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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 <위대한 쇼맨> ― 무대를 둘러싼 관계의 허위와 엇갈리는 시선

12월 20일 개봉


1. 태국 코끼리쇼와 <위대한 쇼맨>

필자에게 제일 재미있었던 여행은 대학교 때 갔던 태국 여행이다. 캄캄한 밤 도착한 태국 공항 바닥에서 신문지를 깔고 웅크리고 잔 하룻밤, 출국 줄을 서다가 알게 된 내 또래 한국 대학생들과 친구가 되어 방콕 시내를 돌아다닌 일, 높다란 탑 아래 입구에서 무거운 배낭을 맡겨 놓으라는 마음씨 좋은 경비원이 배낭을 훔쳐 달아난 일, 30대 한국인을 만나 성적으로 충만한 쇼에 갔다가 포르노영화를 방불케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중간에 나온 일 등 방콕 여행은 흥미로웠다. 일행들과 함께 떠난 치앙마이 정글트래킹에서는 울창한 밀림 숲을 낫으로 헤치며 걸었고, 원주민 마을에서 태국 전통옷을 입고 태국 시골 음식을 먹었고, 원두막에 잘 때는 태국 남자들로부터 한국 여자를 지켜야 한다며 일행들이 성처럼 둘러싸면서 자줬고, 코끼리를 타고 절벽이 내다보이는 좁다란 비탈길을 지나갔고, 즉석에서 만든 대나무 뗏목을 타고 급류를 헤치며 래프팅을 했다. 

그 일행들과 친해져서 내가 방콕에서 가족들과 합류한 후 방콕, 코사무이 등을 여행할 때도 함께 동행했다. 외할아버지, 엄마, 이모들, 언니와 만난 후 여행이 완전히 바뀌어서 이전의 모험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태국판 관광여행이 되었다. 외할아버지께서 태국 음식의 독특한 향을 못 견뎌하셔서 싸고 별미인 태국 음식을 포기하고 비싼 한국 음식을 먹어야 했고, 매 끼니마다 택시를 타고 한국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간 곳은 어르신들의 관광코스였던 가든이었고 거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코끼리쇼였다. 가족의 여행 가이드를 자처했던 언니가 코끼리쇼에 자원해서 나가서 우리는 바닥에 드러누운 언니의 배 위에 코끼리가 발을 올려놓는 것을 지켜봤다. 그 모습에 어른들은 기겁하시고 난 언니의 용감한 행동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때 코끼리가 조금만 무게 중심을 잃어버렸다면 언니의 갈비뼈는 부서지고 내장은 다 망가지는 공포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지금 새삼 소름이 돋는다. 

최근 개봉한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2017)은 사업의 실패와 성공, 화려한 서커스 공연, 인물의 갈등과 화해 등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바넘이 코끼리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는 멋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태국 여행에서 코끼리를 탔던 즐거운 경험과 코끼리쇼의 아찔했던 기억을 동시에 갖고 있는 나에게는 그 장면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이상하게 몸에 열이 오르기도 하고 이유 없이 화가 불끈 치밀기도 하는 갱년기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위대한 쇼맨>을 보는 필자는 동일시를 해야 하는 주인공 바넘에게 이상하게도 자꾸 시비를 걸고 싶어진다.
 
  
 

2. 고급문화/대중문화의 충돌과 관계의 허위

어린 시절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휴 잭맨)은 아버지가 고용된 대저택 주인의 딸인 채리티(미셸 윌리엄스)에게 첫 눈에 반해 사랑을 키우다가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는다. 직장이 파산하여 실업자가 된 바넘은 미국 호기심 박물관을 설립하지만 실패하자 특이한 외모의 사람들을 모집하여 서커스단원을 꾸려 성공한다. 그리고 그는 상류층 연극계의 총아인 필립 칼라일(잭 에프론)을 고용하여 쇼를 더욱 성공시키고,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레베카 퍼거슨)를 섭외하여 상류층 관객도 사로잡게 된다. 

