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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 <어쩌다 암살클럽> ― 장애인 킬러의 탈주와 만화가의 내적 승화

<어쩌다 암살클럽> 11월 9일 개봉

1. 장애인/킬러와 만화/영화의 결합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아틸라 틸 감독의 <어쩌다 암살클럽(Tiszta szivvel, Kills on Wheels)>(헝가리, 2017)은 만화가를 꿈꾸는 장애인 졸리(졸탄 페니베시)가 복지센터에서 장애인 킬러 루퍼소브(사볼치 투록지)를 만나 암살계획에 동참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특히 헝가리 연기파 배우인 사볼치 투록지는 아틸라 틸 감독의 영화 3편, 즉 <패닉>(2008), <비스트>(2011), <어쩌다 암살클럽>(2017)에 모두 출연하여 감독의 페르소나 역할을 하고 있다. <어쩌다 암살클럽>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킬러로 변신하는 플롯, 실제 장애인의 배우 캐스팅, 만화와 영화의 결합 등에서 신선한 발상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2. 장애인 킬러 루퍼소브의 딜레마

<어쩌다 암살클럽>에서 3년 전 사고로 불구가 된 루퍼소브는 자신을 떠나 다른 남자와 결혼하려는 옛 애인인 에비와 사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는 에비에게 38번 정도 전화를 해대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할 거라는 말을 듣고는 자살시도를 하고, 꽃을 들고 에비를 기다리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택시에 기대어 정상인처럼 서 있는 척하지만 그녀는 만나주지 않는다. 결국 에비의 결혼식장에 참석한 루퍼소브는 그녀의 신랑 친구들에 의해 폭행당한 후에야 에비를 포기하고 떠난다. 장애가 원인이 되어 헤어진 루퍼소브와 에비의 갈등은 그의 집착에서 시작해서 포기로 끝나면서 그녀와의 사적 갈등은 해결된다. 사랑하는 여자와의 결별은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강인한 킬러 루퍼소브의 가장 약한 고리이다. 

루퍼소브는 전직 소방관 출신이며 현재는 킬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복지센터에서 만난 졸리와 친해져 졸리를 암살 사건에 끌어들이게 되면서 졸리와 사적 갈등을 겪게 된다. 루퍼소브는 졸리의 아이디어와 졸리·바바의 도움으로 상대 조직의 보스와 부하들을 처치한다. 하지만, 루퍼소브는 졸리·바바를 죽이라는 의뢰인 러도시의 요구로 인해 갈등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졸리·바바가 아니라 러도시를 선택함으로써 졸리와 사적 갈등을 겪게 되고 졸리·바바를 죽이고자 한다. 하지만, 결국 루퍼소브가 러도시가 아니라 졸리를 선택하게 됨으로써 두 사람의 사적 갈등은 해결된다. 루퍼소브에게 있어서 졸리는 조력자→장애물→조력자의 순서로 변한다. 

루퍼소브는 러도시의 의뢰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킬러로서의 명성과 돈을 얻게 되지만 자신의 암살 계획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게 되면서 러도시와 공적 갈등을 겪게 된다. 루퍼소브는 러도시의 의뢰로 상대 조직의 부하들, 변호사, 보스 토니를 차례대로 암살함으로써 임무를 완수한다. 하지만 루퍼소브는 비밀스러운 암살 계획에 졸리·바바를 동참시키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러도시가 졸리·바바를 죽이라고 요구함으로써 갈등을 겪게 된다. 그래서 루퍼소브는 졸리(우정)와 러도시(돈·목숨)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루퍼소브는 졸리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졸리에게 총을 선물하고 함께 자신들을 위협하는 러도시에게 대항함으로써 러도시는 조력자에서 적대자로 변모한다. 루퍼소브와 졸리가 함께 러도시를 처치함으로써 루퍼소브와 러도시의 공적 갈등은 끝이 난다. 
 
  
 
  
 
  

  
 
