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리 연애> 9월 14일 개봉.
1. 학교 성범죄와 학교 로맨스물
두 팔이 없는 1급 장애인 30대 복지교사에게 성폭행을 당해 초등학교 6학년 12살 때 임신하여 그 교사와 동거하고 딸을 낳은 군산 여중생이 나중에 과중한 가사노동과 성관계 요구로 가출함으로써 성과 노동을 착취당했음이 드러났다. 또한 경남의 30대 여교사가 초등학교 6학년 12살 남학생을 여러 차례 성폭행한 사건에서 여교사는 남학생을 사랑해서 성관계를 했다고 말하지만 남학생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받았다는 점에서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때에 남교사와 여고생의 사랑을 다룬 일본 학원 로맨스물 <근거리 연애(近キョリ恋愛)>(2014, 일본)가 개봉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보는 시선이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다. 꽃미남 배우이면서 아이돌 가수이기도 한 야마시타 토모히사와 한국에서도 유명한 모델이자 배우인 고마츠 나나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이 영화는 <무지개 여신>, <너에게 닿기를>,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등에서 섬세한 감성을 선보인 쿠마자와 나오토 감독이 연출을 맡아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미키모토 린의 인기연재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근거리 여행>은 교사와 학생의 상큼한 로맨스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갈등, 아이러니, 인지전략 등의 측면에서 흥미로운 영화이다.
2. 내적/사적/공적 갈등과 소통/치유/사랑
전교 1등 천재 소녀인 쿠루루기 유니는 항상 감정 표현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외로운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 인기 절정의 영어교사 사쿠라이 하루카 선생은 영어성적만 하락한 쿠루루기에게 특별 보충수업을 제안한다. 다른 여학생들이 멋있는 사쿠라이 선생에게 보충수업을 받는 쿠루루기를 부러워하지만, 쿠루루기는 싫어하는 사쿠라이 선생과 싫어하는 영어를 공부하게 되어 우울해한다. 이후 영어를 열심히 지도하고 곤경을 처한 자신을 구해주는 사쿠라이 선생에게 쿠루루기가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두 사람은 여러 가지 갈등과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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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리 연애>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던 쿠루루기는 내적/사적 갈등을 겪음으로써 불통-사랑-소통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쿠루루기는 어릴 때는 잘 웃던 아이였으나 부모가 해외에 나가 사촌오빠 아케치 선생과 단둘이 살게 되면서 감정표현이 없는 아이로 바뀌게 된다. 그녀는 학교에서 우등생, 모범생이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어 유일한 친구인 나미조차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중에 쿠루루기가 자신의 감정을 극도로 감추게 되면서 유일한 친구인 나미마저도 섭섭해하며 떠나버리게 된다.
쿠루루기는 기쁠 때 머리핀에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고, 감정을 억누를 때 자신의 스커트를 손으로 꽉 움켜쥐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멘델 교수의 책을 읽으며, 스트레스를 풀 때 도너츠 등 달콤한 후식을 먹으며, 부끄러울 때 자신의 귀를 만진다. 사쿠라이 선생만이 유일하게 쿠루루기의 이런 무의식적인 제스츄어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녀의 감정을 알아차린다. 그런 사쿠라이 선생에 대한 거부감과 싫어하는 영어 공부에 대한 부담감으로 쿠루루기는 사쿠라이 선생과 갈등하게 된다. 이후 쿠루루기는 사쿠라이 선생에게 사랑을 느껴 손수건을 선물하지만, “내가 너에게 관심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교사로서 지켜 본 것이다”, “너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쿠라이 선생이 매몰차게 말하자 그의 뺨을 때리고는 눈물을 흘린다. 또한 사쿠라이 선생이 자신과의 키스는 실수였다며 잊으라고 하자 “잊을 수 없어요”라며 큰소리를 지르며 울면서 뛰쳐나간다. 나중에 사쿠라이 선생과 재회하여 사랑을 확인한 후에는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이렇듯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던 쿠루루기는 사쿠라이 선생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내적/사적 갈등을 겪게 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슬픔, 고통, 기쁨 등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면서 결국 나미 등 주변사람들과도 소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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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병적으로 싫어하던 사쿠라이 선생은 내적/사적 갈등을 겪으면서 상처-사랑-치유의 과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던 영업사원인 그의 아버지는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를 3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푸른 석양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사쿠라이에게 자주 들려주었다. 