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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

내일을 위한 시간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언제나 믿음직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시대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목소리들을 잘 반영하는 감독들이다. 이들의 특징을 몇 가지 꼽아보면 천재성이 어떤 것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우선 카메라의 위치다. 그가 사용하는 카메라의 시각은 왜곡을 모른다. <내일을 위한 시간>(Deux jours, une nuit, 다르덴 형제 감독, 벨기에/프랑스/이탈리아. 2014, 95)에서도 그들의 스타일은 여전해 배우들이 여기저기서 만나볼 수 있는 사람들로 인식된다.

예를 들어 주인공 산드라 역의 마리옹 코티아르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받은(<라 비앙 로즈2007>), 요즘 세계적으로 주가가 높은 배우들 중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옹 코티아르 정도면 여성미가 철철 넘쳐흐르리라는 착각을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만난 그녀는 평범했다. 몸의 한 부분을 확대해 이상적인 몸이나 미모를 강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분홍색 민소매에 허름한 청바지를 걸치고 거리를 걸으니 동네 아주머니에 불과했다. 아마 배우 자신은 그런 식으로 평범해지기를 원치 않았을 텐데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과감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일반 양화에서는 다르덴 형제 식의 카메라 위치 선정을 피하는 게 상례다.

다음 특징으로,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서는 시간이 압축되어 있다. 그래서 몇 년씩 간격을 두는 식의 시간 흐름을 거부한다. 불과 며칠, 몇 주면 충분하다. 그러다보니 한번 나왔던 거리가 계속 나오고 인물들의 등장도 익숙할 정도로 반복된다. 30분쯤 영화를 보면 관객마저도 마을 지도를 대충 그릴 수 있다. 심지어 산드라의 남편인 파브리찌오 롱기온과 회사 주임 역의 올리비에르 구르베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에서 낯익은 배우들이다. 관객과 영화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지면 몰입이 배가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 이제 평범한 여성 노동자 산드라가 저 골목을 돌아가면 담배 가게가 나올 것이다.”

하나만 더 꼽겠다. 공간과 시간과 배우를 익숙하게 만들어놓으면, 그 다음부터 이야기 자체가 저절로 중요해진다. 엉뚱한 볼거리에 현혹되는 데서 관객을 벗어나게 만든다는 뜻이다. 불과 이틀 낮, 하루 밤 사이에 어느 작은 도시에서 그저 그렇게 생긴 사람들이 나오니 사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의문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얼마나 대단한지 세상을 품을 만하다.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는 오늘의 세계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자본주의 전반에 도전장을 내민다.

주인공 산드라는 우울증에 걸려 약으로 버텨야하는 처지다. 그러나 가족의 열악한 경제여건으로 어쩔 수 없이 병가를 냈던 직장에 복직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회사는 산드라를 회사이익에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지 오래다. 보너스라는 달콤한 미끼가 동료들의 연대감을 흔들어놓았던 것이다. 영화 끝 무렵에 마침내 정말 비열한 제안이 산드라에게 주어진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고, 그 희생을 다수결이라는 민주 절차로 위장하고, 목적을 위해 어떤 속임수라도 정당화하고, 결국 비정규직의 목줄을 단단하게 조인다. 오늘의 자본주의 세상에선 인간성은 사라지고 만 남아 있는 것이다. 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로제타1999>의 문제의식이 재현된 느낌이었다. 다르덴 형제는 <로제타>에서 노동력 착취라는 문제에 집중했지만, 더불어 다루었던 인간소외현상은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도 여전히 지속된다. 자본주의는 그만큼 인간을 망가뜨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북유럽의 선진국 벨기에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생활환경과 작업조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권을 존중하는 모범적인 나라로 세계 각국으로부터 칭송을 받는다. 5살 때부터 돈 버는 현장으로 내몰리는 아프리카 등지 극빈국의 처참한 상황을 생각하면 글자그대로 노동자의 천국인 셈이다. 하지만 적어도 산드라의 경우는 달랐다. 그녀에게 주어진 자본주의의 현실은 인간을 자살로 몰아갈 정도의 악마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벨기에가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게 무슨 헛소리인가 말이다. 노동문제를 넘어 자본주의 체계를 고발하는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얼마나 고급스러운 연출인지 모르겠다.

산드라는 끝까지 자신의 곁은 든든히 지켜준 남편에게 전화를 걸면서 자신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한다. “여보, 우리 잘 싸웠지?” 다르덴 형제의 선택이 인간성의 회복에 있다는 점을 뚜렷하게 부각시킨 한마디였다. 영화의 감동은 그렇게 다가왔다.

산드라의 내일은 어제와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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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박태식

등록일2015-08-17

조회수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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