<위대한 쇼맨>에서 P. T. 바넘은 서커스단원들, 필립 칼라일, 평론가 베넷, 제니 린드를 중심으로 공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우선, 바넘과 서커스단원들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바넘은 배고픈 어린 시절 얼굴이 기형적인 여자가 자신에게 사과를 건네준 따뜻한 기억을 품고 있어서 특이한 외모의 소유자들에게 우호적이다. 바넘은 “바넘의 미국 호기심 박물관”을 열려서 진귀한 사물들을 전시하였으나 대중들이 외면하자 진귀한 사람들로 그 영역을 확대한다. 바넘은 “특이한 분들”을 찾는다는 모집광고을 하는 한편, 그들을 직접 찾아 나서서 섭외를 한다. 바넘은 270kg의 거구를 340kg의 아일랜드 거인으로 과장시키는 등 그들의 특이한 부분을 섹시한 문구로 포장하고 그들을 호기심 박물관의 아이템으로 변신시킨다. 특이한 외모를 가진 이들은 바넘의 손을 거쳐 엄지 장군 찰스, 노래하는 수염여자 레티, 공중공예사 남매, 문신 인간, 들개 소년, 아일랜드 거인 등으로 홍보된다. 조롱받는 것이 싫다며 거부하는 그들에게 바넘은 이왕 조롱받는 거면 “돈을 받으며 조롱받자”고 설득한다. 이때 바넘이 부르는 노래는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펴요”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집에서 숨어살던 신세에서 돈을 받으며 생계를 해결하는 직업인으로 거듭나게 되어서 바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영화를 들여다보면 바넘은 그들이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펴”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고, 사실상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그들을 포섭하고 있을 뿐이다.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의 공연이 있을 때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감탄하는 수염녀 레티 등 단원들이 상류층 관객의 비위를 건드릴까 염려하여, 바넘은 “눈에 잘 띄는 박스석”이 아니라 “음향이 잘 들리는 입석”에 배치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제니 린드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열린 리센션 파티에 단원들이 찾아오자, 바넘은 그들에게 곧 있을 공연을 준비해야 하니까 파티에는 참석하지 말라며 문을 닫아버린다. 바넘은 화재로 자신의 박물관이 전소되고 제니 린드와의 공연도 취소되어 파산하게 된다. 절망하여 혼자 술은 마시는 바넘에게 단원들이 찾아오자 바넘은 단원들에게 자신은 “알거지”이기 때문에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말한다. 바넘에게 있어서 자신과 단원들의 관계는 사실상 경제적인 이익에 기초한 관계이기에, 자신의 생각에 비추어볼 때 파산한 자신에게 단원들이 볼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바넘과 필립 칼라일의 공적 관계이다. 바넘은 자신의 서커스단원들의 공연으로 부를 축적하여 성공하게 되지만, 큰딸의 발레 공연 리셉션 파티에서 자신의 딸이 친구들로부터 “땅콩냄새”가 난다며 무시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상류층 연극계에서 성공한 젊은 연극연출가 필립 칼라일이다. 필립은 명망 있는 상류층 집안, 잘 생긴 외모, 뛰어난 실력으로 상류층 사교계의 유명인사이다. 바넘은 가족의 상류층 진입과 사업의 고급문화 입성을 위해 필립에게 쇼비즈니스가 상류층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물으며 서커스단 일을 제안한다. 이에 필립은 바넘의 서커스공연을 땅콩 부스러기, 조롱거리에 불과하다며 거절한다. 하지만 바넘은 필립의 현재 생활을 지루한 감옥, 매일 똑같은 역할을 반복하는 관습의 제왕, 술·불행·파티만 있다고 지적하면서, 자유로운 인생, 다른 세상이라고 자신의 삶을 예찬하면서 그를 설득한다. 필립이 솔깃하지만 위험한 제안이라고 망설이자, 바넘은 결국 10% 수익을 주는 “동업자”(사실상 “등골 빼먹는 견습생”이라고 생각하면서)를 제안하여 그와 계약을 맺게 된다. 하지만 바넘이 서커스단 공연보다 제니 린드의 공연에 집중하면서 바넘과 필립은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고 바넘은 평론가 베넷과 갈등한다. 베넷은 바넘과 서커스공연을 사기꾼 왕자, 사기꾼들의 서커스, 가짜라고 말하며 악평을 내뱉는다. 이에 바넘은 관객의 즐거움은 진짜이고 상상력이 즐거울수록 슬픔이 줄어든다며, 공연을 즐기지 못하는 공연평론가가 사기꾼이라고 반박한다. 베넷은 공연을 말하는데 바넘은 관객을 말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 논쟁의 대상이 다르며, 이런 논쟁은 작품성/대중성, 고급문화/대중문화 등 예술계의 대표적인 논쟁거리를 들추어낸다. 베넷은 제니 린드의 오페라 공연을 본 후 베넷이 호평을 하지만, 제니 린드가 바넘이 아니라 다른 좋은 에이전트가 필요하다고 악담을 한다. 이에 바넘은 베넷에게 말솜씨보다 글솜씨가 낫다고 공격한다. 화재로 인해 건물이 모조리 타버린 후 실의에 빠진 바넘에게 베넷은 다른 평론가라면 예술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준 “훌륭한 인간애”라고 칭찬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다소 누그러지게 된다.

