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합평회
영 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참석자: 민병선, 이수향, 성진수, 이지현, 정재형
민병선 : 저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 영화가 스크린 독과점 문제로 더 화제가 됐던 영화라서 저도 한두 번 인터뷰 했던 것 같아요. 신문하고 방송국에서 저도 열불을 토하듯이 얘기했었는데, 요새 생각이 바뀐 면은 있어요. 이건 1인자와 후발주자인 2인자의 파워게임 같기도 하고, 좋은 영화인데 묻힌 영화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외에도 많은 영화들이 있는데 이게 다시 재개봉 하는걸 보고. CJ에서 설을 맞아서 지금 몇 십 군데에서 재개봉하고 있거든요. 전국에서 PD수첩을 앞두고 일제히 재개봉을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이건 또 뭘까 고민은 있었어요. 이런 문제는 차후 많은 논의들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보고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동화를 주제로 한 영화라서, 동화를 영화로 한 듯한 가족영화가 되는데, 보통 동화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까?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적인 이야기라든지 좀 더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는데, 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동화 같은 이야기에 현실을 끌어들인 점이 저는 새로웠다고 봤습니다. 동화에서는 감추려고 하는 부분들인데 그걸 끌어들이면서 이 영화가 장점이자 동시에 흥행적으로는 단점이 되는 지점이라고 봤고요. 현실을 끌어들여서 각자의 사연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각자의 사연을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새로운 아이러니함을 만들고 사건들이 해결되는 과정에서의 감동을 주는 이야기로서 저는 연출력이 좋았다고는 봅니다. 상호작용의 중심에는 개가 있고, 개라는 동물이 복종하는 동물이잖아요. 충성심이 있고. 배신을 하지 않잖아요, 동물은. 그에 비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거나 배신을 하죠. 그런 측면에서 강아지가 그런 의미로서 보이는데 그러다 보니까 개를 훔치는 과정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실은 인간이 배신을 한다든가 신뢰가 무너진 그런 걸 회복하는 과정, 개를 훔친다는 것은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붕괴된 가족들이 다시 하나가 되는 희망을 주는 메타포랄까요, 그런 식으로 의미가 읽혀서, 영화는 좋고 유쾌하고 화학반응들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또 재미있는 게 어른을 아이처럼 그리더라고, 아이는 어른처럼 그리고요. 그런 면들이 재미있다고는 생각했었어요. 왜 그럴까요? 주인공인 이레가 어른스럽잖아요. 어른스럽게 되는 이유가 어른들이 어른답질 않거든요. 노부인도 강아지나 데리고 다니고, 아버지들은 피터팬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존재로서 아버지나 최민수의 역할이나, 부권이 상실이 되고 제대로 되지 않은 걸 보였기 때문에 아이가 조숙해 버리는 거죠.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어른들이 아이가 되는 그 과정들이 영화의 장점이 아닐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단점이죠. 이 영화가 어린이 영화인지 어른 영화인지 구분이 애매하더라고요. 타겟은 가족영화인데, 가족영화중에서 아이들을 타겟으로 하는 영화면 차라리 거기에 맞추면 단순하게 아이들을 위한 재미로 가는데 이건 어른을 위한 영화거든요.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어른을 위한 영화가 되다 보니까 아이들이 보기에는 현실이 좀 그렇고 어른이 보기에는 이게 심심해지고. 그래서 어중간한 측면이 있어서 흥행 포인트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봐요. 좋은 영화고 재미있지만 상업적인 면에서 좀 덜하다 이렇게 저는 읽었습니다. 이상입니다.
