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customer center

070.8868.6303

자유로운영화평

홍상수의 <북촌방향>: 사건의 겹침, 혹은 시간성의 중복_영화평론가 김시무

 

(아래 글은 한국영화리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홍상수의 <북촌방향>: 사건의 겹침, 혹은 시간성의 중복

 

홍상수의 열두 번째 작품인 <북촌방향>(The Day He Arrives, 2011)은 대단히 복잡 미묘한 영화다. 이 영화는 성준이 서울에 도착해서 4일 동안 체류하면서 벌어지는 수차례의 술자리와 두 번의 정사(情事)를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언뜻 보기에 비슷비슷한 장면들이 많아서 시간상의 인과관계가 대단히 애매모호하게 처리되어있다. 그래서 선형적 내러티브로 작품을 읽다보면 모종의 혼란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메인 캐릭터인 성준은 한정식 집에 두 번, 카페에 세 번을 갔다. 이를테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2차로 카페에 간 셈인데, 처음 한정식 집에 갔을 때가 생략되어 있어 혼란이 가중된다. 그런데 그러한 실마리를 풀 단서들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극중 여성 등장인물들의 차림새다. 예컨대 성준은 보람과 카페에서 세 번에 걸쳐 만나는데, 그녀는 한번은 재킷 차림이었고, 두 번은 반코트 차림이었다. 성준은 또한 길에서 같은 여배우를 세 번이나 만나는데, 한번은 머리띠를 하고 있었고, 두 번은 그냥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 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옥(玉)에 티’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단서를 근거로 하여 성준이 보람을 사흘에 걸쳐서 세 차례 만나고, 그 여배우를 이틀에 걸쳐서 세 차례씩이나 만났다는 사실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플롯(plot) 구성상 밤 장면은 세 번만 나오는데, 1) 성준과 경진의 하룻밤, 2) 날밤을 지세고 새벽녘에 헤어지는 장면, 3) 역시 성준과 예전의 하룻밤 정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영화에서 시간경과(lapse of time)에 대한 뚜렷한 지표가 없기 때문에 순전히 상상적 기표(imaginary signifier)에 의거한 추론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홍상수 감독이 이번 영화 <북촌방향>에서 종래 사건들의 반복(反復), 공간성의 반복(反復)을 넘어서서 사건의 겹침, 혹은 시간성의 중복(重複)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플롯(plot) 구성상 성준이 영호와 보람을 카페에서 세 차례 만나고, 중원과는 단 한 차례 만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스토리(story)상에서 볼 때 보람과의 첫 만남과 중원과의 첫 만남이 상호 충돌(衝突)을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성준이 영호와 보람과 함께 처음 카페에 가서 마담 예전과 첫 대면을 한 상황과 성준이 영호, 보람, 중원과 함께 역시 카페에 가서 예전과 대면한 상황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는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분명 두 가지 사건(술자리)이 중복해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영화의 본래 플롯은 이렇다.

 

장면 1. 헌법재판소 앞

서울에 온 성준(유준상)이 영호(김상중)에게 전화를 하지만 꺼져있다. 성준은 “올라온다고 연락할 것 그랬다”고 후회한다. 이어 “영호 형만 만나고 가겠다!”고 다짐한다.

 

장면 2. 정독도서관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성준은 우연히 한 여배우(박수민)와 만난다. 첫 번째 만남이다. 그녀는 흰색 니트 차림에 머리띠를 하고 있다.

 

장면 3. 인사동 고갈비집

혼자 낮술을 먹던 성준은 옆 테이블에 있던 대학생들과 합석하여 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고받는다. 한참 취기가 오른 성준은 대학생들에게 고덕동에 가서 한잔 더하자고 권한다.

 

장면 4. 고덕동 포장마차 앞

택시로 포차 앞에 내린 성준 일행. 담배를 피우던 성준은 학생들에게 자기를 따라하지 말라며 꾸짖고는 그대로 줄행랑을 친다.

