이 항상 그런  구성이나 프레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유사한 영화들이, 홍상수 영화가 떠오르긴 하는데, 홍상수 영화하고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긴 받았어요. 장률감독이 이 이야기를 계속 이미지가 흐르는 게 죽음의 이미지가 흐르잖아요. 지인의 장례식, 모녀의 죽음, 찻집 여인의 남편의 죽음, 계속 죽음의 이미지가 흐르고 경주라는 것, 능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죽음이기 때문에, 순수한 이미지만 남다 보니까 비유와 은유 등 상징 쪽으로 밖에 남지 않아요. 회화가 점과 선으로 밖에 남지 않듯이, 이미지만 남다 보니까 죽음이 은유나 상징쪽으로 밖에 남지 않는 거죠. 죽음의 이미지를 깔고 갔으면 좀 더 훌륭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남녀문제로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게 왜 남녀문제로 들어갔을까, 상징적으로 얘기하자면 탄생이 있을려면 사랑이 있어야 하고, 감독의 자의식이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남자 주인공도 없고 교수 라는게 장률 감독 스스로를 대변하는 게 아닐까, 자기가 사적으로 느꼈던 개인적인 체험이나 생각이나 자의식들로 인해 영화의 흐름이 바뀐 거라고 봤거든요. 갑자기 찻집 여인, 그 다음에 관광안내소의 안내하는 여자, 등 애정으로 엮인 구성으로 가잖아요, 형사는 시기 질투도 하고, 홍상수 영화처럼 가는 지점이 패착이 아닐까, 그렇게만 안 갔으면 하죠, 왜냐면 홍상수처럼 솔직하게 그런 걸 그리지 못한다고 하거든요, 그걸 의미나 상징으로 대하는 사람이 남녀문제로 들어가니까 달아나지를 못하는 느낌이 났어요. 더 들어가지도 못하고 더 나오지도 못하고. 그래서 영화가 계속 길어지고, 이런 느낌이 그렇지 않나. 그게 좀 아쉽더라구요. 

영화는 죽음의 이미지를 가지고 순수성을 이미지로 해서 그걸 관객들에게는 다가오고 그걸 죽 갔으면, 그런 영화 만들 때 어차피 상업성은 고려하지 않았을 거 아녜요. 정말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했는데 아쉽더라구요.

 

이대연: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지루했는데, 템포가 너무 느려서 그걸 따라 잡기가 힘들었어요. 무자비한 롱테이크의 난사 같은 느낌이 들어가지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죠. 처음에는 중간까지 지루하다가, 중간 이후 넘어가니까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이제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됐어요. 마태복음 1장 보면 예수님 족보가 나오잖아요, 아시다시피 그 족보 읽다 보면 내가 더 이상 이 신약성경을 읽어야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설득하게 되거든요? 되게 지루하고 그걸 넘어가기가 힘든데, 그 안에 구약이 다 들어가 있고, 누가 누글 낳고, 누가 누굴 낳고 하는 속에 구원이 있고, 메시아가 있는 그걸 넘어가지 않고 신약을 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이 지루함에 많은 게 담겨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단순화시키자면, 프로이트적이다, 너무 도식화시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고, 타나토스와 에로스 사이의 긴장관계, 이런 게 느껴져서, 죽음에 대한 충동과 성애와 삶에 대한 충동, 이런 것들이 긴장 관계로 엮여져 가는 걸 보고, 참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흔히 홍상수감독 얘기를 많이 하는데 <하하하>가 떠오르긴 했어요. 허진호 감독의 <팔월의 크리스마스>도 떠올랐구요. 기본적으로 홍상수 보다는 김승옥 소설의 [무진기행]이 더 떠올랐어요. 고향은 아니지만 어느 곳으로 가서 겪는 경험, 일련의 사건들과 일들이 [무진기행]에서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세무공무원과 여교사와 현지 사람들과의 일들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쇼킹한 느낌을 받았는데,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7년 전에 세 친구가 경주를 갔던 기억을 마지막에 담잖아요. 춘화를 보면서 얘기를 듣다보니까 최현이라는 사람과 창이형이라는 사람이 동성애적 관계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알게 되니까, 그 전의 일들이 설명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게 없었다면 이게 뭐야 하면서 끝났을 것 같은데, 거기서 많은 시사점이 있었던 것 같구요. 한 마디로 얘기하라고 하면 죽음을 딛고 선 사랑 같은 느낌, 장률감독의 영화를 별 생각 없이 봤었는데, 한번 찬찬히 훑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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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향: 영화 본지 얼마 안 되서 잘 정리는 안 되는데, 한번 얘기하고 다시 자세히 애기해보도록 하죠. 이 영화 보면서 처음부터 받았던 느낌은 박해일이 경주를 가는 장면이 시작되면 이 영화가 그때부터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영화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진행이 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서 신민아가 맡았던 인물을 만나는데 영화의 템포가 굉장히 느리고, 그 여자가 슬지 않는 여자인지 아닌지 모를 만큼 비현실적으로 느릿느릿 움직이고, 과도한 모습에 많은 포인트를 두고, 그런 여러 가지 영화적인 분위기가 있었어요. 햇볕을 비추는 카메라 기법이라든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라든가 이런 게 이대연 선생이 말한 [무진기행]에서처럼 자기가 있던 공간을 떠나서 어떤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을 하는데, 그 공간에 있는 새로운 쉽게 만나는 사람들이나 보여지는 일들이 꿈인가 현실인가 대단히 느린 템포로 보여줄려고 노력했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영화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많이 나오는데, 가령 최현이라는 사람이 왜 하필 북경대에서 그것도 동북아 정세를, 근대사를 공부하는 교수여야 했는가, 낫또는 왜 먹고, 일본인 관광객은 왜 등장하는가, 박교수라고 북한학을 얘기하는 그 사람은 왜 나오는가, 등등 이 영화에서는 설명되지 않지만,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는 요소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역시 꿈과 같은 그런 기법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을 꾸게 되면 맥락도 없고, 이상하고 연결도 안 되는데, 막 치고 가는 게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했고, 저도 여기에서 재미있게 봣던 게, 이 사람이 진짜 내 현실이구나, 깊게 들어가려고 하고 몰입할 때마다, 깨우는 기제들이 자꾸 나타나요. 핸드폰소리가 울려서 더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천둥소리가 우릉 쿵쿵 나서 집중이 깨서 이게 뭐지 하는 각성시키는 순간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데서 영화가 노리고 있는 지점이 꿈과 현실의 모호함 그 자체를 보여주는 그런 기법들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도 마지막으로 7년 전 기억부분이 충격적이었는데, 그저 단순히 벽에 춘화를 왜 이리 찿나, 그냥 이러고 말았었는데, 마지막에 보니까 거기서 오히려 여자의 얼굴이 박해일이고, 남자의 얼굴이 창이형이라고 얘기하잖아요? 이런 저런 과정들, 그 아내가 신민아에서 그 아내로 변해 아리수 찻집에서 나타나는 카메라 워크, 이게 동성애를 어느 정도까지 얘기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코드를 만들려고 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길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워낙 배경이 아름답고 고분의 밤장면이라든가 이런 부분이 실제적인 내러티브의 개연성있는 내용보다도 이미지적인 것, 인물들의 심리 등과 관련 짓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윤성은: 영화의 느림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는 수준이 있고, 그렇지 않은 수준이 있고 한데, 이 영화는 너무 자아도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한 두 장면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를 이끌어내는데 부분들 아니면 이야기를 하는 부분들에서 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강요합니다. 풀샷이 많고, 롱 테이크가 많고, 대사가 리얼리즘적으로 보이지만 타르코프스키나 소쿠로프의 초현실주의적인 연기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특히 캐릭터로 넘어가면, 신민아 같은 경우 너무 짜증이 날 정도로 입체적이지도 않고, 남성감독들이 여성을 그리는 방식에 있어서 여자를 모르는 남자가 만든 영화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민아의 캐릭터는 현실적이지 않아요. 물론 앞서 말씀하신 분들의 얘기처럼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캐릭터로 그리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 영화가 편집을 어떻게 해서 빨리 넘어가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말도 했었는데, 그 자체가 불가능한게 연기자들의 연기가 너무 느려요. 연기를 중간에 짜를 수가 없기 때문에, 신민아가 느릿느릿 걷고 손동작을 할 때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나, 단순히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건 너무 도취적이다, 감독이 스스로 빠져있다, 나는 이런 영화를 만들 테니까 너희들은 따라올 거면 따라오고 말 거면 말아라, 이런 식의 약간 불쾌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단순히 평론가들이 평을 하기 위한, 매니아들이 감독의 심오한 뜻을 받아주기 위한 그런 것으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신민아 캐릭터에 대해 말씀 드리면, 여자를 모르는 남자가 이렇게 약간의 판타지와 함께 아무런 색깔도 없는 저런 무채색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남자 캐릭터는 어떤가 봤더니 박해일도 비슷하더라구요, 그래서 여기 나와 있는 이 케릭터들이 조연 들은 굉장히 생동감이 있고 색깔이 있는데, 이 두 주인공은 색깔이 없고, 이들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가 뭔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런 것들은 아마도 분명히 다른 부분들, 죽음이라든가 에로스적인 욕망, 삶에 대한 욕망, 정치학, 이런 것들이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일단 신민아와 박해일 캐릭터에 대해 나중에 더 애기했으면 좋겠구요, 죽음이라든가 동복아정세, 일본아줌마, 북경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공이고, 안내소 직원이 나오고, 이런 것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고 하셨는데, 느림의 미학속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뭔가 있겠지, 라고 생각이 들게 만든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을 내가 조합을 시켜야 한다, 마치 내가 모르면 무식한 사람처럼 만든다는 거죠. 그게 또 기분이 나빴던 것중의 하나였어요.