이수향 : 저는 이 영화 재미있게 봤고요, 전체적인 소감은 작은 소극 같은 영화여서, 일본 영화들이 보여주는 잔잔하면서 디테일이 있는 재미가 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흥미로웠어요. 저희가 저번에 다루었던 <족구왕>하고도 조금 비슷한 느낌이었는데요. 앞에서 민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족구왕>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영화의 타겟층이 훨씬 낮다는 거죠. 좀 더 나은 점이라면 그 영화보다도 공을 많이 들여서 만든 느낌? 그런 느낌을 주는데 디테일적인 부분이죠. 미술적인, 만화같이 그리고 그 그림을 화면과 연결시키고. 아이들이 창작한 것 같은 그런 공상의 모습을 화면에 색연필 같은 질감으로 표현한다든가 이런 부분들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저는 사실 이 영화가 그다지 문제적인 영화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만듦새는 괜찮은 영화다 생각하지만, 구성 자체도 굉장히 익숙하고 귀엽고 클리쉐적인 구성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저는 아까 민선생님이 현실적 상황의 문제와 동화적 감수성이 연결되는 부분을 이야기 하셨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이의 순수함이 있고 그 틈으로 현실적인 상황들이 침투를 합니다,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 있고 아이들이 해야 할 몫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앞뒤가 바뀌면서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 나름대로의 오해, 잘못된 이해 이런 것들이 익살스런 상황을 만들고 있어서 그런 면에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개하고 아이가 나오는 영화는 성공하기 쉬운 가족영화의 공식이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았는데, 초기 배급문제로도 언급이 많이 되었죠. 저는 평소 특정 배급사가 극장을 독점하는 것이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도 도리어 이 영화의 개봉 이후 과정을 보면서는 이 정도 만듦새로 그 정도로 관객이 든 영화들이 한둘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배급문제 자체를 마케팅화 한 게 아닌가하는 약간의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실적으로 독과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이 영화 제작자분을 필두로 문제 제기가 됐던 것이 좋은 방향으로 갈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글쎄요…. 김기덕 감독이 최근에 영화를 만들면서 대놓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한테 독후감을 쓰면 상금을 주겠다든가, 이런 식으로 관객이 들지 않고 볼 기회가 없음을 강변하면서 도리어 다른 마케팅 수단으로 쓰고 있는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아서, 사태를 좀 더 다양한 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는 원작이 따로 있는 영화고 만듦새가 나쁘진 않지만 특별히 감독만의 역량이 두드러지는 부분이 내러티브 진행이나 영화 속 세계관 같은 것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어요. 그것 보다는, 미술, 소품적인 부분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성적으로 과잉되거나 이런 부분을 넣지 않았다는 것 정도가 감독이 깔끔하게 잘 처리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레양의 연기가 약간 진지한 느낌이라면 친구로 나오는 초등생의 아이다운 모습이 밸런스가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 외 배우들이 무게감 있는 좋은 배우들을 썼죠. 김혜자, 최민수, 강혜정 이렇게 썼는데 특별히 연기 밸런스가 튀거나 안 좋은 건 모르겠고, 전체적으로 배우들과 원작이 가진 안정감, 이게 영화를 비교적 깔끔하게 끌어낸 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영화 자체가 엄청 뛰어난지는 모르겠어서 이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성진수 : 저는 앞서 두 분 말씀하신 맥락 하에서 몇 가지 조금 달리 생각하는 측면이 있는습니다. 아까 민 선생님께서는 영화에서 아이들이 굉장히 조숙하게 보인다고 하셨고, 이수향 선생님께서도 아이들의 역할이 있고 어른들의 역할이 있는데 아이들이 오해와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일으키는 사건들이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실은 그 두 가지 시선을 왔다 갔다 하면서 봤어요. 그 두 가지 시선, 제가 가진 어른의 시선과 영화가 가진 아이의 시선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본 기억이 있어요. 사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묵직한 것들이잖아요. 집을 잃고 가족들을 돌볼 수가 없어서 최민수 같은 경우는 집을 나와 떠돌고, 이천희는 부동산 때문에 사기를 당하고, 집과 가족과 뿌리와 관련된 무거운 소재죠. 이런 소재를 어른들의 시각으로 다루는 영화는 무겁게 다루거나 블랙 코미디로 다루거나 하는데,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의 문제적인 상황들을 아이의 시각에서 보고 풀게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에서 아이의 시각이 조숙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의 시각은 단지 미숙하다라기 보다는 어른들과 다른 시각이고 그게 이 영화의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항상 마주하는 상황들을 어른이 된 우리가 보는 익숙한 시각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 수 있을까 라는 걸 이 영화가 재미있게 보여줬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가 흥미로웠어요.
