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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합평회

<부산행> 합평회 (민병선, 성진수, 박우성, 송아름, 이수향) *스포 있음*

 

감독: 연상호,   각본: 박주석  

출연: 공유, 정유미, 마동석, 김의성, 김수안, 최우식, 소희  

개봉: 2016년 7월 20일

 

<부산행> 합평회

 

날짜: 2016년 7월 12일

참석자: 민병선, 성진수, 박우성, 송아름, 이수향

 

 

민병선 : 저는 연상호 감독에 대한 기대가 많이 컸던 것 같아요. 예전에 합평회에서도 연상호 감독을 여러 번 다뤘잖아요. 감독의 문제의식, 사회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는 감독의 고집이 잔혹성, 이런 것들과 결부되면서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를 폭력으로 그리죠.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보다 자유롭게, 제약을 받지 않고 이야기한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부산행>이라는 영화가 그릇이 크고 또 오락적인 상업영화 틀에 있기 때문에 이 안에서 어떤 접점을 찾을 것인가 궁금했어요.

감독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한국식으로 좀비를 재해석하지 않을까 싶었죠.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이 영화에 있었느냐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다고 봐요, 심플하게 오락영화로 가는 것 같단 생각이예요. 한편으로는 굉장히 똑똑하다 싶죠. 상업적으로 가고 이전 영화의 세계는 일부러 넣지 말자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면이 아쉬웠어요. 다른 분들은 그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 듣고 싶습니다.

 

이수향 : 저는 이 영화 재미있게 잘 봤어요. 연상호 감독 팬이어서 실사 영화를 어떻게 찍을까 궁금했었거든요. 이 영화를 보면 기존에 감독이 갖고 있던 세계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감독이 갖고 있는 비판적인 포즈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엄청난 자본이 들어간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대중성으로 풀어내야 된다는 고민이 같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론적으로 그런 점들이 동시에 잘 드러난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결론적으로 제가 보기에는 그 양자 다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여름 맞이 대작 영화들 속에서 나름대로 대중적으로 선방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나 서사적인 내러티브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상업 대중영화의 틀을 갖고 있어서 큰 재난 앞에서 사람들이 힘을 모아 뭉치고 노력 해서 결국 가장 약한 존재인 노약자, 임산부, 여자, 어린아이의 범주에 드는 두 명을 결국 구해내죠. 그런 존재들을 구해내는 과정을 휴머니즘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그런 점들은 새로울 건 없었어요. 아마 이 부분은 대중성의 고려를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제가 흥미로웠던 부분은 원래 감독이 갖고 있었던 의식이 이 영화에 많이 들어가 있다고 느낀 부분이에요. 특히 저는 <부산행> 얘기 들을 때부터 <설국열차>가 생각났어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재난과 공포가 닥쳤을 때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은 또 ‘세월호’를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연상을 거부하지 않고 모든 게 연결되도록, 어떻게 보면 너무 직접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문제의식들이 연상되는 장면이 많았어요. 나라에 재난이 닥쳤을 때 국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들, 그 절망감 같은 것들을 대사로 녹여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은 대사가 너무 생경하게 진실을 따지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국가가 그런 재난 상황에서 관제탑 역할을 못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만 하고 허울뿐인 국가의 정비, 방역, 군사 시스템이 무사히 진행이 되고 있다고 뉴스 같은 걸로 끊임없이 안심을 시키는 장면들, 사실 국가에 난리가 났는데 그걸 단순하게 폭력이라고 규정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장면들이 영화에 나오죠. 현재의 대한민국을 너무 명징하게 보여줘요. 우리가 씁쓸하게 생각하고 있는 현실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서늘하게 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개개인의 윤리의 측면을 묻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 있어서 내 목숨 살리자고 노력하는 것이 결국 다 같이 죽는 길이 아니냐는 문제의식이죠. 다만, 여기에 나온 가치들이 너무 대사로만 표현되고 성악 갈등 상황 아래서 등장하다 보니 다소 단순하고 도덕적인 훈계조의 말들처럼 보이는 게 좀 아쉬웠어요. 좋은 지적들이지만, 스토리에 녹여들지 못하고 말로만 공중에 떠돈다는 느낌?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노숙자’가 등장하는 장면이예요. 사실 노숙자는 사회 시스템이나 약자 보호 시스템에 있어 가장 하류에 있죠. 일반 빈민들에게 가는 온정의 시선에 비해서도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게으름의 존재-더러운 존재로 여겨져 그다지 동정 받지도 못하는 면이 있죠. 그래서 우리가 사회적으로 챙기고 돌봐야할 고아, 독거 노인, 가난한 사람들 등의 카테고리에도 잘 안 넣는 부류잖아요. 뭔가 자본주의의 얼룩같은 존재들인데, 그걸 존재를 끌고 가려는 감독의 의식이 보였어요. 단순히 여자, 노인뿐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계층적으로 제일 밑에 있는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의 목숨마저도 끝내 살리려고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국가와 개인이 재난 상황에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느냐를 문제 삼는 감독의 윤리적인 태도가 엿보이는 것 같아요.

