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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비평의 활성화와 전문비평의 심화로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비평 세미나 : 제1-제2 주제 토론문


저널리즘비평의 활성화와 전문비평의 심화로 사이비 밀어내자

 

정  중 헌 (영화평론가,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김종원 선생님은 한국 영화비평 50년 역사의 산 증인이십니다. 영화 평론가로서 그리고 영화사 연구가로 주목할 만한 논문을 발표했던 김 선생께서 우리 영화비평의 역사를 1925년까지 넓혀주는 실증적 사례를 밝혀주신 점은 이번 영평 세미나의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재의 한국영화평론가협회의 발족을, 1965년의 재결성이 아닌 1960년 7월6일의 초(初)결성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합니다. 창립 멤버인 김종원, 김정옥 선생님이 생존하신 지금 영평의 역사를 바로세우는 것이 우리 회원들의 의무가 아닐까 합니다.
  김종원 선생님이 광복 후 한국영화평론 반세기 역사와 영평상, 영평지의 탄생 및 발자취를 소상하게 증언해 주셨다면, 달시 파켓 씨는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한국 영화평론의 위상을 조명하며 평론의 역할이 글 이상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갈파해 주셨다고 봅니다. 다만 김종원 선생께서는, 짧은 원고에 한국 영화평론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기술하려다 보니, 영화평론이 한국 영화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생략하셨는데.. 필자는 김종원 선생이야말로 시대의 파수꾼으로서 비평의 역할을 수행하여 비평의 힘과 정신을 보여주신 분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사 연구가들은 1970년대 한국영화계를 위기였다고 진단합니다.
   필자는 「1970년대 한국영화사 연구」라는 논문에서 1970년대 한국영화사를 암흑기, 쇠퇴기라고 규정한 기존의 연구들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70년대 TV시대의 본격 개막과 유신체제의 과도한 통제와 검열 속에서 한국영화 전반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으나, 그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상업영화가 1천편 가까이 제작되었고 그중에는 선배 평론가 이영일의 평가처럼 “은유적 저항과 청신한 감각”의 작품이 나왔습니다. 특히 유신체제의 엄격한 통제 하에서 소재와 표현을 극도로 제약받아 한국영화가 안일에 빠지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소속 평론가들은 ‘작가정신의 부재’를 먼저 탓하면서 독과점 특혜를 누리던 제작자들의 의식과 제작 풍토를 신랄하게 비평하여 한국영화를 수렁에서 건져내려는 시대정신을 보여 주었습니다. 당시 저널들이 한국영화의 침체 요인을 정책 탓이라 성토할 때 영평의 평론가들은 ‘작가정신의 부재’와 ‘제작자들의 의식 부재’를 동시에 비판했습니다.
   당시 활동했던 이영일, 하길종, 김종원을 비롯해 시나리오작가 신봉승, 감독 유현목 등은 한국영화 침체 원인이 당국의 정책이나 시책보다 영화인 개개인의 의식 부족, 창의력 빈곤 등 작가정신의 부재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영일은 작가정신의 위축과 영화제작의 안이한 자세를 지적하며 침체 요인이 유신정권의 극단적 통제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영화인들에게도 책임의 일단이 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하길종은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한국영화의 적(敵)은, 돈도 시간도 텔레비전도 아닌 바로 당신의 비어있는 머리와 모자라는 재주”라고 공박했습니다. 김종원은 1978년 제10회 영평 심포지엄에서 ‘작가냐 기능공이냐’는 주제로 현실과 타협하는 영화작가(감독과 시나리오작가)들의 단절된 예술성을 비판하며 “전주(錢主)는 있어도 영화에 애정과 안목을 가진 참된 제작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영일 김종원 등 유신체제기에 활동했던 대다수 평론가들은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 김호선의 <겨울여자>,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을 텍스트로 분석해 ‘은유적 저항’을 읽어냈으며 각종 매체를 통해 ‘청신한 감각’을 널리 부각시켰습니다. 평론가 변인식 등이 주축이 되어 ‘영상시대’라는 젊은 영화운동을 일으킨 점도 당대 평론가의 역할을 짚어주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장르건 평론가는 시대를 리드하거나 시대의 사조를 종합 정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볼 때, 1970년대 평론가들은 영화평론의 본질적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까지만 해도 활자매체의 저널리즘 영화비평이 활기를 띠었습니다. 매체 수도 많지 않은 데다 신문의 열독율이 높을 때여서, 평론가나 기자가 쓰는 영화평은 관객들에게 영화를 볼지 말지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고 평론가 특유의 글맛을 제공해 주기도 하면서 평론의 지평을 넓혔고 독자들과 교감했다고 봅니다. 조선일보에 게재된 정영일의 영화평은 촌철살인의 위트와 유머가 넘쳤고, 아닌 영화는 아니라고 하는 솔직대담성과 독특한 문체로 독자들의 높은 호응을 얻어냈습니다.

