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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비포 선라이즈> ― 관계에 대한 성찰의 여정과 사랑의 서막

 
 

2018년 8월 28일 재개봉


1. ‘비포’ 3부작과 사랑의 과거, 현재, 미래

‘before(전에)’는 ‘after(후에)’의 반의어이며, 시점에 따라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과거 시점 기준으로 ‘그때까지는’이고, 현재 시점 기준으로 ‘지금까지는’이고, 미래 시점 기준으로 ‘보다 일찍’이다. ‘비포(before)’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의 서막, 서곡이라는 점에서 설레임과 기대감을 동반하며, 그 일은 과거, 현재, 미래를 기준으로 각각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영화 ‘비포’ 3부작은 로맨스와 로드무비를 결합시켜 사랑의 여정을 따라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한다.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1995), <비포 선셋>(Before Sunset, 2004),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 2013)에서 셀린느(줄리 델피)와 제임스(에단 호크)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특히 <비포 선라이즈>는 비엔나에서 강렬한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셀린과 제시를 낭만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이후 두 편의 서막이 된다.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은 사적 관계, 내적 관계, 내연 관계에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점점 깊이 빠져들면서 사랑과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2. 고장난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고음과 저음

<비포 선라이즈>에서 부모/자식, 남자/여자, 삶의 목표 등의 사적 관계에 대해, 셀린은 조화를 중시하는 반면, 제시는 독립을 추구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셀린은 부모의 사랑을 넘치게 받은 데 반해, 제시는 사랑이 부족한 가정에서 자랐다. 셀린은 성공한 건축가 부모 밑에서 사랑을 많이 받아서, 투쟁할 것은 있지만 적이 누군지 모른다. 반면에, 제시는 자신을 가진 것이 실수라고 말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자신이 그 상황을 극복했다. 제시는 자식에 대한 관계에서 부자는 너무 많이 주고, 가난한 사람은 너무 적게 주며, 이전의 모든 걸 거부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셀린은 로맨스를 바라는 반면, 제시는 현실을 바라본다. 셀린은 날이 들수록 남자는 고음을 듣기가 힘들어지고, 여자는 저음을 듣기가 힘들어진다는 점에서, 부부싸움은 상대 말을 듣기 힘들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말한다. 또 그녀는 자신의 할머니가 마음속에 평생 다른 남자를 품고 살았다는 점에서 커플들의 거짓을 말한다. 이에 제시는 그 남자와 살아도 실망했을 것이며, 로맨스와 현실은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하며 현실적인 측면을 지적한다. 결국 두 사람 모두 남녀 이야기가 ‘고장난 레코드’와 같다는 것에 동의한다. 

삶의 목표에 대해서, 셀린은 타인과 함께 나누고 싶어하지만, 제시는 자신의 일·능력에 관심이 많다. 제시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는 것에 속박감을 느끼며, 자신이 잘 하는 게 뭔지 알고 싶어한다. 반면에, 셀린은 일과 출세에 성공한 삶보다는 타인을 위한 시간, 상대와 함께 나누는 것을 시도한다. 

  
 
  
 
  
 
3. 묘지와 환생을 오가는 마법의 시간

<비포 선라이즈>에서 죽음, 일상의 삶 등 내적 관계에 대해, 셀린은 죽음으로 인한 단절을 두려워하는 반면, 제시는 환생을 통한 영혼 불멸에 관심이 많다. 

죽음에 대해서, 셀린은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반면, 제시는 환생으로 인한 영혼의 불멸에 대해 생각한다. 셀린은 비행기 사고가 두려워 기차를 타며,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묻혀 있는 묘지를 보면서 죽음을 떠올린다. 제시는 호스를 통해 뿜어 나오는 물 사이로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난 마법의 시간을 떠올린다. 그는 환생을 통해 과거의 삶을 살았던 영혼이 불멸하는지, 하나의 영혼이 어떻게 5천개의 영혼으로 파생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일상에 대해서, 셀린은 지겹다고 생각하는 반면, 제시는 시적이라고 생각한다. 제시가 24시간 일상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말하자, 셀린은 ‘망할 지겨운 일상’이라며 싫어하고, 제시는 ‘일상의 시’라며 옹호한다. 손금 보는 여자가 셀린에게 이방인, 모험자, 탐구자이며, 인생이 서투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진실한 교류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제시는 지루한 삶의 여정이 계속된다는 운세를 원한다고 말한다. 

