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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 미소(微小)가 미소(微笑)를 찾는 방법 - 영화 ‘소공녀’의 의미적 전환에 관해

1.


바리바리 짐을 챙겨든 채 허름한 건물을 막 나서는 모습을 포착한 영화 <소공녀>의 포스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미소(이솜)가 나선 건물에 얼룩덜룩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는 <Microhabitat>라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다. <소공녀> 뒤로 따라붙은 <Microhabitat>는 이 작품의 화법을 매우 흥미롭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원래 ‘소공녀(小公女)’는 프랜시스 버넷의 소설 『A Little Princess』에 중역(重譯)의 표식을 고스란히 새겨 넣은 단어로, 이 단어는 작품 <소공녀>를 가리키는 것 외에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한다. 일본에서 번역 당시 같은 작가의 작품 <소공자>의 인기를 이어가고자 제목의 유사성과 주인공의 성별을 고려해 만들었던 이 단어는 결국 어렴풋하게만 그 의미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때, 이 영화가 택한 ‘A Little Princess’에서 ‘Microhabitat’의 전환은 영화 <소공녀>라는 제목에도, 주인공의 ‘미소’라는 이름에도 새로운 의미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은 생물들의 서식지를 가리키는 이 단어는 <소공녀>를 小空女, 즉 작은 공간에 존재하는 이로, 미소(微小, 微少, 微笑)를 매우 작거나 적은 존재에 smile 까지의 의미로 위치시키면서 미소의 삶에 주목하게 한다. 이는 미소가 자신의 행복한 하루 하루를 위해 고심 끝에 집을 포기하고 친구들을 찾아 기거하겠다는 결심으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를 붙잡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포기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누군가는 선택이나 여행으로 전환시키는 것, 영화 <소공녀>는 바로 이 변화가 얼마나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혹은 구속되거나 ‘현실’을 산다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영화 <소공녀>를 지금을 살고 있는 한 세대의 고난만으로 쉽게 축약하는 것은 너무도 의미없는 일일 것이다.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영화에 옥탑방이나 반지하가 등장하면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알바생이 등장하면 노동착취로, 고시생이 등장하면 취업난 등으로 단순화시키며 동정적 감성에 젖는 행태는 이미 2010년대 초반을 넘어서면서 제작된 많은 독립영화들 거부해 온 논리이다.(1) 게다가 소공녀에서의 미소의 선택은 감정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 점 역시 이를 뒷받침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가계부라고 하기엔 너무도 우스운 메모일지 모르지만 미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항목을 구분해가며 돈을 모았고, 체계적으로 수입을 정리했으며, 자신의 지출을 꼼꼼히 따졌다. 이 모든 과정 후에 그는 자신이 포기할 수 없던, 그러니까 자신의 행복을 위한 하루 한 갑의 담배값, 하루를 마무리하는 위스키 한잔, 그리고 자신의 머리색을 유지해 줄 약값을 선택했고, 그저 집은 이 고려사항에서 밀려났던 것뿐이었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영화인 <소공녀>는 미소의 선택을 포기라는 말로 쉽사리 가라앉히지 않는다. 이 영화의 새로움은 이렇게 시작된다.

2. 

가장 먼저 영화 <소공녀>가 점유하고 있는 도드라지는 부분은 이 작품이 집 나온 여성에게 행복을 부여한 최초의 서사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가난 때문에, 혹은 일자리를 찾아, 그것도 아니면 겁탈을 피해 상경(上京)이라는 이름으로 낯선 곳을 온몸으로 견뎌야했던 이들과 다르게 자신의 선택으로 집을 뒤로한 미소의 선택은 이 영화가 주는 생경함의 정체였다. 일반적으로 집은 여성에게 안위를 보장해주는 곳으로 늘 회귀를 꿈꾸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했다. 때문에 집을 나선다는 것은 곧 이 안위가 보장되지 않는 곳으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극한에 가까운 수난의 서사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알리바이로 작용했다. 19세기에 여성해방을 그렸다고 평가받는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의 결말이 그저 노라가 집을 나가는 것에서 끝맺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은행장의 부인으로 사회경험이 전혀 없이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 인계되어 귀여운 종달새, 다람쥐로 불리던 이 여인이 사회로 나섰을 때, 과연 그가 해방을 맞이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입센의 상상력을 이어받아 채만식은 1933년 조선 땅에서 집을 나간 로라의 이후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인형의 집을 나와서』라는 소설에서 ‘임노라’는 남편의 강압을 피해 집을 나오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늘 위태위태한 상황과 남편과 아이를 두고 집을 나온 여자라는 비난을 견뎌야 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늘 그를 따라다니고 끝까지 내몰려 들어간 공장에서 남편을 관리자로 만나는 순간 노라가 의지할 것은 과도하게 등장하는 계급적 인식뿐이었다. 노라가 친구 집을 전전하는 것,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친구가 자살을 하고, 카페 여급으로 생활하다 강간을 당하고, 결국 넘어설 수 없는 계급에 자리 잡은 남편을 만나는 것으로 내몰리는 이 루트는 1960-70년대 서울로 상경한 여성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었다. 