<위대한 쇼맨>에서 바넘과 제니 린드의 관계는 공적 갈등에서 사적 갈등으로 변화한다. 바넘은 영국 여왕 파티에서 유럽에서 유명한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에게 뉴욕 공연을 제안한다. 제니도 바넘의 이름을 들었다는 말에, 바넘이 “매우 잘해서”라고 으스대자 제니가 “못해서”라고 응대하고, 바넘이 “쇼맨”이라고 소개하자 제니는 “사기꾼”인 것 같다고 대답하는 등 갈등을 보여준다. 바넘이 뉴욕에서 제일 유명하게 해주겠다며 뉴욕 공연 수익의 20%를 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자신의 수익금의 대부분을 기부하며 돈에는 관심 없다며 거절한다. 하지만 제니는 자신과 공연을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한 번쯤은 진짜를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바넘이 답변하자 공연을 수락한다. 바넘은 항상 상대편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것으로 공략해서 끌어들인다. 바넘이 제니의 공연에 대해 감탄하는데 제니는 그런 바넘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사실 바넘이 감탄한 것은 그녀의 능력과 그녀로 인해 벌어들이는 수익과 명성이지 그녀 자체가 아니다. 바넘에게 있어 그녀는 자신이 상류층과 고급문화로 가는 문의 열쇠일 뿐이기 때문에 바넘은 그녀의 사랑을 거부한다. 

바넘과 아내 채리티는 계층 차이, 행복의 기준 차이로 인해 갈등이 생겨난다. 바넘은 채리티에게 집 근처에 있는 대저택을 보여주면서 “내 마음의 집”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후 거리에서 노숙자 신세로 비참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게 된 바넘은 상류층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채리티에게 “우리가 만들 세상을 꿈꾸네”라는 편지를 보내며 사랑을 키워 나간다. 바넘은 상류층인 채리티 아버지의 반대로 무릅쓰고 채리티와 결혼하게 되고 성공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결국 바넘은 채리티에게 약속한 대로 “내 마음의 집”을 사고 “우리가 만들 세상을 꿈꾸네”처럼 돈을 벌어 꿈을 이룬다. 하지만 바넘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돈을 얻고 더 많은 명성을 얻어 상류층에 진입하고자 하여, “좋은 사람 몇 사람만 곁에 있으면 된다”는 소박한 소망을 갖고 있는 채리티와 갈등하게 된다. 결국 채리티를 호강시켜 주기 위해서 성공을 추구한다는 바넘의 꿈은 채리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꿈인 것이다. 

상류층 출신의 촉망받는 연극인인 필립은 서커스단원인 흑인 여자 곡예사인 앤에게 첫 눈에 반한다. “다른 세계로 날 따라와요”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앤의 시선과 그녀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반하여 시선을 떼지 못하며 필립은 앤이 속한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그 다음에 필립이 앤을 오페라 극장 공연에 초대하여 자신이 속한 세계로 데려간다. 이때 만나게 된 부모님이 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여 앤이 떠나버리자, 필립이 부모에게 화를 내고는 앤을 따라간다. 필립은 자신을 거부하는 앤에게 “운명은 우리가 만드는 것”, “함께 우리의 별자리를 만들어요”라며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만, 앤은 “큰 산”, “넘지 못할 벽”이라며 돌아선다. 나중에 필립이 앤을 구하려고 불 속에 뛰어들었다가 크게 다쳐 입원하게 되자, 앤은 예전에 필립이 불렀던 노래, 즉 “함께 우리의 별자리를 만들어요. 당신이 내 운명이라고 말해줘요. 어느 것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어요”라는 노래를 부르며, 두 사람의 계층과 인종 차이로 인한 갈등을 극복한다. 