저는 마지막으로 좀비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좀비라는 게 사실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죠. 좀비가 한국적인 느낌은 아니잖아요. B급 코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월드워Z> 등 이후로 할리우드에서 주류 장르로 들어오긴 했지만, 우리가 좀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한국에서 좀비영화가 나온다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 저는 아직 생각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하나는 일단 좀비라는 것이 가지는 무차별성, 국가나 방역, 의료 시스템에 쉽게 잡히지 않는 무차별적인 전염력 이런 부분에 있어 착안을 한 것 같고 또 하나는 좀비라는 존재가 선악, 계층에 상관없이 물리면 죽잖아요. 이런 부분이 생각해 볼 게 더 있지 않을까. 좀비를 가져온 이유가 뭘까. 어쨌든 좀비를 가져온 게 이색적이었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아요.

 

송아름 : 저도 재미있게 봤는데요, 후반에 약간 늘어지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상당히 흥미롭게 본 영화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좀비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에 사실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고 기대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이수향 선생님이 앞에서 얘기하셨던 것처럼 한국에서 좀비를 어떻게 다루냐에 대한 생각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사실 좀비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요. 그 용어를 쓸 필요가 없는 게 이들은 감염자일 뿐이고 재난의 한 유형으로 이상감염자가 나온 거죠. 한국 저예산영화들에서는 좀비를 다룬 영화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그런데 이게 메이저로 나오면 어떻게 될까 생각을 했었죠. 요즘에는 관객들이 좀비라는 존재를 알기 때문에 좀비의 특징을 지닌 것들이 나왔을 때 이게 뭐야 라고 지체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게 되게 이상하거든요. 감염자가 뻔히 뭔지 아는데. 이 영화는 15분, 20분 만에 피해야 돼 이거부터 시작하는 게 시간상 괜찮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보통 재난 영화에서 국가 체제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구하느냐 혹은 구하지 못하느냐를 중심에 두는데, 이 영화는 이미 그게 후경인 것 같아서 아주 적절해 보여요. 한 발 나아간 것 같구요. 국가가 얼토당토않게 이 상황을 폭력사태라는 전혀 틀린 정의를 내리는 것에서 표상만 좀비처럼 나오는 것뿐이지 이 재난영화를 다루는 게 괜찮았어요.

그리고 한국적인 영화라고 생각이 드는 점은 여기 나오는 바이러스들을 처단하는 모든 방식이 사실은 정말 손에 가까운 도구들만 쓰잖아요. 미국 좀비영화들 같은 경우 총이 중요한 무기인데 그걸 몸으로 부딪히도록 가져왔던 것도 좋았고. 그리고 이 영화를 좀비영화로 보지 않는다면 재난에서 이야기하는 인간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이 <월드워Z>보다는 <미스트>에 더 가까울 거예요. 약간 아쉬웠던 건 뭐냐면 김의성의 역할이 너무 절대 악이라는 거예요. <미스트>의 신도 여성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 처음부터 악처럼 등장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생긴 것부터, 옷차림이나 행동부터, 나쁜 짓을 할 것 같고 그게 너무 단적으로 드러나 있어서 어떤 절대 악을 상정하고 달려가는 게 약간 촌스러운 부분이 있지 않나 싶었어요.

 

박우성 : 방금 영화를 보고 나와서 가지런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지만 몇 가지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우선, 애니메이션에서 실사영화로 넘어온 셈인데, 그 중간단계로 좀비영화를 선택한 것은 여러모로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화의 상상력과 실사의 리얼리즘 사이의 교두보로 좀비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둘째, 연상호 감독은 논리 강박증이 있어요. 인물의 행동 기저에 깔린 논리를 정교하게 구축하는 것이 그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외양과는 달리 연상호 감독은 고전주의자에요. 그게 성공했을 때 어떤 충격적인 반전이 가능한지는 <돼지의 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산행>의 경우 그 강박이 지나쳐서 논리의 정교함이 기계적인 맞물림 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아요. 셋째, 이 영화는 결국 ‘재난’과 재난 이후의 ‘대처’가 기본 얼개인데, 그런 맥락에서 봉준호의 <괴물>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괴물>과 비교할 때 결정적인 차이는 가족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국가가 재난의 원인과 싸우지 않고 도리어 재난 때문에 고생하는 국민들과 싸우는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주며 어떤 공백과 균열의 풍경을 응시한 게 <괴물>의 성취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부산행>은 그러한 공백과 균열을 가족이라는 틀 안에 말끔하게 가두는 느낌이었어요. 문제는 그 가족주의라는 것이 아버지의 성장, 눈물, 희생에 방점을 찍는 이른바 부계사회의 신화에 철저히 종속된다는 점이에요. 아버지가 부재한 자리를 아버지의 죽음으로 채우는, 말하자면 기승전‘아버지’의 서사 말이에요.

 