이 영화를 본 후에 <세인트 빈센트 (St. Vincent)>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저는 이 영화와 그 영화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고 봐요. 세인트 빈센트는 곧 성인(聖人) 빈센트라는 의미인데, 빌 머레이가 연기하는 빈센트라는 인물과 그 옆집에 오게 된 아이의 이야기예요. 그 아이가 숙제를 받아요. 자기 주변에 성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조사를 해 오라고. 근데 이 애가 빈센트라는 사람을 자기는 성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발표를 하죠. 이게 영화의 마지막인데 이 빈센트라는 사람은 성인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이에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요, 어른의 시각에서 봤을 때는. 그런데 아이의 시각에서 불한당처럼 보이는 인물이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두 영화가 우리가 갖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를 다른 시각, 이게 아이의 시각이라고 해서 그냥 미숙하거나 이해를 못하는 시각이 아니라,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면서 우리가 새로운 생각을 하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물론 이 영화는 동화이기 때문에 판타지적이고 동화적으로 끝나죠. 그런 엔딩이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겠죠. 그렇지만 혹시 모르죠, 이 영화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듯이 우리가 새로운 시각을 갖는다면 이 영화의 엔딩처럼 현실도 해피엔딩이 될 지도.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라 그런 의미에서 좋았어요.
또 두 분다 만듦새 이야기를 하셨죠. 이수향 평론가가 일본영화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는 이런 류의 영화를 개인적으로 선댄스 풍의 영화라고 불러요. <미스 리틀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 2006)>이 생각나거든요. 일본의 영화들하고는 약간 분위기가 다르죠. 그래서 전 선댄스풍 영화라고 제 나름대로 부르는데,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이런 풍의 영화가 완성도 있게 만들어진 걸 보기 힘들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어느 수준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나라에서 자주 볼 수 없는 그런 스타일의 영화라는 측면에서 반가웠습니다.
이수향 : 사족을 좀 덧붙이자면, 저희가 이번 달에 영화를 고르기가 어려웠어요. 한국 영화가 많이 없기도 했고요. 사실 영화가 아주 별로면 이 합평회에서 다루지 않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영화가 사실 어느 정도 나왔으니까, 즉 망작은 아니니 합평회에서 다룬 거라고 사족을 붙이고 싶네요.
이지현 : 좋은 얘기를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요. 일단 제작자가 화제몰이를 잘했다고 생각하구요. 이 영화를 보고 판타지가 뭘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감독님이 이전에 만들었던 <거울 속으로>도 그렇고, 다른 작품들을 봐도 붕 떠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리얼리티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 구축된 판타지는 힘이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절박함 같은. 아이가 집을 구해야겠다는 절박함이 공감대를 형성해내지 못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요. 그것이 캐릭터를 구축하는 단계에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선 아이들이 어중간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이가 엄청 장난꾸러기든가 아니면, 약간 멍청이 같은 애들이라면 좀 더 캐릭터가 살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고요. <개훔방>과 <거울 속으로>에서 느껴지는 감독님의 판타지를 보면, 현실인식에 어떤 강박 같은 게 있는 게 아닌가. 좋게 말하면 절제하고 나쁘게 말하면 판타지로 도망가고 있다는 생각. 말하자면, 깊이 들어가지 못하면서 쉽게 포기하거나 타협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캐릭터가 흐리멍텅하다는 느낌이 드는 게, 강혜정도 보고 있으면 그냥 무뇌 엄마 같잖아요.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다시 말해서 이야기가 좀 더 깊이 가면 괜찮았을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아이들이 한신초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잖아요. 이게 전국 4위정도 되는 학교거든요. 상당히 비싼 학교란 말이에요. 집이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학교로 보내야 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한 번 더 언급을 해줬으면 훨씬 살았겠죠. 그리고 사실 이천희도 굉장히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냥 나쁜 놈으로 나오잖아요. 이것도 아쉽고. 사실 김혜자 캐릭터를 통해서는 어떻게 보면 ‘예술에 대한 고전’ 같은 텍스트를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인데 거기까지 깊이 절대로 들어가지 않아요. 그래서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이 어린이 영화, 가족영화이기 때문에 얕게 들어가도 된다는 스스로 한계를 규정해놓고 시작한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은 <업 (Up)>과 같은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린이 영화라고 해서 얕은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자꾸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있는 거 같아 아쉽더라고요.
