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왕후의 남자>(2012),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2013), <신의 선물--14일>(2014), <시그널>(2016) 등 2010년대 들어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영화 쪽에서는 이보다 앞서 2000년대에 <시월애>(2000)와 <동감>(2000),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2004), <이프 온리(If Only)>(2004), <지금 만나러 갑니다(いま, 會いにゆきます)>(2005), <시간을 달리는 소녀(時をかけゐ少女)>(2007), <말할 수 없는 비밀>(2008) 등 시간여행영화가 많이 제작되어 관심을 불러 모았다.
사드락 곤살레스-페레욘 감독은 18분짜리 단편영화 <5분(Cinq Minutes)>(2013, 스페인)에서 ‘노인이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임종 바로 직전의 5분 동안 자신의 신체를 빌려주는 신비로운 청년에 관한 이야기로 구원, 죽음, 삶을 다루고 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사드락 곤살레스-페레욘 감독의 <블랙 할로우 케이지(Black Hollow Cage)>(2017, 스페인)도 상실, 죽음, 삶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작 <5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공포영화, SF영화, 스릴러영화의 적절한 장르 혼용과 깔끔한 연출이 돋보이는 시간여행영화이다.
13살 소녀 앨리스는 자동차 사고로 엄마와 오른쪽 팔을 잃고 아버지 아담과 외딴 집에 살고 있다. 그녀는 숲 속에서 발견한 검은 큐브로부터 ‘그들을 믿지 말라’고 쓴 자신의 쪽지를 받는다. 이후 아버지가 남친 데이비드에게 폭행을 당하고 쓰러져 있는 에리카와 그녀의 남동생 폴을 집에 데려온다. 앨리스가 폴에게 이끌리고 아담이 에리카에게 욕망을 느끼게 되면서 앨리스와 아버지 사이의 갈등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녀는 큐브로부터 ‘그들을 죽이라’는 자신의 녹음 메시지를 받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블랙 할로우 케이지>는 상실-대체-수용/거부의 흐름을 보여준다. 앨리스는 검은 큐브로부터 나온 문자, 음성, 다중주체에 의해서 대체된다. 그녀는 로봇팔 작동 연습을 격려하며 자신을 껴안아 주는 폴에 대해 호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검은 큐브를 통해 받은 “그들을 믿지 마”라고 쓴 자신의 쪽지가 보내는 1차 경고와 이후 “폴을 믿지 마”, “폴을 죽여”라고 녹음된 자신의 음성이 보내는 2차 경고에 의해 그 호감은 방해를 받게 된다. 이러한 혼란은 폴을 바라보는 앨리스의 시선과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고로 잃은 오른팔의 대체물인 로봇팔 작동을 위해 생각에 집중하며 원기둥을 잡는 연습을 하던 중 큐브가 “우연히” 나타나게 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팔처럼 큐브도 자신이 “생각하면” 나타나기 때문에 그녀는 로봇팔로 원기둥 잡는 연습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큐브를 작동시키고자 한다.
엄마와 오른팔을 잃어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그녀는 로봇팔, 원기둥, 큐브, 다중주체에 의해 대체되지만 동시에 그녀의 의지와 능력이 점점 커지기도 한다. 그에 따라 큐브의 구멍도 조금씩 확장되면서 점층법을 보여준다. 커다란 검은 상자 모양의 큐브는 울퉁불퉁한 조각의 입체적인 큐브로 변형되고 중간에 구멍이 열리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커먼 공간이 드러난다. 그녀의 의지에 의해 그 공간은 처음의 조그마한 네모 구멍에서 쪽지, 녹음기, 사람 등 점점 더 큰 피사체가 드나들 수 있게 점점 더 커져간다.
아버지의 자동차 운전으로 엄마를 잃었다는 원망으로 생긴 아버지의 빈자리는 의사, 아버지, 폴로 차례로 대체된다. 그녀는 로봇팔로 세 개의 원기둥을 잡는 연습에서, 의사가 연습을 권유하지만 거부하고, 아버지가 권유하여 시도해 보지만 실패하고, 폴이 권유하여 시도해 본 결과 실패하지만 그의 격려에 힘입어 다시 시도하여 부분적으로 성공하게 된다.
자신의 로봇팔로 굵기가 다른 세 개의 원기둥을 잡는 네 번의 연습 장면에서, 두 사람 즉 앨리스-의사, 앨리스-아버지, 앨리스-폴이 소파에서 마주보고 앉아 있는 모습을 측면에서 똑같은 거리, 높이, 각도와 객관적인 시선의 롱숏으로 반복해서 보여준다. 이런 반복되는 장면 연출로 인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변화, 성공하는 원기둥의 굵기의 차이, 앨리스 심경의 변화 등을 오히려 돋보이게 만든다.