항상 웃는 얼굴을 보였지만 자신의 바지를 손으로 꽉 움켜잡곤 했던 그의 아버지는 나중에 자살하고 만다. 아버지의 거짓말을 깨닫게 된 사쿠라이 선생은 거짓말을 제일 싫어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차가운 태도를 보이게 된다. 고등학교 때 타키자와와 사귀지만 한 번도 먼저 키스한 적이 없을 정도로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 헤어지게 된다. 이후 그는 학교에서 엄청나게 많은 여학생 팬들을 거느리게 되지만 항상 쿨한 태도를 보인다. 쿠루루기가 자신의 아버지처럼 감정을 억누를 때 스커트를 꽉 움켜잡는 것을 보고, 사쿠라이 선생은 그녀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다시 사귀자고 제안하는 타키자와 선생에게 “나는 자기 감정에 거짓말을 못한다”는 말로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하지만 사쿠라이 선생은 자신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쿠루루루기에게 무의식적으로 먼저 키스하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과거의 상처를 그녀에게 처음으로 털어놓고, 그녀의 꿈인 미국 유학을 보내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쿠루루기가 다시 돌아와 실제로 ‘푸른 석양(blue flash)’가 있으며 사쿠라이 선생의 아버지는 사쿠라이 선생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말하자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이렇듯 거짓말을 병적으로 싫어하던 사쿠라이 선생은 쿠루루기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내적/사적 갈등을 겪게 되지만,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그녀를 위해 거짓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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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이 선생과 쿠루루기의 연애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인해서 내적/사적/공적 갈등을 겪으면서 고백-포기-사랑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쿠루루기는 단순하며 정답이 1개라는 점에서 법칙이 있는 수학을 좋아하는 반면에, 정답이 1개가 아니며 단순하지 않으며 슬픔, 기쁨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며 법칙이 없는 영어를 싫어한다. 하지만 쿠루루기는 사쿠라이 선생의 열성적인 지도 덕분에 영어 성적을 올려 캘리포니아 대학교 멘델 교수 밑에서 유전공학을 전공하고 싶은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사쿠라이 선생에 대한 사랑으로 쿠루루기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게 되어 주변사람들과 소통하게 된다. 사쿠라이 선생은 쿠루루기의 고백을 받고 무의식적으로 키스를 하지만 교사로서의 자신의 신분을 깨닫고 쿠루루기를 거부한다. 이후 사쿠라이 선생은 마토바와 손을 잡고 있는 쿠루루기를 보고는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되어 쿠루루기에게 프로포즈한다. 타키자와 선생이 교실에서 입을 닦고 있는 사쿠라이 선생과 교탁 아래에 숨어 있는쿠루루기를 보고는 두 사람이 키스를 했음을 눈치채고는 나중에 증거 사진을 쿠루루기의 사촌오빠인 아케치 선생에게 보여주게 된다. 그 결과 두 사람은 교사/학생이라는 신분적 제약, 타키자와 선생과 아케치 선생의 반대, 쿠루루기의 미국 유학, 학교 내의 소문에 대한 교감의 추궁 등 내적/사적/공적 갈등과 문제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사쿠라이 선생은 쿠루루기의 장래를 위해 사랑과 결혼을 포기하고 쿠루루기는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하지만 쿠루루기가 사쿠라이 선생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다시 재회하고 사랑을 이루게 된다. 이렇듯 사쿠라이 선생이 교사로서 그녀에게 열성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연인으로서 그녀와의 결혼을 포기하여 그녀의 꿈을 이루게 해주려고 노력함으로써, 쿠루루기의 고백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연애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고 내적/사적/공적 갈등을 극복하여 더욱더 견고한 사랑을 하게 만든다.
3. 아이러니와 인지전략을 통한 극적 쾌락과 웃음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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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리 연애>는 다양한 아이러니를 통해 극적 재미와 웃음을 창출하고 있다. 아이러니는 변장의 의미를 담고 있고 겉으로 드러난 것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 쿠루루기는 겉으로는 무표정하지만 제스츄어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여, 모순된 진술이나 부조화한 이미지를 병치하는 부조화의 아이러니로 웃음을 창출한다. 그런 쿠루루기의 감정에 대한 사쿠라이 선생의 인지와 주변 사람들의 무지가 대비됨으로써 극적인 아이러니로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이후 연애에 무지하고 순진한 쿠루루기가 교탁 아래에 숨어서 “선생님이 싫은데 너무 좋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종이를 보여주며 사쿠라이 선생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순진의 아이러니를 통해 웃음을 창출한다. 이런 쿠루루기의 순진무구한 모습에 놀란 사쿠라이 선생이 무의식적으로 쿠루루기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은 갑작스러운 반전을 통한 상황의 아이러니로 관객에게 놀라움과 극적 쾌락을 느끼게 만든다. 