성진수 : 전 전체적으로 좀 지루하게 봤어요. 좀비영화로서 그렇게 재미있진 않더라고요. 좀비영화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좀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상황을 만들어서 인물들을 극단의 위기로 치닫게 하는 방법만으로는 흥미를 끄는데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앞서 가족, 국가의 부재 등에 대한 언급을 해주셨는데, 저는 핵심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연상호 감독의 영화가 독특하고 깊이가 있고 충격을 주는 이유는 작품의 인물들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로 캐릭터를 다층적으로 표현해내는 감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연상호 감독은 사람이 가진 다양한 측면들을 그려왔던 거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한 캐릭터에 몰입이 되기 어렵지만 동시에 모두 설득력을 가지기도 하죠. 그리고 그 캐릭터 자체가 영화를 이끌어가면서 종종 반전이 되기도 해요. 연상호 감독의 영화에는 플롯에 의한 반전이라기보다는 캐릭터가 만드는 반전이 있죠. 근데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인물이 전부 평면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연상호스러운 캐릭터는 누가 있었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마 남자 역무원과 마지막에 김의성이 감염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 동조했던 승객들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인물들이 영화에서 뭔가 더 역할을 해주었으면, 관객이 저 상황에서 누구도 쉽게 미워할 수 없게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거나 하는 역할을 더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공유의 캐릭터도 연상호스러운 인물을 목표로 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노인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자기 딸에게 ‘양보 하지마’, ‘네가 살아야 해’ 라고 말하는 인물이잖아요. 그 인물이 변해가는 그런 변화지점들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공유의 연기가 너무 맹맹해서 그런 게 전혀 전달이 안 되더라고요. 이게 공유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영화 전체적으로 그런 캐릭터나 상황을 끄집어내는 게 약했던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한 가지 좋았던 점은 이 영화에서 국가, 소위 구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단 거예요. 다른 영화 같았으면 컨트롤 타워에서 우왕좌왕하는 공무원들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을 보여줬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그걸 안 보여주더라고요. 저는 그게 이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장점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위기 상황에서 개인의 윤리적 선택의 문제가 더 돋보일 수 있으니까요. 이 영화가 좀 더 인물들을 잘 그려냈다면 오히려 이 이야기 속에 벌어지는 사건이 국가와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인물, 즉 사람이란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로 더 집중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애매하게 되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 정도로 좀비가 늘어나면 국가도 통제가 불가능할 것 같아요(웃음). 영화 속에서 국가가 하는 정도가 다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민병선 : 스타일 얘기를 좀 덧붙이자면 컷 구성이 애니메이션을 다루는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봤어요. 배우들이 연기를 콘티를 그대로 옮기듯 하는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컷 구성과 영화의 컷 구성이 똑같은 것들이 많고요.

 

성진수 : 어떤 건지 설명 좀 해주세요.

 

민병선 : 클로즈업 때 표정연기, 투 숏, 쓰리 숏의 구도라든지, 좀비들을 정면 샷으로 담는 장면들이 저예산 방식의 애니메이션에서 익히 봐왔던 구도와 기법이라고 봐요.

 

이수향 : 감염자들이 올 때 삼각형으로 오면서 위에 겹쳐지잖아요. 그게 굉장히 만화같더라고요.

 

민병선 : 연상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인물간의 구도, 특히 앵글과 클로즈업 숏들이 비슷하더라고요. 그게 실사로 보니까 굉장히 마이너 해 보였어요. 독립영화처럼 보였어요. 마지막에 군인들 에필로그 숏들도 만화적인 것처럼 보이더라구요. 애니메이션이 실사버전으로 오면서 그 특유의 유니크함이 사라지고 마이너 해 보이는 건 왜일까요? 그래서 상업영화라면 더 헐리우드 적인 구성이나 컷 구성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어요. 재난영화의 클리셰한 것들을 제거하니까 저는 자꾸 마이너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른 의미로는 단조롭다? 이렇게요.

또 한편으로는 이야기적 구성에서 KTX가 동대구까지 가는 시간이 2시간 반 정도밖에 안되니까 그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미국영화처럼 안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괜히 청와대 장면 삽입되고 국방부 보여주고 하면 돌직구 같은 느낌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은 해요. 여하튼 결과는 관객의 몫이라고 봐요. 처음에 국가의 문제를 건드릴 때, KTX타기 전에 급박하게 소방차가 가는걸 보여줄 때, 저는 그 설정이 좀 이상했어요. 영화 시작은 오히려 서울에서 반대인 먼 지방에서 시작하거든요. 이야기의 플롯 상 논리가 과연 맞나 싶은거죠. 감염은 서울역 출발 KTX보다 더 빨리 퍼져나가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논리가 안 맞을까봐 기차 외부의 상황을 빼버리고 밀폐공간으로 집중한 거 같아요. 굳이 논리를 따지지 않아도 이 안에서의 문제만 다루면 되니까. 스타일과 한정된 공간 등 그런 총체적인 진단들이 이야기를 마이너하게 간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좀비가 돼서 위협하는 패턴 또한 단조롭고요. 굉장히 깊은 핵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그걸 쉽게 가려고 가족이라는 메타포를 끌어들인 거 같아요. 저는 그게 대중에게는 신선하다고 보는데 비평적 관점에서 보자면 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죠. 쉽게 접근하려다 보니 가족 대 좀비 이런 구도가 되잖아요? 이분법적 구도로 가잖아요. 좀비와 나, 선을 그어버리다 보니까 저는 오히려 해석에 문제 혹은 불균질이 왔어요. 왜냐하면 좀비를 보면서 세월호도 떠오르고 <설국열차>도 떠오른다고 하셨는데, 저는 요새 뉴스에 많이 나오는 중동이나 브렉시트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좀비가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영화에서도 계속 피에 대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감염이나 피, 깨끗한 피를 보호해야해 라는 식의... 대표적인 사람이 김의성이 될 수 있죠. 그런데 제3세계, 중동의 난민, 유럽도 계속 보수화되면서 순혈주의로 가잖아요. 미국의 흑백갈등도 떠오르고... 이민과 난민을 막고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모습이 저는 KTX의 인간들의 모습처럼 보여서, 감독이 너무 이분법적 구도로 몰아가다 보니까 그런 게 아닌가 싶고, 아쉽더라고요. 좀비로부터 가족을 구해야 되는 이야기로 가야하니까 팔에 노란 장판 테이프를 붙이면 무적이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고요. (웃음)

