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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생각

오빠생각

박태식(영화평론)

 

어린 시절 기억나는 일들이 몇 가지 있다. 우리가 살았던 적산敵産가옥 동네, 아버지가 남대문 시장에서 사 왔던 씨 레이션 박스, 짚 차를 개조해서 만든 택시, 보기에도 험상 궂는 넝마주위 아저씨들, 개천 주변의 판잣집, 다리 밑에 집단으로 사는 도시빈민들 그리고 빈 깡통을 한 팔에 끼고 돌아다니는 거지들! 이제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게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였다. 특히 거지 아이들과 동네 아이들은 경쟁관계에 놓여있었고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싸움을 걸거나 물건을 빼앗아 언제나 동네의 골칫거리였다.

어머니는 거지들에게 친절한 편이었다. 그래서 헌옷을 모아두었다가 전해주고 매일 아침 남은 밥을 깡통에 퍼 넣어주었다. 어느 날 아침인가 보니 우리 집 앞에 어린 거지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아마 어머니의 큰 손이 온 동네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오빠생각>(이한 감독, 극영화/음악영화, 한국, 2015, 124)에서 멀리 사라져갔던 나의 과거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오빠생각

1952년의 부산은 글자그대로 난리였다. 군부대를 비롯해 오갈 데 없는 전쟁고아들은 물론 온 도시를 채운 피난민들, 거지 대장으로 식솔들을 거느리는 상이군인, 부산이 위험해지면 즉시 배를 띄워 제주도나 외국으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남쪽의 부자들 등등. 40만 인구 도시에 갑자기 70만 명이 들이닥친 부산에는 온갖 군상이 들끓고 있었다. 여기에 세워진 공산군 포로수용소 안에 전쟁고아 보육원이 있고, 그 책임자로 한상열(임시완) 소위가 부임해 온다.

한 소위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잘생긴 청년이다. 그런데 6.25 전쟁이 발발해 서울에 들이닥친 공산당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고 치열한 전투에서 많은 부하들을 잃었다. 덕분에 한 소위는 공산주의자에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고, 그것이 빨갱이로 몰려 곧 죽게 된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동구(정준원)의 애원에 선뜻 나서지 못한 이유였다. 그는 고아원장인 박주미(고아성)와 함께 고아원을 꾸려나가라는 명령을 받는다.

군부대 안에는 계급에 따른 위계질서가 성립되어 있지만 한 걸음 밖 민간인 세계에는 전혀 다른 질서가 존재하고 있다. 한 팔을 잃고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갈고리(이희준)는 일단의 피난민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무력과 공포로 지배하고 있다. 거기다 피난 온 부자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며 부를 쌓고 있으니 피난민들 사이에서 제왕의 위치에 올라있던 셈이다. 전쟁고아들을 등쳐먹고 사는 불량배 갈고리와 합창단을 만들어 고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는 한 소위가 부딪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 소위와 갈고리의 대결이라는 기본 구조 위에 감독은 더 많은 것을 담아내려 한다. 이념의 대립, 대립의 대물림, 전쟁의 참상, 전쟁에 희생되는 순진한 국민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의 희생, 피난민의 처참한 일상, 전쟁판에서 빚어지는 탐욕과 부정부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일거에 날려 보내는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까지. 영화의 상영시간 124분이 짧을 지경이었다. 사실 왜 감독이 그렇게 욕심을 냈는지 모르겠다. 전작인 <완득이2011>에서 이주민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데 비하면 산만한 구성이었다.

비록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어 감독의 과욕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오빠생각>이 음악영화임은 분명하다.

고운 목소리를 가진 동구와 순이(이레)가 전체적으로 합창단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동구가 합창단원을 뽑을 때 한 소위와 박 선생 앞에서 부르는 고향의 봄’, 한 동네 친구였지만 부모들의 악연을 이어받아 원수가 된 춘식과 부르는 데니 보이애니 로리’, 한사코 노래 부르기를 거부하던 순이가 아픈 오빠를 위해 부르는 오빠 생각’, 유일하게 즐거운 가락의 노래인 목장 길 따라.’ 이를 위해 아역 배우들이 4개월 간 연습을 했다니 영화 제작진의 정성이 잘 묻어나왔다.