  
 
  
 

4. 보티첼리의 천사와 꿈이 있는 꼬마의 고백

<비포 선라이즈>에서 과거의 사랑, 현재의 사랑 등 내연 관계에 대해, 셀린과 제시는 과거의 상처로 인해 괴로워하지만, 현재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면서 마침내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과거의 사랑에 대해서, 셀린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집착한 반면, 제시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냉철한 비판을 해서 떠나가게 만든다. 셀린은 긍정적인 일에 집중하여 사랑을 할 때 집착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반면, 제시는 ‘혼자가 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의 탈출구’인 사랑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현재의 사랑에 대해서, 셀린과 제시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셀린과 제시는 열차에서 만나 호감을 느끼고, 비엔나의 곳곳을 함께 다니고, 관람차에서 키스하고, 밤의 공원에서 관계를 가진다. 친구 전화 놀이를 통해, 셀린은 증조할머니 유령을 만나는 꿈이 있는 꼬마에게 반했다고 말하고, 제시도 보티첼리의 천사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제시는 딜런 토마스의 “새벽은 토끼처럼 달려 나가니”라는 구절로 헤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한다. 

점점 가까워지는 카메라, 함께 한 공간들에 대한 회상, 서로를 마주보는 듯한 구도로 셀린과 제시의 만남, 사랑, 이별을 표현하고 있다. 제시가 할머니 유령을 보게 되는 마법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제시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셀린이 제시에게 반하는 순간을 드러낸다. 음악감상실의 좁은 룸에서 음악을 듣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클로즈업 투숏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서로에 대한 욕망을 암시한다. 선상 카페의 빈 의자, 하얀색 난간, 골목길의 의자, 묘지의 묘비, 관람차, 거리의 분수대, 와인병이 뒹구는 공원 등 두 사람이 함께 했던 공간을 카메라가 시간을 거슬러가며 보여줌으로써, 함께 했던 로맨틱한 순간과 부재하는 현재의 아쉬운 마음을 대비시킨다. 마지막에 화면의 왼쪽에 앉은 셀린과 화면의 오른쪽에 앉은 제시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마치 서로 마주보는 것처럼 보여 다른 공간에 있는 두 사람의 끝나지 않은 여정을 암시한다. 

  
 
  
 
  
 
  
 

5. 죽음을 기다리는 노파와 13살 꼬마의 키스

<비포 선라이즈>에서 셀린과 제시는 평행선에서 교차점으로 나아가며 상승곡선을 그린다. 두 사람은 하룻밤 동안에 사적 관계, 내적 관계, 내연 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지만, 대부분 화제에서 생각하는 관점이 전혀 다르다. 셀린은 관계에 대해 집착하고 조화를 중시하는 반면, 제시는 자아의 독립과 저항을 추구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내내 서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서로 다른 성격으로 인해 매력을 느낀다. 마침내 서로에 대한 감정에서 일체감을 보인다는 점에서 극적 반전을 보여준다. 사랑의 상처를 안고 있는 두 사람은 처음에는 부정적,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긍정적, 희망적 태도로 변화한다. 

<비포 선라이즈>는 로맨스물과 로드무비라는 장르 결합으로 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커플은 예측이 되어서 싫증날 거라는 부정적인 제시의 말에, 셀린은 커플은 이해하게 되면서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다는 긍정적인 말로 감싸 안는다. ‘죽음을 기다리는 노파’같은 셀린과 ‘13살 꼬마’같은 제시의 키스로, 두 사람은 서로의 악마이자 천사가 되며, 서로의 꿈에 들어와 있는 시간의 주인공이 되며, 함께 있으면 자신이 딴 사람으로 느껴지는 마법의 순간을 체험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카인과 아벨이라는 두 개의 세계 속에서, 데미안을 만나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싱클레어처럼.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비포 선라이즈 - 포토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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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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