 

장면 5. 경진의 집

성준은 2년 여 만에 옛 애인인 경진(김보경)의 집을 찾아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다. 경진은 “술 많이 마셨냐?”고 묻고, 성준은 “사람들 만나서 많이 마셨다”고 대답한다. 성준은 “너무 오래 참아서 이렇게 왔다”고 말하고, 경진은 “오버하지 말라”고 대꾸한다. 이에 성준은 “너 아니면 안 돼!”라고 말하며 그녀를 껴안는다. 성준은 아침에 떠나면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힘주어 말한다.

 

장면 6. 안동교회 앞

성준은 정독도서관 앞에서 만났던 그 여배우를 또 만난다. 성준은 “서두르면 하나도 안보이게 된다!”고 충고한다.

 

장면 7. 영호의 작업실 앞

영호는 성준을 만나서 “전화를 하고 오지 그랬냐?”하고 말하고, 성준은 “고갈비집에서 이면수와 함께 낮술을 먹었다”고 말한다. 영호는 성준의 술 냄새를 맡는다.

 

장면 8. ‘소설’이라는 이름의 카페

성준과 영호, 그리고 보람이 주인 없는 카페에서 얘기를 주고받는다. 성준의 외도(外道)로 인한 가출경험이 화제에 오르면서 ‘공식적 사랑’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린다. 성준은 “사람이 끝까지 가면 한계가 보인다!”고 말한다. 자기를 발견했다는 얘기다. 이때 마담인 예전(김보경)이 등장하고 영호가 그녀에게 성준을 소개시켜준다. 예전을 본 성준은 그녀가 경진과 “똑같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보람은 마담이 카페를 너무 오래 비웠다고 투덜댄다. 성준이 피아노를 치겠다고 하자 영호는 흉을 보고, 예전은 잘 친다고 칭찬한다. 그녀가 성준에게 관심을 보인다. 카페를 나서면서 보람은 영호와 성준 두 사람이 마치 애인처럼 친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보람은 반코트 차림에 흰색 백을 들고 있다.

 

장면 9. 정독도서관 앞

성준과 영호가 추위 속에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주고받는데, 성준이 여고생 뒤꽁무니 쫓아다니던 얘기다. 영화가 “너무 추우니 어디 들어가자!”고 한다.

 

장면 10. 영호의 작업실

멀리 인왕산이 내다보이는 영호의 작업실에서 두 사람은 영호가 만든 계란 프라이를 먹고 있다. 이때 경진에게서 문자가 온다. “선생님이 행복하길 바래요!” -경진

영호는 “내가 아는 한식집에서 식사를 하자”고 하면서 중원(김의성)도 온다고 덧붙인다.

 

장면 11. 텅 빈 거리

민방위 훈련에 걸린 두 사람.

 

장면 12. 다정(多情)이라는 이름의 한정식 집

성준과 영호, 그리고 중원 세 사람이 식사를 하면서 옛 추억을 되새긴다. 중원은 “정말 잘한다. 이런 걸 먹으면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하며 음식 맛에 감동을 표한다. 그는 성준에게 “교수 월급이 얼마냐?”고 묻고 성준이 대답을 회피하자 “쪼잔하고 비겁한 놈”이라고 비난한다. 몇 년 전에 영화를 함께 하자고 해놓고 돈 때문에 다른 배우랑 작업하면서 자기를 모른 척 했다는 것이다. 성준은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화제는 영호의 별거로 넘어간다. 성준은 영호와 보람 사이를 의심하고, 영호는 후배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장면 13. ‘소설’이라는 이름의 카페