물론 제가 무식한 것일 수도 있어요. 죽음이라는 모티브도 장례식부터 시작해서 모녀의 죽음, 남편의 죽음, 낙태와 능, 이런 것들이 정말 흩어져 있는데, 감독은 ‘잘 조합해봐, 뭔가 있을 거야’, 매직 아이처럼 잘 보면 나타나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그거야가 아니라, 열어놨으니까 너네들이 맘대로 생각해,로 들렸어요. 보통 어려운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하는 방식의 하나거든요, 난 열어놨다, 많은 것들을 넣어놨으니까 나머지는 관객의 몫이야,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든지 너희한테 달렸어, 이렇게 얘기하죠, 영화제에 가서 관객과의 대화를 해보면 관객들은 아무도 못 알아들었는데 뭔가 요구하죠, 감독들에게, 이런 영화를 만든 이유가 뭐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면 감독은 ‘열려있다’ ‘자의적으로 해석하길 원한다’,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해요.

그건 정말 무책임한 해석이죠. 자의적인 건 좋은데, 어쨌든 감독이라는 사람이 자기 영화를 만들면서 나도 죽음이라는 여러 가지 모티브들과 동북아정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있어서 이런 것들이 이 영화속에 하나 하나 켜켜이 들어있다고 이야기 했을 때 분명히 그런 것들이 입장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이 영화는 잘 모르겠어요. 홍상수 감독과 비슷한 측면에 대해서 기복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비슷하게 보이는 부분들, 예를 들어 자살모녀라든가, 남자 여자의 에로스적인 부분들, 반복, 이런 것들은 이 영화에서도 중요하게 사용되는데, 흩어져 있지 하나로 모아지지 않아요.

 

정재형: <경주>는 제 표현으로 ‘부유인(浮游人)’ 즉 ‘부유하는 사람, 남자 주인공’, ‘떠다니는 인간’, 정체성을 찿으려는 부유하는 인간, 남자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대중상업오락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추적하는 데에 있어서 서사가 처음에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아요. 왜 경주를 내려가고, 이 인간이 무엇을 하려는가를 관객들에게 분명히 제시하지 않거든요. 이 영화가 예술영화라는 것을 증명하는 겁니다. 이 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종래의 상업오락영화가 갖고 가는 서사구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에 다 풀리죠. 왜 경주로 내려갔는가. 춘화죠. 춘화에 모든 비밀이 있구요. 거기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내려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끝나기 오분 전까지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게 이 영화가 다른 상업오락영화와의 큰 차별점이죠. 대신에 이 영화는 서사구조를 스타일로 설명을 하죠. 말하자면 자주 반복되는 이미지들의 모티프들을 통해서, 관객에게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켜 줍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상당히 좋은 영화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시간이 길고 짧은 것은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영화가 네 시간, 다섯 시간 짜리도 있을 수 있어요. 이 영화가 충분히 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영화를 보는 내내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사유의 영화이거든요. 영화감독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이야기의 영화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계속 인생에 대해서 유도하고 질문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관객도 역시 사유를 한다면 결코 지루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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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식: 저는 처음에 이 사람이 경주로 내려가는 것은 분명히 시간에 관해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칠년 전에 봤던 춘화, 마지막에 가서 신민아가 그렇게 얘기하죠, 어디 가든 능이 보여, 그러니까 거기는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곳으로서의 경주, 일본의 교토가 비슷해요. 그런 것을 얘기하려는 거구나. 시간에 대한 얘기를 하려구 하는구나 하는 것은 처음부터 잡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동북아정세가 들어가고, 뭔가 자꾸 끼어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이게 왜 끼어들어오지? 그러다 동북아정세에 대해서 답이 정확치 않다가, 답이 개똥이야, 하는 얘기가 들려요. 