 

코러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선린 어린이 합창공연단은 한국전쟁 당시 실제로 전쟁터와 군 병원 등지에서 위문공연을 했다고 한다. 실화를 기반으로 해서 그런지는 어린이 합창이 전해주는 감동이 남달랐다. 이한 감독은 좋은 소재를 발굴했다.

<오빠생각>은 여러 면에서 프랑스 영화 <코러스>(Les Choristes, 크리스토르 바라티엘 감독, 극영화/음악영화, 2004, 95)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가 <코러스>의 시대적인 배경이다.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이유 근처에 어느 기숙학교가 있는데 여기에는 전쟁 때 부모가 죽어 혼자 된 어린이들과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맡겨둔 소년과 사고를 치는 바람에 다녔던 학교마다 쫓겨나 결국 이곳까지 흘러온 문제 소년들이 학생으로 있다. 이 학교에 마띠유 선생님(제라를 쥐노)이 임시 교사로 온다. 원래 작곡가인데 누구도 그가 작곡한 음악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거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지독히 살기 어려운 시대에, 문제 학생들이 모인 학교에, 문제 교사가 온 셈이다.

마띠유 선생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때 국물이 줄줄 흐르는 소년들이 어느 사이엔가 음악의 깊은 세계를 알아나가고 아름다운 화음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음악을 통해 새로 태어난 것이다. 특히, 영화의 주인공은 모항쥬(장 바티스트 모니에)는 마띠유 선생님이 그의 재능을 발견해 준 덕분에 나중에 훌륭한 지휘자로 성공한 삶을 산다. 그처럼 스승이란 학생의 재능과 가치를 발견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인물이어야 한다. 교권이 땅에 떨어진 요즘의 한국 상황에서 한번 쯤 되새겨볼 대목이다. <코러스>가 아름답다면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요즘 만들어지는 음악영화들을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대체로 모든 사건을 흥미 위주로 이끌어간다. 그래서 으레 전국 합창대회가 등장하고 고생 끝에 합창대회 우승을 한다는 식의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제 맛이 난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코러스>에서 우리의 선입견은 완전히 뒤바뀐다.

마띠유 선생님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학생들도 수 십 년이 지나면서 선생님의 존재마저 잊고 만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어른이 된 모항쥬가 마띠유 선생님의 이름마저 기억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기억의 단초가 주어지고 과거의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아름다운 시절이 생각난다. 영화에 출연했던 소년들이 직접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도 재미있고, 그 중에서 모항쥬라는 소년은 실제로 장래가 촉망받는 어린 가수라고 한다.

<오빠생각><코러스>, 두 영화는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전쟁의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등장하고, 새로운 음악 선생이 부임하여 기존의 억압적인 질서와 싸우고, 아름다운 합창이 이어지고, 약간의 로맨스가 가미되는 것까지 공통점이 넘쳐난다. 그런데 차이점이 한 가지 있다. <오빠생각>은 비단 음악이 주는 감동뿐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까지 전달하려는 의욕이 넘쳐나 집중력이 떨어지고 말았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 것이다.

 

전문분야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 때면 유의 할 점이 있다. 이야기 전개와 더불어 전문분야에 대한 올바른 소개가 있어야 하는데, 특히 음악을 소재로 한 경우는 실제로 멋진 음악을 제공해야 한다. <코러스>는 프랑스에서만도 무려 9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말이 900만 명이지 실로 엄청난 숫자이다. <오빠생각>도 비교적 괜찮은 작품이긴 하지만 과연 <코러스>만큼 관객을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슬픔을 남겨준다. 가능한 한 전쟁은 피하는 게 옳다. <오빠 생각>에서 촉발된 나의 기억은, 사실 없었으면 좋을 뻔했던 과거였다. 그래도 그 험악했던 시절에 어린이 합창단이 실제로 하나 있었다는 점은 위로가 되기는 했다.

아무튼 전쟁은 분쟁을 해결하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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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박태식

등록일2016-02-13

조회수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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