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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인연/고독과 관계의 평행선과 교차점

 
 

2018년 3월 29일 개봉


1. 인연/고독에 대한 애니메이션적 상상력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夜は短し歩けよ乙女>(2017)는 소설 원작 애니메이션 영화로 일본 아카데미 수상작품이다. 이 영화는 검은 머리 아가씨, 선배, 이백 등을 중심으로 술내기, 헌책 시장, 게릴라 연극, 감기라는 네 가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가 간략한 이미지를 통해 제작비를 절감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경우 일반적인 내용은 정교한 이미지로 보여주는 반면, 상상하는 장면은 간략한 이미지로 제시하여 차별성을 확보하고 제작비를 절감하고 있다. 또한 팬티총대장, 변태아재 등 독특한 인물과 일탈적 에피소드를 통해 애니메이션다운 상상력과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다. 
 
  
 
  
 
2. 술내기와 모조전기브랜드: 덧없는 맛과 풍요로운 맛의 대비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첫 번째 이야기 ‘술내기와 모조전기브랜드’에서는 검은 머리 아가씨와 이백 씨와의 대립점이 드러남과 동시에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의 평행선을 보여준다. 검은 머리 아가씨는 술을 마시며 춘화(도도), 파티(히구치), 궤변춤(노인), 술내기(이백) 등 일탈의 시간을 보내며, 특히 이백 씨가 가지고 있다는 환상적인 술은 모조전기브랜드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이백 씨를 찾아 나선다. 마침내 검은 머리 아가씨는 자신을 이기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백 씨와의 술내기에 이겨 모조전기브랜드를 마시게 된다. 이백 씨는 속옷 훔치기, 술내기 등을 좋아하며, 검은 머리 아가씨와 이백 씨는 공동체, 인연과 자본주의, 개인주의 사이의 대립을 보여준다.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는 같은 거리에 있지만 계속해서 만나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려 관객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만든다. 결혼피로연 장소에 함께 있지만 검은 머리 아가씨는 술에 대해 생각하고, 선배는 그런 검은 머리 아가씨를 멀리서 지켜보며 괴로워하는 등 선배의 일방향적인 시선만이 강조된다. 그리고 ‘술’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선배가 도난당해 깃발처럼 걸려 있는 자신의 팬티를 되찾지만 나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검은 머리 아가씨에게 오해 받아 친구 펀치를 맞게 된다. 선배는 최눈알 작전, 함정 메꾸기 작전 등으로 자신의 존재와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검은 머리 아가씨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괴로워하며 술을 마신다. 

두 사람은 써클 사람들, 도도 변태 아재 등 공통적인 사람들을 만나지만 서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둘 사이는 사운드와 소품 등을 통해서 끊임없이 교차점이 마련된다. 이때 재미있는 것은 핑퐁 게임처럼 서로에게 속했던 소품 등이 상대방에게 가는 행위 등을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검은 머리 아가씨에게 있던 검은 보자기가 선배에게 가고, 선배에게 있던 공이 검은 머리 아가씨에게 가고, “이백은 없느냐”는 아가씨의 구호가 선배에게 들리고, 선배의 팬티가 깃발처럼 걸려 있는 것을 검은 머리 아가씨가 본다. 

  
 
  
 
  
 
3. 납량헌책축제와 『라타타담』: 시장의 논리와 소유의 논리의 대비

두 번째 ‘납량헌책축제와 『라타타담』’이야기에서는 책의 시장 논리와 공유를 주장하는 헌책 시장의 신(검은 머리 아가씨)과 책에 대한 독점과 소유욕을 대변하는 이백 씨(선배) 사이의 대립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책『라타타담』, 아이스크림콘(꼬마=헌책 시장의 신), 춘화(도도), 훠궈요리(히구치, 이백 씨) 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특히 검은 머리 아가씨가 좋아하는 책 『라타타담』을 얻기 위해서 선배가 이백 씨가 주관하는 훠궈요리 먹기 내기에 참여하는 것이 주요 테마인 만큼 선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기에서 이기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백 씨를 대상으로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검은 머리 아가씨가 내기에 참여하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선배가 내기에 참여한다. 

첫 번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는 평행선을 이루지만, 서로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상황이 늘어나면서 관객의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두 사람 사이의 교차점은 책『라타타담』과 히구치, 꼬마(헌책 시장의 신)의 만남이다. 두 번째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선배가 책을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을 검은 머리 아가씨가 보게 되면서 “자주 마주치던 선배”를 인식하게 된다. 검은 머리 아가씨는 책『라타타담』을 욕망하지만 헌책 시장의 신을 도와주게 되고, 선배는 검은 머리 아가씨를 욕망하여 그녀가 좋아하는 책『라타타담』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4. 학교 축제와 게릴라 연극: 운명의 사랑과 움직이는 사랑의 대비

