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상 | 신연식 <러시안 소설>
문학적 감성의 영화적 형상화
살아있는 이야기, 탁월한 공간서술
박 태식 (영화평론가, 함께사는세상 원장)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살 수 없다. 과거는 희미한 기억으로, 현재는 생활에 찌든 일상으로, 미래는 그저 이율배반적인 불안한 기대감으로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마치 과거가 현재처럼 또렷하고, 과거와 미래가 손을 맞잡은 듯 이어진다면 과연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 <러시안 소설>은 그 질문에 답을 찾아나가는 영화다. 27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신효에게 과거의 기억이란 생생한 현실이자 미래를 풀어내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러시안 소설>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이 넘실대고, 그 아이디어들을 연결하는 고리가 튼튼하게 영화를 지탱하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에 이리저리 인연들을 묶어놓고 후반부에서 그 얽히고설킨 인연을 풀어놓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긴장감이 절로 느껴졌다. 특히, 예로부터 문인의 고장으로 유명한 남도 담양에 ‘우연제’를 배치하고 대나무 숲으로 난 길을 걷게 하는 등의 공간 서술은 탁월했다. 그런 서정적 환경이라면 작가 지망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수긍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영화를 열심히 보아왔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살아있는 작품을 만난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각본을 쓴 신연식의 문학적인 감성이 영화에서 숨 쉬고 있어, 영화가 먼저인지 소설이 먼저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모든 영화는 각본에서 시작된다. 아니, 보다 엄밀히 말해 각본을 낳기 위한 작가의 아이디어가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법! 그 생각을 구체화시켜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각본은 영화의 '꽃'이다. 비록 남들을 잘 몰라주더라도 말이다. 작가이자 감독으로서 신연식이 걸어갈 앞날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