카메라는 대부분 흔들리지 않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처음에 의사 앞에 앉아 자신의 눈높이에서 자신의 발과 상자 속에 담겨 있는 로봇팔을 동시에 위에서 내려다보는 소녀의 차가운 시점숏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폴과 앉아서 연습하는 장면에서는 익스트림롱숏, 롱숏, 미디엄숏, 클로즈업 등 카메라가 인물에게 점점 다가감으로써 폴에게 느끼는 그녀의 호감이 점점 커져간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동시에 그녀와 폴의 클로즈업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을 보여주고 있다.
사고로 잃어버린 엄마의 빈자리는 개, 엄마의 음성, 에리카 등으로 대체된다. 그녀는 엄마 베아트리체와 같은 이름을 가진 개 베아트리체에게 의지한다. 개는 베아트리체라는 똑같은 이름뿐만 아니라 개의 목에 걸려 있는 음성 장치에서 나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엄마처럼 앨리스와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앨리스는 개를 “엄마”라고 부른다.
처음에 그녀는 에리카에 대한 아버지의 호감을 눈치채고, 에리카 남매가 바로 떠난다는 사실에 섭섭해하는 아버지에게 그들이 하루 더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 준다.
하지만, 나중에 아버지가 에리카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을 벽 뒤에서 몰래 지켜본 후, 아버지가 에리카를 만졌다는 사실보다 아버지가 엄마(=베아트리체=개) 앞에서 만졌다는 사실에 더 화를 낸다. “어떻게 엄마 앞에서 그럴 수 있어?”라며 엄마(=개)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자 아버지는 거절하며 개는 엄마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녀는 과거 자동차 사고로 인한 엄마의 죽음은 아버지의 책임이라고 말하며 아버지를 향해 분노를 터트린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내가 죽였어”라며 눈물을 흘린다.
개 베아트리체가 엄마 베아트리체의 원피스를 입은 에리카의 모습을 보게 되자, 개 목에 걸려 있는 상자 속의 엄마의 목소리는 “내 원피스를 입고 있구나”라고 에리카에게 말한다. 이때 단지 엄마 베아트리체가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엄마 베아트리체는 개의 육체와 엄마의 음성으로 체현되며 이때 육체와 음성의 불일치로 인해 앨리스와 아버지의 갈등이 촉발된다.
에리카는 엄마 베아트리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개 베아트리체를 대체하고자 한다. 아버지 아담이 쓰러져 있는 에리카를 안고 오는 장면에서 에리카의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벌거벗은 가슴은 아내의 부재로 인해 채워지지 않는 아담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에리카가 “해야 할 일을 알지?”라며 폴을 앨리스의 방으로 보낼 때 개가 가로막아 폴이 다시 돌아오자, 에리카는 자신과 아담 사이, 폴과 앨리스 사이를 가로막는 방해물인 개(=엄마)를 처리하고자 한다.
<블랙 할로우 케이지>는 객관적이고 일방향의 시선으로 일방적인 지시 관계를 드러내고, 대조적인 이미지의 결합을 통해 관계의 단절을 부각시킨다. 아버지가 에리카를 안고 오는 장면에서 아버지는 에리카를 쳐다보고, 폴은 에리카를 쳐다보고, 앨리스는 폴을 쳐다본다.
이후 앨리스와 아버지가 건너편에 앉은 폴과 에리카를 바라보는 장면을 객관적이고 차가운 카메라의 시선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일방향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일방적이고 비관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앨리스는 폴을 바라보지만 폴은 에리카의 지시를 따르고, 아버지는 에리카를 욕망하지만 에리카는 데이비드의 명령에 복종한다. 이때 롱숏이나 익스트림롱숏을 통해 일방적인 지시로 이루어진 관계, 인물들 간의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을 강조한다.
데이비드가 에리카에게 키스하고 때리고 옷을 찢는 등 마치 성폭행을 하듯이 성행위를 할 때 카메라는 클로즈업, 바스트숏, 미디엄숏, 롱숏, 익스트림롱숏의 순서로 점점 멀어져가며 객관화한다.
또한 폭행당한 에리카가 벌거벗은 가슴을 드러내며 아버지에게 안겨 있는 장면, 폴이 식칼을 들고 있는 에리카에게 다가가 키스하는 장면 등은 폭행/포옹, 식칼/키스, 침입/나체처럼 대조적인 이미지 연결을 통해 쌍방향적인 관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블랙 할로우 케이지>는 세트, 카메라 움직임, 사운드, 조명 등을 통한 인지전략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주위 숲은 안정적인 녹색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에, 앨리스의 집은 녹슨 금속 컨테이너를 연상시키는 갈색의 딱딱한 직육면체 직선으로 만들어져 대조를 이룬다. 그래서 집은 그녀와 아버지가 과거로부터 도피하여 스스로를 가둔 감옥처럼 보인다. 좁은 복도를 걸을 때 인물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폐쇄된 공간에 갇혀진 인물의 무기력하고 답답한 상태를 나타낸다.