 

박우성 : 이 영화는 이른바 ‘윤리적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점에 두 군데 있어요. 하나는 야구부 주장이 좀비가 된 야구부원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 그러니까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방금 전까지 함께 웃고 즐겼던 좀비를 죽여야 하는 순간이 첫 번째입니다. 주인공 무리가 좀비의 공격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안전한 곳으로 진입하려는데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들의 귀환을 가로막는 광기어린 순간이 두 번째에요. 저는 이 순간들이야말로 연상호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가 최종적으로 마주하는 지점도 그러한 윤리적 뒤틀림의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이전 영화와 달리 <부산행>은 그런 뒤틀림을 너무 간단히 해명합니다. 사실 이전 영화에서 그런 균열은 한명의 캐릭터를 통해 입체화되었어요. 선과 악의 혼재나 가짜와 진짜의 교차가 특유의 효과를 발휘하며 영화 전반에 기괴한 공기를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인물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모순의 풍경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부산행>은 그 입체적인 풍경을 단순화시켜요. 착한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이 뚜렷하게 분리되어 대결하는 구도니까요. 가령 배우 김의성이 맡은 캐릭터는 눈빛, 말투, 행동 모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악랄합니다. 반대로 공유가 연기한 주인공은 무능한 아버지에서 유능한 아버지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아요. 그리고 이러한 단순한 이분법이 결국 아버지의 희생이라는 대의를 비장하게 만들고 최종적으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극화시킵니다. 이것은 제가 알고 있던 연상호의 세계관이 아닙니다.

 

이수향 : 저도 영화 재미있게 봤고 울 장면에서는 열심히 울었지만 (웃음) 보고 나서 왜 이렇게 단순하지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아까 <설국열차> 얘기를 박우성 선생님이 말씀하셔서 생각이 났는데 <설국열차>보다 훨씬 구조가 단순하잖아요. 결정적으로 어느 점이 그러냐하면 <설국열차>는 칸칸이 나눠져 있고 각각의 특색 있는 그 칸을 뚫기 위해 다 다른 방법을 써야 하잖아요. 이거부터 완전 다른데 여기는 칸을 뚫고 나가는 것 자체도 진짜 단순해요. 손목에 테이프 감고 야구 방망이를 드는 등. 특히 제일 중요했던 마지막 칸 쯤에 주인공 일행들이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살아있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던 상황에, 선과 악이 혼재된 극도의 갈등을 일으켜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할머니 때문에 이것을 쉽게 해소해버리잖아요. 처음부터 복선처럼 아무 역할도 안하시는 할머니를 계속 한 컷씩 잡아줬었어요. 별 맥락도 없이 그 할머니를 따로 컷으로 잡았기 때문에 그 할머니가 분명히 무슨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보였죠.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방식이 단순하게 넘어가버리기 때문에 생각보다 깊이적인 부분에서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실사영화인데도 왜 이렇게 연상호스럽지 생각을 했는데,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인물들 얼굴을 귀엽고 예쁘게 그리기보다 민중화가처럼 거칠고 뾰족하고 화가 난 것처럼 그리잖아요. 이 영화에서도 인물 클로즈업이 많은데, 상황이 급박한 영향도 있겠지만, 노숙자를 비롯해서 역무원, 김의성의 얼굴, 아비규환 상황 속 사람들의 얼굴 등에서 감독이 존 애니메이션에서처럼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표정 같은 걸 원했던 것 같아요. 이들이 실사 영화 배우들인데도 말이죠. 실사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달리 엄청 나쁜 표정 안 해도 배우의 얼굴로 어느 정도 감정이 전달되는 게 있는데 너무 애니메이션스럽게 일그러진 얼굴, 분노한 얼굴, 야비한 얼굴 이런 것에 집착했던 게 아닌가. 이런 연출이 저에겐 난삽해 보였어요.

그리고 또 하나, 저는 공유의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는데, 갑자기 삽입화면으로 공유가 간난아이인 딸을 안았을 때의 감동적인 그 순간이 갑자기 뮤직비디오 화면으로 등장해서 눈물이 말랐다는(웃음)... 저는 그 화면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딸에 대한 주인공의 심경은 알겠는데 영화 전체에서 톤이 튀고 뜬금없어서요. 저는 그 장면은 반드시 삭제 하던가 필터라도 하나 씌우던가 하는 식으로 다른 방향으로 톤을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아쉬운 건 이 영화에서 KTX 내부가 중요한건 알겠어요. 그런데 외부의 상황에 대해서 우린 궁금한데 거의 보여주질 않아요. <설국열차>는 내용이 진행되면서도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주변 상황을 계속 보여주고 환기시켜줬단 말이에요. 중심부를 향해 달려가는 열차 소리와 원근법적인 시선 사이로 현실감각의 유지를 위해 감각적으로 삽입되는 장면이 있단 말이죠. 그런데 이 영화는 역에 도착할 때의 주변 논밭하고 마지막에 군인들 나오는 장면 이외에는 밖을 거의 안 보여줘요. 국가도 안 나오지, KTX밖의 화면이 인서트로도 안 나오지, 영화 화면 구성이 너무 단선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어요.