<하녀>(1960)와 <화녀>(1971)에서 시골에서 상경한 어린 여성이 중산층 집안에서 겪는 수난과 결국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내뿜는 광기는 중산층이라는 근대적 계급의 형성과 맞물리면서 드러난 흔적들이었다. 역시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이들이 겪는 회사원, 버스안내양, 그리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겁탈과 그로 인해 이어지는 호스티스로의 연결은 <별들의 고향>(1974)과 <영자의 전성시대>(1975) 등에서 전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자신의 삶과 남편에 대한 애착이 돈에 대한 강박으로 귀결되고, 그것의 상징으로 등장했던 ‘집의 소유’라는 것은 결국 여성들이 자신의 안정을 보장하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상정됐던 것이 ‘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공녀>는 바로 이러한 상황이 불가능해진 시대에서의 대안에 대해 생각한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서사적 전환을 보여준다. 미소는 내몰리듯이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유지할 방법으로 자신이 보기에 부차적인 집을 선택하지 않은 것뿐이다. 이러한 대안에 대한 상상력은 그들의 생활을 처절하거나 불쌍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이게 아니면 저것 이라는 선택의 가능성을 늘 상상하게 한다. 난방이 되지 않는 방, 남자친구 한솔(안재홍)과의 섹스는 너무 춥다는 이유로 ‘봄이 되면 하자’는 약속과 함께 미뤄지고, 담배값이 4500원으로 올랐을 때는 피워오던 에쎄를 포기하고 이보다 500원이 더 싼 디스를 선택하는 식이다. 미소는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아, 디스’라는 짧은 탄식에 그칠 뿐, 그의 손에는 얇고 길었던 에쎄가 짧고 뭉툭한 디스로 바뀐 것으로 그의 고민은 종결된다. 

이전 집을 나선 인물들이 자신이 집을 나선 것만으로 이 불안한 서울에 홀로 던져진 것의 불안을 가득 담는 눈빛으로 영화에 등장했다면 미소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한 가벼운 대안을 생각하는 인물이다. 사실 어찌 생각하면 미소가 처한 상황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극단적이다. 이전 서울로 올라와 이곳에 짐 벼릴 곳이 없어 배회하던 이들은 자신이 지방에서 올라와 기댈 곳이 없다는 푸념이라도 가능했지만, 미소의 고향은 서울이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상황이라면 서울내기조차 자신이 영위할 곳을 찾을 수 없는 미소의 현실은 한국이 훨씬 더 팍팍해졌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는 그 팍팍함을 넘어서는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간다.  

3. 

물론 이러한 미소의 선택은 누구나 쉽게 덧붙이는 ‘현실’이라는 이름과 ‘남들’을 의식하는 시선에 의해 그리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타인이 보기에 미소의 선택은 회피이거나 포기이며, 이 와중에 술과 담배를 자신의 행복으로 삼는다는 것은 ‘염치없는 사랑’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소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그러니까 이들이 포기하지 않은 채 쥐고 있는 직장과 가정, 결혼과 내 집 마련에 대한 갈망이 그들에게 행복을 주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미소가 갖지 않으려 하는 것을 가졌거나 갖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위태로움,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미소의 입장에서는 행복에 대한 포기이거나 회피라는 것을 <소공녀>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소는 집을 나와 학창시절 자신과 밴드를 함께하던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 나선다. 당연하겠지만 이는 미소가 행복을 선택한 후의 결정이었기에 몇 겹이나 레이어드한 옷에 가방과 캐리어까지 끌고 나서는 미소의 모습은 궁상맞다거나 처연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친구 선물’이라고 그의 하루 치 가계부에 적었을 계란 한판을 들고 미소는 최대한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며 친구들을 찾아간다. 미소는 친구들을 만나면 진심으로 기뻐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미소에게 질문을 하고 미소의 상태를 판단한다. 그러나 미소는 그들의 말에 상처 받는다기보다 오히려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데, 여기에서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그들의 말이 얼마나 ‘현실을 살지 못하는 것’인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미소가 처음으로 찾아간 문형(강진아)은 회사에서 스스로 링겔을 꽂아가며 일을 한다. ‘넌 담배 끊었어?’라는 미소의 질문에 화들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갑작스런 호출에 일일이 응대를 해야 하는 회사라는 공간은 문형이 어디에 갇혀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살림에 전혀 소질이 없는 데도 억지로 음식을 하고 있는 현정(김국희)의 상황 역시 미소에게는 의아할 뿐이다. 음식은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하지 않느냐는 미소의 질문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지만, 식당을 하던 어머니가 이제 며느리를 본 이상 음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말은 그 합리성을 삐져나오지 조차 못하게 한다. 굳이 며느리가 한 짜고 맛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 못마땅한 표정들은 식탁의 시간을 딱딱하게 만들어 버린다.