제가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원작이 여러 가지 변주가 가능했을 것 같은데 가족 영화로 간 것에 대한 아쉬움. 이 영화를 리얼리티 영화로 만들었으면 훨씬 무게감이 있었을 것 같고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연기 좋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보고 있으면 배우를 이상한 앵글이나 이상한 조명에 가둬버리거든요. 몰입에 방해되는 감이 있어요. 김혜자씨 같은 경우는 <청담동 살아요>의 한 에피소드만도 못한 연기를 보여주시는 것 같아 매우 아쉬웠어요. 배우를 자유롭지 못하게 가둬버리는 그런 느낌?. 촬영도 매끄럽지 못했고, 조명도 많이 아쉬웠어요. 사실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잖아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버림받은 엄마가 있고, 남편이 버린 여자가 있고, 딸을 떠나 온 아빠가 있단 말이에요.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굉장히 다양한 축의 변주들이 가능했을 텐데 그런 것들도 좀 아쉽고요. 편집 호흡도 좋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감정선이 불분명한 부분들이 많더라고요. 폭발시킬 때 폭발시킬 수 있고, 웃길 때 웃길 수 있었는데 편집이 그런 감정을 많이 놓치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민선생님이 동화 이야기를 하셨는데 사실 동화가 끔찍한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저도 재미있게 영화를 봤어요. 우리 애기도 되게 재미있게 보더라고요. 제작자도 <삼거리극장>같은 뮤지컬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시는 분이잖아요. 화제몰이를 잘 하긴 했지만 흥행으로 이어지기에는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좀 부족하지 않나 라는 아쉬움. 아무래도 이런 영화들이 한국영화에서 많이 시도된 게 아니니까 좀 더 무게감이 있었더라면 좋았겠다 라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정재형 : 저는 이 영화에 대해서 일단 재미있게는 봤어요. 그런데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영화가 평이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평을 할 만한 많은 꺼리를 제공해주지는 않는구나 생각을 했죠.
우선 이 영화를 해석 한다면 첫 번째는 가족해체에 대한 이야기, 인간 소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죠. 가족들도 다 해체된 가족들이잖아요. 최민수, 김혜자, 강혜정 등. 또한 나름대로 다 소외된 사람들이고요. 그런 걸 이 영화가 바닥에 깔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가 하면 산업화 사회의 물질주의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된다고 보이죠. 그런 부분에 대해 와 닿게는 하더군요. 보이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이유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 그 부분을 마지막에 화해하는 방향으로 가고,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보여집니다. 그런 부분들에 많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은 결국 이 영화가 어린이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어린이는 소재로 했을 뿐이지 어른들의 영화다고 저는 사실 보고 싶어요. 그 다음 단계가 중요한 거라고 봅니다. 거기까지는 공감대를 가지고 영화를 참 재미있게 봤는데, 굉장히 평이하다는 거죠. 그런 해석들이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많은 영화들이 다루고 있었던 해석이기 때문에, 공감을 하고 재미있게 즐기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비전을 보여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판타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실 판타지로 이 영화가 가려고 했다면, 우리가 팀 버튼의 영화가 보통 판타지 영화라고 하는 전형이라고 볼 수 있죠. <가위손>, <빅피쉬>등 말이죠. 소외된 인간의 아픔도 있으면서 기괴함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팀 버튼 영화와 비교하면 그런 것들이 약하죠. 도대체 판타지는 어디서 어떻게 구축했을까, 현실과 환상이 왔다 갔다 하면서 인간이 꿈꾸고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세계의 비전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런 상상력이 보이지 않았어요. 상상력이 굉장히 평이해요. 악당들을 쫓아내고 하는 부분은 헐리우드 영화의 상상력과 하나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좀 진부하죠. 설정 자체는 판타지적인 설정인데, 최민수의 복장, 살림살이, 차에서 사는 사람, 마르쉘이라는 공간도, 약간 좀 그로테스크해 보이는 김혜자의 이미지라든지, 그게 좀 더 기괴하고 판타지로 빠졌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또 어디까지나 비교일 뿐이니까 감독이 좀 더 나름대로 판타지의 색깔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죠.
