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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 영화 <탠저린> - 거리의 천사들

 
 

로스앤젤레스를 무대로 한 숱한 영화들은 미국의 현대사, 그리고 영화의 역사와 더불어 이 도시가 품어왔던 무수히 다양한 얼굴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스크린 너머에 조영하고자 한 유구한 흐름을 담고 있다. 실재하는 이 도시가 어떠한지에 관한 지형학적 의문과 무관하게도, 우리는 각기의 영화들이 축조해낸 서로 다른 이미지들-때로는 약간의 진실을 담고 있지만, 적지 않은 위선을 함의하기도 한-의 범람 속에서 LA라는 도시에 대한 막대한 환영을 재생산한다. 실재의 도시를 밀어낸 이미지 속 신기루 가운데서, LA라는 매혹적인 무대는 혹자에겐 ‘꿈과 몽상’의 세계로(<라라랜드>, <멀홀랜드 드라이브>), 어떤 이에게는 차갑고 매정한 느와르의 무대로(<차이나타운>, <히트>, <콜래트럴>), 다른 누군가에겐 동세대 현대인들의 병리적 초상이 집약된 공간으로(<숏컷>, <매그놀리아>) 변형을 거듭해왔다.


설령 미국 땅을 단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영화 관객에게도, 스크린 너머 각양각색의 이미지로 도식화된 이 도시는 결코 생경한 무대가 아닐 것이다. 이미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무대의 공기를 낯설게 비틀어 새로운 이미지의 활력을 불어 넣으려는 의지. 어쩌면 이는 로스앤젤레스를 스크린으로 재차 소환하려 하는 모든 시네아스트들의 욕망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TWOC(유색인종 트랜스젠더 여성)의 일상을 소재로 삼은 영화 <탠저린>의 숀 베이커 감독 또한 예외는 아니다.

  
 
영화 <탠저린>은 성노동에 종사하며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루어 살아가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다소 생소한 등장인물들의 면모만큼이나 이 영화에 묘한 기운을 불어넣는 것은 이야기의 동선을 따라 자연스레 포착되는 LA 다운타운의 거리, 상점, 허름한 뒷골목의 광경들이다. 가공되지 않은 도시의 다양한 모습들은 일반적인 촬영장비를 대신한 아이폰의 카메라로 촬영되어 후보정을 거친 특유의 노란 색감(오렌지 류 과일의 빛깔을 연상시키는 영화제목이 암시하듯)으로 제시되는데, 이는 마치 일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한 채 보이지 않는 경계에 의해 구획 지어진 등장인물들의 제한된 세계를 암시하는 듯하다. 그들의 세계는 평범한 도넛가게와 24시간 무인세탁소, 분주히 오가는 낯선 얼굴들로 채워진 거리에 한정되어, 특별할 것 없는 외양을 드러내지만 각기 다른 사연으로 얽히게 된 캐릭터들의 각축은 영화 속 평범한 배경에 비범함을 불어넣는 요소가 된다. 

감옥에서 막 출소한 트랜스젠더 신디(키타나 키키 로드리게즈 분)는 동료이자 친구인 알렉산드라(마이아 테일러 분)를 통해 자신의 연인인 체스터가 ‘진짜 여성’과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작정 다이나라는 이름의 여자를 찾아 나선 신디는 제 처지와 다를 바 없이 성매매에 종사하는 그녀를 납치하듯 이끌고 자신을 배신한 남자친구와 대면하려 한다. 다소 단순하게 느껴질 법한 플롯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것은 아르메니아 이민자 출신의 택시기사 라즈믹의 존재다. 도시에 거주하는 각양각색의 승객을 태우며 생계를 유지하는 그는 트랜스젠더 여성들과의 매춘을 은밀한 낙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하여 모처럼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려던 그는 과거 몇 차례의 만남 후 호감을 느끼던 신디가 거리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그녀를 찾아 나선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몇 편의 영화를 연출하기도 한 ‘뉴요커’ 숀 베이커 감독은 LA로 이주한 후, 이 도시에 대해 느낀 외부자로서의 시선을 <탠저린>에 투영하고자 하였다. 우리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신디와 알렉산드라, 그리고 라즈믹의 가족들이 과거 어떠한 삶을 영위하다 LA로 흘러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마저 소외된 채 매춘업계로 내몰리게 된 TWOC의 현실, 낯선 이국땅에서 보이지 않는 편견과 녹록찮은 여건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이민자 가족을 전면에 내세우며 그들의 시선을 통해 축조하려 한 도시의 풍경은 일말의 연대의식마저 결여된 갈등과 불신의 장이다. 

영화의 후반부, 도넛가게에서 마침내 조우하게 된 신디 일행과 라즈믹의 가족, 그리고 그들을 마뜩잖게 여기는 아시아계 매장 점원은 가게의 협소한 공간 아래 서로의 존재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은 채 상대방에 대한 갖은 모욕을 퍼부으며 파국의 국면을 조성한다. 환희와 축복의 순간이어야 할 이들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지리멸렬한 다툼과 함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씁쓸한 종국을 맞이한다.

  
 
숀 베이커가 <탠저린>을 통해 그리고자 한 도시의 일면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차마 들여다보지 않으려 하는 비루한 현실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 가운데서 외면 받는 현실 속 군상들은 서로를 보듬어 안을 일말의 여유조차 빼앗긴 채 생존의 투쟁 한가운데서 반목과 증오를 되풀이한다. 감독은 감히 이들의 연대와 화해를 위한 거시적 화두를 제시하진 못하지만, 어느 인터뷰에서 ‘자매의식’이라 일컬은 감정적 울림을 영화의 말미를 통해 제시하려 한다. 이름 모를 누군가로부터 오물을 뒤집어 쓴 채, 더럽혀진 금발의 가발을 벗어던진 초라한 몰골의 신디를 바라보며 선뜻 자신의 가발을 내어주는 알렉산드라. 긴 하루가 끝나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됨과 함께 이들의 비루한 삶 또한 지리멸렬한 일상을 되풀이하겠지만, 말없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위로의 시간은 찰나의 순간이나마 비정한 도시의 공기를 따스하게 데운다.

글: 문성훈
영화평론가. 2015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신인평론상 수상.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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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05-08

조회수6,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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