성준이 회보다는 위스키가 먹고 싶다고 해서 영호와 보람, 그리고 중원 네 사람은 카페로 간다. 보람은 재킷 차림이다. 보람은 자기가 20여분 만에 제작자, 감독, 음악을 하는 사람, 영화학도 등 영화와 관련된 네 사람을 연달아 만났다는 사실을 매우 신비로운 현상이라며 얘기해준다. 영호는 우연일 뿐이라면서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만, 성준은 이상한 일이라면서 맞장구를 쳐준다. 그리고 “세상일에 이유는 없지만, 사람들은 몇 개의 일들을 취사선택해서 ‘생각의 라인’을 만들어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논평까지 곁들인다. 이때 마담 예전이 등장하고 영호는 그녀를 중원과 성준에게 소개시켜 준다. 보람은 자리를 비운 그녀에게 핀잔을 준다. 카페 앞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던 성준은 내심 마담 예전이 나오길 기다렸으나 보람이 나오자 “좋은 사람 같다”고 칭찬한다. 이 때 경진에게 문자가 온다. “오늘 밤 첫 눈이 오네요. 넘 외로워요. 왜 함께 있을 수 없는 거죠?” - 경진

한편 중원은 영호와 예전에게 “사람들은 양쪽 극단을 짚어주면 다 넘어온다”고 설레발을 친다. 그리고 예전에게 “당신은 겉보기에는 깔끔하고 실용적이지만, 속 깊은 데는 지나치게 감성적이다“라고 짚어주자 백배 공감한다. 성준이 피아노를 치겠다고 하자, 예전은 “피아노 치고 좋겠다!”고 부러움을 표시한다.

 

장면 14. 카페 바깥 골목길

카페 바깥에서 “술 취하지 말자!”고 독백은 하던 성준은 예전이 만두(안주)를 사러 나오자 따라나서면서 골목길에서 느닷없이 키스를 한다. 진한 키스가 이어진다. 예전은 “며칠 있다 갈거냐?”고 묻고 성준은 “3-4일 있다 간다”고 답한다. 그리고 통성명을 나눈다.

 

장면 15. 도로 변

눈이 내리는 새벽녘에 영호는 보람과 함께 택시를 타고 먼저 간다. 그 다음 중원을 태워 보내고 남은 성준과 예전.

 

장면 16. 돌담길

영호와 커피를 마시던 성준은 세 번째로 여배우를 만난다. 촬영장소를 헌팅중인 그녀는 “만난다고 하더니 만나셨네요!”하고 인사를 건넨다. 이 때 대학생 3명이 등장하자 성준은 그들을 외면하고 급히 사라진다.

 

장면 17. 다정(多情)이라는 이름의 한정식 집

영호와 성준이 먼저 들어가고 이어 보람이 들어간다. 보람은 반코트 차림에 흰색 백을 들고 있다. 성준의 고등학교 때 이상형으로 화제가 시작되고, 보람은 성준의 ‘공식적 사랑’에 대해서 묻는다. 영호는 “사람들은 극단을 짚어주면 대체로 맞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어 보람은 “내 마음에 깊은 슬픔이 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키웠던 애완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성준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심정을 잘 안다고 위로해 준다.

 

장면 18. ‘소설’이라는 이름의 카페

보람이 때문에 카페로 옮겨 2차를 하기로 한다. 보람은 마담이 가게를 너무 오래 비운다고 투덜댄다. 영호는 “마담이 얼굴은 예쁜데 남자 복이 없다”고 말해준다. 이에 보람이 자기보다 더 예쁘냐고 되묻자, 영호는 보람이 더 예쁘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넌 착하고 재능도 많고 부모에게 감사할 것도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때 예전이 등장하고 보람이 심하게 불만을 늘어놓는다. 경진에게 “난 저주 받았나봐! 난 완전 깨끗한데! 날 밀쳐 내지마!”라는 문자가 온다. 성준은 안주를 사러가는 예전을 따라나서면서 다시 키스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고 나중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영호와 보람을 보낸 성준은 다시 카페로 와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다.

