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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영화평

[황야의 무법자], 남자들의 싸움에 이름은 없는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1966, 원제 :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는 남북전쟁 중 20만 달러를 얻기 위한 세 남자의 여정과 투쟁을 그린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영화이다. 선한 자(the Good) ‘블론디’(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현상수배범을 잡아 현상금을 받고, 다시 풀어주어 현상금을 높이는 일을 반복하여 돈을 번다. 추한 자(the Ugly) ‘투코’(엘리 웰라치)는 블론디의 파트너이자 현상금 3000불의 흉악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악한 자(the Bad) ‘센텐자’(리 반 클리프)는 ‘천사의 눈’이라는 이명을 가진 청부살인자다. 영화는 처음에 이 셋의 활약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상술한 칭호를 하나씩 부여한다.

 

 서부극의 철이 지나고 이에 대한 연구와 고찰 또한 끝나버린 오늘날의 관점에서 봤을 때, [석양의 무법자]는 이미 정형화된 서부극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석양의 무법자]가 고전 명화로 분류되는 것은 3인 주인공 체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연기이다. 영화 초반부부터 콤비를 이루던 블론디와 투코는 블론디의 배신으로 분열되고, 중후반부에서 구면임이 밝혀지는 천사의 눈과 투코 역시 천사의 눈이 투코를 이용하던 것 뿐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 직후, 블론디와 천사의 눈 사이에 교묘한 동맹관계가 펼쳐진다. 20만 달러라는 거금 앞에서, 기존의 관계는 불분명해진다. 이는 후반부에서 셋이 서로를 노려보며 총을 뽑으려하는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셋이 누구를 쏠지에 대한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이미 돈이 묻힌 곳은 살아남은 자가 알 수 있게 블론디가 돌 밑에 적어놓았기에, 셋은 누구를 어떠한 이유로 쏘던 무방하다. 고로, 세 주인공의 판단은 동일한 경험을 거쳐온 관객에게 스스로 생각해 볼 여유와 다른 두 남자가 자신을 쏘아죽일 수도 있는 상황의 긴장감을 동시에 주기 위해 세 남자가 서로를 노려보며 총에 손을 뻗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상당히 길게 보여준 뒤에서야 밝혀진다. 그리고 그 판단 역시 상당히 보편적이라, 관객은 큰 반발 없이 영화를 즐기게 되고, 잠시나마 영화의 일부가 된 듯한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석양의 무법자]는 전쟁, 나아가 싸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내포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하나는 세 남자의 이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리 폭파 시퀀스다. 세 남자 중 이름이 제대로 나오는 것은 추한 자 투코 뿐인데, 센텐자는 악한 자이니 그렇다 쳐도, 영화의 영웅이자 주인공인 블론디가 떳떳이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상당히 특이하다. 그가 심지어 자원입대를 할 때조차 이름을 바로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한 전쟁보다 스스로의 이름을 밝히고 싶은 곳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그는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아마 ‘선한 자’인 그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스스로의 이름을 내걸만큼 자랑스러운 싸움은 이 세상에 없다고. 이는 다리 폭파 시퀀스에서의 북군 대위의 발언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고작 지도의 점 하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네.” 싸움은 오직 무고한 죽음과 무의미한 파괴만을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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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백승주

등록일2014-10-02

조회수2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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