약간 무책임하다는 태도같은 걸 느꼈어요. 그리고 신민아, 신민아 별명이 뭔지 아세요? 경주의 여신. 뭔가 신비하고 멋있고, 거기까지는 좋아요, 근데 이 사람이 처음에 발생한 게 뭐냐하면, 변태같애, 라는 문자였어요. 그건 진짜 안 어울려요. 신민아 하고 둘이 그런 대화를 했다고 하고, 갑자기 변태인 줄 알고 구하러 오는 것들은 신민아의 그 뒤로 이끌어가는 이미지와는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 뒤에는 전혀 그런 것은 아니어야 하잖아요. 중간 중간에 끼어드는 이미지들을 충분히 공감하기 힘들었어요. 아, 이건 멋있다, 하다가 경주에 왜 왔는지 정말 마지막에 알게 됐어요, 마지막 오분 전. 생각이 제대로 된 감독이라면 춘화를 보여줘야지, 춘화도 안 보여주고 끝나는 감독들이 있잖아요? 탁 덮어버리고 끝나죠. 여기서는 그래도 춘화를 보여주는 것이 양심적이에요. 

춘화를 딱 보더니 저게 너일 수도, 나일 수도 있고, 저기에 학이 한 마리, 이쪽에선 학일 수도, 맨 처음부터 물었다는 거예요. 아, 이게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과거로 가서 나의 정체성을 알아보고자 하는구나, 나중에 감이 오더라구요. 그러고 나서 떠올려 보니까 중국 부인하고 그게 잘 안되는 거였던거야, 윤진서하고도. 형은 원래 그런 거잖아, 라고 하는 것들이 자리를 못잡는(부유하는) 사람을 상징했던 거죠. 주인공은 일본 말도 곧잘 하더라구요. 일본 말을 못하는 것처럼 나오는데, 난 낫또를 좋아합니다, 하는데, 이런 비유를 들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이 신앙을 확실히 갖고 있어요. 지하철 이런 데서 만나면 상대방을 떠보기 위해서, 엄한 소리를 해요. 예수가 우릴 구원하겠어요? 이런 얘기를 한다고,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면서. 그런 식으로 떠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지 않았나, 일본 말도 할 줄 알고, 중국 말도 잘 하는 사람이 남 한테는 못 하는 것처럼, 지적인 자만감 같은 거, 계속 신비한 동북아 문제 전문가로 나서서 그 사람 입지를 만들어주고, 그런데 아주 비열해요. 똥이야, 이런 말을 하는 거죠. 알 듯 모를 듯한 그 사람의 지적 자만감 같은 게,

실제 그 사람이 거기 있더라구요, 감독이 북경대학인가 어디(연변대학) 교수더라구요. 거기에서 계속 생산을 해내는 거예요. 그 생산한 것을 영화로 만드는 것 같아요. 제목들을 봤더니 제목들이 참 재밋어요. 경주, 풍경, 두만강, 중경, 이리, 경계, 사실, 망종, 당시. 제목을 붙인 게 뭐 있지 않아요? 뭔가 선문답 같은 제목을 툭 던지듯이 하는 그런 느낌들이 있었어요. 최현하고 공윤희에 대해서 좀 얘기를 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이미지를 연결시켰다, 하는 점, 감독은 자신이 스타일리스트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을 거예요.

정재형: 박해일의 캐릭터는 한국인이긴 하지만 정체성의 혼돈은 국가 정체성의 부분을 갖고 있죠. 중국인 아내, 한국인이지만 중국에서 살고 있고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경계를 왔다갔다 하는 점은 장률감독이 조선인의 피를 갖고 있는 중국인으로서 이중적 국가 정체성이  모든 작품에 다 드러나거든요. 조선계 중국 감독으로서의 아주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지요. 이 영화가 유감없이 그러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제가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중하나는 한국감독이 절대 그릴 수 없는 영화를 장률감독이 그림으로써 굉장히 깊이있게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이었어요.

 

정재형:  박해일은 한국인이지만 혼돈스러운 국가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인이지만 중국인 아내와 중국에서 살죠.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경계를 왔다 갔다 해요. 그래서 감독은 조선인의 피를 가진 중국인이 겪는 이중성과 국가적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모든 작품에 다 들어나거든요.

조선족이면서 중국인인 감독으로서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거죠. <경주>는 이 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어요.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무엇이냐면, 한국 감독은 절대 그릴 수 없는 영화를 장률 감독이 담아내면서 깊이 있게 사유하게 만든다는 거죠. 그 점이 한국관객들이 갖는 독해의 어려움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장률 감독이 그런 태생적인 어떤 메타포가 다른 주변적인 메타포들과 결합해서 한마디로 메타포의 영화가 되거든요.

그것이 어떻게 주제로 귀결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일 텐데 어렵다면 어렵죠. 굉장히 많은 메타포들이 뿌려져 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습니다. 일단 하나씩 풀어나간다면, 주제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주인공의 캐릭터는 자기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경계에서 부유하는 지식인이에요.

장률 감독이 느끼는 세계가 한국 영화적 관점에서 보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낯설음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한국인인데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과거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제시되는 것들이 낯설게 느껴져요.

그 다음에, 경계가 모호한 행동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이방인 의식을 갖게 만들어요. 예를 들면 호감을 보이는 관광 안내원이 중국말을 할 때 한국어로 해도 되는데 중국어로 한다는 거죠. 그러다가 나중에는 한국말로 해요. 그 태도는 무엇인가? 이게 바로 우리 시대의 정신인거죠. 우리 사회에서 낯선 인간의 한 유형을 이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되는 거죠. 의도적인 거거든요. 