3. 만화가 졸리의 애증과 내적 승화

<어쩌다 암살클럽>에서 척추지지대 수술을 받지 않으면 2년밖에 못 사는 장애인 졸리는 자신들을 떠나 새 가정을 꾸린 아버지에게 경제적 요청을 하자는 엄마와 갈등한다. 엄마는 아버지가 졸리를 사랑하신다고 말하지만, 졸리는 아버지가 장애인인 자신 때문에 떠났으며 자신을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겁하고 이기적인 아버지의 수술비를 받지 않겠다는 졸리와 아버지에게 수술비를 받자는 엄마의 사적 갈등은 사실상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졸리의 내적 갈등인 것이다. 졸리가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담아 만든 만화책 『휄체어 살인자』와 ‘자기를 보러 와도 된다’는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고 아버지가 보낸 수술비로 수술을 받으면서 졸리와 엄마의 갈등은 해결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반전은 바로 루퍼소브가 졸리의 만화책 『휠체어 살인자』 속 허구의 주인공이고 루퍼소브의 얼굴은 17년간 보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만화 속에서 졸리와 루퍼소브의 사적 갈등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으로 괴로워하는 졸리의 내적 갈등인 것이다. 영화적 현실과 만화적 현실은 정확하게 상반된다. 영화적 현실에서 올림픽 챔피언 출신이고 현재는 부유한 건축사인 아버지는 졸리와 엄마를 떠나 새 가정을 이루고 있고 장애인인 졸리를 17년간 보러 온 적이 없으며 (졸리의 생각으로는) 졸리의 장애를 부끄러워한다. 반면에 만화적 현실에서 루퍼소브(=아버지)는 장애인이 되면서 떠난 옛 애인의 결혼으로 괴로워하고 졸리와 목숨을 건 우정을 나누며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만화 속 이야기는 영화 속 졸리의 비참한 현실과 함께 재독해되면서, 여태까지 유쾌하게 즐겼던 장애인 킬러 루퍼소브 이야기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으로 괴로워하는 졸리의 이야기임이 밝혀진다. 

졸리는 장애에 대한 수치라는 문제로 내적 갈등을 겪으며, 이러한 내적 갈등은 만화에서 장애에 대한 수치·조롱→이해→극복의 단계로 나아가면서 해결된다. 루퍼소브가 “로봇다리”, “로봇자지”, “인생이 하드코어네”, “불감증 걸린 보지들” 등으로 놀리고, 졸리가 자신이 “시한폭탄”이며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장면 등을 통해 처음에는 장애인에 대한 수치와 조롱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졸리가 척추의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졸리가 “난 왜 항상 장애인일까요?”라고 묻고, 루퍼소브가 떠나간 여자친구를 잡기 위해서 택시에 기대어 정상인처럼 서 있으려고 노력하는 장면 등에서 점차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이해의 시선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다가 졸리가 루퍼소브를 만나 생전 처음 클럽에 들어가서 놀고, 여자들과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함께 호수로 여행을 가서 낚시를 하고, 암살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게 된다. 육체적인 장애로 인해 정신적으로도 소극적인 인생을 살아왔던 졸리는 육체적 장애가 있지만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루퍼소브 덕분에 자신의 일상에서 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만화의 설정은 사실상 졸리의 내적 극복의지인 것이다. 

또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그리움으로 겪는 졸리의 내적 갈등은 졸리와 루퍼소브 사이에 벌어지는 자살이나 살해 시도, 죽음 등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루퍼소브가 에비나 러도시에게 버림을 받고 배신을 당하는 장면은 바로 아버지가 자신과 엄마를 버린 것과 등가물이다. 전반부에서 루퍼소브는 졸리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러도시의 요구로 졸리를 호수에 빠뜨려 죽이려 한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루퍼소브는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졸리에게 총을 주고, 휠체어를 탄 채로 호수에 뛰어들어 졸리를 구하고, 졸리를 죽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러도시에 의해 교살을 당해 죽을 뻔하고, 졸리에게 위험을 알리는 전화를 하고, 졸리를 구하기 위해 러도시에게 맞서다가 마침내 죽음을 맞이한다. 졸리에 대한 루퍼소브의 살해 위협은 졸리에 대한 아버지의 무관심과 졸리의 원망스러운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루퍼소브가 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죽는 것은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고 구해줄 것이라고 믿는 졸리의 내재된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루퍼소브가 겪는 사적 갈등과 공적 갈등의 딜레마는 바로 졸리가 처한 내적 갈등의 딜레마이다. 만화에서 루퍼소브는 러도시의 요구대로 졸리를 죽이려고 하면 졸리와 사적 갈등을 겪게 되고, 졸리를 보호하려고 하면 러도시와 공적 갈등을 겪게 된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루퍼소브는 처음에는 러도시(돈·목숨)를 선택하여 졸리를 죽이려고 하지만, 나중에는 졸리(우정)를 선택하여 러도시에게 맞선다. 이러한 만화의 설정은 바로 졸리가 자신을 버린 아버지이지만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선택해 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만화에서 졸리에게 총을 겨누고 졸리를 호수에 빠뜨려 죽이려고 하는 루퍼소브의 모습은 사실상 장애인인 졸리를 버린 후 17년간 보러 오지 않고 결국은 수술을 받지 않으면 2년 안에 죽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한 현실의 아버지의 모습이다. 또한 만화에서 장애인으로서의 고통을 느끼고 그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며 졸리를 죽이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목숨을 걸고 졸리를 지키는 루퍼소브의 모습은 바로 현실의 졸리가 꿈꾸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리고 만화에서 루퍼소브와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의 시간을 보내고 루퍼소브에게 받은 총으로 루퍼소브를 지켜주는 졸리의 모습은 바로 현재의 졸리가 되고 싶은 미래의 자신의 모습이다. 이렇듯 졸리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사랑이라는 자신의 내적 갈등을 『휠체어 살인자』라는 만화 창작물을 통해 승화시킴으로써 아버지와의 사적 갈등을 해결한다. 그래서 마침내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책을 드리면서 자신을 보러 오라고 말하고 아버지가 주는 수술비를 받게 된다. 
 
