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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 여배우는 오늘도 달린다!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가 ‘달린다!’라는 메인 카피와 합체하는 순간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상상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여배우가 달리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요즘 한국영화에서 여배우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여배우는 오늘도 ‘화장을 한다’  여배우는 오늘도 ‘섹시하다’ 여배우는 오늘도 ‘귀엽다.’ 

18년차 여배우 문소리조차 이 지배적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살 수 없다. 아니 이 권력의 시선에 순응하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동조하기도 한다. 직업이 여배우가 아니더라도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권력의 시선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현대인은 많지 않기에 여배우 문소리의 연기는 공감의 파워를 얻는다.  

남배우라고 불리지 않는 남성 배우와는 달리, 여배우라고 명명되는 여성 배우들에게 여성성은 소비되고 물화되지 않는 것은 요구되지 않는다. 주로 남성 배우의 보조역할을 하는 여자 배우에게 주체적인 늙음은 불필요한 모습이다. 여성에게는 연륜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연륜으로 얻은 지혜는 주로 남성 주인공에게만 필요한 미덕이다. 이 남성 주인공이 삶의 갖가지 지혜를 통해 삶의 험난한 여정을 헤쳐 나가는 동안 여성 배우에게 조력자로서 힘을 북돋워주고 보기만 해도 꼭 지켜줘야 할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귀여우면서 섹시한 여배우가 필요할 뿐이다. 

권력을 지닌 남성의 시선은 여성의 신체와 외모를 평가하고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소비와 쾌락, 자극을 원하는 영화의 경우 여성 몸의 상품화는 더욱 심해진다. 영화는 18년차 여성 영화배우인 문소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남을 것인가를 묻고 있다.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는 배우 문소리가 대학원에서 제작한 3편의 단편영화 ‘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을 모아 완성한 장편 프로젝트이다. 문소리라는 여배우를 “다각도로 반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 허구의 이야기이며 픽션”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매우 독특한 방식을 통해 한 인물의 삶에 대한 재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배우는 당시를 출산과 육아로 한동안 영화 현장에서 멀어졌을 때 이유 없이 찾아온 무력감이 배우로서의 자존감을 떨어지게 한 시기였다고 회고한다. 스스로 자존감을 되찾기 위해 선택한 것이 영화공부였고, 영화 연출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애초에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배우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한다. 자신의 성장을 위한 영화 만들기로 시작해서 보는 관객도 함께 성장시킬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1막은 등산을 간 하루를 담는다. 오르면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등산은 삶의 비유인 듯하다. 더 극적인 건 일상이다. 산에서 내려와 일어나는 일들은 트로피가 많은 18년차 배우라도, 우리네 인생이 허접해짐을 느끼는 일상을 담는다. 

꼭 만나야 하는 중요한 만남만 있는 건 아니다. 그냥 피할 수 없는 만남과 소소한 대사에서 느끼는 이 웃픈 현실을 누구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합이 잘 맞는 찰진 대사로 들려준다.

2막은 육아를 맡긴 친정엄마의 딸이자, 아픈 시어머니의 며느리이자, 투정부리는 딸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모습들을 깨알같이 그려낸다. 여배우라고 하는 특수직업이 가진 삶의 이면들이 우리의 삶과 너무 닮아 있고 너무 평범해 인간적인 공감을 느낀다. 나이 들어가는 여배우의 만만치 않은 영화계의 현실과 생활인으로서의 여배우의 고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3막은 영화를 만드는 일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야기는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 못 만들었다는 평가로 한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확장한다. 

한 여배우의 삶의 다면을 보여주는데 장르가 코믹으로 분류될 수 있다. 민낯을 과감 없이 보여주는 18년차 문소리의 좌충우돌 삶의 현장에는 유머들이 곳곳에 묻어있다. 여배우는  오늘도 열심히 달리주니 우리는 마음껏 웃을 수 있다. 그녀가 절망 속에 좌절하거나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녀를 보며 웃을 수 있었을까. 문소리, 여배우여 오늘도, 내일도 달려주세요. 

 
  



글: 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이자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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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곡숙

등록일2018-05-05

조회수3,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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