홍상수 영화에도 많이 나타나는데 지식인의 위선이죠. 이 영화의 어떤 주제는 박해일을 중심으로 해서 북경대 교수인 박해일을 숭배한다고 하는 지방의 북한학 전문 교수, 그리고 옆방에서 술 취해 춤추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의 행위와 사실은 연결이 되어 있어요.

술집, 노래방 이런 것들이 한국사회의 파탄의 온상, 술 취해 비틀거리고 광란하는 한국 사회의 어떤 절망스러운 현장, 이런 것들을 통해 지식인들이 위선적으로 그려져요. 끝까지 추태를 보이는 북한학 전문가라던가.

 

박태식:  무례한 거지.

 

정재형:  감독이 지식인 자체를 조롱하는 시선을 분명히 가지고 있거든요. 박해일을 포함해서. 그런데 박해일 자체가 그런 걸 탈출하기 위해서 한국에 와서 방황하고 있는데 거기서 그런 지식인의 모습과 연관지어 여정을 보여준다는 것이 저는 상당히 소주제로서 의미가 놓여져 있다는 거죠. 그 외에도 많은 다양한 의미들이 소주제로 놓여있어서 그것이 마지막에 어떻게 하나로 귀결되는가 하는 것은, 이 영화를 읽는 독해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이대연: 박교수라고 나오죠? 동북아 정세를 이야기 하다가 학자적인 자존심이 무시를 당해서 화를 내요. 웃긴 게 신민아가 손 한번 잡아주니까 모든 게 녹아버려요. 동북아 정세를 이야기 하는데 박해일은 똥이라고 하죠. 날 무시하냐고 시비를 걸다가 신민아가 손 한번 잡아주니까 화가 풀려요.

관광안내원 여자도 박해일에게 말을 걸고 설명을 해주려고 애를 쓰는데, 그 이유가 잘 생겼기 때문이다, 라고 하거든요. 에피소드들이 성적인 긴장감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느낌도 들어요. 방에서 술 먹고 노래 부르던 그 사람들도 포옹하는 듯한 제스추어가 보여요. 동성애 코드적 느낌도 있어요. 이런 여러 가지 느낌들과 모든 사건들이 에로스 안에서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영화에서처럼 친구에게 경주를 이야기 하면서 동북아정세를 이야기했더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느낀 게, 결국은 별 의미 없는 얘기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또 제가 의문스러웠던 점은 중국말 했다가 일본말하고, 일본인들이 뜬금없이 역사를 사죄하고, 결국은 그게 박해일이 잘 생겨서 그런 거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관광을 와서 사과할 일도 아니고, 대표성을 띤 게 아닌데 사과를 하는 그 모든 것이 함께 사진을 찍은 박해일에 대한 이성적 호감? 여기서 모든 게 마감되는 게 아닌가 싶구요.   

 

정재형:  부연해서 제 식으로 표현하면, 서양을 지배하는 거대 담론, 역사와 정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 의식들, 그것과 더블어 개인의 외로움을 그린 것이라고 보거든요.

그것이 섹스에 대한 부분이죠.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부분들. 춘화를 중심으로 해서 잃어버린 그림을 찾는 추적담이거든요. 이 영화의 서사는. 그것이 춘화예요. 춘화 하나에서 모든 의문 관계가 풀려요. 제가 에로틱하게 들은 것이 무엇이냐면 <도희야> 때도 그랬는데요, 에로틱한 시선을 보여주면서 화면 밖의 소리를 들려주면서 상상에 맡기고 끝나요. 의도적인 거거든요. 이러한 것들의 연결 고리들이, 춘화를 통해 자기의 얼굴을 찾아가는 개인담이죠.   개인의 정체성이 불안정한데 동북아 정세가 됐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이야기를 하는 거죠. 저는 그렇게 보고 싶어요. 장률 감독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외로운 사람들, 박해일과 신민아, 그녀를 좋아하는 강력반 경찰, 다 외로운 사람들이에요. 그것을 대표해서 박해일한테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요. 카메라의 내러티브가 그렇게 구축이 돼요. 외로움을 상징하는 거거든요. 똑같이 부여하고 있는데 정치적 방황을 박해일을 통해서 보여준 거죠. 어떤 구원의 빛을 경주를 통해서 얻었다 그런 해석이 되는데요.

거대 담론들은 차창 밖을 지나가는 풍경 같은 거죠. 박해일에게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지 않는 거죠. 교수가 됐든 박사가 됐든, 동북아 문제가 됐든, 박해일은 삶과 죽음의 문제로 자기는 굉장히 방황을 하고 있고, 사랑의 가치에 목말라 있는 외로운 현대인이죠. 그것이 뿌리로 가면 장률 감독 자신과 만나죠. 그게 소재로 나타나니까 한국 관객들은 혼란스럽죠.    장률 감독에게는 그런 경계를 넘나드는 혼란스러움이 어떤 가치로 나올 수 있을 거 같아요.

재미난 현상은 장률 감독의 메타포에서 ‘서로 닮음’과 ‘되기’, 들뢰즈의 ‘되기’와는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인물들이 그 주제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닮은꼴이 되고 같아지게 되고, 같은 처지로 이야기 되는 그런 방정식이 보여요.

처음에 박해일이 돌 안에 고여 있는 물의 금붕어를 봅니다. 그 다음에 어느 지점에 가면 신민아가 똑같은 장면을 봅니다. 처음에 박해일이 벽 속의 비밀의 방, 거기에 있음직한 벽을 응시하면서 과거로 들어가려는 어떤 장면이 나와요. 이러한 같은 장면의 반복이, 박해일과 신민아의 관계를 보면, 처음에는 변태라고 규정하면서 서로 간에 금이 가있는 걸로 출발해요. 나중에는 옹호하는 입장이 되고 같이 동숙을 하는 관계로까지 가게 돼요. 그러나 섹스는 하지 않죠. 정신적으로 깊은 교감의 관계를 가지게 되거든요, 그런 것들이 닮음과 같아진다를 보여줘요.

마지막에 과거로 들어갔을 때 세 명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춘화 속의 인물을 비유하면서 서로가 닮음 꼴을 이야기 하다가 같아지는 경지를 관객 입장에서 보게 돼요.

이러한 비유가 어떤 주제를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걸까? 현대인의 고독, 외로움이라는 동질성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느꼈어요.

 

 

 

이수향: 춘화를 향한 추적이라고 했는데 저도 비슷한 생각이고요. 결국 이 작품에서 박해일의 첫 장면이 친한 형의 장례식 장면이잖아요. 왜 거기서부터 시작되고, 경주로 들어가기 직전 상황 이후부터는 끝까지 경주가 배경이잖아요.

