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적사항 성 명 정창화(鄭昌和) 생년월일 1928년 11월 1일(양력) 본 적 서울시 중구 신당동 주 소 LA Jolla, CA92037, U.S.A 2. 수련과정 1940 경기공립상업학교 1945 서울음악전문학교(2학년 재학 중 최인규 감독의 문하로 들어감) 3. 활동경력 ▶ 일반활동
1928 영흥실업주식회사를 운영하시던 아버지 정위영과 어머니 김율림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충청북도 음성에서 출생, 이후 서울에서 성장 1940~1944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권유로 경기공립상업학교 재학(5년제) 1945~1946 서울음악전문학교(성악전공) 입학, 2학년까지 다니던 중에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를 보고 영화감독이 될 결심을 하게 되었다. 1946~1949 최인규 감독의 문하로 영화계에 입문, 조감독이 되었다. 홍성기, 신상옥 등과 함께 <국민투표> <죄 없는 죄인>, <독립전야>, <파시> 등의 조감독 역할을 하며 영화감독으로서의 기본적 자질을 익혔다. 1950 김성민 시나리오로 <유혹의 거리>라는 데뷔작을 준비, 촬영과 편집을 마친뒤 녹음을 준비하던 중 6?25 전쟁 발발, 화재로 원판이 소실되었다. 1951~1952 부산으로 내려가던 중 대구에서 국방부 정훈국 촬영대에 입대, 강원도 정선•창녕 지역의 9사단으로 배치되어 활동하던 중 적들의 포위망을 뚫고 구사일생으로 탈출, 다시 대구에서 원대복귀를 했으나 부모님의 사고사로 인해 제대하게 되었다. 1953 실질적인 데뷔작이 된 <최후의 유혹>을 촬영, 부산 부민관에서 개봉했으나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1956~1959 <장화홍련전>을 시작으로 <풍운의 궁전>, <후라이보이 박사소동>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액션영화 연출을 위한 기틀을 다졌다. <망향>을 비롯한 한홍합작 영화 연출을 시작했다. 1960~1967 <햇빛 쏟아지는 벌판>에서부터 본격적인 액션영화 연출을 시작, <지평선> 이후 만주를 무대로 하는 대륙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으며, 그 외 청춘영화를 비롯하여 특히 액션이 가미된 다양한 영화들을 연출했다. 1967~1972 <순간은 영원히>를 본 홍콩 쇼 브라더스사의 란란쇼 사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홍콩으로 건너간 뒤 <천면마녀>, <여협매인두>, <아랑곡> 등의 무협영화에서 성공했다. 1972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연출, 할리우드 박스 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73~1977 골든 하베스트로 이적한 뒤 <흑야괴객>, <황비홍소림권>등을 연출했다. 1978 한국으로 돌아와 화풍흥업주식회사를 설립. 1986년까지 29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1981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자협회 부회장 1982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협동조합 이사 1983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자협회 이사 1996 미국으로 이주하다. 2003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에서 ??한국 액션영화의 전설, 정창화!?? 개최 2004 홍콩필름아카이브에서 회고전 개최, 파리인터내셔널 필름 페스티발에서 회고전 개최 2005 칸 영화제 클래식 섹션에 <죽음의 다섯 손가락> 초청됨 2007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장편 심사위원장 역임 2008 춘사영화제 심사위원장 역임
▶ 작품활동 (KMDb 참고)
<감독> 1953 <최후의 유혹> 1954 <유혹의 거리> 1955 <제이의 출발> 1956 <장화홍련전> 1957 <풍운의 궁전> 1958 <망향>, <비련의 섬> 1959 <사랑이 가기 전에>, <후라이보이 박사 소동> 1960 <슬픔은 강물처럼>, <햇빛 쏟아지는 벌판> 1961 <노다지>, <장희빈>, <지평선> 1962 <대장화홍련전>, <대지여 말해다오>, <칠공주> 1963 <대지의 지배자>, <대평원>, <청춘산맥> 1964 <밤안개>, <부부전쟁>, <수색대> 1965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 <살인명령>, <유부녀>, <죽도록 보고싶어> 1966 <광야의 결사대>, <내 청춘 황혼에 지다>, <순간은 영원히>, <예라이샹>, <위험한 청춘> 1967 <돌무지>, <비련>, <위험은 가득히>, <조용한 이별>, <황혼의 검객> 1968 <나그네 검객 황금 108관>, <모정의 비밀>, <정염>, <허무한 마음> 1969 <천면마녀> 1970 <여협매인두>, <아랑곡(한국: <아랑곡의 혈투>)> 1971 <육자객(한국: <칠인의 협객>)>, *<래여풍> 1972 <천하제일권(미국: <죽음의 다섯 손가락>, 한국: <철인>)> 1973 <흑야괴객> 1974 <황비홍소림권(한국: <황비>)> 1975 <염굴신탐(한국: <흑무사>, 1974)> 1976 <귀계쌍웅(한국: <심판자>)> 1977 <파계>
<기획> 1962 <대지여 말해다오> 1985 <달빛타기>(이영실) <제작> 1954 <유혹의 거리>(정창화) 1979 <불행한 여자의 행복>(변장호), <어느 여대생의 고백>(김선경), <학을 그리는 여인>(조문진) 1980 <괴초도사>(신위균), <노명검>(김선경, 계이치홍), <색깔있는 여자>(김성수) <소림용문방>(류자량, 김종성), <요>(김영효) 1981 <가슴깊게 화끈하게>(김수형),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이원세), <나는 할렐루야아줌마였다>(김수형) <인터폴>(김선경) 1982 <소림신방>(고응호), <여자와 비>(김성수), <친구애인>(김송원), <흑장미>(신위균) 1983 <뇌권>(김시현), <불새의 늪>(고응호), <비호문>(이헌우), <인생극장>(최현민) 1984 <내사랑 짱구>(유진선), <지금 이대로가 좋아>(정인엽), <홍병매>(김시현) 1985 <그때 죽어도 좋았다>(김문옥), <달빛타기>(이영실), <피조개 뭍에 오르다>(양병간) 1986 <수렁에서 건진 내딸2>(김호선) <각본> 1962 <대지여 말해다오> 1973 <흑야괴객> <편집> 1956 <장화홍련전> 1957 <풍운의 궁전> 1958 <망향> 1959 <사랑이 가기 전에> 1960 <햇빛 쏟아지는 벌판> ▶ 수상내역
1961 국제영화지 인기감독상 1963 세계영화지 인기감독상 1967 제6회 대종상 - 우수반공영화상 : <돌무지(1967)> 1989 영화의날 공로상 2003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2003년 10월2일~10일) 한국액션영화의 전설, 정창화 회고전, 핸드프린팅 2003 HONG KONG FILM ARCHIVE 감사패 2003 홍콩영상자료원 정창화 감독 회고전 개최 2004 부산국제영화제 합작영화 공로상(에르메스) 2004 필름페스티발 파리시네마(Paris Cinema) 정창화 회고전 개최 2005 칸영화제 “칸 클래식” 섹션 <죽음의 다섯 손가락> 초청 상영 2006 춘사영화제 한류영화 공로 대상 2006 제44회 영화의 날 한류영화 공로상 2007 제15회 춘사영화제 아름다운 영화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