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customer center

070.8868.6303

다시 BORN '파이트클럽'

 

데이빗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년 作)

 

이 영화를 본적이 없는 관객은 있어도,

영화를 들어본적이 없는 관객은 드물다.

 

브레드 피트가 연기한 '테일러 더든'은 일군의 설문조사에서 영화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1위의 랭크되었고,

파이트클럽 영화자체는 최대 영화사이트 IMBD에 10위로 랭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칭찬만이 일색인 영화는 아니다.

평단의 호평 혹은 혹평이 굉장히 갈리는 영화 중 하나이다.

 

 

이 영화가 개봉한 1999년

밀레니엄시대라는 지금은 추억이 된 단어가 도래하기 불과 1년전이다.

 

2000년이 되면 컴퓨터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한다.

2000년이 되면 세상이 종말이 온다고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다. 등의

 

지금은 피식 웃고 지나갈만한 치기어린 명제들이 산발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진실 혹은 거짓'이 뒤섞여 있고,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사회로 인해 수많은 부작용들이 창궐하기 시작하는 해 이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영화 속 에드워드 노튼(나레이터 역)은 가구구매 중독자이다. 그리고 심한 불면증과 몽유병을 앓고있다.

그는 자신의 중독을 치료하는 방책으로 모임중독이라는 또다른 중독자가 되기에 이른다.

 

'중독', '불면', ' 우울'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러한 단어들이 그 시절엔 굉장한 이질감과 두려움을 발산했으리라..

 

 

영화 말미로 향해가면서 에드워드 노튼은 자신의 분열된 자아를 깨닫는다.

사실 그의 캐릭터 자체가 이 시대의 부작용의 산물 그 자체라 할 수 있겠다.

 

Anyway  브레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 두 자아는 완벽히 정반대의 사람이다.

 

'자유분방', '정력적', '문명에 대한 염세성', 마초적' 등등

이러한 성향은 에드워드 노튼의 억눌려있는 혹은 간절히 소망하는 자아이다.

그리고 극 중 에드워드 노튼의 캐릭터 자체는 섹스의 충동, 직장인의 삶, 등 무엇인가에 억눌려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파이트 클럽의 수칙

첫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둘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셋째 싸우다 상대가 기절하거나 소리를 지르면 멈춘다.

넷째 싸움은 1대1로 한다.

 

처음엔 쌓여있는 분노를 표출하는 창구같던 이 클럽은 점점 그 세력이 커지면서 테러집단이 되어 간다.

결국 충격적인 결말로 치닫으며 영화는 마무리 된다.

 

물론 20년이 자난 지금의 관객인 필자에게는 중반부터 눈치를 챌수 있을 만한 반전이었다.

 

 

파이트 클럽은 척 팔라닉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현대문명에 대한 염세적인 자세로 쓰여진 소설이고, 연출된 영화이다.

등장하는 '현대병'환자인 주인공의 모습은 20년이 지난 지금봐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공감이 간다.

 

영화는 시작부터 스타일리쉬한 편집으로 연출되는데,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아이러니컬한것은 이러한 편집력이 바로 평단에게 혹평을 받는 지점이라는 점이다.

 

'과유불급'

지나치게 과잉이다라는 평론가의 의견이 즐비한다.

 

필자의 생각을 첨언하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어쩌면 억눌려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연출하는 핀처 본인만큼은 억눌리고 싶지 않아서이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을 잠깐 언급하면,

영화는 흥행을 했고, 브레드피트의 연기력과 그의 캐릭터는 굉장히 화제가 되었다.

물론 그의 연기력은 훌륭하고, 그의 와꾸는 미친듯한 빛을 발산하지만,

필자는 브레드피트만큼이나 에드워드노튼의 연기력도 훌륭했다고 평한다.

 

둘의 앙상블은 괜찬았다.

 

이 영화를 레전드라고 평하는 누리꾼들이 많다.

하지만 필자는 과대평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평론가 심영섭은 '스타일 과잉, 자의식 과잉, 그래도 핀처는 재주꾼' 이라는 한줄평을 작고했는데, 가장 적합한 문장이라 사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영화인것은 확실하다.

 

이 영화는 1999년뿐만아니라 현대병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2016년인 지금도 굉장히 잘 어울리는 영화이다.

 

★★★☆ (별 3개반)

1999년뿐만아니라 2016년에도 잘어울리는 '현대병' 영화

 

사진 출처 - NAVER

zzyoun(영화평론가 지망생, http://blog.naver.com/zzyoun)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조영기

등록일2017-03-04

조회수4,470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
번호제목등록자등록일조회수
292[남유랑의 시네마 크리티크] ― 정주와 여행, 그 어느 편도 될 수 없는 <소공녀>의 존재양식, 그리고 우리의 실존에 대한 물음.

서성희

2018.10.094,011
291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짝사랑 열병을 앓는 이태경의 얼굴 <제 팬티를 드릴게요>

서성희

2018.10.093,935
290[정동섭의 시네마 크리티크]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 비루한 세상에 맞선 철학

서성희

2018.10.093,924
289[장석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산책하는 침략자, Before We Vanish> - 외계인의 지구침략을 가정한 언어공포물

서성희

2018.10.093,800
288[이수향의 시네마 크리티크] 만들어진 가족과 도둑맞은 가족-영화 <어느 가족>

서성희

2018.10.094,442
287[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비포 선라이즈> ― 관계에 대한 성찰의 여정과 사랑의 서막

서성희

2018.10.093,545
286[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가면의 쌩얼 - <프랭크>

서성희

2018.10.093,556
285[이호의 시네마 크리티크] 백범을 만드는 힘과 배치들 ― 영화 <대장 김창수>

서성희

2018.10.093,972
284[안숭범의 시네마 크리티크] 차이의 효과, 혹은 홍상수의 여자: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클레어의 카메라>

서성희

2018.10.094,146
283[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무의미의 의미, 실존적 부도덕 인간의 부활 - 요르고스 란디모스 감독 <킬링 디어>

서성희

2018.10.094,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