시작 장면을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봤는데 마지막에 가니까 그 장면들이 중요했다, 라는 걸 알게 됐어요.

주인공은 7년 전의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 것인가? 질문을 던져 볼 수가 있을 거 같아요. 춘화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7년 전이라는 시간, 경주라는 공간이 맞닿는 지점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 형에 대한 죽음이 연결돼요. 친구는 오늘 장례식에 왔으니 술 마시고 놀아보자 얘기하고, 죽은 고인과 그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가식처럼 하잖아요 하지만 박해일은 관심도 없고 동조할 생각도 없고 성의 없게 대답을 하죠. 그리고 자기는 경주로 가겠다, 선언을 하는데, 이 부분이 저는 어떻게 보면 친한 형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방식이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그것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알았는데 춘화 자체에 의미가 있기 보다는, 그 춘화를 같이 보고 있었던, 장례를 당한 형과 또 다른 친구를 만나는 과정들 속에서 경주라는 곳은 죽음이 전면화 되어 있는 공간인 거죠. 그 곳에서 만나는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이 꿈과 현실처럼 섞여 있어요. 그 안에서 결국에는, 마지막 7년 전 장면이 나오기 직전의 상황을 보면, 물소리를 따라서 가다보니까 수풀이 나오고 또 수풀을 지나서 가다보니까 호수 앞에 서거든요.

호수는 전 장면에서 엄마와 아기가 죽었던 곳이기도 해요. 호수라는 공간이 가진 죽음과 물의 이미지, 상징적인 측면이 있으니까 죽음 앞에 계속 엮어서 딴전하고 돌아다니다가 자기가 마주해야할 대상 앞에 서게 되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그런 부분이 감독의 전체적인 세계관관 관련이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은 영화다 보니까 좀 궁금했던 점 하나는 신민아나 박해일이 매력적인 인물로 나오는데, 박해일은 관광 안내소 직원이 반할 정도로, 영화배우 아니냐고 물을 정도죠. 신민아는 경주여신으로 지칭이 되잖아요. 특별히 남녀 주인공의 외모적인 부분을 특징을 잡아서 그린 이유가 있는지 하는 궁금함이 들었어요.

 

민병선: 캐스팅이 됐으니까 인물에 이야기를 맞춘 거 아닐까요?

 

(일동 웃음)

 

민병선:  영화 속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제 생각에는, 감독이 나이가 들고 원숙해지면 어린애처럼 되는 경향이 생길 수 있잖아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 때에는 의도적으로 극을 자꾸 구성하고 창작하려고 하잖아요. <경주>는 그런 의도 자체가 없이 경험에서 나온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순수성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금연 중인 박해일이 담배를 안 피고 냄새를 맡잖아요. 이것이 금욕이나 억압 이렇게 해석을 할 수 있겠죠. 그러나 흡연자가 담배를 못 필 때 그런 행동을 자주 하거든요. 낫또도 그렇고. 관광 안내서를 갔는데 안내원이 중국말을 하니까 순간 당황한 거죠. 한국말을 해야 하나 중국말로 해야 하는지, 모든 장면들이 사적경험에서 비롯돼요. 그걸 이미지로 만들어서 담았는데 수용자 입장에서는 감독의 자의식과 주제의식이 섞이면서 그런 의도와 상징으로 보인다는 거죠.

 

정재형: 그런 면에서는 그런데, 그게 바로 소주제죠. 그것이 지식인의 위선이죠.

지식인들이 위선적인 태도를 보일 때 한국말을 안 하고 중국말을 할 수 있거든요. 순간적으로 지식인의 행동이 나타나는 거죠. 위선의식인데 왜 그러냐, 교수나 학자나 동북아 전문가를 포함해서 자기의 성정체성하고 관련이 있어요. 중요한 자신의 개인적인 얘기거든요.    그것의 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의 여러 가지 일상의 모습들을 통해서 허상의 박해일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죠.

주제와 연관해서 볼 수 있는 외국영화가 떠오르는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의 <블로우업>이라는 영화고, 하나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에요. 과거의 악령을 그리죠.

과거라는 것이 무엇인가가 나중에 밝혀지잖아요. 마지막에 경악스럽게 끝나거든요. 공포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끝나는 거죠.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라는 것은, <샤이닝>에서 제시된 것처럼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만나게 되요. 인디언 학살 터에다가 지은 호텔이 악령의 저주를 받아서 잭 니콜슨이 미쳤었고, 과거에 있었던 사진을 보여주면서 경악스럽게 끝내요.

<경주>에서 마치 잭 니콜슨의 신비로운 얼굴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신민아죠. 신민아는 과거에는 그 곳에 없었는데 똑같은 신민아가 등장을 하죠. 그런 모습이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들면서 놀라운 과거의 내면, 사실은 박해일의 내면인 거죠. 인디언 학살을 이야기하는 샤이닝처럼 거창한 역사의 내면을 이야기 하는 영화는 아니죠. 오히려 거대 담론을 비웃으면서 한 개인의 정체성의 문제를 이야기하죠. 역시 장률 감독의 개인적인 주제이기도 하고요.   감독이 한국인이면서 중국인인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죠. 보편적인 현대인의 소외된 개인의식에 맞춘 얘기죠. 오히려 역사의식을 부정하는 영화죠. 그런데 재미있는 게 무엇이냐면, 이 영화는 카메라가 의도적으로 관객을 흡인하는 스타일을 구성해요.

안토니오니의 <블로우업>은 <경주>랑 쌍둥이 같은 영화예요. 잃어버린 춘화를 찾아가지만 안토니오니는 우연히 포착된 사진 속 살인의 의도를 찾아가는 건데 결국은 발견하지 못하죠. 결국은 현실에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요.

<경주>로 예를 들면 분명히 박해일이 할아버지가 있는 점집에 갔는데 할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거죠. 이 영화는 환상구조 속에서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고 있는 거거든요. 관객을 의도적으로 계속 헷갈리게 만들고 있어요. 그것을 주요하게 헷갈리게 만드는 게 카메라거든요. 이수향 씨가 얘기했지만 계속 끊임없이 박해일을 쫓아가게 한다던지, 천둥소리, 물결, 굉장히 주관적인 카메라 워크를 쓰죠.

