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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경배를! _ <인사이드 르윈>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경배를! _ <인사이드 르윈>

 

민병선_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코엔형제의 <인사이드 르윈>(2014)은 포크음악을 하는 가난뱅이 뮤지션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작)의  7일간의 여정을 다룬다. 포크송 가수 데이브 반 롱코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으며 가수로서 성공하고픈 이상과 점점 멀어지는 현실을 절박하게 스크린 위에 투영한다. 감미로운 선율과 담배 연기만큼 고독이 짙게 묻어나는 기타연주로 내면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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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잘 곳이 없어 지인의 집을 전전하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르윈은 뉴욕이라는 섬에서 고립된 채 유목민적 삶을 살아간다. 집 나온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는 무일푼 음악가의 암담한 현실을 코엔형제는 소소한 일상처럼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시카고로 오디션을 보기 위해 남의 차를 얻어 타고 떠나는 여정은 순례와도 같다. 전 애인 진 버키(캐리 멀리건)는 저주를 퍼부으며 낙태비용을 내라고 몰아친다. 삶은 점점 뒤죽박죽 꼬여만 가고 음악을 포기해야할 시점에 도달한다. 그러나 여전히 음악은 그에게 치유이자 안식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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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반, 뉴욕의 겨울을 배경으로 포크송 가수의 비루한 삶과 예술을 다룬 코엔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을 보면서 문득, 한국의 예술가들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떠올려본다. (어쩜 이리도 영화 속 60년대 르윈과 똑같을 수가 있는가!)

가난한 예술가들은 압축성장이라는 산업화의 논리 아래 생산성이 낮은 아웃사이더로 전락한다. 사회의 하부구조로 내려앉은 하층민이 된지 오래다. 산업화에 도움이 되지 못하니 수익 창출도 못하는, 그래서 늘 생계에 허덕여야 하는 잉여인간이다. 연금, 실업급여도, 소득공제도 없는 예술가는 우리사회에서 법적, 제도적으로 백수일 뿐이다. 수입이 없으니 세금도 내지 못하고 생산인구의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비생산인력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고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융성위원회에서 아이디어만으로 성공하는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암담한 현실 속, 기로에 선 예술가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공허하고, 비현실적인지, <인사이드 르윈>이 그리는 꿈과 현실의 괴리만큼 공허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밥을 굶지 않을까, 월세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예술가는 늘 절박하다. 우리사회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며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예술 따위는 때려 치고 취업을 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예술가가 유령처럼 되어 버린 건 결코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코엔이 말하는 방식처럼, 르윈이 앨범을 내도 저작권을 갖지 못하는 부조리한 생태계는 예술가를 억압한다. 그저 돈 몇 푼 받고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야하는 암담한 현실과 맥이 닿아있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예술을 하겠다는 얼빠진 예술가 지망생에게 당장 그만두고, 산업화 세대인 아버지 마냥 열심히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강요한다.

포크송 가수인 르윈은 가수로서 성공하고 싶지만 폐부를 파고드는 차가운 뉴욕의 겨울바람처럼,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꿈을 포기하고 산업화일꾼이 되어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 현명한 삶일까?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가르친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굶어죽기 딱 좋은 직업이다. 그런 현실을 외면한 채 미래의 먹을거리는 콘텐츠라며 이제부터 고부가가치 콘텐츠산업을 육성합시다! 라고 외치는 정부의 발표는 공허해 보인다.

작은 카페에서 음악을 하는 무명의 밥딜런이 감초처럼 잠시 영화 속에 등장한다. 르윈 데이비스의 통기타 음악이 밥딜런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음악을 포기했다면, 우리는 위대한 아티스트를 만나지 못했을 거야!’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무명의 밥딜런을 통해 어쩌면 코엔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르윈이 밥딜런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면, 영국에서 조사한 설문 결과인 영화, 음악, 책, TV를 통틀어 세계를 변화시킨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된 ‘Like a Rolling Stone'는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

코엔형제는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느껴보라는 듯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관객에게 보여주며 반추하게 만든다. 르윈이 음악을 포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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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은 삼류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르윈을 통해 예술가로 살아야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성찰한다. 그에게 주어진 예술가로서 떠나야 하는 여정은 고행의 길이다. 코엔의 노련한 연출력 때문에, 영화 속 아련한 선율과 감미로운 목소리를 따라 가다보면 곧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현실의 피폐함 속에서 그나마 위로받고 탈출구가 되어주는 것은 예술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아마도 코엔이 말하고 싶었던 시니컬한 역설이 아닐까?

자본주의는 예술이 갖는 성과물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성공이 예술의 전제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콘텐츠가 미래의 먹을거리요 성장 동력이라고 발표하는 정부의 산업적 잣대만으로는 콘텐츠 강국이 되기 어렵다. 콘텐츠가 갖는 부가가치와 관광수입, 고용인력 창출 같은 산업통계치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을 창조하는 원동력은 예술가다. 예술인의 고유한 숨결과 감성, 창조적인 영감, 순수한 영혼이 살아 있어야 비로소 고부가가치가 높은 콘텐츠가 탄생할 것이다. 정부정책을 마련하려면 콘텐츠가 아니라 콘텐츠를 잉태하는 예술가에게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 그들이 사회적 안전망 안에 들어있지 못하는 한 좋은 콘텐츠가 나올 수 없다. <인사이드 르윈>은 그런 의미에서 혜안을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실의 고통 속에서 나락에 빠진 채 예술을 포기할까 고민하는 예술가들이여, 현실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꿈을 포기하지 마시라!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경배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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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민병선

등록일2014-04-06

조회수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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