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 제목만 보면 상당히 정감 넘치는 영화가 아닐까 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주인공이 집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는 여정이었다. 여기서 집이란 단순히 가족이 머무는 곳이 아닌 삶을 완전히 태워버린 불행에서 빠져나가는 돌파구였다. 진정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방은진 감독, 극영화, 한국, 2013년, 131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실제 주인공인 정미정씨는 2004년에 마약운반 혐의로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체포돼 무려 2년 가까이 옥살이를 했다. 그녀가 이렇게 된 데는 마약범죄에 가담 했던 원인이 무엇보다 크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한국 영사관의 무책임한 대응 때문이었다. 덕분에 ‘단순 가담 죄’로 길어야 1년 형을 선고받았어야 할 사안인데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2년이나 고생을 하며 지내야 했다. 영화 곳곳에 그런 답답함과 억울함이 층층이 배어들어가 있다.
억울함을 표현하는 데 있어 주인공 송정연 역을 맡은 전도연은 자신의 기량을 한껏 발휘한다. 이미 전도연은 불행을 풀어내는 연기에 익숙한 배우다. <밀양2007>에서는 유괴범에게 하나뿐인 아들을 희생시킨 엄마로서 충격을 그대로 흡수해야 했고, <너는 내 운명2005>에서는 에이즈로 죽어야 할 운명 앞에서 억지로 눈물을 삼켜내는 역할을 감당했다. <집으로 가는 길>의 송정연은 사소한 판단 착오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왜 여배우 전도연에게는 이런 식의 잔인한 운명이 잘 어울릴까? 한 때는 나름 애정영화의 주인공을 도맡아 했던 처지인데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연기가 깊이를 더해가기에 제법 무게감 있는 인물 설정을 소화해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일까? 하기는 가벼운 애정영화만 찍다가 사라져간 수많은 남녀배우들을 염두에 둘 때 전도연이 보석 같은 존재이기는 하다. 전도연의 절묘한 연기 덕분에 영화를 보며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방은진 감독은 정미정 씨 사건의 전체 맥락에 영화의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재외공관의 나태하고 관료적인 태도에 집중했다. 자칫 모든 죄를 외교통상부에서 짊어지어야 될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과연 이것이 감독으로서 올바른 자세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분명한 입장이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칭찬할만했다. 사실 재외 대한민국 공관의 문제점이 지적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필자의 경우도 독일 유학 시절에 어이없는 경험을 했기에 하는 말이다. 자국민이 억울한 피해를 당했는데 대사관측에서 오히려 재외 국민들에게 부화뇌동하지 말라는 공문을 내리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집으로 가는 길>은 문제점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국가는 통치술만 잘 구비했다고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이렇게 잘 완비된 통치술로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고 해서 국가의 역할을 다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힘으로 국민을 보호해야할 의무를 가진다. 영화에서 비쳐지는 프랑스 한국영사와 직원들의 고압적인 태도와 위선적인 미소는 결코 국가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비록 그들이 외무고시를 통과한 엘리트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송정연을 외면하고 협박하고 회유하는 데 온 신경을 쏟는다면 국가를 대표하는 공무원이라 부를 수 없다. 전도연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기 전에 국가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는 데서 영화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방은진은 연기자를 넘어 이제는 나름 고발성이 짙은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시선 1318>이 그 좋은 예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계속 해나가기 바란다. 국가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