카메라가 지정하는 서사거든요 실제 서사가 아니고 카메라가 관객을 인식하게 만드는 강압적인 서사기법이죠. 안토니오니의 <블로우업>에서 사용했던 바로 그 기법이죠. 주인공이 판토마임으로 테니스를 치는데 공은 없죠. 그런데 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우러 가요. 그 이후에 테니스공을 치는 소리가 프레임 밖에서 들리거든요 그 전에 어떤 커트가 있냐면 공이 굴러가는 것을 카메라가 따라가서 보여줘요. 주관적으로 공이 굴러가는 것 같은 커트가 장률 영화에 그대로 나오거든요. 장률감독이 보고서 모방한 것처럼 똑같이 나와요. 그러면서 관객을 끊임없이 환상의 구조 속으로, 계속 박해일의 환상 속으로 몰아넣는 기법을 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박해일의 허위의식, 환상에 대한 바탕, 몽환적인 구조 속에서 마지막 역사적 현장인데, 마치 흑백처럼 보였어요.          

 

박태식:  복장이 달랐어요. 단색으로.      

 

 

 

정재형:  모노톤 비슷한 톤이었어요. 마지막에 제 7의 봉인을 여는 거죠. 관객들이 추리해 왔고 환상 속에 놓여 있던 박해일의 입장이 확연하게 열려버리는 마지막 결말로 가죠. 그래서 저는 이 영화의 카메라 워크의 스타일이 독특하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영화는, 대면하는 장면, 투샷이 많아요.

일상적인 샷이긴 하지만, 이쪽에 차를 따라주는 사람이 있고 손님이 받으니까 당연히 일대 일의 투샷으로 나올 수 있지만, 저는 그것이 신민아와 박해일의 관계성을 끊임없이 암시하는 것이라고 봐요. 박해일이 했던 행동을 신민아가 따라하고 계속 서로 닮은꼴처럼 가면서 마지막에는 뭔가 두 개의 양분화 된 구도가 깨져버리고 합일 된 거로 나가는데, 두 개의 대립된 어떤 것들, 분명히 이 영화에는 이와 일이라는 숫자가 있어요. 그것이 구도로서 나타난다 그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윤성은: 이 영화를 보고 <샤이닝>과 안토니오니의 <블로우업>을 떠올리셨다니까 저는 정말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일동 웃음) 저도 안토니오니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뒷부분을 학생들한테 즐겨 보여주는 장면 중에 하나거든요. 저는 어쨌든 이 영화에서, 일반적인 상업영화 테두리에서 안 좋은 영화들처럼 안 좋다는 것은 아니에요.

느림의 미학, 지루함에 대해서 비판을 하다보니까 그랬는데 좋았던 부분들을 말씀드리면, 이미지가 강력하게 보이는 부분이 능에서의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신민아의 캐릭터가 여신적인 존재이지 에로틱하고 에로스적인 존재로서의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능과 함께 있었을 때 그녀가 그래도 여성으로서 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눕는 장면이 나오고 무덤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을 때 죽음과 결부되는 그런 부분까지도 보이죠. 능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처음에는 여성의 가슴처럼 느껴졌고 나중에는 여자의 곡선, 여성의 몸을 상징하는 그런 이미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두 사람이 결국에, 홍상수 영화랑 다른 점이죠. 이 여자가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섹스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것이 일차원적인 거죠.

두 사람이 뭔가 공통점을 통해서 정신적인 교감, 섹스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신적인 교감이 얼마만큼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신민아가 남편의 이야기를 해요. 정체성과 외로움에 관한 그런 문제들이 두 사람 사이에 이어지는 그런 교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맨 마지막에 춘화에서 나오는, 앞서 말했듯 실타래가 풀어지고 모든 게 해결되는 그런 장면이라고 많이 지적을 하셨는데요. 저는 그래서 그 장면 보다는 없는 물소리가 들리는 그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춘화가 나오는 장면, 후반부 5분에서의 마지막이, 앞의 115분을 고통스러워하면서 봐야하는 이유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이제 마지막에 들리지 않는 사운드 그 소리를 넣는 부분, 그리고 그 전에 이미 아내가 노래를 불러주잖아요 저는 그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제가 중국어를 몰라서 그러는데 노래의 가사가 나오지 않잖아요.

 

박태식:  가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지.

 

윤성은: 어쨌든 젤 좋아하는 노래라고 하면서 불러주는데 처음에는 이어폰을 꽂고 듣다가 나중에는 박해일이 걸어가는 장면에서까지 그 사운드가 나오거든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 실 체가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어떤 주인공에 관한 것이 안토니오니 영화에서는 그런 식으로 보여져요. <경주>에서 장률감독은 정신적 세계에 대한 그런 부분들, 수많은 이미지로 2시간 넘게 보여주었지만 사실은 자기가 이야기 하고 싶은 형이상학적인 그런 세계관이 드러나는 거죠.

 

정재형: 메인은 그것이 아니지만 성정체성에 대한, 죽은 선배와의 동성애적인 관계 그런 것을 충분히 암시를 한다고 보지만 그것이 주제로 나타난 거는 아니죠. 주인공이 굉장히 외로움을 느끼고 부여하는 원인이 무엇일까 하는 거죠. 아내가 노래를 불러주고 신민아와 같이 동숙을 하지만 섹스를 하지 않아요. 변태도 아니고 치한도 아니고, 소위 말해 이성애주의자로서의 상식을 벗어나죠.

안토니오니 영화와 굉장히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면 평범해 보이고, 학자로 보이고, 그럴 듯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허상이거든요.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결혼했지만 안착하지 못하고 있고, 자기의 어떤 대상은 죽었고, 선배죠. 박해일은 어디에 안착을 해야할 것인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죠. 자신이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7년 전의 춘화 속으로 들어가서 자기의 심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그래서 다시 살아가는 어떤 힘을 얻는, 그거 외에는 완전히 떠있는 인물인거죠. 겉으로 보이는 것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것은 허상이라는 주제가 이 영화에 있어요.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보편적인 주제로 발전해요. 그래서 성정체성의 문제를 그린 영화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중요한 지점이죠. 이 영화를 읽는. 결국 더 큰 주제로 승화되는 것은 결국은 경계인인 장률 감독, 그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부유하는 경계인적인 사람이 사는, 허상과 실상의 대비를 주제로 나타내려고 한 것이죠.