 

송아름 : 아까 민병선 선생님이 국가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얘기를 하셨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그 사람들이 거기 들어가 있는 것에 대한 단순한 정당성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설국열차>랑 비교를 많이 하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감기>나 <연가시>가 많이 생각이 났어요. 오히려 <감기>나 <연가시>같은 경우는 국가가 이들을 없애려고 하는 것, 특히 <감기>같은 경우가 그랬고 <연가시>는 이게 결국 어디서 왔는가를 따져 가다 보면 국가와 관련된 무엇, 이런 걸 추적해 나가는 그런 방식이었는데, 국가가 결국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부산행> 이미 4~5년 지난 현재의 우리가 더 이상 그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고 전제하고 있죠. 단적으로 저 두 영화에는 짧던 길던 모두 대통령이 등장하거든요. <부산행>은 거기에 관심도 없는 거죠.

그리고 미국이나 이런 쪽 좀비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장면 중에 하나가 뭐냐면, 난리가 난 상황을 방송을 해주잖아요, 그러면 그 리포터나 아나운서한테 좀비가 확 달려들면서 화면이 사라지는. 어찌보면 이건 좀비 때문에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는 것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장면인거죠. 근데 <부산행>에서는 이미 국가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해요. ‘이건 폭력사태입니다’라는 방송이 나올 때 사람들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며 저게 단순한 폭력이 아닐 텐데 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런데 아마 그 방송은 그렇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속 나가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상황, 그게 아예 정리되지 않는다 하는 혹은 아예 그걸 파악하지 못한다는 상황에서 기차로 들어오고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저는 나름대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한 가지는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마땅한 단어가 없어 좀비라고 이야기는 계속하고 있지만 사실 이 감독은 그걸 많이 피하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좀비로 가게 되면 이 좀비가 어디에서 유래가 됐고 그리고 그걸 어떻게 하면 없앨 것인가로 가는 서사가 유력하거든요. 그게 너무나 지루해지다 보니 <월드워Z>같은 영화가 욕을 많이 먹었죠. 막판에 말도 안 되게 해결하는 이런 방식. 그리고 좀비 같은 경우는 나름의 발전 속도가 있잖아요. 느렸던 60년대의 좀비부터 뛰어다니는 좀비까지. 이렇게 변화하는 좀비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거죠. 그런데 그런 것들을 어느 정도 삭제하고 이게 바이러스에 감염된 누군가로 설정 해서 이렇게 물량공세를 한 건제, 저는 이걸 좀비영화로 보는 것보다는 재난으로 이야기 했을 때 훨씬 생산적인 이야기가 가능할거라고 생각해요. 생존이나 지키려고 하는 것, 그것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그게 너무 가족으로 갔기 때문에 그게 안타까워요. 사실 <감기>나 <연가시> 모두 가족서사에요. <연가시>의 김명민도 일에 치여 애들하고 전혀 놀아주지 못하다가 결국엔 내 자식, 그걸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거죠. 그런 방식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집요하게 가지 못하고 결국엔 가족을 놓지 못하는 것이 좀 그래요. 김의성도 감염이 됐을 때 엄마를 찾지 않았었나요? 고향이었나요?

분장이 어색했던 할머니 같은 부분이 저는 정말 한국적인 좀비라고 생각했던 게, 제가 파악하는 한국에서 나온 좀비는 괴물이 아니라 자기가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주인공이 되는 좀비가 많아요. ‘내가 이렇게 살아있어’, ‘나는 여기에 있을 가치가 충분하고 좀비가 돼서 더 행복해’, 이런 식의 영화들이 몇 년 전부터 계속 나오는데 거기 있던 갇힌 할머니의 모습이 사실 우리가 생각했던 이전의 감염자들과 같은 모습이 아니잖아요. 거기에서 문을 열어주는 방식이 단선적이고 유치하긴 하지만 그건 다른 나라에선 나올 수 없는 장면이겠다 싶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후반이 너무 아쉬운데, 이 후반이 촌스럽게 가는데 크게 기여를 한 게 음악 같아요. 음악이 너무 심하게 촌스러웠어요. 너무 감상적으로 가려는 것들이 있고 아쉽긴 하지만, 이 영화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재난영화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성취는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어요.

기차라는 것도 저는 밖이 안 보이는 게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강의 다닐 때 기차타고 다니면 밖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거든요. 특히 커튼 쳐버리면 모르는데 거기에서 터널 같은 걸 이용하는 방식이나 이런 것들이 오히려 협소한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나름은 잘 보여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진수 : 송아름 선생님이 말씀하신 음악에 대해서는 매우 동의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재난 영화에 <장수상회> 배경음악을 깔 생각을 할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어요. 심지어 그런 음악을 왜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지...

그리고 민 선생님이 얘기한 것처럼 상업성을 더 높이려면 국가나 무너지는 컨트롤 타워를 보여줘야 했지 않았나 생각이 들긴 해요. 그런데 그걸 안 보여줬다고 이 영화가 안 될 것 같진 않고, 흥행 여부는 솔직히 예상을 못하겠어요.