  
 
  
 
  
 
  
 
  
 
  
 
4. 시점숏과 암시를 통한 다층적 의미 생성

<어쩌다 암살클럽>은 장애인과 일반인의 시선의 차이를 보여주는 시점숏을 통해 장애인의 현실적 어려움을 생각하게 만든다. 클럽에서 등이 아파 의자에 누워서 현란한 조명을 바라보는 졸리의 시선, 공터에서 토니의 부하들의 허리 부분을 바라보는 루퍼소브의 시선은 아이레벨보다 낮게 설정된 장애인의 시점숏이다. 이후 루퍼소브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의자를 가져와서 앉은 후 그를 바라보는 러도시의 시선, 광장에서 루퍼소브를 내려다보는 토니의 변호사의 시선은 장애인을 내려다보는 일반인의 시점숏이다. 이러한 시점숏의 대비를 통해 장애인과 일반인이 처한 현실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직접적인 묘사가 아니라 간접적인 암시를 통해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루퍼소브가 토니의 부하들을 죽일 때 피가 자동차 유리창에 튀고 총을 쏘는 모습으로 살인을 암시하는 장면, 루퍼소브가 졸리·바바를 호수에 빠뜨린 채 돌아설 때 두 사람의 허우적대는 소리를 듣는 루퍼소브의 얼굴 클로즈업 장면, 호수에서 빠져나온 후 뚝 떨어져 앉은 세 사람의 아래쪽에 호수의 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면, 나무벽 사이로 졸리와 바바를 바라보는 러도시의 시선 등 간접적인 암시를 통해 풍부한 의미와 앞으로의 복선을 전달하고 있다. 

또한 부조화의 아이러니, 극적인 아이러니, 성격의 아이러니 등 다양한 아이러니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물리치료실에서 루퍼소브가 쓰러져서 못 일어나면서도 3년 후 뛸 거라고 말하는 장면, 토니의 집에서 루퍼소브가 휠체어에 깔아 놓은 쿠숀에서 총을 꺼내 암살하는 장면, 결혼식장에서 에비에게 지금 화장실에 가서 키스하고 섹스하자고 말하는 장면 등 강한 의지와 유머 감각을 가진 장애인 킬러라는 설정으로 부조화의 아이러니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밖에도 장애를 활용한 암살 계략에서 발생하는 극적인 아이러니, 사람과 총을 싫어하는 조직의 두목이라는 성격의 아이러니 등도 다층적인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 

영화와 만화의 결합도 혼합매체와 액자구성의 특성을 통해 복합적인 의미를 생성한다. 영화에서 만화 그림과 영상 장면이 똑같은 이미지 컷으로 연결되지만, 관객들은 누구나 관습적으로 졸리가 복지센터에서 만난 루퍼소브와 겪은 일을 만화로 옮기는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일단 영화적 현실과 만화적 현실에서 졸리라는 인물이 동시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졸리의 실제 상황과 만화에서의 상황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항상 만화 그림 컷이 나온 후 똑같은 이미지의 영상 장면 컷이 나왔다는 점에서 루퍼소브 이야기가 허구임을 암시하고 있다. 졸리가 루퍼소브의 사진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죽은 루퍼소브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17년간 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사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 되어서 자신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는 것을 상상하는 만화책을 아버지에게 드리는 것은 바로 아버지에 대한 졸리의 용서인 것이다.
 
  
 
  
 
  
 
  
 
5. 두 개의 세계와 소리 없는 탈주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는 냉혹한 정신과 뜨거운 관능, 창조하는 자의 세계와 생활인의 세계의 대비를 보여준다. <어쩌다 암살클럽>에도 아버지/아들, 정상인/장애인, 상층/하층, 생활인/예술인 등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장애인 킬러인 루퍼소브가 장애인이라는 자신의 벽을 뛰어넘어 탈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성적인 만화가 지망생인 졸리의 내적 탈주이자 소리 없는 아우성인 것이다. 만화에서는 장애인이 킬러로 변신하여 기발한 계략으로 조직원들을 처치하는 내용이지만, 영화에서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장애인 아들이 만화 속 허구의 세계에서나마 아버지에게 이해받고 싶고 아버지와 화해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점에서 <어쩌다 암살클럽>은 울림이 큰 작품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어쩌다 암살클럽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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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곡숙

등록일2018-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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