시각적으로 이런 게 가장 단적으로 느껴져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무엇이냐면 그림자가 반영이 되는 모습, 물소리가 겹쳐지면서 그런 영상 기법들이, 박해일의 그림자가 호수에 비치면서 그의 부유하는, 실존으로서의 이미지를, 현상적인 이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거라고 확 와 닿더라고요. 속빈 강정 이런 것처럼 정치성이 비어서 부유하는 존재라는 걸 잘 나타낸 영화로 보여요.

 

박태식: 지금 얘기를 듣다보니까 영화를 보면서 계속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는 부분이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날 깨우는 소리가 있었어요. “핸드폰 받아야지!”, “남자가 여자 울리면 안 돼.” 감독이 그런 걸 의도적으로 넣었다면 정신 놓고 보다가 한번 깨워주는 재치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나중에 신민아가 문을 열어놓고 들어가지 않나요?

 

이대연: 너무 쪼금 열었어요.

 

(일동 웃음)

 

정재형: 그게 사실 성적인 암시를 한 건데, 박해일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게 이 영화가 제시하는 굉장히 중요한 박해일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박태식:             거기서 촛불을 끈다니까. 자기 욕망을…….

 

정재형: 재밌는 장면이죠. 전 되게 섬세한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장률 감독 영화가 단지 관객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메타포가 너무 많다라는 것, 또 굉장히 길고-그렇기 때문에 뭔가 알 듯 말 듯 하면서 가기 때문에 사실 한 번 봤을 때 쉽게 조합되지 않는 난점도 있지만 전 굉장히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어떤 점에서 그러냐, 홍상수 영화와 이 영화가 여러 가지 수법적인 스타일 면에서는 약간 비슷하다라고 느끼는 걸 참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영화와는 아주 확연히 다른  그런 주제의식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홍상수 영화보다 훨씬 주제의 깊이가 넓다고 봅니다. 그게 바로 경계인으로서의 사실, 구가 간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사는 장률 감독의 갖고 있는 포지션이에요. 홍상수 감독은 고이장히 개인사적인 현대인의 모럴의식, 도덕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잇다면, 장률 감독은 훨씬 스케일이 커요. 그래서 이 영화 자체가 어떤 영사의식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전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제가 마지막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한국인의 내부의 시선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시선을 갖고 있는영화다. 전 이 영화를 그렇게 평가하고 싶어요. 홍상수는 내부인의 시선, 한국인의 내부의 시선을 상당히 잘 드러낸다고 봐요-허위의식 같은 것들. 그런데 이 영화는 감독의 출신과 배경이 흠뻑 묻어나기 때문에-장률 감독의 일관된 것인데ㅔ 그래서 그런지-기묘한 작품이 나타나는 거예요. 분명히 한국인이 등장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를 상당히 낯설게 묘사하면서 내부인이 시선이 아닌 외부인이 시선을 바라보는 한국인을 등장시킨다는 거죠. 박해일이 그런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에 가치가 상당히 있고, 다른 감독이 만들 수 없는 상당히 좋은 미덕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그런 생각을 합니다.

 

박태식: 전 거기에 대해서-좀 길다.(일동 웃음)

 

이대연: (장률 감독이) 한국말을 굉장히 잘하는데, 배우들하고 얘기할 때는 일부러 못하는 척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일부러 발음을 어눌하게 하고 잘 못 알아듣는 척 하고……. 그게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런 얘기를 좀…….

 

정재형: 경계인이니까. 아무래도 한국 사람보다는 못하겠죠.

 

박태식:그런데 감독들에 따라서는 일부러 배우들이 좀 스티뮬레이션이 가 되게, 감독이 일부러 자기 표현을 자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윤성은: 그런데, 키 큰 사람이 더 멀리 볼 수 있는 것처럼 나가 본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스케일이 더 커지는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웃음)

 

이대연: 그런데 경찰인 영민이 나중에 찾아와서 갑자기 여권 얘기가 나오잖아요

 

박태식:(배우 이름이) 김태훈이야. 김태훈.

 

이대연:그것도 정체성과 관계가 있는 어떤 그런 문제인가요, 어떤가요? 뜬금없이 여권을 가지고 오라더니 보고나서는 ‘미안합니다’ 하고 이렇게 나가잖아요.

 

민병선: 형사니까 신분조회를 하잖아요. 신분조회를 해야 그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직업적 특성이 있어서 북경에서, 중국에서 왔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 말만 들은 거고 그러니까 여권이 있을거 아니예요.

 

정재형: 그건 그 사람의, 일종의 질투 내지는 어떤 복수심을-뭔가 한 대 쳐주고 싶은데 자기가 갖고 있는 직업적인 도구를 활용해서 혹시라도 걸렸으면 크게 한 방 할 수 있는데, 그냥 안 걸렸으니까 그런건데, 그런 자기의 어떤 위세를 보여주는 장면 아닐까요.

 

박태식: 신민아가 자기를 떼내 보려고 갖은 방법을 다 쓰잖아. 난 이리로 갔는데 너도 이리로 가니...

 

이대연: 저는 자살용의자라는 말이 인상 깊었는데..

 

윤성은: (웃음) 그 장면 하나 웃겼던 거 같아요

 

 

 

이대연: 근데 처음엔 웃었는데 집에 가는 버스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저는 정확한 뒤가 잘 기억도 안나고 그것만 기억이 나더라고요. 도대체 자살용의자는 누굴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다 자살이잖아요. 창희도 자살이고, 모녀도 자살이고. 그러니까 저는 모녀가 처음부터 상당히 불안했는데, 애기는 무척 귀여운데 엄마는 웬지 유령 같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박해일 그림자하고 약간 비슷한 느낌이 나더라고요. 끝 부분인가요? 박해일 혼자. 검게 그림자가 지는데, 그것도 유령같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도 여자(엄마)하고 비슷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신민아의 남편도 자살을 했다고 그러고. 그래가지고 그냥 죽는게 아니라 사람을 스스로 죽게 만드는 어떤 요인을 자살용의자라고 한 건 아닐까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게…… 고독인가? 그런 생각도 들고……

 

