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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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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종교 역사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그리스도교가 유럽에서 맹렬하게 세력을 펼쳐나가던 6세기-10세기경, 이미 각 지역에 정착한 종교와 맺은 관계에 따라 다양한 종교 양태가 등장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 그리스도교는 유난히 기복적 성격이 강한데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스페인 국민 고유의 종교 심성과 결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페인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스페인에는 요즘도 마치 우리나라 점집을 연상시키는 개인 사당들이 사람들의 맘을 달래준다고 한다. 물론 사당에는 동자상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가 모셔져 있다.

<비우티풀>(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극영화, 스페인, 2010년, 148년)에서는 우리의 내밀한 심성을 들킨 것 마냥 무엇인가 거북한 냄새가 난다. 이를테면, 불법 이민자들의 척박한 인생살이라든가, 그들을 등쳐먹고 사는 브로커들과 경찰들,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돈을 버는 모습, 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가 아이들을 학대하는 장면, 남편의 형과 바람을 피우는 여인, 말기 암으로 곧 죽을 운명에 놓인 주인공 옥스발 등등,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영화는 또 왜 그렇게 긴지, 두 시간 반이나 좌석에 앉아 있자니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그런데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고 칸 영화제에서는 옥스발을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이 남우주연상까지 받았다니 중간에 자리를 박차면서 나갈 수도 없고.

옥스발에게 주어진 인생은 잔인하다. 그는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며 영적 능력까지 갖추었지만 더러운 일에 관여할 수밖에 없고 끔찍한 일이 계속된다. 가정도 제대로 꾸리기 힘들고 곧 죽을 목숨이지만 아이들을 마땅히 맡길 사람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곳에서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종종 던진다. 세상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하지만 옥스발에게서 선, 악, 참, 거짓, 아름다움, 추함 등을 찾아내긴 어렵다. 모든 질문을 뒤로 한 채 그저 나타났다 아쉬움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말 뿐이다. 그럴 듯하게 설명하려 할 때 오히려 <비우티풀>은 그 의미를 잃고 말텐데 인간 실존이란 원래 본질에 앞서는 것이라서 그렇다(사르트르).

이냐리투 감독의 대표작으로 <21그램2003년>과 <바벨2006년>을 꼽을 수 있고 두 영화 모두 <비우티풀> 못지않게 불편했다. 그러나 영혼의 무게를 가늠하고(21그램) 언어와 문화의 대류對流 현상을 간파(바벨)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메시지를 선사한 작품들이다. 스페인 감독이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인물로 이냐라투 외에도 <그녀에게2002년>의 알모도바르 감독, <판의 미로2006년>의 델 토로 감독, <씨 인사이드2007년>의 아메나바르 감독의 있는데 사실 그렇게 나열해놓고 보니 스페인 영화의 정서가 이해될 듯도 하다.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많지만 일반 관객의 관심을 골고루 끌어내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화면에서 낯선 나라의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옥스발의 딸이 어느 날 아빠에게 영어단어 ‘뷰티풀’의 철자법을 묻는다. 그러자 옥스발은 소리 나는 대로 ‘biutiful’이라 써준다. 과연 그 장면에서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아니면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할까? 삶에는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까,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그런 게 인생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 영화를 보려고 하시는 독자가 있다면 맘을 단단히 먹고 극장에 들어서야 할 것이다. 재미를 찾을 게 아니라 생각을 해야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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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박태식

등록일2012-01-03

조회수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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