제가 좀 불만인 부분은 충분히 사회적 배경과 주제, (오락적인)찡한 감동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 영화가 어떤 비전을 보여줬느냐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좀 약하다고 생각해요. 이게 성인의 영화지만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줬다고 하는 것을 요즘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아이의 시선 혹은 아이의 존재라는 것에 대해 저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요. 저는 이걸 어린이용 영화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어린 왕자>같이 어른을 위한 동화일 수 있죠. 굉장히 우회적인 방식으로 흔히 택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실제적으로 최근 한국영화에 나타나는 어린이의 모습은 상당히 퇴행적인 모습이에요. 저는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을 하고 싶어요. 대표적으로 <국제시장>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인데, 충무로의 어른들의 퇴행현상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다시 말하자면 어떤 거친 사회 혹은 굉장히 강압적인 사회의 폭력에 맞서서 어른들이 전투 의지를 상실했고 무기력한 모습이라고 보여요. 아이로 상징되는 것은 뭐냐면 위로받고 싶다는 거죠. 그리고 분명히 아이는 혼이 납니다. 혼이 나고, 혼이 난 상태에서 정화돼서 새로운 인생을 살려는 희망을 갖죠. 두 가지 특성, 위로받고자 하는 것과 혼이 나서 정화되고자 하는 것은 투쟁의지라기 보다는 굉장히 퇴행적인 심리상태이다, 충무로가 지금 어떤 사회에 저항하거나 투쟁적인 이미지의 인간을 만들어내려고 한다기보다는 뭔가 이런 퇴행적인 아이를 통해 사회 모순을 보려고 하는 그런 접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수향 : 말씀을 듣다 생각이 났는데요, <허삼관>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어린아이들에 포커스가 맞춰져서 주요 분량을 차지하는 배역으로 나와요. 다만, 두 영화를 비교해보자면 이 영화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허삼관>을 보면서 불편했던 건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소설 원작이 가진 시공간의 문제성, 문화대혁명의 시대와 분위기가 전부 탈각되어버리고 한국으로 가져 왔을 때는 적절한 시대 사회적 배경을 넣어서 뭔가 주춧대를 만들어줘야 했는데, 그런 게 전혀 없이 복장으로 봐도 분위기로 봐도 어딘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공간을 하나 창조를 해서 애매하게 만드는 게 굉장히 영화를 허약하게 만드는 중요한 결점이었다는 거에요. 두 번째는 어린아이라는 표상을 사용함에 있어서 약간 불편한 점이 있었어요. 두 가지가 이 영화가 굉장히 별로였던 이유인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이 두 가지 점 모두에서 <허삼관> 보다는 잘 돌파를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허삼관>에서는 아이를 단순히 소재적으로 사용해요. 주인공인 아빠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아빠는 굉장히 속물적이기도 하고 인간적이기도 한 사람이라서 ‘일락’이가 자기 아들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굉장히 극심한 차별과 냉대의 방법을 취해요. 그런데 그랬을 때 아들은 천사 같은 마음으로 슬프지만 감내하고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아빠에게 다시 사랑받으려고 노력하는 아빠바라기를 하는 역할로 나오거든요. 아빠, 즉 주인공 남자인 허삼관의 코믹하면서도 속물적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아이 캐릭터를 희생시키는 면이 있죠. 주인공은 한사코 큰 아들을 몰아내요. 근데 끝까지 그렇게 갔으면 차라리 영화가 일관성이 있을 텐데, 마지막에 갑자기 지극한 부성애를 보이면서 허삼관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피를 뽑아서 아이를 억지로 살리려고 하고, 눈물을 쏟아내는 감성 코드를 이끌어내려고 하거든요. 허삼관이 온 몸의 피를 다 뽑으면서 그 아이를 살리려고 하는 부분이 납득이 안가요. 자기 아들이 아님을 알았을 때 다른 아들들과 차별하고 “제가 무슨 종달새의 왕입니까” 이렇게 큰소리치던 사람이 왜 저렇게까지 하는 것인가란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허삼관이라는 아버지의 캐릭터를 재미있게 살리기 위해 아이들을 굉장히 희생시키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끝까지 아버지바라기를 하고 아버지를 갈구하는 것으로 나오는 거죠. <허삼관>에서 주인공은 하정우이지 아이들이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의문이 나올 수도 있는데, 문제는 분량이나 포커스가 아니고 적어도 아이들에 대해 곡해를 하거나 다른 시선으로 그 아이들을 이용해서 소재적으로 사용하지는 말아야 하는데 <허삼관>이 그러한 우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개훔방>에서 제가 제일 재밌게 봤던 모티프는, ‘평당 오백’이라고 써 있는 걸 보고 평당이란 지역이 있고 오백만원이면 살 수가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부분이예요. 