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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정재은 각본·감독의 <나비잠, Butterfly Sleep, 111 min, 2017 > - 호접몽(胡蝶夢)의 변주

 
 

9월6일 개봉

정재은 감독이 마흔 즈음 선보인 <나비잠>은 주제에 대한 내면적 성찰로 깊은 울림을 준다. 문학을 매개한 우연한 만남과 재회에 얽힌 이야기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한 영화적 특성을 보여준다.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깔리는 잔잔한 음악처럼 인간의 감성을 향해 끊임없이 부지런히 잔잔하게 항해한다. 소설 같은 삶의 주인공은 여류소설가 료코(나카야마 미호, 中山美穂)와 일본 소설에 매료돼 유학 온 장기 체류 중인 작가 지망생 찬해(김재욱)이다.

  
 
  
 

‘나비잠’은 어린아이가 나비의 날개 짓처럼 두 손을 머리 위로 하고 달콤하게 잠든 모습을 뜻한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로 데뷔하여 주목할 영화감독으로 성장한 정재은은 한국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러브레터>(1995)의 나카야마 미호와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로 깊은 인상을 남긴 인기 상승 중의 김재욱을 연하의 작가 지망생 역의 주인공으로 삼아 일본에서 올 로케이션을 감행한다. 영화는 ‘나비 짓’처럼 부드럽게 사랑을 변주한다.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영상, 느린 흐름으로 주인공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드는 음악, 현란한 몽타주로 빚은 멜로드라마는 지친 영혼을 어루만지는 힐링 영화로 기능한다. 영화의 도입부는 신비감이 감도는 녹색 산속의 연못과 여인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료코의 소설 속의 여인이다. 료코는 만년필로 소설을 쓰며, 지루함에 지친 반려견 톤보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강의실에서 그녀는 앞으로는 소설 뒤에 숨지 않겠다고 하면서 강의는 폭발적 인기를 끈다.
 

  
 

사랑에 관한 영상 에세이, 이슬처럼 내려와 안개처럼 사라진듯했지만 늦었을 뿐 두 사람의 가슴 속에는 사랑이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연(緣)의 기원은 만년필에서 시작한다. 만년필은 소설은 써내려가듯 사랑의 사연을 써 내려간다. 늦은 밤, 료코는 자신이 강의하는 대학 근처 이자카야에 만년필을 찾으러 갔다가 고단한 알바생인 한국 청년 찬해를 만난다. 바로 찾을 수 없었던 만년필은 찬해의 동료가 보관하고 있었고, 찬해는 료코의 집을 찾아간다.

외부에서 내부로 진전, 료코가 반드시 찾아야한다던 만년필을 돌려준 찬해는 그녀의 반려견 톤보의 산책 아르바이트를 부탁받는다. 파친코에도 들리고 학비도 날리면서 일본을 경험하던 찬해는 책으로 둘러싸인 료코의 서재를 접하면서 초심을 다잡는다. 톤보의 목욕 알바까지 맡으면서 두 사람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찬해는 서재를 정리하다가 잠이 들어 하와이 풍광에 젖기도 하고, 좋은 서재가 있다면 글을 잘 쓸 수 있겠다는 상상도 한다.

 

  
 

인기 소설가 료코는 전 남편(스가타 슌)의 출판기념회에 찾아가 그녀의 어머니가 겪었던 종류의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음을 알린다. 시간의 소중함, 책을 쓸 수 있다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절박감을 가중시키는 장치가 끼어든다. 영화는 모르는 작가, 안 읽은 작가의 책 등 책에 대한 소중함을 강조된다. 손목이 좋지 않아 이번 소설은 말로 쓰고 싶다는 료코는 컴퓨터 작업을 의뢰하고 찬해는 서재 정리에 이어 방 한 칸을 빌려 쓰게 된다.

 

  
 

자신의 기억 상실을 염려하는 료코, 책 냄새가 나는 방에서 틀린 글자를 교정하고 작품을 이야기하고 느낌을 공유하면서 예비 소설가 찬해는 부부는 아니지만 보완의 관계로써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설정된다. 찬해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일상에서 잊고 지냈던 소설가의 꿈을 다시 키우며 료코의 서재에 꽂힌 책들을 키와 색깔별로 정리하며 호사를 누린다. 료코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소설 창작에 찬해로 부터 조언과 워드작업 등의 도움을 받는다.

