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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의 시네마 크리티크] J.D.샐린저의 초상, <호밀밭의 반항아>


 그 제목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Rebel in the Rye)는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의 작가 J.D.샐린저의 삶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샐린저(니콜라스 홀트)가 아직 작가의 꿈을 꾸기만 하던 1939년을 시작으로 콜롬비아 대학에 들어가 스승인 휘트 버넷(케빈 스페이시)을 만나고 자신의 글을 다듬어 잡지에 투고하며 단편소설 작가로 성장하는 과정, 연인이었던 우나 오닐(조이 도이치)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실연당하는 과정,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자신의 캐릭터인 홀든 콜필드를 끊임없이 떠올리며 의지를 다지고 전쟁이 끝난 후 우여곡절 끝에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쓰기까지의 과정 등 그의 작가로서의 삶을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을 적절히 섞어 이야기를 만든다던 그의 말처럼,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풍경을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글로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샐린저가 소설을 쓰는 동시에 자신의 일대기를 직접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곳곳에서 그의 삶이 놓인 배경을 마주할 수 있다. 영화는 어느 정신병원에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글을 쓰는데 자꾸만 실패하는 샐린저의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곧 6년 전이라는 자막과 함께 음악과 술을 즐기고 여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등장한다.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아버지로 인해 그에게는 극복해야 할 가난이 없었다. 대신 완전히 상류층에 속하지도, 그렇다고 서민의 삶에 속하지도 않는 어중간한 위치가 있었고, 빛나는 재능은 있었지만 그것을 발전시킬 기회도 학교나 제도와의 불화 속에서 제대로 갖지 못했다.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그의 반항아적인 기질은 이후 소설을 쓰고 전업 작가가 되고 또한 글을 출판하지 않는 결정을 하기까지 쭉 이어진다. 재능을 알아보고 발전시킬 수 있게 도와준 스승과의 관계, 전쟁에서의 경험이 모두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그처럼 많은 일화가 등장하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를 샐린저가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쓰기까지의 과정이라고 생각해본다면 그 여정에 있어 외적 방해물보다는 작가 내면의 갈등이 보다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에게는 극복해야 할 가정사나 경제적인 곤궁 같은 것은 없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 홀든 콜필드처럼 학교를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지만, 다시 글쓰기를 공부하고 싶다며 콜롬비아 대학에 들어가겠다는 그를 막아서는 방해요소도 딱히 등장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못내 걱정을 놓지 못하긴 하지만 적어도 영화상으로는 끝내 그의 부모는 그를 지지하고 보살핀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여러 잡지사에 투고한 원고가 계속해서 퇴짜를 맞지만 그 역시 젊은 작가의 고군분투 이상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샐린저의 삶에서 글쓰기란, 그것을 방해하는 외부의 요소들과 맞서 싸우면서 쟁취해낸 직업적 성취가 아니라 끊임없이 내면에서 샘솟아 올라온 욕망이며 삶의 소명이기까지 한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전쟁이란 모든 것을 뒤바꿀만한 일이었다. 전장에서조차 콜든 홀필드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을 구상하던 그였기에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오히려 그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전쟁의 후유증이 많은 사람들의 일과 일상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과도하게 겹쳐보기보다 샐린저에게 글쓰기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되짚어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샐린저의 스승인 휘트 버넷이 건넨 질문이자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샐린저의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되풀이되는 말,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글을 계속 쓸 것인가?’라는 물음이 결국 그의 모든 행동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것 뿐 아니라 ‘아무런 요청과 이유가 없더라도 글쓰기는 계속 되는가?’라는 물음을 함께 제시할 수 있겠다. 점차 종교적인 안식을 찾아가며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의 소요를 끝내기 위해 글을 써나가는, 또한 출판 산업에서조차 떨어져 나와 오직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쓰는 샐린저를 그린 후반부에 이르러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보상도 요청도 없는, 이유마저도 희박해진 오직 행위로써의 글쓰기를 선택한 어느 작가의 모습이다.

 

 

* 이봄영화제
상영 : 2018년 11월 6일 (화) 오후 7시 영화 상영 및 해설
장소 : 이봄씨어터 (신사역 가로수길)
문의 : 070-8233-4321

글 : 손시내
2016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활동 중.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9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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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12-30

조회수6,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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