이후 모자를 깊게 눌러썬 정체불명의 사람이 마토바와 함께 있던 쿠루루기의 손을 갑자기 낚아채고는 함께 달려가는데, 모자가 벗겨지면서 쿠루루기의 마음을 거절한 사쿠라이 선생임이 드러나는 장면도 상황의 아이러니를 통해 관객에게 반전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근거리 연애>에서 인지전략은 인물들 간의 관계와 관객의 극적 쾌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지전략은 인지와 무지의 차이를 통해 인지한 자가 무지한 자에 대해 조롱하거나 승리하는 등 우위에 서게 된다. 각각의 중요한 사건에 대한 인물의 인지 순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쿠루루기의 제스츄어의 의미(쿠루루기>사쿠라이>주변인물), 사쿠라이 선생에 대한 쿠루루기의 사랑(쿠루루기>나미>사쿠라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사쿠라이 선생의 과거 상처(사쿠라이>쿠루루기>주변인물), 쿠루루기와 사쿠라이의 연애(쿠루루기·사쿠라이>타키자와>마토바>아케치>나미), 사쿠라이 아버지의 진심과 푸른 석양의 진실(쿠루루기>사쿠라이) 등. 사쿠라이 선생은 항상 쿠루루기에게 “난 널 잘 알아”, “난 항상 널 지켜보고 있어”라고 말하는 등 자신이 쿠루루기보다 인지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부분의 사건에서 쿠루루기가 인지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어이없을 정도로 솔직하게 고백하는 쿠루루기의 순진무구함이 오히려 세상을 다 아는 척, 쿨한 척 선을 긋고 살아왔던 사쿠라이의 심장을 파고들게 된다. 인지전략에 있어서 순진한 인물이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삶의 진실에는 더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관객에게 인지전략에서의 아이러니를 통해 극적 쾌락을 느끼게 만든다. 이때 관객은 모든 사건에 있어서 등장인물보다 인지의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대해 긴장감을 갖고 지켜보게 되면서 영화의 극적 전개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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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리 연애>는 학원 로맨스물답게 미장센, 카메라, 조명, 색채 등에서 밝은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교사/학생의 신분적 제약을 뛰어넘는 쿠루루기와 사쿠라이 선생의 상큼한 연애와 순수한 사랑을 부각시키고 있다. 미장센에 있어서 각각의 공간은 차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학교의 보충수업실, 체육실, 교실은 쿠루루기가 자신이 싫어하던 사쿠라이에게 사랑을 느끼고 고백하는 공간이다. 반면에, 학교의 교무실, 복도는 사쿠라이 선생의 여학생 팬들, 타키자와, 아케치, 마토바 등이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공간이다. 쿠루루기의 집은 그녀의 내적 갈등, 즉 고통, 슬픔, 외로움 등을 삭히는 공간이다. 바닷가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사쿠라이 선생의 추억, 쿠루루기에 대한 사쿠라이 선생의 고백과 프로포즈, 쿠루루기의 장래를 위한 사쿠라이 선생의 거짓말과 이별 선언, 사쿠라이 선생의 아버지에 대한 진실 확인, 쿠루루기와의 재회와 사랑 확인 등 두 사람의 사적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의상에 있어서, 쿠루루기의 교복은 거절/포기/이별과 구출/고백/키스 등 상반된 이미지를 연결시킴으로써 교사/학생 간의 금지된 사랑을 강조한다. 쿠루루기의 사복은 고백, 사랑, 프로포즈 등 다양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만든다. 일상생활에서는 파스텔톤의 은은한 색깔의 옷을 입음으로써 소극적인 성격을 표현하는 반면에, 사쿠라이 선생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각각 빨간 줄무늬 티셔츠와 빨간 머플러 등 강렬한 빨간색을 착용함으로써 쿠루루기의 적극적인 감정표현을 나타낸다. 카메라는 롱숏을 통해 배경과 인물의 관계를 보여주기보다는 인물에 대한 클로즈업과 시선 처리를 통해 인물의 감정에 공감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조명과 색채는 전반적으로 밝고 맑은 톤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교차편집을 통해 인물들 사이의 교감을 강조하고 있다.
교사/학생의 신분적 제약과 학교 로맨스물
남교사와 여고생의 사랑을 다룬 영화인 <근거리 연애>는 쿠루루기와 사쿠라이 선생이 내적/사적/공적 갈등을 해결하고 소통/치유/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는 다양한 아이러니 전략, 인지전략, 스타일 연출을 통해 사건의 반전, 극적 재미, 웃음 등을 창출한다. 개인적 콤플렉스를 안고 있는 남교사와 여학생의 사랑과 치유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도 달달한 로맨스를 그린다는 점에서 일본 학원 로맨스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미성년자 제자에 대한 교사의 성폭행 사건은 두 사건 모두 성인 교사가 초등학생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나이와 교사 지위라는 권력관계를 이용해 성폭행을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서로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미래의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사쿠라이 선생과 쿠루루기의 근거리 연애는 교사/학생이라는 선을 어떻게 지켜나가며 어떤 식으로 사랑을 키워가야 하는지에 대해 상큼한 로맨스와 섬세한 연출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사진 출처: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