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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블럭버스터: <인셉션>

 사유하는 블록버스터 <인셉션>

 

물살이 잘게 부셔지는 해변, 한 남자가 쓰러져있다. 귓가를 맴도는 파도소리, 환영처럼 자신의 아이들이 보인다. 남자의 이름은 돔 코브(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 꿈속에 갇힌 남자다. 근 미래, 드림머신이라는 장치로 타인의 생각을 훔칠 수 있는 세상. 코브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훔치기 위해 꿈속으로 침투한다. 그러나 꿈속의 꿈인 ‘림보’에 갇혀버린다. 작은 팽이와 한 자루의 총을 가진 코브는 80대 노인인 사이토(와타나베 켄)를 만난다. 사이토는 코브의 팽이를 보며 파편화된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인셉션>(2010)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상처로 얼룩진 인간 내면의 마음속을 투사하는 영화다. 일관되게 ‘기억’의 문제를 파고드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하 놀런 감독)은 <메멘토>(2001)로 작가주의 감독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다. 전직 보험수사관 레너드(가이 피어스)는 아내가 살해당한 날 기억을 잃어버린다. 레너드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는 것과 범인이 ‘존G’라는 사실뿐이다. 레너드는 메모와 폴라로이드 카메라, 문신을 이용해 기억을 더듬어나간다. 그런데 레너드는 자신의 기억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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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런 감독은 <메멘토>와 <미행>, <인셉션>을 통해 일관되게 기억은 왜곡되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고 말한다. 단지 해석될 뿐이라고. 파편화된 기억의 퍼즐을 맞추려는 듯 이야기는 시간의 순서로 흐르지 않는다. <메멘토>와 <미행>이 분절화 된 시간의 역순으로 퍼즐을  맞춘다면, <인셉션>은 꿈과 현실의 경계선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의식의 영역을 확장한다. 기억은 미로 속을 헤매는 것처럼 이야기 속에 배치된다. 그런 면에서 <인셉션>은 주인공의 내적갈등을 수동적으로 보여준 <메멘토>보다 한층 진화한다. 누군가에 의해 기억을 조작당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기억을 능동적으로 조작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작품세계

1970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한 놀런 감독은 다음과 같은 영화적 특징을 보인다. 느와르 장르에 추리적 기법의 스릴러를 결합한 후 주인공의 내적 불안과 고뇌, 인간의 양면성을 담아낸다. 데뷔작인 <미행>(1998)에서도 영국식 추리소설 같은 미스터리 플롯을 사용한다. 초보 작가 빌(제레미 데오빌드)은 삶의 무료함과 지겨움을 전환시키기 위해 거리에서 무작정 미행을 한다. 우연히 자신이 미행하던 신사복 차림의 콥(알렉스 휴)에게 들켜버린 빌. 그러나 콥은 은밀한 제안을 한다. 둘이 함께 2인조 도둑이 되어 주거침입을 하자는 것. 빌은 빈집에 몰래 들어가는 행동에 쾌감을 느낀다. 돈이 될만한 물건들을 훔치고, 집주인의 채취와 추억마저 공유하려고 한다. 빈집에서 주인행세를 하고 남은 와인으로 파티를 즐긴다. 빌과 콥은 쌍둥이처럼 닮아가고, 훔치는 일에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콥의 음모다. 콥은 자신과 유사한 외모를 가진 빌에게 범죄를 뒤집어씌운다. 콥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빌을 살인범으로 만든다. 빌은 자신이 콥이 된 채 모델 루시의 살인범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놀런 감독은 데뷔작에서 사실이 조작되거나 오인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놀런 식 사유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행>의 수익금으로 25일 만에 완성했다는 <메멘토>는 경이로울 따름이다. 놀런 감독은 70분 중편 <미행>에서 다하지 못한 얘기를 <메멘토>에서 본격적으로 풀어놓는다.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인식, 기억 속에 내재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비틀어, 과연 그것이 진실인지 되묻게 만든다. <메멘토>의 기억에 대한 조작은 <인셉션>의 출발점이 된다.

<메멘토>가 기억을 지우는 이야기(단기기억 상실증)가 주된 플롯이라면 <인셉션>은 기억을 새롭게 만드는 이야기가 메인플롯이다. 타자에 의해 기억을 조작당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기억을 만들어낸다. 내적불안과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놀런의 주인공들은 무의식의 영역 안으로 들어간다. 레너드와 코브는 아내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있다. 결핍된 욕망을 채워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한낱 꿈일 뿐이기 때문에 주인공의 불안은 증폭된다. 

<메멘토>의 레너드는 아내가 살해되기 전으로, <인셉션>은 단란했던 가족의 옛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인물들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과거로 역행할 수 없기에 내면의 상처로 남게 된다. 놀런 감독은 인물의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 담아낼 것인가 고민한다. 기억을 잃어버려 과거를 잊거나, 꿈을 통한 보상으로 원죄를 합리화하려는 의지를 보이지만 오히려 딜레마에 빠진다. 그것이 영화의 전체 맥락을 좌우하는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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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적으로 <메멘토>와 <인셉션>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의 원죄를 감추려고 한다. 보험조사원인 레너드는 고객인 새미 젠킨스(해리엇 샌섬 해리스)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거짓으로 기억상실증을 연기한다고 의심한다. 새미의 부인(칼럼 키스 레니)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새미는 아내에게 인슐린주사를 논 걸 기억하지 못한 채 15분마다 다시 주사를 놓는다. 새미는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만약 거짓연기라면 아내에게 주사를 15분마다 투약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부인의 증명(죽음)은 레너드에게 원죄를 심어놓게 된다. <인셉션>의 코브는 레너드의 무의식으로 보일만큼 닮아있다. <인셉션>의 돔 코브는 깨어날 수 없는 ‘림보’라는 무의식에서 아내랑 함께 살아간다. 비록 그것이 꿈일지라도 깨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무의식에 갇힌 아내 맬(마리온 코티아르)은 끊임없이 코브를 괴롭히게 된다. 놀런 감독이 창조한 인물들은 불안과 결핍, 그로인한 양면성을 띤다.