인물을 판단할 때 그 인물을 무엇을 말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 과연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중요하다. 채리티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사람의 아들인 바넘을 사랑하여, 부유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넘과 결혼을 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다. 상류층 부자이면서 인기인이었던 필립은 자신이 이미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진 상황이기 때문에 실상은 바넘이 제안한 동업자 10%에 유혹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필립은 나중에 화재가 나서 빈털터리가 된 바넘에게 동업자 50%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유혹에 이끌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채리티와 필립은 부와 명예를 버리고 사랑과 자유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가장 비슷한 유형에 속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바넘의 선택은 항상 사랑과 자유가 아니라 경제적 이익이나 명성이다. 그 당시 상층계급은 신분과 돈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지만, 바넘은 돈은 있으나 신분이 낮아 상층계급에 끼지 못하는 상태이다. 반면에 필립과 채리티는 두 가지를 모두 가진 경우인데, 바넘은 자신이 상층계급에 발돋움하기 위해서 상층계급에 있는 그들을 자신의 세계로 끌고 온다. 상층계급 문화에서 영웅이자 인기인인 필립을 자신의 서커스단에 끌어들이고자 자신이 속한 세계와 필립이 속한 상층계급의 세계를 계속적으로 비교하면서 자신의 세계에 대한 자랑을 한다. 바넘은 상층계급에 있는 채리티와 결혼했고 돈도 벌었지만, 돈과 신분 두 가지를 모두 필요로 하는 상층계급에 진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의 갈망은 계속된다.

바넘은 기만적인 인물이다. 공적 관계에서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이익을 위해서 거짓을 말하지만 본인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영화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치열한 접점을 보여주고 바넘은 겉으로는 대중문화를 찬양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경제적 바탕은 대중문화에 있지만,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고급문화를 기웃거리며 갈망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욕망으로 인해 상류층의 유명 인사인 연극계 총아 필립과 동업자 관계를 맺고, 영국 여왕이 인정하는 유럽 오페라계의 디바 제니 린드를 섭외한다. 그의 이러한 목마름은 배고픈 어린 시절 자신이 거부당한 상류층, 아내의 부유한 부모의 결혼 반대, 아이의 발레리나 꿈 등으로 인해 더욱 간절해진다. 부유한 집안의 아내와 결혼했고, 서커스 공연으로 막대한 부도 얻었고, 상류층 연극인과 동업자가 되었고, 영국 여왕을 알현했고, 상류층 오페라 스타인 제니 린드를 섭외하여 성공했지만, 그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바넘의 관계는 허위이고 그의 연대는 거짓이다. 연대를 외치는 바넘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이 진정한 연대를 보여준다. 바넘은 자신의 사업에 이용가치가 있을 때에만 허위의 연대를 외칠 뿐,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가차 없이 내치는 인물이다. 하지만 채리티, 필립, 서커스 단원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포기하는 희생을 치루면서 연대를 선택한다. 채리티는 빈털터리 바넘을 선택하여 부모와 의절하고, 필립은 자신이 속한 상층계급과 명성을 버리고, 필립과 서커스 단원은 알거지가 된 바넘에게 동업자를 제안하고 가족임을 상기시킨다. 

