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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용] 김양희 각본·감독의 <시인의 사랑> ― 시와 사랑으로 그린 세 갈래 마음의 행로

산방산 쯤 되어 보이는 야트막한 산이 풀 숏으로 잡히고, 시골 버스정류장의 한산함이 매력으로 담긴다. 게처럼 이 곳 저곳을 누비는 버스는 익숙한 제주의 모습들을 나른다. 버스에서 시인이 보는 바깥 풍경이다. 나른한 오후와 썰물의 포기 같이 내려앉아 제주의 색깔을 토하며 ‘보이스 오버’되는 시, 현택훈 시인의 ‘내 마음의 순력도’는 <시인의 사랑>을 신비로 몰아간다. 감독은 ‘마음의 곶자왈’(현택훈), ‘그래서’(김소연), ‘희망’(기형도) 등 여러 시를 배합한다.  

‘내 마음의 순력도를 펼쳐놓고/ 현재 나의 경로를 짚어봅니다./ 청포도가 있던 집이 있던 곳에서/ 기억의 환해장성이 드리운 섬까지/ 순력도를 그리며 삽니다./ 동복삼거리, 민방위훈련 때문에 정차한 차들/ 시외버스 차창 밖 표정은 나른한 평화/ 죽은 누이의 치마 같은 가을 햇볕/ 일주도로처럼 내 마음속을 나는 까마귀 한 마리 있어/ 나는 포수가 되고 싶지만 외로운 성을 혼자 지키는 포졸인걸.…’ 감독의 의도대로 쇠태한 귀들은 집중을 요한다. 
 
  

김양희 각본・감독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 <시인의 사랑, The Poet and The Boy, 109 min, 2017>은 제목이 주제를 품는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마흔의 시인 택기(양익준), 생계를 책임진 아내 강순(전혜진), 도넛 가게 알바생 소년 세윤(정가람) 세 명이 중심축이 되어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광과 대비되는 자신들의 고민들을 보여주면서 갈등을 극복하고 마무리한다. 감독은 극단과 완벽 보다는 최선을, 칼 같은 경직보다는 모성적 유연성으로 작품을 전개시킨다. 

<시인의 사랑>은 시인의 사랑법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시인의 감성이 영화에 내려앉으면 포수는 사라지고 ‘곶자왈’ 시인들 그룹의 합평회 코멘트에 상처받는 현택기의 두툼한 안경과 삼겹살의 확장인 뚱뚱한 몸체가 드러난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초등학교 ‘방과 후 학교’ 글짓기 교실에서 부터 아내의 잔소리가 애정으로 번지는 시골집으로 바뀐다. 시인은 모니터에 잡힌 두 마리 정자처럼 삶이 코미디 같음을 간파한다. 일상의 대화들은 시인의 것과 질료가 다르다. 
 
  
 
구스타프 말러에 대한 존중에서 쓴 독일소설가 토마스 만의 단편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루키노 비스콘티에 의해서 1971년 영화화 된 바 있다. 세월이 지난 뒤, 김양희는 ‘부부와 소년’이라는 삼각관계를 내세워 ‘죽음에 이르는’의 파격적 사랑을 우회한 한국적 동성애를 은유적으로 묘사해 낸다. 영화 속 곶자왈은 이상이 실현될 것 같은 원시적 미지의 공간으로 설정되고, 영화는 절제된 과잉 없는 감성적 심리연기들로 도출된 문제들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시로 읽고 보는 <시인의 사랑>에서 찬란한 햇살이 눈부시게 소년 위에 쏟아지듯 시인이 미소년을 만난 이후의 삶은 과거와 차별된다. 거룩한 바다는 깊은 풍경과 더불어 늘 소년의 싱그러운 모습의 배경과 장식이 된다. 이원세 감독의 <목마와 숙녀> 이래 시가 주인공의 목소리로 흘러나오고 시인의 감수성을 <시인의 사랑>보다 드높인 영화는 없었다. 시인의 상상으로 빚은 시 자체가 주인공이 된 영화는 미지의 감독이 한국영화에 보탠 옹골진 힘이었다. 
 
  
 
상상을 벗겨내면 시인은 밤이 두려운 정자 감소증의 찌질한 시나 쓰는 생활무능력자, 아내는 제주도 특산물로 악착같이 생계를 유지하며 아이를 갖고 싶은 여인, 소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가난하여 집에서 누워있는 아버지를 수발하면서 또래의 아이들과 놀고 싶은 희망을 잃은 아이일 뿐이다. 감독은 여건의 불합리를 탓하지 않고, 그녀의 연출력은 도식적 스토리 라인을 들어내고, 생략과 은유로 주인공 삼인의 상관(相關)을 섬세하게 연결하고 떨림을 준다.  
    
<시인의 사랑>은 난해함을 피하고 단순구성으로 시에 접근하는 방식을 취한다. 시인은 아름다움의 모형인 소년 때문에 영혼의 흔들림으로 괴로워하며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움의 시간을 보낸 뒤 시인은 자신이 저축한 거금의 통장을 우상에게 바치는 제물처럼 소년에게 건넨다. 영화 속에는 시적 동경과 미덕을 배운 자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고결한 얼굴과 무결점의 몸체를 만났을 때 시인만이 느낄 수 있는 성스러운 불안이 먹번짐 같이 퍼진다.  
 
  

영화는 남원 포구, 서귀포 앞바다를 일상의 배경으로 삼고 정상을 벗어난 사랑 때문에 모두 타버릴 파국을 원치 않는다. 아내는 아이를 갖고 돌잔치를 하고, 자기 시에 슬픔을 이식시키려 애쓰며 번뇌하던 시인은 예쁜 혹을 돌보면서 시작(詩作)을 하면서 영화는 종료된다. 소년은 애비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영화는 자연, 시, 사람을 몸으로 느끼는 자가 지고의 정신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며 극성(劇性)을 자제하고 행복으로 맺음 한다. 
 
  
 
김양희는 우리에게 가능성의 감독이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속엔 숨어 있는 시 한 편을 끄집어 내기위해 시를 사랑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며 슬픔을 시의 재료로 삼는 시인을 만들어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사람을 위해 대신 울어주도록 <시인의 사랑>을 만들어내었다. 엄숙하고, 은밀한 비밀이 들어있을 것 같은 신인감독의 풋풋한 영화적 수사 속에는 웃음과 정이 살아있다. 김 감독이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감독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글: 장석용
영화평론가. 시인.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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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곡숙

등록일2018-05-05

조회수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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