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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 강유정

강유정(영화평론가) 

배경은 인도다.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세 명의 젊은이가 택시에 탄 승객을 뒤쫓는다. 그런데 어렵사리 택시를 붙잡더니 하는 일이 강도짓이다. 그들은 남자에게 현금과 신용카드를 뺏는다. 집에 있다는 신용카드를 뺏기 위해 집까지 찾아갈 정도이다. 첫 장면에 묘사된 인도 뭄바이는 이처럼 무방비도시이다.

미국에서 갓 돌아온 젊은 사업가에게도 뭄바이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긴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이다. 부르지도 않은 일꾼이 와서 일을 도와주고는 하루 일삯을 요구한다.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실갱이를 하느니 돈을 줘서 쫓아보내는 게 나을 듯 싶다. 문제는 이 남자가 내일 또 오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뭐 이런 도시가 있지?

다른 한 남자는 지금 애인과 키스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여자가 집안의 결혼 요구를 더 이상 못버티겠다며 어떻게해서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남자를 조른다. 남자는 크리켓 대표 선수가 되면 결혼할 수 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감독은 선수가 되는 조건으로 1만 루닛을 요구한다. 그만한 돈이 어디있단 말인가, 막막하기 그지 없는데, 애인도 쫓기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이 세 이야기가 영화가 진행되면서 하나로 엮어진다. 마치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가 강에서 만나듯, 아무런 인연이 없던 사람들이 축제날 광장에서 마주치고 옷깃을 스치듯이 그렇게 그들은 어떤 인연을 향해 간다.

절정을 향해  수렴되어 가는 이들의 운명은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나 '범죄의 재구성'에서 보았던 리듬을 선사해준다. 가네샤 축제가 열리기 전, 디-데이를 세듯이 하루 하루 쌓여가는 사건들도 그렇다.

그런데 이 전망없는 뭄바이에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건달 3인방 중 한 사람은 불법 복제 출판을 하다가 진짜 책읽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그와 함께 사랑하는 여인을 발견하기도 한다. 친구들은 같이 범행을 저지르자고 하지만 그에게는 이 새로운 삶의 희망이 더 두근거리는 자극이 된다.

하지만 더 나빠지는 상황도 있다. 사업가 주변을 맴돌던 양아치들은 사실 토착 조직 폭력배로 목숨까지 위협한다. 사업가는 그저 멍하니 그들에게 당해야만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크리켓 선수의 상황도 좋지 않다. 여자 친구는 다른 남자와 선을 봐 감정도 없이 약혼을 하고 만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다.

마침내 가네샤 축제의 날 그들의 이 바램들은 은행강도 사건으로 압축된다. 각자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은 인물들의 욕망은 가네샤 앞에서 폭발한다. 가네샤는 지혜와 행운을 상징한다. 축제의 '소음' 속에 이들은 각기 자신의 삶을 개척할 지혜와 행운을 기원한다.

얼핏 비극적으로 끝날 것 같지만 미국 출신 인디아 혈통의 두 감독은 어렵사리 희망의 물꼬를 틔운다. 총에 맞은 청년은 다행히 목숨을 건지고, 폭발물 사고로 다친 아이는 건강을 회복한다. 어떤 곳이든 삶의 공간은 소음이 가득한 시끄러운 세계이다. 하지만 이 지긋지긋하고 잔혹한 세상 안에도 희망은 있다. 희망은 찾는 자 앞에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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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1-12-18

조회수3,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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