바넘은 제니 린드 공연에서 공연장과 리셉션 파티에서 서커스 단원들을 소외시킨다. 이에 단원들은 ‘내 흉한 모습과 이 어둠이 익숙하지만, 이제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니며 우리는 멋진 존재’라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화제가 일어난 후 서커스단원들이 자신에게 오자, 자신은 이제 알거지라며 자신에게 오지 말라고 바넘이 말한다. 하지만 바넘이 돈으로 설득한 서커스단원들은 ‘도망가려는 자신을 세상 밖으로 꺼내줬다’며 바넘에게 감사하며, ‘진짜 가족이자 우리의 집’인 서커스단에 남겠다고 밝히면서 돈이 아니라 연대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돈으로 설득한 필립도 화재로 인해 알거지가 된 바넘에게 자신의 돈을 모두 투자해서 서커스단을 재건할 때, 바넘이 제시한 10%가 아니라 50%를 제안하며 동업자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돈이 아니라 연대를 말한다. 필립은 사교계의 명사에서 일도 없고 돈도 없는 처지로 하락했지만 자신에게 “기쁨”을 줬다며 바넘에게 고마워한다. 다시 서커스단이 재건되어 정상에 오르자 바넘은 자신의 무대 위 자리를 필립에게 넘겨주며 “아이들이 크는 것을 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있는 공간은 상층계급으로 이루어진 발레공연장이다. 이때 나오는 노래 가사는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게 여기 다 있어요”이지만 사실상 바넘이 선택한 가치는 ‘가족’이 아니라 ‘상층계급으로 가는 문’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고급문화/대중문화, 영국문화/미국문화의 비교는 아주 익숙한 주제이다. 스테이크를 썰고 파티에서 꽉 쪼이는 옷을 입으며 우아한 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숨막히는지를 보여주면서, 길거리에서 햄버거를 베어 물 때와 시리얼로 간단히 식사를 대신하는 것이 얼마나 간편하고 자유로운지를 끊임없이 비교한다. 할리우드 영화는 영국문화와 고급문화를 숨막히고 갑갑한 관습의 세계로 그리는 반면, 미국문화와 대중문화를 편안하고 자유로운 이상적 세계로 표현한다. 할리우드 영화는 항상 이러한 거짓 찬양을 통해 자신의 영국문화와 고급문화에 대한 갈망과 열등감을 숨긴다. 마지막에 바넘이 생전에 한 말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진정한 예술이다”로 영화는 마치면서 미국문화에 대한 찬양으로 끝을 맺으면서 그 관계의 허위에서 정점을 이룬다. 
 
  
 
  
 
3. 계층 갈등과 엇갈리는 시선

<위대한 쇼맨>은 인물들의 엇갈리는 시선으로 그들의 사랑과 갈등을 드러낸다. 채리티와 바넘은 항상 서로를 쳐다보면서 사랑을 보여준다. 하지만, 제니 린드의 첫 공연 때 제니는 관객석을 바라보고, 바넘은 이러한 제니를 바라보고, 채리티는 제니와 그녀를 바라보는 바넘을 동시에 바라보는 장면을 통해 엇갈리는 시선을 통해 엇갈리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필립과 앤의 관계에서도 첫 만남에서 정지된 상태에서 서로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장면으로 서로에게 첫 눈에 반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첫 만남 이후 앤에게서 눈을 못 떼는 필립과 그런 그의 시선을 의식하는 앤을 보여주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서서히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제니 린드의 공연을 볼 때 필립이 앤의 손을 잡으면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필립의 시선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부모님에게로 향하자 앤은 필립의 손을 놓고 떠난다. 그리고 제니 린드의 공연이 끝난 후 열린 파티에 초대받은 필립과 달리 초대받지 못한 앤은 거리에서 건물 위층 파티장에 있는 필립을 올려다보며 위와 아래로 갈라진 자신들의 처지를 각인시킨다. 반면에 필립이 앤을 구하려고 화재 현장을 뛰어들었다가 혼수상태가 되었을 때는 필립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눈을 감고 있고 앤은 그러한 필립을 내려다보면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함으로써 시선의 위치와 방향이 역전된다. 마침내 필립이 의식을 차린 후 서로 쳐다보는데 이때 시선의 위치는 거의 비슷하게 설정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희망적이라는 것을 표현한다. 

<위대한 쇼맨>은 교차편집을 통해 인물들의 관계에서 대조를 보여준다. 바넘-채리티와 채리티-아이들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제니의 공연과 무대 옆에서 기뻐하는 바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첫째딸의 발레 공연과 객석에서 기뻐하는 채리티와 둘째딸 그리고 비어 있는 옆자리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바넘의 부재를 강조한다. 그리고 바넘-제니와 필립-앤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제니의 공연 후 바넘이 무대 위에서 제니의 손을 잡고 함께 인사하고 관객이 박수로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필립이 앤의 손을 잡고 함께 인사하자 관객이 야유하는 모습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상반된 반응 그리고 두 남녀 관계에 대한 상반된 분위기 등을 교차편집으로 표현한다. 