정재형: 저는 사실 그게 이 영화의 반복 되는 것 중 하나의 모티프인데요. 사실 이 영화에 계속 반복적으로 자살 모티프가 나오거든요,  창희형도 자살 했다 안했다-자살 모티프가 뭐냐면 자살을 확실히 했다는 게 아니예요. 자살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심지어는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애들 죽은 것도 환상 장면으로 읽히는데, 그것이 어떤 죽음인지 알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각각의 모티프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사실은 할아버지가 진짜 있었는지 없었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분명히 눈에 보이는, 박해일의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은 분명히 ‘있다’라고 믿는 순간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드러낸다는 거죠. 그러니까 모녀가 자살 했는지 알수 없어요. 그렇지만 자살했다고 얘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자살용의자가 있을 수 있는 거죠. 자살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타살로 밝혀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에 모든 떠도는 소문이나 모든 직접 목격하지 않은, 전해 들은 어떤 이야기들은 진위를 알 수 없는 거죠. 결국 그건 규명을 해야 하는 어떤 사실이죠. 그런데 지금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박해일의 주변에서 계속 끊임없이 자살 모티프를 생각하고 연관짓게 만든다는 그 의도성인 거예요. 그냥 박해일의 현실과 자살, 우리 세상에서 말해주는 자살과의 거리가 분명히 있는데, 왜 박해일과 자꾸 연관을 짓느냐는 감독의 의도죠. 그런데 그것은 이런 질문도 받죠. 꼬마애가 무슨 질문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난처한 질문들-아내를 의심해 본적이 있느냐라든지 등등의 그런 질문을 박해일이 받잖아요. 그것이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굉장히 섬뜩섬뜩한 질문들이잖아요. 제가 봤을 때는 그게 자살모티프하고도 같이 가요.  계속 반복되는 그 대사들과 처음에 창희형도 그래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창희형의) 아내가 굳이 와가지고 말한단 말이죠. 자살이냐 타살이냐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을. 그래서 자살이다, 타살이다를 계속 추측하게 만들죠. 그러면서 계속 반복이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게 어떤 박해일이 겪는, 눈에 보이는 현실과 내면에 숨겨진 진실-그것은 자기 성적 정체성과 관련 있는 거죠. 자기는 겉으로 보면 이성애주의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게이인 거예요. 그래서 자기도 자기의 성 정체성을 몰랐던 거죠. 그런데 형이 죽ㄹ고 나서, 형이 죽었지만 그 전부터 자기가 중국에 살면서 계속 느꼈겠죠. 그리고 형이 죽자마자 본격적으로 굉장한 혼란을 경험했는지 모르죠, 개인적으로. 그러니까 과거의 그 시점으로 자기가 확인하러 가는지 모르죠. 그래서 갔는데 알고보니까 바로 박해일의 머릿속에서 펼쳐진 그림이, 그게 박해일 머릿속에서 펼쳐진 건지 감독의 시선으로 우리에게 보여진 건지 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 때 분명히 알게 된 것은, 자기의 어떤 성정체성이죠. 어떻게 보면, 그래서 자기가 창희형이라는…… 그리고 창희형도 역추산해보면, 창희형은 왜 죽었을까요. 창희형도 박해일같이 똑같이 외로워서 죽었을 수도 있죠. 알수 없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이제 좀 해석을 많이 하게 하죠

 

윤성은: 창희의 와이프야말로 자살용의자처럼 그려진 것 같네요. 자살용의자라는 용어를 쓰자면. 그런데 거의 끝나가니까 조금 컨텍스트적인 얘기를 하자면 제가 이 영화가 이렇게 느린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이유는 이 영화에 진짜 신민아와 박해일이 나온다는 거예요, 사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떻게 보면 어떤 정말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죽 늘어 놓으면서. 물론 거기에 의미가 있지만 어쨌든 그런 영화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그 박해일과 신민아가 들어감으로 해서 대중들에게 이 영화가 대중적인 영화일 수 있다-최소한 홍상수 정도 영화 정도의 영화가 아닐까라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고, 그리고 제가 제일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제가 듣기로 이 영화가 굉장히 크게 프로모션을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예산 영화. 이 영화의 버짓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한 이유는 바로 그런 부분인데, 어쨌든 이 영화가 처음에 시사회를 할 때, 제가 듣기로 그 날 시사회 보고 오신 평론가 분 말에 의하면 그 날 7개 관을 잡아서 시사회를 했다고 그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이 영화를 보니까 너무 이건 좀…… 뭔가 이상하다. 이런 생각이 좀 든 거죠.

 

박태식: 상이하게 느낄 수 있고..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이대연: 그런데 신민아는 예쁘게, 다소곳하게 차를 다리기에는 너무 섹시하지 않나요?

 

윤성은: 어? 섹시해요? 신민아가?

 

이대연: 너무 도회적인 느낌이 강해가지고…….

 

윤성은: 도회적은 있죠...

 

이대연: 차를 따를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

 

이수향: CF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렇지.

 

이대연: 커피를 이렇게 따라 마실 것 같은 느낌이...

 

이수향: 저 정도의 분위기와 저 정도의 외모를 가진 여자가 저런 깊은 수풀이 있는 이런 음침한 찻집에서 혼자 그렇게 살고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이대연: 스무 살이나 스물 두 살에 서울에 올라왔어야 하는, 이런 느낌인 거예요.

 

윤성은: 저는 그것보다는. 그런 이미지 보다는 그 여자의 입에서 남편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너무 황당했어요, 사실. 그 전까지 보여졌던 이미지는 도저히 이 여자가 결혼했을 것 같은 여자가 아닌, 그런 이미지가…….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죽었다니…….

 

박태식: 차 따르고, 대접하고 하는게 롱테이크였잖아요.. 그거 여러 번 NG 났을 거 같아. 차 가지고 들어와서 따르고, 붓고,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하고 가는 것까지 여러 번 NG가 났겠다 싶더라고. 보니까 그게 어색한 느낌도 좀 들고. 걸음걸이 하나까지 아마 감독이 주문하지 않았겠어요? 너 이렇게 걸어라. 고생좀 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수향: 신민아가 하는 역할이 너무 평면적으로 느껴졌던 느낌은 그런 것 때문에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이렇게 정숙하게 차 따르는 이미지만 너무 강조되고 개인이 영화 연기적으로 펼칠만한 그런 장면이 없었던 것 같아요, 박해일보다 더.

 

박태식: 박해일은 나오는 데 마다 수염을 기르는데 왜 수염을 기르고 다니지? 옛날엔 수염 안 기르지 않았나?

 

이수향: 너무 어려보여서..?

 

박태식: 혹시 알아요? 물어봤어? 언젠가부터 꼭 수염을 기르고 나오더라고. 영화 속에서. 옛날 초기에는 수염같은 거 안 길렀는데. 여하튼 얘기가 많이 진행되었고, 시간도 지나가고 하니, <경주>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영화로 넘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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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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