 

   그런데 달시 파켓 씨의 지적처럼 오늘날의 저널리즘 비평은 위력을 상실했습니다. 그 원인이 “종이 매체에 드러나는 전문적인 리뷰 숫자의 감소, 그리고 인터넷에서의 비공식적이고 비전문적인 영화리뷰의 확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탓을 인터넷에 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과 젊은 세대들은 활자매체보다 영상매체를 선호하고 있지만 우리 교육, 그중에도 인문학적 소양은 글쓰기와 읽기를 통해 배양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쇄 매체에 비평의 영역이 좁아드는 것은 저널리즘비평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맛깔스런 글쓰기로 독자를 사로잡는 평론가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이매체에 실린 좋은 평들은 인터넷 매체로 확산되는 만큼 인터넷의 비공식적이고 비전문적인 영화평 정도는 압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날처럼 TV의 영화소개 프로그램이 예고편 이상의 무절제한 편집으로 남발되어 관객의 기대나 감상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시대일수록, 그리고 인터넷의 다분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단평들을 쏟아낼 때일수록 제대로 된 활자 비평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매체의 영화담당자들은 언제부터인가 독자의 이해를 돕는 객관적 정보도 아니고 저널리즘 비평도 아닌 자기도취적 리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듭니다. 분명 영화를 보고 쓰는 리뷰일 텐데도 홍보물을 대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있는가 하면, 영화를 보아야 할지 말지에 대한 판단도 서지 않습니다. 모처럼 호평한 기사를 읽고 극장에 가서 실망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필자도 달시 파켓 씨가 적시한대로 ‘독자들은 하나의 작품에 대해 더 깊은 통찰을 얻거나 다른 의견을 듣기 위해서, 그들이 이미 본 영화에 대한 또는 볼 생각이 없는 영화들에 대한 리뷰를 읽는 것이 유용하며 흥미롭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또한 영화비평과 영화만들기 사이에는 더 폭넓은 유대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현재 단체로서의 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이 같은 영화계 또는 인접예술계와의 유대관계, 다시 말해 네트워크 기능이 매우 약하다고 봅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영평상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영화인들 외에 영화계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을 볼 때마다, 영화평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갖게 됩니다. 필자가 회장을 맡았을 때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 영화인협회 김지미 이사장 등이 스폰서가 되어 줌으로써 영화계와의 소통로가 트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평론가와 영화계가 따로 도는 느낌입니다. 영화인들이 평론을 무시하는 풍토도 문제지만 그들에게 영향을 줄만한 평론을 써내지 못하는 평론가들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영화 제작 전반과 질 향상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평론, 사회에 아무 메시지도 전하지 못하는 비평은 영화계에 무의미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평론이 고립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천만관객 시대를 열었지만 비평의 위상은 위축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을 외부 환경에서만 찾을게 아니라 비평가 내부에서 찾아야 할 때입니다. 비평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재검토해보고 비평의 정도(正道)를 찾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평의 정도란 팀 바이워터, 토마스 소브체크가 <필름비평 개론>에서 설파한 비평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비평이란 질서를 잡고, 관계를 규명하고, 영화 감상을 보다 의미 있고 감동적이고 이해하기 쉽고 더 피부에 와 닿게 하는 요소들을 밝혀내는 일련의 작업이다.’
   비평의 풍토를 활성화시키려면, 활자매체나 영상매체나 대중들과 소통하기 쉬운 저널리즘 비평부터 살려야 합니다. 언론학적 접근이야말로 대중관객을 위한 가장 기초적 비평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작가비평 • 장르비평이 이어져야 하며, 전문지나 학술지를 통해 영화를 사회과학적 접근, 역사적 접근, 이념적/이론적 접근하는 비평으로 깊이를 더해야 영화의 여러 경로 속에서 비평의 존재이유가 성립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대중들은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바른 안내자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 역할을 평론가가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전문 지식과 날카로운 눈과 비평 정신, 그리고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독창적 글쓰기 역량을 배양해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집필한 저작권자에게 있으며 복제 및 무단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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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정중헌

등록일201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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