바넘과 채리티의 옥상 댄스 장면은 <라라랜드>의 동산에서의 탭댄스에 버금가는 로맨틱한 커플 댄스를 보여준다. 커다란 달을 배경으로 하얀색 빨래감이 스크린처럼 펼쳐지면서 그 속에서 춤을 추는 두 사람을 영상으로 재현하고 있다. 달로 상징되는 미래의 꿈, 이상과 대비되는 이미지로 제시되는 이불 빨래감은 두 사람의 고달픈 현재를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커플댄스는 저택의 댄스홀이나 정원이 아니라 허름한 아파트의 옥상 공간에서 펼쳐지며 옥상 공간의 난간에서 떨어질 듯 말 듯한 두 사람의 커플댄스는 두 사람의 험난한 현재와 앞으로의 아슬아슬한 미래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바넘과 채리티의 옥상 댄스는 계층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두 사람의 가난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필립과 앤의 곡예 댄스는 최근에 본 커플댄스 중 가장 다이내믹하고 환상적인 춤을 선보이고 있다. 상하좌우 골고루 공간을 안배함으로써 무대 위의 모든 공간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상승, 하강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중앙(필립)과 가장자리(앤)를 통해 두 사람의 신분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간 배치를 보여준다. 또한 하늘을 날지 못하고 중앙의 땅에 머무르고 있는 필립을 통해서 자신의 높은 신분으로 인한 제약이 두 사람의 사랑에서 장애물이 되고 있음을 표현한다. 그래서 그가 위층의 난간으로 올라가 도약해서 앤이 매달린 줄을 잡을 때 미래의 화합을 예견하는 복선을 보여준다. 반면에 줄에 매달려 가장자리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유가 있지만 가장자리를 맴돈다는 점에서 사회의 주변부를 차지하고 높은 신분과 돈을 가진 필립과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힘든 현재의 역경을 표현하고 있다. 필립과 앤은 댄스를 상층계급 백인 남성과 하층계급 흑인 여성이 계층과 인종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바넘이 관객석 뒤에서 바라보는 관객석은 어두운 실루엣만이 있어서 스산하고 무서운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최대한 어두운 조명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바넘이 무대 위로 나아가면서 조명은 점차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변화하고 마침내 바넘이 무대 위로 올라갈 때는 최대로 화려하고 밝은 조명이 내비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대 뒤의 어두운 조명보다 무대 위의 밝은 조명이 더 불안하고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화려한 무대 위의 공간이 언젠가는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무대 위에서 웃지만 무대 뒤에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이중적인 생활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두움/밝음이라는 극단적인 조명의 대비를 통해 무대 뒤의 공간과 무대 위의 공간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4. 무대 뒤와 무대 위 그리고 가면

히치콕의 영화에서는 항상 하층계급이나 소수자가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파괴공작원(Saboteur)>(1942)에서는 서커스단의 단원들이 경찰에게 쫒기는 도망자인 주인공 배리 케인(로버트 커밍스)을 도와주면서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준다. <위대한 쇼맨>도 서커스단의 단원들의 인간미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미국 쇼비즈니스의 창시자이자 노이즈 마케팅으로 유명한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사랑과 성공을 다룬 영화이다. <위대한 쇼맨>은 서커스의 화려한 볼거리와 뮤지컬의 감성적 사운드를 조합하고, 아카데미에서 음악상을 받은 <라라랜드>팀이 합류하여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바넘의 기만은 우리의 기만이다. 서커스단원이 바넘에게 배척당할 때 “이 어둠이 익숙”하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러한 “기만”이 익숙하다. 무대 뒤의 어둡고 힘든 공간은 무대 위의 밝고 화려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듯이 우리 속의 기만과 허위는 사랑과 연대로 포장된다. 그래서 우리는 바넘이 말로는 연대를 말하지만 행동으로는 그 연대를 기만하는 것을 볼 때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되고 바넘의 기만이 평론가와 단원들에 의해 “훌륭한 인간애”로 포장되는 것을 지켜본다. 무대 위에서 우리의 유리가면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며 아슬아슬한 초조감을 갖고서.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위대한 쇼맨 - 포토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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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곡숙

등록일2018-05-05

조회수6,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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