<다크나이트>(2008)에서는 선악의 대립구도 안에서 사유하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자신이 행하는 정의가 과연 선인지, 악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배트맨의 내면을 파고든다. 고담시티에서 악을 물리치는 것이 정의라고 믿지만 오히려 새로운 악을 낳는 모순이 된다. 배트맨 때문에 악으로 변모하는 투페이스(하비 덴트)의 등장이 그렇다. 선과 악은 투페이스가 던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 배트맨은 자신이 믿었던 정의에 의문을 제기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어둠의 기사가 된 배트맨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놀런 감독은 인간의 양면성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혼란을 그린다. 인생에는 어차피 답이 없다. 인류는 그 오랜 세월 낙태나 안락사, 사형제도, 전쟁 등등 그 무엇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따라 행할 뿐이다.

<메멘토>에서 레너드는,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죄의식을 ‘단기기억 상실증’으로 회피하려고 한다.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절망하기 때문이다.

 

사유하는 블록버스터 <인셉션>

 

놀런 감독은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상업영화 안에 자신의 작가주의 세계관을, <인셉션>에 등장하는 투사체들처럼 ‘투사’한다. 감독은 할리우드의 공식 같은 선악의 명확한 경계 아래, 역설적으로 선악이 불분명한 주인공의 내면을 파고든다. 선과 악이 혼재된 주인공을 통해 사유하는 블록버스터를 솜씨 좋게 만들어낸다. 

할리우드에서 감독의 전략은 영리해 보인다. 화려한 영상미를 첨가한 볼거리는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인셉션>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정형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액션을 구현하기 위해 선과 악의 대립구조를 활용한다. 화려한 총격전과 자동차 추격 장면을 서비스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그러나 감독이 진정 하고 싶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은, 심연처럼 그 안에 흐르는 ‘죄의식’이다. <인셉션>은 코브가 죽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만든, 꿈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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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브의 욕망은 결핍에서 온다. 결핍은 ‘가족’이다. 코브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꿈은 욕망을 드러내지만 절대로 그 안을 채울 수는 없다. 무의식의 표출은 은유와 환유를 통해 드러나게 되는데 <인셉션>의 꿈은 은유에 해당된다. (라캉은 은유를 압축이라고 했는데, 압축은 무의식에서 원하고자 하는 것이 응축되어서 꿈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코브는 은유(꿈)를 통해서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 욕망은 단란했던 가족의 옛 모습을 상징한다. 영화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꿈은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텅 빈 공간일 뿐이다. 따라서 꿈은 은유로서 채우려는 ‘결핍’이다. 결핍은 꿈의 형태로, 미로 속을 헤매게 된다. 코브가 미로를 설계하는 이유다. 감독은 탁월한 영상미로 꿈에서, 꿈의 꿈으로 이동하는 미로를 만들어낸다. 

돔 코브의 무의식은 엘리베이터를 통해 단계별로 구조화되는데 이는 ‘억압’에 해당된다. 억압속의 아내는 코브의 무의식에 영향을 준다. 억압은 은유를 통해 끊임없이 분출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그래서 아내 맬은 코브의 무의식 속에 불쑥불쑥 (칼을 들고 위협적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기억과 욕망으로 꿈을 설계해서는 안 되지만 아내와 함께 하고픈 코브는 금기의 영역을 넘는다. 그로인해 죄의식은 점점 깊어진다.         

‘림보’라는 무의식에 빠진 코브는, 텅 빈 미로 속에 갇힌 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코브가 그토록 그리던 아이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토템(팽이)은 멈추지 않고 계속 돌고 있을 것이다. 놀런 감독의 작품 속 인물들은 염세주의적 특징을 보인다. 기억을 상실하거나(<메멘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다크나이트>) 특징을 볼 때, 코브가 가족을 만나는 것은 분명 또 다른 꿈일 것이다. 욕망은 꿈을 통해 나오지만 어떤 꿈도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채워질 수 없다. 설계된 꿈속 세상은 결핍된 세상이다. 채울 수 없기에 끊임없이 흘러가는 텅 빈 미로일 뿐이다. 바로 꿈속의 꿈, 다중 꿈을 꾸면서 다가가려고 하는 코브의 욕망은, 결핍된 환유에 지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 행복한 가정의 품에 안긴 코브는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놀런 감독이 정신분석학적 소재를 가지고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흥미롭다.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니라 사유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통찰력이 돋보인다. 극장 문을 나서며 문득, 이런 궁금함이 든다. 지금 내가 딛고 서있는 이곳은 꿈속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만약 꿈이라면 영화 속 인물들처럼 킥(kick: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충격을 가하는 행위)을 날려보자.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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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민병선

등록일20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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