 

장면 19. 예전의 방

달콤한 키스와 정사를 나누는 성준과 예전. 예전이 “왜 이렇게 잘해 주냐”고 하자, 성준은 “넌 너무 예뻐! 착해! 천사야!”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성준은 “난 너를 알 것 같다”고 얘기하자, 예전은 “누군지 모를 텐데”라고 의미심장하게 답한다. 그날 아침 성준은 예전과 헤어지면서 세 가지 지침을 내리는데, 예전이 복창을 한다. “첫째 좋은 사람 많이 만날 것, 둘째 술 마실 때 취하지 말 것, 셋째 일기를 매일 쓸 것” 등등이다. 예전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자, 성준은 “우리 이렇게 헤어져야 행복하다”며 거절의 뜻을 밝힌다. 예전은 “몇 년 추억꺼리 생겼다”며 만족한다. 그리고 오히려 “오빠가 못 참을 것 같다”고 덧붙인다.

 

장면 20. 영호의 작업실 근처 한적한 거리

성준은 영호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데, 영호는 연말이라 바쁘다면서 일 끝나고 전화하겠노라고 대답한다. 하릴없이 거리를 나서던 성준은 영화감독(백종학), 제작자(기주봉), 그리고 음악 하는 사람(백현진) 등 세 사람을 연달아 만난다.

 

장면 21. 북촌길(표지판)

성준은 북촌 길에서 자칭 영화팬인 아마추어 사진작가(고현정)를 만나는데, 그녀는 성준에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한다. 피사체가 된 성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플롯을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재구성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장면 1. 헌법재판소 앞

서울에 온 성준(유준상)이 영호(김상중)에게 전화를 하지만 꺼져있다.

 

장면 20. 영호의 작업실 근처 한적한 거리

성준은 영호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데, 영호는 연말이라 바쁘다고 한다.

 

장면 21. 북촌길(표지판)

성준은 북촌 길에서 자칭 영화팬인 아마추어 사진작가(고현정)를 만난다.

 

장면 2. 정독도서관

성준이 우연히 한 여배우(박수민)와 만난다. 첫 번째 만남이다.

 

장면 3. 인사동 고갈비집

성준이 혼자 낮술을 먹다가 옆 테이블에 있던 대학생들과 합석한다.

 

장면 4. 고덕동 포장마차 앞

성준이 학생들에게 자기를 따라하지 말라며 꾸짖고는 줄행랑을 친다.

 

장면 5. 경진의 집

성준은 2년 여 만에 경진(김보경)의 집을 찾아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다.

 

장면 6. 안동교회 앞

성준은 정독도서관 앞에서 만났던 그 여배우를 또 만난다.

 

장면 7. 영호의 작업실 앞

영호가 성준을 만나는데 그가 낮술을 먹었다고 하자 술 냄새를 맡는다.

 

장면 9. 정독도서관 앞

성준과 영호가 추위 속에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주고받는다.

 

장면 16. 돌담길

영호와 커피를 마시던 성준은 세 번째로 그 여배우를 만난다.

 

장면 8. ‘소설’이라는 이름의 카페

성준과 영호, 그리고 보람이 주인 없는 카페에서 얘기를 주고받는다.

 

장면 10. 영호의 작업실

성준과 영호가 계란 프라이를 먹는다.

 

장면 11. 텅 빈 거리

민방위 훈련에 걸린 두 사람.

 

장면 12. 다정(多情)이라는 이름의 한정식 집

성준과 영호, 그리고 중원 세 사람이 식사를 하면서 옛 추억을 되새긴다.

 

장면 13. ‘소설’이라는 이름의 카페

성준, 영호, 보람, 그리고 중원 네 사람이 카페에서 한잔을 한다.

장면 14. 카페 바깥 골목길

성준은 카페 바깥에서 안주를 사러 가는 예전에게 키스를 한다.

 

장면 15. 도로 변

눈이 내리는 새벽녘에 영호는 보람과 함께 택시를 타고 먼저 간다.

 

장면 17. 다정(多情)이라는 이름의 한정식 집

영호와 성준이 먼저 들어가고 이어 보람이 들어간다.

 

장면 18. ‘소설’이라는 이름의 카페

보람이 때문에 카페로 옮겨 2차를 한다.