두 사람은 전성기의 완벽함과 작가 지망생의 궁상을 벗어나 원고지에 칸을 채워가듯 사랑을 쌓아간다.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사랑은 소설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신작 소설 속의 느낌이 서서히 두 사람의 가슴에 사랑으로 전이된다. 료코의 집 안 곳곳은 원고지와 사랑의 이미지를 배가시키는 장치이다. 감독을 비롯한 소수를 제외하고 일본인 제작진이 참여한 합작영화에서 ‘나비잠’ 이라는 말을 빼고는 모두가 일본어 대사가 사용된다.

 

  
 

료코의 병이 악화되는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학생들의 소설 습작 원고를 파쇄 시켜 비닐 봉투에 담아오거나, 육교위에서의 현기증, 톤보의 목줄을 풀어놓고 나오는 외출 등이다. 톤보의 가출은 찬해의 잘못으로 오해받는다. 료코는 수도꼭지를 부수고 찬해가 늦게 옴을 탓한다. 료코는 고마움에 포옹하고 입술을 맞춘다. 료코는 톤보의 사진이 놓인 앞에서 소설처럼 톤보 이야기를 하고 신사 앞에서 기도한다. 돌아오는 길에서 우연 안에 무엇이 존재함을 강조한다.

영화로 쓰는 소설, 소설속 주인공인 샤오리와 고스케에 관한 이야기가 샤오리가 그린 그림과 함께 다시 진행된다. 그동안 쓰인 글들의 원고지가 창문에 붙어있다. 지쳐 쓰러진 두 사람의 잠은 한 백년은 잔 것 같은 여러 형태의 ‘나비잠’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소문이 나서 학교, 출판사 등 곳곳에서 료코에게 충고가 따르지만 료코는 소설이 끝날 때 까지라고 선을 긋는다. 공원 산책에서도 톤보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사랑의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짧은 행복은 료코의 병증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위기에 처한다. 요양원으로 떠날 계획을 알아 챈 찬해는 진노한다. 행복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싶고, 기억이 빠진 자신을 보이기 싫은 료코는 사랑했기에 찬해와 모진 이별을 결심한다. 이별을 이해 못하는 찬해는 마음의 뜻을 담은 료꼬의 돈봉투를 거칠게 거절한다.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온 찬해에게 료코의 만년필이 전달된다. 완성된 소설에서 사랑의 흔적은 아름답게 남는다. 전 남편의 도움으로 양로원으로 가는 차창을 내다보는 료꼬, 숨어서 지켜보는 찬해, 정해진 결말이지만 이별은 슬픈 법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출간된 소설 ‘나비잠’을 들고 찾아온 유학 시절 친구로부터 료코의 소식을 접한 찬해는 료코가 요양 중인 ‘우연의 도서관’을 찾아간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료코에게 찬해가 자신을 소개하자 찬해의 손을 얼굴에 갖다 대고, 료코의 눈엔 눈물이 흐른다. 찬해는 “기억하고 있었네요.” 하면서 미안함을 표한다. 료코는 자신의 마음을 담은 소형녹음기를 전한다. 통곡하는 찬해의 울음소리 위로 주제가가 흐르면서 영화는 종료된다.

 

  
 

<나비잠>에는 원고지 같은 작업을 메꾸는 아티스트들이 즐비하다. 영화라는 원고지에 감독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된 <나비잠>에서 장롱 속의 보석함을 꺼내듯 1998년 제21회 일본아카데미상 우수여우주연상 이후 존재감을 보이지 않던 나카야마 미호를 끄집어내고, 원석 김재욱을 연마한 광휘를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영화 속에서 원고지를 메꾸고 있고, 그들이 구상하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고무줄놀이를 하듯 원고지를 타고 논다. 이와나가 히로시 촬영감독은 감동적 영화를 탈고하고 있고, 편집의 이영림도 사진 같은 영화의 큐레이터가 된다.

슬프고 아름다운 소설 같은 이야기가 <나비잠>이다. 내러티브, 영화문법, 구도 등 어떠한 형태로 분석해 봐도 훌륭한 이 작품은 훌륭한 텍스트이다. 이 작품에 담고자 했던 연출자의 창작정신에 존중을 표한다. 정재은 감독은 지속적 창작으로 관객들을 계도할 책무를 지닌다.

장석용
영화・무용평론가, 시인, 중앙대・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전공,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한국영상작가협회 회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르몽드 영화평론상・PAF 영화평론상・한국문화예술상 수상, 서경대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출강, 이태리 황금금배상・다카영화제, 네팔 인권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대종상 심사위원 등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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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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