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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용] 임대형 각본·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 꿈과 세월을 서정의 근간으로 짠 블랙코미디

모퉁이 이발소가 아니라도 황혼 무렵엔 쓸쓸함이 찾아온다./ 길게 빨아들인 담배연기가 그리움으로 검붉은 폐에 기별할 때/ 꿈과 맞바꾼 빗질과 가위질/ 마음이 일렁일 때 마다/ 면벽 호프질은 사내의 눈물을 닮는다./ 그리운 이들이 이름 없는 빛으로 사라진 들녘위로/ 빛이 되어 오기를/ 의식처럼 담배를 물고 있다./ 하양, 빨강, 파랑으로 짠 이발소 표시등이 깨끗이 꺼지게 전에/ 크리스마스가 익어갈 무렵/ 사내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를 완성해야한다.

임대형 각본・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Merry Christmas Mr. Mo, 2016, 101 min>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찬란한 生의 모멘텀’을 담은 흑백영화이다. 삶의 종착역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기억될만한 것을 남긴다면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미스터 모(기주봉) 모금산은 영화감독을 꿈꾸는 아들(오정환)을 위해 <시네마 천국>에서 스승인 영사 기사가 남긴 잘려진 흑백영화의 기억처럼 진한 감동을 남기는 영화 한 편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가치는 시대의 편향을 추종하지 않는 감독의 주제의식, 독창적 상상과 기교, 다양성 추구에 있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출품된 이 작품은 임대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임대형 감독은 단편 <만일의 세계>로 서울독립영화제(2014) 우수작품상, 미쟝센단편영화제(2014) 심사위원특별상 등을 받으며 주목할 영화감독으로 부상되었고,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의 일면을 보여주는 다양성 영화이다.

차별화를 시도하는 영화는 흑백영화, 낯선 듯하지만 익숙한 배우 기주봉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겨울채비’의 선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어린 시절의 장난감 ‘총싸움’ 같은 씬들을 배치하고,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겠다는 발상은 이 영화의 시발점이 흥행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독립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신인감독 임대형이 전개시키는 스토리 라인은 늦가을의 쓸쓸함으로 다가 오지만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다.

영화의 기존 문법과 전개를 무시하고 임대형이 대안으로 제시한 이 영화는 처음에는 낯설게 다가 왔다가 마음의 유동과 공감을 이끌면서 영화적 힘을 발휘한다. 신세대 감각의 영화는 과다 감정 표현을 우회하고 동시대의 언어와 사고로 담담하고도 담백하게 우울한 아버지의 초상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열정의 붉은 색과 하얀 가운이 만나 연분홍 꿈을 키워왔던 이발소와 작별을 준비할 때 찾아온 불청객 암은 일순 모금산을 당황하게 만들지만 평정심을 되찾는다.

‘씻김’의 행위와 유머의 일부를 리허설 하는 기분으로 비춰진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유형과 양식에서의 남다름으로 절제된 동작과 화법은 설득력을 얻고, 반복되는 모금산의 일상이 서민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친밀감을 유지한다. 암 선고를 받은 모금산의 절박함에서 시작된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 자신의 꿈이었던 영화촬영은 많은 유머를 담아 영화감독인 아들 스데반과 그의 여자친구 예원(고원희)에 의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

  

  

가버린 아내에 대한 존중, 시골 이발사 모금산은 찰리 채플린을 좋아했던 아내를 위해 채플린 모자를 쓰고,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본다. 추억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작업, 젊은 날의 자신의 꿈이자 홀로 남을 아들과 소중한 친구들을 위한 영화촬영을 한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가족여행의 변형이다. 이발소 앞의 담배 한 모금, 안개처럼 사라질 자신의 모습이다. 화려함은 평범한 일상이 빚은 희생의 대가이다. ‘축성탄, 미스터 모!’ 부재는 존재보다 더 빛난다.

“영화감독이 영화를 찍어야지!”는 아버지 모금산의 유언 같은 명령이다. 모든 영화 감독에게 내리는 계명이다. 영화는 그들이 외롭고 쓸쓸할 때, 더 이상 등이 휘기 전에 위로하고 만나야 함을 깨우친다. 의식으로 치루는 추억 만들기가 아닌 마음의 어울림이 필요한 시점이다. 홀로 면벽 술을 마시는 모습은 더 이상 없어져야 한다. 누구에게나 위대한 여름이 있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는다.’ 혼자 보다는 둘이라면 더욱 아름답다.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많은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았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을 보인 뒤, 작년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을 받았고,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의 초청을 외에도 금년 제22회 빌니우스국제영화제, 제10회 프랑크푸르트국제영화제, 제19회 부에노스아이레스국제독립영화제, 제5회 무주산골영화제, 제52회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제12회 파리한국영화제, 제12회 런던한국영화제, 제1회 마리아나스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 소박한 코미디 영화 한 편이 자신의 삶과 주변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글: 장석용
영화평론가. 시인.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 회장, 대종상 심사위원,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이태리 황금금배상 심사위원, 다카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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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곡숙

등록일2018-05-05

조회수6,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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