 

장면 19. 예전의 방

달콤한 키스와 정사를 나누는 성준과 예전.

 

그러니까 이러한 플롯 재구성에 따르면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게 전개된다. 모처럼 서울에 온 성준(유준상)이 영호(김상중)에게 전화를 시도하지만 결국 그날 그를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성준은 혼자 낮술을 먹다가 옆 테이블에 있던 대학생들과 어울리게 되고, 다른 장소(고덕동)에 가서 한잔 더하기로 한다. 그러다 취기가 오른 성준은 학생들을 따돌리고 그대로 줄행랑을 친다. 그리고 2년 여 만에 옛 애인인 경진(김보경)의 집을 찾아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 다음날 성준은 어제 정독도서관 앞에서 만났던 그 여배우를 또 만난다. 마침내 성준은 영호와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주고받다가 술집으로 가는 길에 그 여배우와 세 번째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성준은 영호가 데리고 온 후배 보람(송선미)과 함께 ‘소설’이라는 카페에서 술을 한잔 하게 된다. 이때 마담인 예전(김보경)이 늦게 들어오고 영호가 그녀에게 성준을 소개시켜준다. 그렇게 그날 술자리가 마무리된다.

다음날 아침 멀리 인왕산이 내다보이는 영호의 작업실에서 두 사람은 영호가 만든 계란 프라이를 먹고 오후에 한식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다. 다정(多情)이라는 한정식 집에서 성준과 영호, 그리고 중원 세 사람이 식사를 하면서 옛 추억을 되새긴다. 그리고 ‘소설’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자리를 옮기는데, 이 때 보람이 이 자리에 합류를 한다. 카페 앞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던 성준은 마담 예전에게 수작을 걸고, 통성명을 한다. 다섯 사람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귀가를 한다. 다음날 다정(多情)이라는 한정식 집에서 영호와 성준, 그리고 보람이 술을 마시면서 그저께 못 다한 성준의 ‘공식적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울적해진 보람이 때문에 카페로 옮겨 2차를 하기로 한다. 보람은 마담이 가게를 너무 오래 비운다고 투덜댄다. 성준은 영호와 보람을 보낸 후에 다시 카페로 와서 예전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달콤한 키스와 정사를 나눈다.

정리를 하면 성준이 서울에 온 첫날을 제외하고 삼일 내내 한정식 집에서 식사를 하고 2차로 카페에 가서 술을 마셨다는 얘기가 된다. 외견상 그렇게 보인다는 얘기다. 만약 그렇다면 영화 <북촌방향>은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살짝 뒤바꿔서 관객들로 하여금 스토리 라인을 바로 잡게 하는 일종의 ‘퍼즐 맞추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실 그건 홍상수 방식이 아니다. 우리가 이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바로 사건의 겹침, 혹은 시간성의 중복이라는 개념인데, 이는 이제까지 홍상수 영화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다. 예컨대 ‘장면 8’과 ‘장면 13’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장면 8. ‘소설’이라는 이름의 카페

성준과 영호, 그리고 보람이 주인 없는 카페에서 얘기를 주고받는다. 보람은 반코트 차림이다. 성준의 외도(外道)로 인한 가출경험이 화제에 오르면서 ‘공식적 사랑’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린다. 성준은 “사람이 끝까지 가면 한계가 보인다!”고 말한다. 자기를 발견했다는 얘기다. 이때 마담인 예전(김보경)이 등장하고 영호가 그녀에게 성준을 소개시켜준다. 예전을 본 성준은 그녀가 경진과 “똑같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보람은 마담이 카페를 너무 오래 비웠다고 투덜댄다. 성준이 피아노를 치겠다고 하자 영호는 흉을 보고, 예전은 잘 친다고 칭찬한다. 그녀가 성준에게 관심을 보인다.