 

박우성 : 기본적인 설정들은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설정을 스스로가 제대로 감당하는지는 의문이에요. 좀비를 다루는 방식만 봐도 그렇습니다. 좀비는 재난 상황의 기승전결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물리적 강도 혹은 공포의 강도로써 좀비 말입니다. 한편, 노숙자야말로 기존 연상호 영화와 연결되는 캐릭터라 볼 수 있어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불순한 공포를 시종일관 자아내니까요. 하지만 그 역시 위기 상황에서 거리낌 없이 희생의 길을 선택합니다. 물론 희생 자체가 잘못은 아니에요. 문제는 희생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물리적 강도로서의 좀비에 대한 맞대응으로서 기계적 선택으로서의 희생이라고나 할까요. 처음에는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꼼꼼하게 따져보니….

 

성진수 : 처음에 좋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을 텐데 뭔가요? 사실 좀 궁금해요.

 

박우성 : 좀 전에 말했지만 논리의 힘, 그러니까 고전주의자의 힘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상호 감독에게 고전주의자의 힘만 기대하는 것은 연상호 감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민병선 : 국가기능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 저는 이걸 만드는 분들도 애매했던 것 같아요. 군인들이 질서정연하게 무전을 통해서 통제하잖아요. 국가기능이 무너진 게 아니거든요. 국가는 국방이거든요. 명령체계가 살아있으면 무너진 건 아닌데 안 무너진 거면 필사의 탈출을 하는 열차가 우스워지죠. 그리고 불이 나면 엘리베이터 타지 말라고 하잖아요. 계단으로 가라고 하듯이 이런 재난상황에서 KTX 같은 철도가 과연 정확하게 관제탑에 의해서 기능할까도 의문이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컨셉이 좋다고 해서 밀어붙이는데, 과연 저런 재난 상황에서 저렇게 기차가 갈 수가 있을까 생각이 솔직히 들거든요. 창작 과정에서 이분들이 자기들도 논리에 있어서 많은 갑론을박을 했을 것 같아요.

연상호 감독의 작품으로서 색깔을 본다면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같은 작품들은 직접 각본을 쓴 건데 이 작품은 아니에요. <연가시>나 <감기>는 대형기획사의 기획 작품이잖아요. 저는 배급사가 기획개발을 의뢰하지 않았나 싶어요. 연상호 감독이 각색이라고는 나오는데 작가는 따로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품을 우리가 생각하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봐야 되는 측면도 있지 않나 생각도 들더라고요.

 

성진수 : 사실 저는 이 영화를 보러 오면서는 연상호 감독의 전작에서와 같은 기대를 하지 말고 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왔었거든요. 왜냐하면 이게 대형 영화이고 연상호 감독의 전작은 실사 영화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에 훨씬 많은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자기 영화를 만들었던 거잖아요. 그에 비해서, 이 정도의 블록버스터를 이전과 같은 시각을 갖고 접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충분히 이해하고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영화로 봐서도 사실 애매한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연상호 감독처럼 뚜렷한 영화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상업영화를 연출을 할 때 생기는 어중간함이 이 영화에 많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케일과 액션은 커져서 그것을 보여주는데 시간을 내주어야 하고, 사회의 문제나 인물의 갈등을 표현하는 지점에서 충분히 갈등의 핵심을 드러내지 못한다든지 하는 것에서요. 인물이 평면화되어 있지만 또 보면 여타 상업영화처럼 그렇게 평면화되어있지도 않아서 어떤 가능성이 있기도 하고, 여러 가지 어중간한 면들이 많이 보여요.

좀 다른 얘기를 한다면 저는 마지막에 왜 임산부와 아이를 살렸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또 아무리 임산부라는 설정의 여성이라고 해도 그 여자 캐릭터가 너무 적극적이지 않아요. 최소한 남편이 죽고 나서는 신체적으로 힘들긴 하겠지만 모성의 힘으로라도 더 적극적인 생존 혹은 아이를 구해내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요? 현실적으로 신체적 제약 조건이 있다는 건 알지만 어차피 영화잖아요. 내가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살아 남겠다는 변화 지점 같은 것도 줄 수 있는데 끝까지 정유미 캐릭터를 굉장히 수동적인 캐릭터로 그려요.

나중에 기차 칸에 간신히 올라탔을 때 공유랑 김의성과 정유미, 김수안(공유의 딸)만 남잖아요. 거기에서도 사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아이를 보호하는, 호러 영화의 ‘파이널 걸’ 유사한 캐릭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요? 영화 내내 살인마한테 시달리다가 자기 생존을 위해 살인마를 처단하고 살아남는 파이널 걸 같은 그 정도의 적극성 정도라도 표현할 수 있는데, 너무 여성 캐릭터와 아이가 수동적이고 도구적으로 사용된 것 같아요.

그리고 스타일적으로 왜 그렇게 정유미를 잡는 순간이 서사가 진행되지 않고 카메라가 멈춘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그 인물이 어려운 사람을 그냥 넘어가는 못하는 성격이니까, 그런 캐릭터를 통해 메시지를 줄 수도 있는데, 그 장면이 그런 순간을 만드는 것도 아니구요. 스타일적으로 그 인물을 포착하는 방식도 그렇고 역할도 그렇고 계속 의미없는 캐릭터로 전락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빨리 도망가야 하는데 정유미가 머뭇머뭇 거리고 그걸 카메라는 계속 잡아주는 데 특별한 의미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이 급박한 상황에서 행위를 진행시키지 않고 포즈를 거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게 감정적인 동일시가 잘 안되더라고요.