이런 건 굉장히 아이적인 발상이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감독이나 영화 자체에 흐르는 시선이, 그 아이들을 무시하고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 일을 잘 못 저지르는 구나 이런 시선이 아니예요, 그냥 그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관찰하고 그들의 순수성을 조소하거나, 억지로 훈계하는 대신 다른 방향에서 문제의 해결점을 주려고 노력하죠. 그런 시선의 윤리성이 영화가 가진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차에서 사는 사람이 나오죠. 이런 경우는 미국에는 많지만 우리나라는 많지 않죠. 그런데 또 최근 다큐멘터리나 여러 가지 고발 프로그램들 보면 우리나라에 아예 없지는 않은 걸로 나와요. 최근 모텔에서 살다가 세 모녀가 자살한 기사도 봤죠. 도리어 극심한 빈곤, 기본 욕구라는 의식주 중에 ‘주’가 해결되지 않는 나락에 처한 상황이라는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들를 깔고 있어요. 정교수님이 말씀하신 걸 들으면서 생각해봤는데,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들었어요.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은 그들 밑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염이 되거든요. 우리 세계의 어떤 허약성, 보금자리, 울타리라는 것이 와해되고 있고 우리 삶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지경에 있어서 부부나 가장이 부재할 때 오히려 부모보다 아이들이 애를 써야 유지되는 어떤 상황들, 그래야 겨우 가족이란 이름하에 허약하게 흔들리고 있는 모습들, 도리어 아이들이 고군분투를 하는 모습들을 이 영화는 굉장히 우회적으로 우리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진수 : 저도 이수향 선생님 의견에 동의를 하는데, 아까 <국제시장>말씀을 하셨지만 <국제시장>에 나오는 아이는 100% 퇴행적이죠. 거기서 아이는 주인공이 아니고 어른의 퇴행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허삼관>은 전적으로 허삼관 이라는 주인공을 위해 아이들을 소모시켜요. 그런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아이 캐릭터는 스스로 성장하는 주인공 캐릭터임에 확실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두 영화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아이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보면서 아이의 영화냐, 어른의 영화냐, 아이의 시선이냐 어른의 시선이냐는 방식으로 아이와 어른을 구분할 때 아이에 대한 개념을 달리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영화에서 ‘아이’라는 개념은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누군가’가 아니라 ‘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즉 이 영화의 시선은 타자의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평당 오백만원 에피소드, 평당이라는 곳에서 오백만원으로 집을 살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외국인이 보고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 사회의 중심인 어른이 아닌 타자의 시선으로 보면 이 영화의 아이의 시선이라는 게 단순하게 어린이답지 않다고 생각할 시선은 아니라고 봐요. 우리 사회에 있는 어떤 사건들을 어른인 우리에게 익숙한 시선이 아닌 타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만들어질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봅니다. 타자가 이 사회에 뛰어 들어와서 자기가 집도 절도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내 생일파티가 있을 예정이고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고 그럴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랬을 때 이 사회의 타자가 해결할 만한 어떤 하나의 스토리를 보여주는,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성장을 하는 스토리인 것이죠. 영화에서 그 성장이라는 건 아이가 반성을 하잖아요. 내가 나의 욕심을 위해 개를 훔쳐다가 이렇게 했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이구나 하는 작은 반성을 하는 주인공은, 어른의 퇴행, 혹은 미숙한 어른이라는 의미에서 단순한 아이가 아니라 완성된 캐릭터로 보여서 그런 부분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좋게 보였던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정재형 : 제가 퇴행이란 말을 했는데 그런 시각이 있고요. 