결혼을 앞두고 아파트를 원하는 여자 친구 때문에 어마어마한 대출을 받았지만, 결국 헤어지고 빚만 남았다는 대용(이성욱)은 그 아파트에서 조차 작은 방안에 틀어박혀 있거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전부이다. 월급의 반이 대출금으로 20년 동안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가 영위할 수 있는 곳은 그 좁은 공간들이 뿐이니 아파트라는 넓은 공간은 그렇게 불필요한 곳이 된다. 노총각 아들에게 여자인 친구가 찾아오자 ‘여자=며느리’로 위치 지으며 호구조사부터 시작하여 단란함을 보여주려는 록이(최덕문)의 어머니나 남편의 표정변화와 말에 온 신경을 쏟으며 넓고 부유한 집과 친정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려는 정미(김재화)에 이르기까지 미소가 모른다는 ‘현실’을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사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우리 삶의 어딘가에 있다. 미소의 작은 위안에서 자신의 하루와 과거를 발견하는 친구들 모습은 그들의 현실이 얼마나 현실적이지 않은 것인지, 그러니까 내가 속해있는 세계가 아니었던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소는 아무리 집이 넓고 방이 많아도 남이 와 있으면 신경 쓰인다는 걸 왜 모르냐는 정미의 윽박에 ‘난 아니니까. 난 아무리 좁아도 친구들이 와 있으면 행복했으니까.’라는 말로 그들이 미소를 생각해서 한다는 말들이 얼마나 그에게 무의미한 것인지를 잘 드러낸다. 이러한 미소의 성격은 ‘네 생각해서 말하는 거야’라는 그 폭력적인 말을 쳐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설정된 것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로 통쾌하지만, 역으로 미소의 행복이 역시 ‘난 아닌’ 사람들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안쓰럽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는 자신이 가진 확신, 그러니까 내가 행복하기 위해 고민 고민 끝에 선택한 그 질긴 끈들을 쉽게 놓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미소의 확신은 영화의 말미 한강의 다리에서, 빨래방 앞에서, 혹은 작은 바에서 언뜻언뜻 스쳐지나가는 미소의 머리칼이 은회색으로 덮여 있다는 것으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아마도 미소는 올라버린 위스키 한 잔 값을 작은 수첩에 적어두고 한참을 바라봤을 것이다. 자신이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던 민지(조수향)가 자신의 길을 가게 되었을 때,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지만 일자리를 잃어 수입란에 딱히 무엇을 적어야 할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더 이상 약을 먹지 않는 다는 것이었을 테다. 그의 은발은 그렇게 미소의 선택으로 자신의 것이 되었고, 그는 자신이 남겨둔 위스키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에 후회없이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 했을 테다. 

4.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은 이제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다’고, ‘남들 다 하고 사는’ ‘그렇고 그런 것들’을 좀 해보고 싶다며,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로 일하러 건너가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덧붙인 말은 자신이 지원해서 뽑힌 게 사우디아라비아로의 발령이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대학에서도 웹툰 공모에서도, 어디에 지원했을 때에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던 사회가 생명수당을 받을 만큼의 강도를 가진 일을 해야 하는, 돈쓸 곳 없어 모일 수밖에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모래사막에서만 받아주었던 것이다. 이 커플이 남들처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견뎌 살아 돌아오는 것과 서로가 ‘옆에 있다고’ 상상하는 것뿐이다. 

미소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일하러 가겠다는 한솔에게 배신자라며 화를 내는 것은 그가 돈을 벌겠다는 자체가 아니라 미소와 함께 추울 때는 섹스를 하지 못하더라도, 급할 때는 헌혈을 해서 초코파이를 받더라도, 그리고 맛집에 가는 데이트를 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할 것이라는 서로의 안식처를 깨뜨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결국 진한 키스와 함께 한솔을 보내주는 미소는 저 높은 아파트들이 내뿜는 불빛 사이에 작은 텐트에 안식처를 마련한다. 미소와 한솔과의 관계가 처절한 이별로 그려질 필요가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미소의 선택들 때문이다. 그가 안위하는 그만의 삶은 작은 응원이나마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이는 ‘광화문시네마’의 영화 대부분에서 느껴지는 감성이다. <1999, 면회>(2012)부터 <족구왕>(2013), <범죄의 여왕>(2016), <소공녀>(2018)에 이르기까지 ‘광화문시네마’의 영화들은 현실에서 만나기 힘들 것 같은 독특한 인물들이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어디서든 열심히 먹어대던 세 남자, 복학한 후 굳이 족구를 하겠다며 총장에게 족구장을 건의하던 복학생, 내 새끼에게 말도 안 되게 부과된 수도세를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던 중년의 여인까지 그들의 모습은 어딘가 제멋대로 인 듯 유머러스한 듯 나와는 먼 곳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광화문시네마’에서 빚어낸 이 독특한 인물들의 행동이 단순히 치기어린 객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한 세대에 대한, 그리고 인물들에 대한 예의가 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들이 그려내는 세대에 자리한 이로서, 그들이 고심하는 인물들의 삶을 늘 응원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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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대 한국 독립영화 속 청년들의 돌출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송아름, 「2010년대, 한국 독립영화 속 청년들의 이야기: ‘당연한 것’이 왜 당연합니까」, 『영화잡지 아노』 #5, 52-67, 2016 참조. 


<소공녀> 2018.3.22. 개봉
사진출처: 다음 영화, 네이버 영화, 광화문 시네마

글: 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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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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