세 번째 이야기 ‘학교 축제와 게릴라 연극’에서는 학교 축제, 책『라타타담』, 게릴라 연극, 사과비 여인, 동성애/이성애 등을 다루고 있다. 게릴라 연극을 감행하는 팬티총대장과 학교 축제의 책임자인 사무국장이 대립한다. 팬티총대장이 첫 눈에 반해 팬티를 갈아입지 않고 기다려온 사과비 여인을 찾기 위해 게릴라 연극을 올려 사무국장에 대립하지만, 나중에 사무국장이 사과비 여인(여장)임이 밝혀진다. 원칙주의자인 사무국장이 팬티총대장에 대한 마음을 받아들이냐 마느냐를 고민하는 장면에서 이성애/동성애의 문제를 제기한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적대적인 관계였던 팬티총대장과 사무국장이 집요왕과 공주를 맡아 러브씬을 연출하는 것이다.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는 마침내 게릴라 연극 무대에서 만나서 포옹하게 되고, 두 사람 사이의 공통 인물은 팬티총대장, 사무국장 등이다. 검은 머리 아가씨는 공주 역을 맡아 사랑하는 여인을 찾고자 하는 팬티총대장의 게릴라 연극을 존속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반면에 선배는 처음에는 검은 머리 아가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 사무국장을 돕지만 나중에는 공주 상대역을 맡기 위해서 사무국장을 저지한다. 두 사람이 마침내 만나게 되고 선배와 검은 머리 아가씨가 “라타타탐 아가씨”, “또 만나”, “어쩌다”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며 포옹을 하게 되어 관객의 기대감을 충족시킨다. 
 
  
 
  
 
5. 감기와 윤폐료: 마음의 폐쇄와 개방의 대비

네 번째 이야기 ‘감기와 윤폐료’에서는 감기와 관련된 죽, 달걀술, 생강콜라, 가디건, 코트, 윤폐료 등의 테마를 다룬다. 고독에 빠진 이백 씨와 인연의 실을 믿는 검은 머리 아가씨가 대립함과 동시에, 선배가 자괴감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아 싸움을 벌인다. 선배는 혼자 집에서 앓아누워 있고, 검은 머리 아가씨는 감기에 걸린 주변 인물들을 차례대로 방문하며 그들로부터 감기에 좋은 달걀술, 생강콜라, 가디건, 코트, 윤폐료 등의 선물을 받는다.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의 교차점은 윤폐료와 책 『라타타담』이고, 공통분모는 모든 인물들이다. 검은 머리 아가씨가 방문하는 인물마다 선배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그녀는 점점 선배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고 결국에는 이백으로부터 최고의 감기약인 윤폐료를  받아서 선배를 찾아가게 된다. 선배의 마음을 알게 된 검은 머리 아가씨가 선배의 집을 방문해서 책 『라타타담』을 선물받고 데이트를 하게 되면서 “이렇게 만난 것도 어떤 인연”이라는 말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6. 인생은 짧아 사랑을 해라 아가씨야
 
이 영화에서 두 축은 검은 머리 아가씨와 이백의 대립과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의 평행선이다. 검은 머리 아가씨와 이백의 대립점은 선배와의 평행선과는 다소 의미가 다르다. 이백은 인언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고독을 주장하는 반면, 선배는 검은 머리 아가씨와의 관계에 힘쓰지만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선배는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에서는 고독하지 않지만, 검은 머리 아가씨와의 관계, 즉 사랑에서는 진전이 없어서 힘들어 한다. 

검은 머리 아가씨와 가장 대립되는 인물은 이백이다. 검은 머리 아가씨는 인연의 실을 통해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이백은 고독에 빠진 인물로 개인주의, 자본주의를 추구한다. 술, 책, 감기 등에서 가장 필요한 물건은 대부분 이백이 소유하고 있다. 반면에, 검은 머리 아가씨는 하나도 소유하고 있지만 자신이 도와준 인물들로부터 선물을 받거나 이백과의 내기에서 필요한 물건을 획득한다. 이백은 사물에 대한 집착으로 고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반면, 검은 머리 아가씨는 다른 인물들을 돕기 위해서 사물을 쫓아다닌다. 영화에서 가장 맛있는 술, 가장 좋아하는 책, 가장 효과가 좋은 감기약 등의 증여자는 항상 이백이고, 수여자는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이다. 이백이 필요한 물건을 줌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는 점에서 그는 전반부 적대자·증여자에서 후반부 조력자로 변모한다.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의 관계는 전반부에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평행선을 이루다가, 중반부부터는 같은 공간에 머물다가 만나게 되고, 후반부에서는 다른 공간에 있다가 만나서 마음을 확인하게 되면서 점층법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책『라타타담』이다. 술 이야기의 끝무렵에 헌책 시장 전단지를 보며 검은 머리 아가씨가 자신이 좋아하는 책『라타타담』을 떠올린다. 책 이야기에서는 선배가 검은 머리 아가씨가 좋아하는 책『라타타담』을 얻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축제 이야기에서는 선배가 검은 머리 아가씨게에 팔기 위해서 책『라타타담』좌판을 열고는 그녀를 기다린다. 감기 이야기에서 선배는 마침내 검은 머리 아가씨에게 책『라타타담』을 선물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책『라타타담』은 바로 선배와 검은 머리 아가씨의 사랑을 의미한다. 

인지전략에서 보면 검은 머리 아가씨를 사랑하는 선배의 마음 상태에서 대해서 선배·관객 > 다른 인물들 > 검은 머리 아가씨 순서로 인지한다. 검은 머리 아가씨는 모든 이야기에서 사건을 주도하며 정보를 가장 많이 인지하지만, 정작 자신을 사랑하는 선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러한 정보의 지연을 통해 관객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긴장감을 갖고 지켜보게 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마침내 데이트를 하면서 인연일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관객의 기대가 충족된다. 이백이 검은 머리 아가씨에게 남긴 말이 떠오른다. “인생은 짧아. 사랑을 해라. 아가씨야.”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포토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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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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