아버지는 두려움에 떠는 에리카남매에게 집이 이중잠금장치로 되어 있어 안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이후 장면에서 유리창이 집을 둘러싸고 있어 언제든지 유리창을 깨뜨리고 침입자가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관객에게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무지/오해/인지에서 인지의 정도에 따라 긴장감의 강도가 달라지는데 이 영화는 닥쳐올 위험에 대해 관객의 인지와 인물의 무지의 차이로 인해 관객이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서스펜스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관객도 이 집에 닥쳐올 끔찍한 사건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그 사건의 주체, 시기, 방법, 이유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첫 장면에 등장하여 음식을 나르는 아버지를 뒤에서 야구방망이로 내려치는 복면남자는 누구인지, 바깥 덤불 뒤에 숨어 있는 검은 그림자는 누구인지, 큐브로부터 경고는 받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장차 벌어질 폭행과 살인에서 누가 죽고 누가 사는 건지, 검은 그림자가 왜 죽이려고 하는지 등에 대해서 관객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호기심을 갖고 영화를 지켜보게 된다.
관객은 카메라를 통해 복도를 걸어오는 아버지와 그 뒤에서 덮치려고 따라오는 복면남자를 동시에 보지만, 아버지는 복면남자가 자신의 뒤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다가 뒤늦게 눈치를 채게 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앨리스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후반부까지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계속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덤불 뒤에 검은 그림자가 있다는 앨리스의 말에 아버지가 손에 집어든 식칼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앞으로 닥쳐올 끔찍한 사건에 대한 예감으로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앨리스 방의 붉은 조명과 큐브에서 나오는 이상한 소리는 이러한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또한 앨리스가 “폴을 죽여”라는 자신의 녹음기 음성을 들을 때 폴의 누나 에리카가 갑자기 끼어들며 “나도 (녹음기) 들어 볼래”라고 말할 때 숨막히는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필자는『영화와 N세대』(2017)라는 책에서 시간여행영화의 세계관과 시간여행을 표현하는 방식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논의하였다.
우선 <동감>, <시월애>,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주변의 물체와 공간을 이용한 유비쿼터스 시간여행을 하며, 인과율의 원리를 통해 운명론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나비효과>,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도구를 통한 운동 이미지를 통해 시간여행을 변화 이미지로 표현하며, 다세계 평행우주를 통한 순리론적 세계관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이프 온리>, <말할 수 없는 비밀>은 특정한 시간이나 공간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며, 두 개의 세계를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주체의 의지를 확고히 만든다.
이렇듯 이전의 시간여행영화는 시간여행을 표현하는 방식, 시간여행 방법, 세계관 사이의 일정한 법칙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블랙 할로우 케이지>는 이전의 시간여행영화의 세 가지 유형과는 차별적인 특성을 보인다. 검은 큐브라는 물체와 검은 공간을 이용한 유비쿼터스 시간여행이지만 앨리스의 비명소리로 운동 이미지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혼합적 특성을 보인다.
또한 다중 주체가 나온다는 점에서 과거로의 회귀보다는 다세계 평행우주를 보여주고 있지만, 순리론적 세계관보다는 운명을 바꾸려는 주체의 의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다만, 이전의 시간여행영화와 마찬가지로 <블랙 할로우 케이지>에서도 자신(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혹은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여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이전의 시간여행영화들에서는 시간여행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막고자 할 때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블랙 할로우 케이지>에서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 귀착점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 열린 결말을 통해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마이클 하임은 가상세계의 최종 목표가 시간, 죽음, 두려움이라는 현실의 세 가지 제한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한다. 시간여행을 통해 펼쳐지는 다세계 평행우주, 다중주체 등은 이러한 가상세계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블랙 할로우 케이지>에서 시간여행은 과거, 현실, 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시간, 죽음,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을 갈망하는 인물, 나아가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가상세계 환경을 조작하는 사이버문화의 탈시공간성에 대해 익숙한 N세대 관객들은 주변의 물체를 활용해서 손쉽게 시간여행을 하는 내러티브 구조에서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을 느끼게 된다.
시간여행은 과거와 미래 양방향으로 가능하지만 시간여행영화에서는 항상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고자 하는 주체의 해결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블랙 할로우 케이지> 개봉 예정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65451)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