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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가짜의 세상에서 가짜를 노래하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사랑을 카피하다'


원본과 가짜의 거리

이 영화의 원제는 <인증 받은 복제품>이라는 뜻이다. 인증 받은 가짜라고? 지금 우리 시대의 징후를 읽을 수 있는 말이다. 진짜와 가짜가 혼용되어 있고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 등 유명 그림, 조각들은 다 가짜다. 도난이나 파손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인증 받은 가짜를 전시해 놓은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특정 분야에서는 인증 받은 가짜를 용인해 왔다. 꼭 진품만이 가치를 인정 받는 것이 아니다. 가짜면 어떠랴. 보기 좋으면 되지. 내가 무슨 소장가도 아니고 감상자라면 진품이 아니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원본과 가짜와의 차이를 통해 사랑과 인생을 비유한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에서 제임스가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엘르에게 길가의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다르고 그들은 원본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 나무 풍경을 그림으로 똑 같이 그린다 해도 무엇이 풍경이고 무엇이 그림인지 구분해 내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그런 일이 있고 그런 예술작품이 있다면 원본의 진위여부를 따지는 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을까?

가짜를 진짜처럼 생각하고 감상하며 감동을 받는다면 나중에 그게 가짜임이 밝혀진다 해도 그 사람은 실망할 것인가? 모파상의 [진주목걸이]는 빌려온 가짜 목걸이를 잃어버린 후 진짜인줄 알고 고생을 해서 돈을 벌어 진짜를 사서 돌려준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상대방 귀부인의 한 마디, “쯧쯧 너무 고생했다. 그거 가짜 였는데...” 라는 대사에 맥이 풀려 버리는 마틸드 라는 여인의 기막힌 상황에 방점을 찍는다.

마틸드도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해 그 고생을 다한 셈이다. 그때만 해도 이런 경우를 대비한다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일은 중요해 보인다. 가짜를 진작 알았다면 생고생을 하지 않았어도 되니까. 하지만 이제 시대는 달라져서 진품보다도 더 진품같은 짝퉁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으니 더 구별하기도 어려워졌고 마틸드 같이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은 굳이 진품 목걸이를 빌려서 파티에 갈 필요도 없고 그저 짝퉁을 진짜처럼 알고 행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진품은 구별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존심 때문에 하는 것 정도 밖에 의미가 없다.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의 차이

영화에서는 재스퍼 존스라는 화가를 언급한다. 재스퍼 존스는 앤디 워홀에 비교되는 미국의 대표적인 팝아트 화가다. 워홀이 마릴린 몬로나 코카 콜라병, 캠벨수프 깡통을 그린 반면에 제스퍼 존스는 성조기를 연속으로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팝 아트의 의미는 무엇일까. 새로운 대상을 찾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이미 존재하는 낡은 성조기를 그린 이 화가의 성조기 의미는 무엇일까. 팝 아트는 이미 익히 잘 알려진 대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시선의 각도를 중요시 하는 사조라고 보여진다.

누가 보더라도 성조기지만 관람객들은 자신만의 다른 의미로 성조기 느낌을 생산해 낼지 모른다. 화가가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화가 자신의 그림 내용 보다도 그걸 바라보는 관람객 마음 자세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창출되는 것을 기대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두 관람객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내 집에 있는 똑 같은 성조기야 하고 외치는 사람과 이건 비슷하긴 하지만 다른 느낌을 준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전자를 진품주의자라고 본다면 후자는 비슷하지만 다른 것의 의미를 중시하는 재현주의자, 즉 카피스트일 수 있다.

다시 앞서의 사이프러스 나무 장면으로 돌아가자. 남자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현실이지만 예술품이 될 수 도 있다고 말한다. 만일 이 곳이 갤러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나무들은 영낙 없이 예술품이 되는 것이다. 그 대상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예술이 되고 안 되고 하는 기준이 된다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예술은 다른 것이라는 명제는 틀려지게 된다. 어떤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 팝 아트는 바로 그와 같은 예술성을 추구한다.

뻔한 통조림 깡통도 예술이 될 수 있다. 마르셀 뒤샹이 화장실 변기를 갤러리에 거꾸로 세워 놓고 이라고 이름 붙여 예술로 선보였을 때부터 현대예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무작위의 예술도 있다. ‘레디 메이드라는 사조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는 진품과 가짜의 차이에서 출발하여 진품은 곧 현실이고 짝퉁은 그 현실을 닮은 어떤 것 즉 재현 혹은 예술이라고 정의하게 된다. 무엇을 그렸고 무엇을 만들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사랑의 진짜와 가짜

영화는 진품과 가짜를 말하는 소재에서 출발하여 두 남녀 사랑의 관계로 발전해 나간다. 사랑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다. 부부 생활을 하면서 남녀는 진짜 부부인지 아니면 부부인 척 하는 놀이를 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서로를 터놓고 얘기 하지 않고 항상 숨기는 것이 많은 부부는 무엇이 진심인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다 보면 사는 게 의무방어전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적어도 부부라면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행동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제임스는 성당 종소리를 들으며 엘르와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둘은 처음엔 호감을 갖는 사이로 출발했지만 외로운 엘르는 제임스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어느 순간 둘은 부부게임을 벌이게 된다. 관객들은 어리둥절한 상황에 빠진다. 책의 저자와 고객일 뿐이던 둘의 관계가 점점 호감을 갖더니 이제 부부였다는 사실로 발전한다. 원래 이들이 부부였나? 헷갈리지만 정리해 보면 그저 게임을 했을 뿐이다.

어떻게든 부부의 관계로 정당화 시키고자 하는 엘르는 15년 전 신혼여행을 보냈다는 호텔방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건 허구다. 제임스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자신은 한 시간 후에 열차를 타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와 결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는 종소리를 들으며 갈등한다. 이게 가짜긴 하지만 이 여자와 그냥 살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의 마음 속 갈등중 한 대목일 수도 있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모호하다. 부부가 아니더라도 부부로 알고 살면 부부인 것 아닌가? 부부가 뭐지? 신뢰가 없으면 그것도 부부라 할 수 있나? 이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는 제임스의 심각한 표정은 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가 혼돈스러운 가운데 진정한 사랑은 현실의 관계일까 아니면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의 시각인가 정리하고자 하는 표정처럼 보인다.

글: 정재형

영화평론가이며 동국대 교수이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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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12-31

조회수6,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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