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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먼

휴 먼

 

교육방송에서 매년 개최하는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EIDF. 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가 올해로 13년째를 맞았다. 영화제를 개최해 놓고 은근슬쩍 사라지는 것들이 많은데 EIDF는 나름 끈질긴 면이 있다. 그리고 출품작들도 매년 질을 높여나가니 그 또한 고무적인 일이다. 아무래도 관영 TV 방송이다보니 넉넉한 지원이 있은 덕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들지만 그런들 어떠랴. 관객입장에서는 좋기만 한 것을. 올해는 한국에서 스웨덴에 입양돼 성장한 뇌성마비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내츄럴 디스오더>(Natural Disorder, 크리스티안 쇤데르비 옙센 감독, 다큐, 스웨덴, 2015, 98)가 대상을 받았다.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제 소개하려는 <휴먼>(Human,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감독, 다큐멘터리, 프랑스, 2015, 134)도 나름 심상치 않은 작품이다.

<휴먼>의 기본구조는 간단하다. 간간히 목가적인 풍경을 담은 장면이 나오지만 순전히 인터뷰로만 엮은 작품으로, 행복, 폭력, 동성애, 여성, 난민, 죽음 등등 수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재미난 점은 질문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그저 인물들의 말만 나오는데(일명 토킹 헤드) 그들이 의도하는 바를 금세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경우는 말은 안하고 단지 표정만 잡은 사람들도 대거 등장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소통의 다양한 방법을 알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언제나 새삼 확인하는 바이기는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놀라운 점은 그 주제가 어떻든 치열한 현실과 관객 사이의 거리감을 없애주는 데 있다. 특히 <휴먼>의 경우, 일일이 폭력이 벌어지는 전쟁터나 기아에 시달리는 황무지에 가지 않고 단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도 현장감이 물씬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등장한다. 딸을 잃은 아버지와 팔다리가 잘린 장애인과 얼굴에 파리가 앉은 것도 모르는 채 울분을 털어놓는 아낙네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그 모든 사람들은 진솔한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감독은 편집을 통해 인물들과 이야기를 각각의 주제로 묶어놓았다. 수천 분 분량의 녹화가 있었을 테고 편집을 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법하다.

<휴먼>에는 공중에서 찍은 필름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이는 인터뷰 주제들을 숙고할 있는 시간을 주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사이 공간을 채우려는 의도일 텐데, 나름 정확한 사고의 지점을 강타하는 장면들이다. 역시 편집의 힘은 위대하다. 베르트랑 감독은 1992년에 하늘에서 본 지구라는 제목의 걸작 사진집은 낸 적이 있다. 이 프로젝트를 담은 도록은 300만 부 이상 팔리며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고 약 2억여 명의 사람들이 보았다고 한다. <휴먼>은 거장의 손길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다큐멘터리다.

영화 마지막에 에필로그가 등장한다. 못 다한 말들을 담아놓았는데 이 에필로그를 통해 다큐멘터리가 잘 마무리된 느낌이다. 첫 장면을 본 후 두 시간 이상 눈을 떼지 못했는데 에필로그가 그만하면 이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적어도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 등장인물들 한명 한명이 나의 이웃이었다.

오늘날 인류가 봉착한 문제는 무엇인가? 인류는 어떤 것에 고통 받고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어떤 일에 자신의 감정을 쏟아 붓는가? 그리고 궁극적인 질문, 인간이란 무엇인가? 촉망받는 다큐멘터리 감독인 설경숙이 <휴먼>에 대해 쓴 글의 일부분을 옮겨보겠다.

주제가 바뀔 때마다 베르트랑 특유의 경이로운 항공촬영 영상이 병치되어, 이 얼굴들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지구를 이루는 구성원들임을 상기시킨다. 이들을 보며 울고 웃는 보편적인 정서와 조화를 되찾자는 단순한 답을 안고 있기에, 영화는 삶의 의미를 묻는 거대한 질문들을 담대하게 던진다. 그 정서를 잊어가는 과정에 비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끈질김을 알기에 마음 한구석 무거움은 어쩔 수 없지만, 답은 실제로 단순한 것에 있다는 믿음과 아름다움의 전파는 언제든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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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박태식

등록일2017-06-09

조회수3,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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