 

박우성 :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납작한 캐릭터입니다. 특히 어린 딸의 경우 사실 아이답지 않은 이야기, 그러니까 어른들에게 필요한 교훈을 아이 입을 통해 얘기하는 이른바 ‘아동의 도구화’와 같은, TV드라마에서 수차례 봤던 방식을 활용하고 있잖아요. 아버지의 성장을 위해 그 아버지의 아이가 도리어 아버지보다 훨씬 더 성장해 있는 상황 말이에요. 이것은 억측이지만 기존 연상호 영화의 문법이라면 배우 김의성이 맡은 캐릭터가 살아남아서….

 

성진수 : 김의성이 살아남는 것도 가능한 얘기 같아요. 혹은 너무 극단적이지만 마지막에 그 군인이 둘을 쏘던가요.

 

박우성 : 생존자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를 호명하는 노래 덕분이었잖아요. <부산행>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결국 아버지와 딸의 화해인 셈이죠.

 

송아름 : 사실 이 인물들이 전형적이에요. 좀비 영화로 빗대어 볼게요. 마동석 같은 경우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군인, 임신한 여성도 꼭 있어요. 그래서 물린 걸 감춰주다 보니까 태어난 아기가 좀비네, 이런 식. 그리고 젊은이들도 있고. 그리고 그걸 해결하려는 중심을 잡고 있는 사람이 있고. 여기서 특이한 건 사실 아이 캐릭터죠.

그런데 그 아이 캐릭터가 도구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이 있었고, 그래서 영화가 윤리적으로 가게 하는데 이 아이가 큰 역할을 해요. ‘우리 할머니도 아프다고 하셨는데...’ 그게 너무나 교과서 같은 말이죠. 그래서 그 아이가 어떤 역할을 할까 기대를 했었죠. <감기>같은 경우에는 ‘정말 애가 저렇게 나온다고 모든 게 해결이 돼?’ 화가 날 정도로 아이 캐릭터를 기능적으로 만들었는데 이번에도 약간 그런 부분이 있었어요.

또 <부산행>을 보면서 생각했던 게 뭐냐면 도대체 한국 영화에서 아빠는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 아버지의 계열로 봤을 때 아버지는 인자하고, 뭔가를 구해줘야 하고, 모든 것 위에 있어야 하죠. 나쁘게 말하자면 아버지 다음 세대들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로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저는 <로봇, 소리>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아버지라는 계열이 만들어가는 담론이 어떻게 생각하면 상식적이면서도 나쁘게 말하면 폭력적인 방식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세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너는 받아야만 해, 가만히 있어도 돼 라는 식으로요. <로봇, 소리>도 사실 대구지하철 사건이잖아요. 거기서 사라진 딸. 그런데 아버지와 계속 의견이 안 맞아서 아버지가 훈계하는 도중에 딸이 내려갔다가 지하철에서 희생을 당한 건데, 그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일들이랄지, 아니면 큰 일이 생긴다든지 하는 거요. 저는 그래서 그런 아버지의 계열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엄마는 지금 없잖아요. 엄마는 지금 부재인 거고, 정유미도 엄마지만 어떤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고요. 정유미라는 그 캐릭터도 처음에는 마동석을 휘어잡는 그런 사람으로 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후반에 가면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그 안에 있는 거고. 그래서 아버지의 캐릭터가 조금 더 입체적이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수향 : 송아름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그거 생각나네요. 20년 후에 이 영화의 아빠들이 <국제시장> 찍으면서 내가 그때 어떻게 살아냈는데 흑흑.. 이러면서 시작하는 거예요. 내가 그때 너네 좀비에서 구해내고..(웃음) 이런 얘기 하는 거죠. 이 영화가 가족주의적이라는 게 문제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저도 공감하면서 배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저는 사실 이 영화에서 연기가 두드러지는 배우가 별로 없었어요. 공유가 메인 롤로써 잘 눈에 띌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영화에서 죽어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일 노력을 많이 하고, 처음에는 냉정한 아빠였다가 아이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이런 과정이 나름 입체적인 인물 구성을 한 것으로 보이는 데도, 평면적으로 느껴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해 보였어요. 이게 시나리오의 문제인가 배우 연기의 문제인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민병선 : 공유가 캐스팅이 됐기 때문에 그래요. 왜냐하면 주인공 아빠가 김의성이라는 야비한 캐릭터였으면 감독의 스타일에 맞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갖고 있는 죄를 봤을 때는 이렇게 빨리 돌아서서 희생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닌 것 같아요. 굉장히 냉혹하고 잔인한 걸 그리려고 했는데 공유가 캐스팅이 된 거에요. 그러니까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갑자기 멋있어 지는 거죠. (웃음)

 

박우성 : 저 역시 배우 공유의 연기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아요. 하지만 좀 더 훌륭한 연기를 유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대개의 대사는 구어체가 아니라 문어체잖아요. 그러니 아버지는 분명 성장하고 있는데, 그렇게 성장한 아버지가 성장하기 전의 아버지와 똑같은 표정과 말투를 하고 있다는 의아한 상황이 펼쳐져요.

 

성진수 : 이 영화 보면서 드는 생각은 연상호 감독이 자기가 시나리오 쓴 영화 만들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근데 <부산행>은 잘 될까요?

 

민병선 : 흥행은 잘 될 것 같아요. 외적인 부분들이 있잖아요. 배급이라든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잘 될 것 같고.