저는 아까 이야기 못한 말 중에 하나가 이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이 뭐냐면 김혜자가 애를 꾸짖을 때 한 말이거든요. 정확한 대사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적인 의미는 이런 거예요. ‘아무리 의도가 좋다하더라도 그 방식은 좋지 않다.’ 김혜자가 조용히 아이를 타이르거든요. ‘너는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 이게 왜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본다면, 아까 이수향 선생님이 한 말씀하고 저도 같은 생각인데 이 영화는 아이가 어른의 행동을 모사한 것이고 결국 그 부분에 대해서 김혜자가 일침을 준 거거든요. 사실은 어른들의 세상, 어른들의 영향은 지금 이 한국사회의 질서가 굉장히 잘못됐다는 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마키아벨리적으로 권력이나 이윤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을 비난하는 것이죠. 그 부분이 핵심이라고 보여요. 왜냐, 어른들이 그렇게 망가져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똑같이 모방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그런 부분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를 해요. 오락적으로 재미있게 봤는데, 단지 그게 지금 우리 사회를 이 영화가 오락적 코드로써 관객들에게 와 닿게 하는 부분은 있지만 그 이상의 예술적 가치를 주느냐 하는데 있어서는 사회를 보는 캐릭터의 시선이, 이건 아이가 아니라 분명히 어른들의 시선이거든요. 어른들에게 분명히 교훈을 주는 거죠. 그렇게 이걸 굉장히 퇴행적 방식으로 한다는 거죠. 결국은 김혜자한테 혼나는 거거든요.
두 가지 방식, <국제시장>에서처럼 위로받으려고 하거나,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개선시켜 나가려고 하지만 어린아이의 시선 속에 정화되어서 우리의 의도는 맑고 순수하다는 것을 혼나면서, 마치 우리가 이렇게 나쁜 짓을 하지만 우리의 자아는 상당히 순수하다는 것을 항변하는 듯한. 결국은 이 영화는 그 어머니와 애가 나중에 다 화해하는 거거든요. 심지어 나간 아버지까지도. 결국은 다 순수한 인간으로 만들어요. 저는 사실 그게 아쉽다는 거죠. 왜 그러냐면 사회가 분명히 나쁜 부분이 있으면 도려내야 하고, 맑은 천성의 투사들이 그런 부분을 도려내야 되는 그런 부분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 전투의지가 없는 거예요.
다르덴의 <내일을 위한 시간>을 이야기는 안했지만 그런 영화를 제가 베스트로 뽑는 이유에요. 왜 그렇냐면 현실 싸움에서 졌지만, 복직은 안 됐지만, 복직시켜준다는 사장의 권유도 과감히 뿌리치고 나오죠. 그러면서 여전히 그 여자가 변화된 건 없지만 굉장히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거든요. 바로 자기 안에 있는 투쟁의지라는 것을 안거에요. 이 세상이 어떻게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변화될 수 있는가라는 인간 안에 숨겨진 숭고한 본성적 가치, 이성적 가치, 철학적인 개념으로 보면 정말 숭고한, 자신도 몰랐던, 죽기 직전에 깨닫게 된 예상치 못한 어떤 것을 감독이 던져준 거거든요. 분명히 그런 깨달음에 의해 사회가 밝게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죠. 만약에 그 영화를 그렇게 맺지 않고 다 긍정하면서 끝났으면 그 영화가 어떤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굉장히 추상적인 레벨에서 다 인정하면서 ‘인간은 다 순수하지’ 이런 식으로 봉합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감독이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카드를, 비전을 인간의 본성 안에서 찾든지 다른 곳에서 찾든지 분명히 감독이 던져줘야 되는 부분이 있고 그걸 던져주는 영화가 바로 예술영화라고 생각을 하는데, 결국 그런 부분을 이 영화는 주지 못해요. 제가 봤을 땐 굉장히 상식적인 봉합을 하고 있거든요. 사회의 문제가 어떻게, 원인이 뭐라고 아주 명쾌하게 잘 지적하고 보여주는데 그 이상,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대안은 없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게는 봤으나 비평을 할 구석을 찾아내지는 못했다고 보고 싶습니다.
민병선 : 벌써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네요. 제목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인데 사실 개를 안 훔치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 개를 훔쳐가려는 걸 구해주는 거죠. 개를 어떻게 해하려는 걸 다시 개 부인에게 데려다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착한 영화라는 걸 강조하면서 ... (일동 웃음) ... 오늘의 합평회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