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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이브

더 브레이브

 

오랜만에 정통 서부극을 보았다. <더 브레이브>(True Grit, 에단 코헨/조엘 코헨 감독, 서부극, 미국, 2010년, 110분)라는 영화인데,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더 브레이브’가 헨리 헤서웨이 감독이 만든 <진정한 용기>(서부극, 미국, 1969년, 128분)의 리메이크였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진정한 용기>에서는 영화 마지막에 거구의 보안관이 말을 탄 채 울타리를 훌쩍 넘어 사라지고 어느 소녀가 한없는 선망의 눈초리로 그 보안관을 쫓고 있었다. 아마 존 웨인이 주인공으로 나온 마지막(!) 서부극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둘이 같은 영화일 수 있을까?

두 영화 사이의 개연성을 못 찾은 이유는 <진정한 용기>가 69년 작품이라 기억이 가물거렸던 탓이 우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저 ‘어느 소녀’가 <더 브레이브>에서는 확실한 ‘어떤 소녀’로 탈바꿈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의 중간쯤 메티가 자기 아버지의 살인범 톰 체니(조쉬 브롤린)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너무도 갑작스레 상황 반전이 이루어져 이야기를 채 뒤쫓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 때 메티는 체니 앞에서 요란하게 허세를 떤다. 50명의 잘 무장된 체포조가 언덕 위에 대기 중이며 자신은 보안관의 대리인으로 체니에게 총을 쏠 수 있다고. 이어서 메티는 실제로 체니에게 총을 겨눈다. 사실 메티가 배짱을 보여주었던 것은 훨씬 이전부터였다.

추격대에 어린 소녀를 데리고 가기 귀찮아 루스터(제프 브리지스)와 라 뷔프(멧 데이먼)는 자신들을 고용한 메티 몰래 이른 새벽길을 떠났었다. 루스터 보안관은 막돼먹은 사람이라서 그랬고, 라 뷔프는 용감한 텍사스 레인저 출신답게 여자를 우습게 여겼기 때문이다. 뒤늦게 출발한 메티는 기어코 그들을 따라잡았다. 그러면서 내뱉는 말. ‘당신들이 (나 몰래) 사라진 것은 계약 위반이자 돈을 떼어 먹은 더러운 행위’라며 비난을 한 뒤에,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루스터의 철자법까지 고쳐준다. 그가 남긴 편지에 원래 futile(귀찮은)이라 썼어야 할 단어를 영어에 있지도 않는 낱말인 fudel로 적은 것이었다. 노련한 추적자로 서부에 명성을 날리고 있던 루스터에겐 무식까지 탄로 났으니 이만저만한 모욕이 아니었다.

메티의 면모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멋진 장면이 나온다. 영화 마지막에 장성한 메티가 루스터를 찾아 나섰는데 그가 죽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난 후였다. 어떤 남자가 모자까지 벗어들고 일어서서 정중하게 소식을 전하는 반면 그 옆의 남자는 그저 거만하게 버티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메티에게 예의도 표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떠나면서 메티가 한마디 던졌다. “감사합니다. 영거씨, 그리고 당신은 자리나 지키시오, 쓰레기 같으니(keep your seat, trash)” 비록 25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지만 메티는 여전히 당당했다. 팔까지 하나 잃은 처지였지만 말이다.

헨리 하서웨이는 거친 인생을 살아오느라 남의 사정 따위는 관심 없고 오직 잔혹한 서부의 생리만 남아있던 루스터 보안관이 메티를 구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한 데 초점을 맞추었다. <진정한 용기>는 온전히 존 웨인에게 바치는 헌정 작품이었고, 1939년의 <역마차>에서 두각을 나타내 무려 30년 가까이 서부를 누렸던 노회한 배우를 향한 존경심으로 가득했다. 덕분에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거친 남자들의 세계로 뛰어든 14세 소녀 메티 로스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그저 스치듯이 지나갔다. <더 브레이브>에서 코헨 형제는 메티 로스(헤일리 스타인펠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파고>(1996년)의 마지(프란시스 맥도먼드)가 다시 살아난 듯 했다.

진정한 용기! 루스터는 독사에 물린 소녀를 살리기 위해 밤새 달렸다. 천성이 이기주의자였던 그로서는 파격적인 용기를 낸 셈이다. 덕분에 루스터 역을 맡았던 제프 브리지스는 작년의 <크레이지 하트>에 이어 두 번 연속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사실 그의 감동적인 연기 덕분에 잘하면 2년 연속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뻔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메티의 용기도 그 못지않게 대단한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험악한 운명에 과감하게 맞선다. 심약한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의 시신을 모셔 장례절차를 밟았고 아버지의 채무 관계까지 정리했으며 그 일이 끝나자 드디어 살인범을 찾아 나선다. 처음부터 루스터와 라 뷔프는 그녀를 버릇없고 귀찮은 여자아이로 취급했다. 그러나 메티는 어떤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만다. 팔 한 쪽 잃는 일 따위는 그녀의 삶에 어떤 장애물도 되지 않는다. 물러섬이라고는 없는 진정한 용기였다.

영화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찬송가 가락이 아주 좋았다. 개신교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별 감동이 없었을 텐데 필자는 온 세월 그 찬송들과 함께 살아온 까닭에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 하리니........”,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천천히 울려 퍼지는 배경음악을 들으면서 마치 어머니 품에 평안히 안기는 느낌이었다. 평생 당당한 삶을 살아온 메티에게도 구원은 엄마 품처럼 찾아오리라!

코헨 형제는 서부시대의 애환을 그렇게 담아냈다.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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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박태식

등록일2011-03-31

조회수4,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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