영화의 결론 부분 있잖아요. 이게 정말 상업영화고 대중영화라면 결론이 이렇게 가면 안 될 거라고 생각은 들어요. 열린 결말로 다 열어놓잖아요. 관객 입장에서는 좀비들이 이렇게 창궐했는데 결론이 뭐야, 어떻게 된다는 거야? 하면 안 되고 명확하게 매듭을 지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관객의 몫으로 남겨주면 안되죠. 그러면 예술영화죠. 이게 상업영화로서 재난이 창궐했으면 그걸 어떻게 막았다 까지도 감독이 해줘야 하는데 그것까지 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고 생각은 들었어요.

 

박우성 : 다른 것은 몰라도 가족이라는 출구로 모든 것을 눙친 설정은 많이 아쉽습니다.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결국 그 노래가 들어간 것인데요. 아이의 구슬픈 노래는 극의 상황과 상관없이 그것 자체로 눈물을 자아내잖아요. 그것은 멜로드라마의 전략이기도 하고요.

 

성진수 : 이게 대중 재난 영화라면 민선생님 말씀처럼 엔딩은 좀 더 정리가 될 필요가 있는거 같아요. 이런 저런 방식으로 재난이 컨트롤되고 있다는 에필로그가 붙어줘야 할 필요가 있죠. 지금 엔딩은 그런 에필로그라고 볼 수는 없어요. 지금 부산만 빼고 한반도가 좀비한테 점령당했는데 부산이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영화에 없거든요.

 

이수향 : 마지막 장면에서 불타있는 좀비들의 시체와 차단막 뒤의 군인들의 대기 사항으로 보건대, 부산은 정리가 된 걸로 보이긴 했어요. 사실 <미스트>같은 영화에도 보면 맨 마지막에 다 죽었다고 생각해서 ‘우리 다 좌절이야 다 자살하자’ 그랬는데 딱 나가보니까 이미 정리가 돼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괜히 자살한 거예요. 그게 관객에게 짜증을 유발했거든요.

 

송아름 : 저는 제대로 해결이 되려면 그 둘이 살면 안됐다고 생각해요. 죽이는 모습을 안보여주더라도 소리만으로도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노래가 날리고 ... 1시간 40분정도 까지는 재미있게 보고 흥미롭게 본 부분들도 많았는데 후반 가서는 모든 걸 제대로 마무리 하려다 보니까 가장 뭉치는 게 가족이고 그게 너무 극단적으로 들어오니까 .. 노래 진짜 깜짝 놀랬어요.

 

이수향 : 마무리하자면 전 이 영화 재미있게 봤고요, 연상호 감독이 상업 대중영화를 맡았을 때 많은 재량이 있겠어요. 나름대로 감독의 취향이 들어갔던 것 같지만 아직 자기 욕심을 낼만한 위치는 아니어서 적당히 타협한 듯한 느낌은 드는데 감독의 앞으로 방향에 있어서 좀 더 나은 작품을 기대해봅니다.

 

민병선 : 요즘 영화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그러긴 하지만 역시 이미지이기 때문에 영화를 잘 찍는 감독들은 영상이미지에 있어서 재능을 발휘할 때가 있는데 연상호 감독은 영상적인 면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장기, 주목할 만한 비주얼, 정서를 목을 죄듯 조여 들어오는 재능이 있어요.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항상 기대할 수 있는 그럼 점을 주목하고 있다고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성진수 : 다들 열심히 영화에 펀치를 날리다가 갑자기 영화처럼 훈훈한 마무리를 하고 계시네요(웃음). 흥행 여부를 떠나서 이 영화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거 같아요. 한국 영화 산업이 재능 있는 감독을 캐스팅해서 본격적인 상업 영화를 만들 때 무엇을 중점에 두고 어떻게 감독을 활용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감독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여지를 좀 더 줬으면 좋겠어요. 아까도 엔딩에 대한 얘기를 나눴지만, 연상호라면 자기 영화를 가족주의 엔딩으로 끝맺진 않았을 거거든요. <사이비>의 아버지는 딸을 위해 눈물을 흘리긴 하지만 그 영화의 가족은 이 영화의 가족과 다르잖아요. 모든 면에서 영화가 어중간한 게 안타까웠어요.

 

박우성 : 개인적으로 연상호 감독에게 기대했던 것은 기괴한 세계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메이저 영화의 메가폰을 잡으면서 자신의 고유한 세계관이 많이 포기된 느낌이 들어요. 가족주의는 연상호 영화가 아니더라도 다른 영화에서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세계관이잖아요. 많이 아쉽습니다.

 

송아름 : 마이너 영화로 독특한 자기 영화를 갖고 데뷔했던 감독들이 메이저 영화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이도저도 아닌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아니면 잘 만들었음에도 그 특징이 너무 세서 파악되지 못하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던 그 특징과 메이저 영화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게 문제인 것 같은데, 어쨌든 메이저 영화로 가야한다는 것이 왔다 갔다 하면서 영화가 좀 희한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아쉽다는 생각을 해요. <부산행>같은 경우는 저 개인적으로는 머리 까만 좀비가 나오면 어떨까 이게 되게 궁금했거든요. 이게 잘 된다면 이후에 이런 비슷한 류의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서사는 좀 아쉬웠는데,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나 재난영화의 설정에서는 이 영화가 어느 정도의 성취를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여요. 덧붙여 한국 영화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가족주의를 어떻게 하면 다른 방식으로, 하다못해 우회라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합평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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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성진수

등록일201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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