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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에겐 영화 만들기가 그리스도 수난에 못지 않아! - 정민아

정민아(영화평론가)

오십 대 중견 영화감독 지아니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간다. 벌써 5년째 영화를 못 만들고 있고, 별 의욕도 안 생긴다. 과거에는 걸작도 만들어 존경도 받았건만 그건 오래 전 이야기. 보다 못한 그의 제작자는 TV 드라마로 유명해진, 영화 경력이 전혀 없는 젊은 여자 탤런트를 캐스팅하고, 그 영화의 연출을 지아니에게 맡긴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단 3일 안에 아이디어를 구상해 올 것. 귀하디 귀한 기회를 얻었으나 아무리 쥐어짜도 그녀를 위한 역할은 떠오르지 않는다. 어째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이야기를 만들 수 없는 결정적 이유도 동시에 떠오른다. 콧대 높은 신출내기 여배우는 상상 속에서도 감독을 비아냥거리기 일쑤다.

그러나 이건 약과. 더 큰 불행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토스카나에 위치한 그의 별장에서 수도관이 새어, 집 옆의 성당 벽에 그려진 16세기 프레스코화가 망가져 버린 것이다. 그가 문화재 훼손에 대한 처벌을 면하고자 한다면, 토스카나 시장이 제안하는 황당한 안을 받아들일밖에 도리가 없다. 바로 부활절 전, 성 금요일 행사를 총연출해야 한다는 것.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 울며 겨자 먹기로 지아니는 토스카나 시골 마을에서 귀한 한 주를 고스란히 보내기로 결단한다.

동시에 두 개의 큰 일을 해내야 하는 감독은, 난관을 함께 할 조력자들을 구한다. 감독이 새 영화를 준비할 동안 그리스도 수난극을 책임져줄 야심만만한 조연출자 라미로, 보기만 해도 창조적 영감이 떠오르게 해주는 아름다운 폴란드 출신 바리스타 카테리나, 무슨 일이나 다 하고야 말리라는 깡마른 펑크 소년. 그리고 예수 역할에는 평소엔 기상예보관으로 TV에 얼굴을 드러내던 비극 전문 배우이다.

열두 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 예수의 십자가에 못박힘의 수난 이라는 이 성스러운 이야기의 재연을 해낼 배우들은 시골 극단 아마추어들이다. 늘 이야기는 엎친 데 덮치며 꼬여가고, 하나를 해결하는가 하면 또 다른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 서사의 중심에 자리한, 카를로 마자쿠라티 감독의 분신 같은 주인공(각본을 마자쿠라티 감독이 썼다)은 창조적 일에 종사하는 정신 노동자의 고통을 허망한 표정으로 잘도 표현해낸다. 그런데, 그가 그다지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비극을 희석시키는 엉뚱한 유머들 때문이다. 토스카나로 향하는 운전 길에 갑자기 소란스런 스웨덴 히피 커플이 차 뒷자리에 앉아있고, 모바일 폰의 전파를 잡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줄을 서 옥상에 올라가고, 모텔 주인은 유명감독과 사건을 한번 치르고 싶어 안달이다.

감독의 수난의 클라이맥스는 배우로부터 온다. 신인 여배우에게 일을 못한 이유를 둘러대기 위해 다리에 깁스를 하고 절뚝거려봤자 돌아오는 건 경멸뿐이고, 연기 못한다고 쫓아낸 기상예보관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 그는 무릎 꿇고 애원해야 한다. 그래 봤자 배우 예수님은 거대한 진짜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지고 가다 뼈가 부러지고, 대신 투입한 배우는 다이어트가 당장 필요한 뚱뚱한 아마추어.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할 때다.

그리고 영화는 그 전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한 편의 프레스코화를 본뜬 듯한 초현실적 장면으로 전환된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며 시작되는 그리스도 수난극은 감독에게는 일생일대의 걸작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진정 삶이 다가오고, 진정한 삶은 한 편의 아름다운 연극으로 되살아난다.

한 고뇌에 쌓인 감독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한 편의 소동극인 이 영화는 매우 자기반영적이다. 세련되지는 않은 스타일이지만 소탈한 유머와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아무리 유명한 감독이라도 창조의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다. 제작자와 배우와 관료들로부터 수난을 당해도, 진심을 담은 예술품 앞에서 즐거워하는 관객이 있는 한, 그는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다. 이 영화는 창작 활동에 종사하는 모든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바치는 한 편의 행복한 선물이다. 그대여, 좌절하지 말 것. 고통은 예술로 피어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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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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