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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화면에 담긴 흔들리는 청춘의 초상 - 정민아

<도노마>(Donoma)   월드 시네마, 월드 프리미어
: 거침없는 화면에 담긴 흔들리는 청춘의 초상

정민아 (영화평론가)


프랑스 파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며칠간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니 동시대 세계 젊은이들의 공통 감각이 추출된다. 낭만의 대도시 파리의 특정구역을 지도 상에서 찍고, 카메라를 쭉 줌인하여 당겨서 가까이 다가가보면, 서로 뒤엉켜 상처주고 좌절하고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는 다양한 청년들의 눈물과 웃음에 마주한다. 영화는 거침없이 마구 써내려 간 한 편의 일기처럼,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랩처럼, 자유분방하며 폭발적이다. 스크린 표면 위로는 젊고 독특한 영화적 색깔이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 흩뿌려져 있다. 다문화도시 파리의 생기는 아이티에서 태어나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에서 성장하고 파리에서 활동하는 진 카레나르 같은 다양한 이력을 가진 젊은이들로부터 수혈되는 것이다.

아름답고 섹시한 스페인어 백인여성 강사, 소매치기로 생존하는 건방진 열일곱 살 백인남자, 백혈병에 걸린 언니를 돌보는 부자 소녀, 말이 아닌 행위로 소통하고 싶어하는 흑인여성 사진작가, 촌스러운 패션에 여자의 환심을 사지 못하는 아르바이트 인생 흑인 청년, 전직 모델이며 여자들에 얹혀사는 흑인남자, 흑백 혼혈이지만 백인의 외모를 하고 있는 성공한 여성 사진작가, 갱생하여 종교적 삶을 살고 있는 전직 갱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서로 얽혀 들어가며 극적인 드라마를 전개한다.     

인물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다른 고민들을 가지고 있지만, 타인과의 관계맺음에서 생겨나는 권력, 애정, 좌절, 소통, 기쁨, 희생, 냉소, 동정 등의 각종 인간적 문제를 함께 겪어나간다. 다양한 삶의 단면들을 잡아내는 카메라는 인물들에 가까이 다가가 클로즈업으로 얼굴을 포착, 커트 없이 핸드헬드로 좌우 팬 이동하여 대화하는 인물들을 흔들거리며 비춰준다. 스페인어 강사, 부자 소녀, 사진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들려줄 때면, 화면은 회상구조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교차편집으로 연결하는 독창적인 방식에서 긴장감을 창출해낸다. 때로 프레임 안에는 더 작은 프레임을 설정하여 옛날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인물과 사건을 가둔다. 간혹 비추고 있던 피사체를 포커스 아웃하거나, 인물이 움직이면서 목소리 볼륨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고, 한동안 소리가 사리지고 이미지만 무음으로 이어지고, 거친 입자의 화면 효과를 주어 이미지를 흐릿하게 만드는 등의 방식들은 긴박하게 전개되던 서사에의 몰입을 순간순간 깨뜨린다. 스크린 위에 펼쳐지던 현실은 갑자기 벽을 타고 내려와 진짜 현실로 대면하게 하는 놀라운 감각. 이 영화는 십 수년 전 <증오>로 아랍인, 아프리카인, 유대인들이 함께 사는 다이내믹한 파리, 그리고 인종과 계급 간의 벽이라는 비극적 현실에 거침없는 욕설을 퍼부은 마티유 카소비츠의 놀라운 데뷔작에 비견할만하다.

영화는 인종, 계급, 이민, 무산, 노동, 문화, 종교와 사랑의 갈등을 젊은이들의 단편적인 경험에 담아내지만, 이는 인생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거대한 문제로 인식된다. 강렬하고 역동적이고 슬픈 디아스포라의 파리. 재능과 패기 넘치는 감독의 강렬한 데뷔작이다. 양념으로 영화를 만든 과정이 담겨있는 에필로그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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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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