 

장면 13. ‘소설’이라는 이름의 카페

성준이 회보다는 위스키가 먹고 싶다고 해서 영호와 보람, 그리고 중원 네 사람은 카페로 간다. 보람은 재킷 차림이다. 보람은 자기가 20여분 만에 제작자, 감독, 음악을 하는 사람, 영화학도 등 영화와 관련된 네 사람을 연달아 만났다는 사실을 매우 신비로운 현상이라며 얘기해준다. 영호는 우연일 뿐이라면서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만, 성준은 이상한 일이라면서 맞장구를 쳐준다. 이때 마담 예전이 등장하고 영호는 그녀를 중원과 성준에게 소개시켜 준다. 보람은 자리를 비운 그녀에게 핀잔을 준다. 한편 중원은 영호와 예전에게 “사람들은 양쪽 극단을 짚어주면 다 넘어온다”고 설레발을 친다. 성준이 피아노를 치겠다고 하자, 예전은 “피아노 치고 좋겠다!”고 부러움을 표시한다.

 

여기서 ‘장면 8’과 ‘장면 13’은 언뜻 보기에 시간적으로 선후(先後)관계에 있는 술자리 사건처럼 보이지만, 이 술자리를 갖게 된 맥락을 따져보면 두 장면 모두 성준이 영호를 처음 만나서 갖게 된 술자리임을 알 수 있다. 영화의 맥락을 잘 읽어보면, ‘장면 8’은 영호가 모처럼 성준을 만나서 처음으로 데려간 카페이며, ‘장면 13’도 역시 영호가 처음으로 데려간 카페가 된다. 차이가 있다면, ‘장면 8’에서는 영호가 후배 보람을 동반하고, ‘장면 13’에서는 역시 후배 중원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뿐이다. 두 장면에서 결정적인 공통점은 마담인 예전이 등장하는 모습인데, 두 장면 모두에서 예전이 카페 입구로 들어서는 뒷모습을 컷어웨이(cutaway)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두 장면이 마치 한 날 한시에 벌어지는 장면처럼 처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두 장면 중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나중인가를 고정시켜주는 누빔점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건의 겹침, 시간성의 중복(重複)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개다가 홍상수는 현실의 인과적(因果的) 시간성을 폐기하면서 미래시점을 도입하는 대담한 모험을 시도한다. 예컨대 ‘장면 19’ 다음에 ‘장면 5’를 연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때 극중 이름인 성준, 경진, 예전 대신에 배우의 실명(實名)을 그대로 사용하면 효과는 배가된다.

 

장면 19. 예전의 방

달콤한 키스와 정사를 나누는 준상과 보경. 보경이 “왜 이렇게 잘해 주냐”고 하자, 준상은 “넌 너무 예뻐! 착해! 천사야!”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준상은 “난 너를 알 것 같다”고 얘기하자, 보경은 “누군지 모를 텐데”라고 의미심장하게 답한다. 그날 아침 준상은 보경과 헤어지면서 “우리 이렇게 헤어져야 행복하다”고 하자, 보경은 “오히려 오빠가 못 참을 것 같다”고 말한다.

 

장면 5. 경진의 집

준상은 2년 여 만에 옛 애인인 보경의 집을 찾아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다. 준상은 “너무 오래 참아서 이렇게 왔다”고 말하고, 보경은 “오버하지 말라”고 대꾸한다. 이에 준상은 “너 아니면 안 돼!”라고 말하며 그녀를 껴안는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아름답지가 않아! 너였어야 돼”라며 울먹인다. 그리고 아무런 기약도 없이 또 이별이다.

 

플롯 구성상 ‘장면 5’에서의 경진이 성준의 옛 애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재구성을 통해서 ‘장면 5’를 ‘장면 19’ 다음에 배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홍상수 감독이 배우 김보경으로 하여금 굳이 일인(一人) 이역을 맡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반복회귀(反復回歸)의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그는 캐릭터의 중복(duplication of character)을 통해서 과거의 반복, 현재의 중복, 그리고 미래의 회귀(回歸)라고 하는 독특한 영화형식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3-11-11

조회수35,757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