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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향] 새크라멘토를 떠나며-영화 ‘레이디 버드 Lady Bird’

 
 
‘Baby bird’에서 ‘Lady bird’로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확실해지는 나이에 서 있다. 그러는 한편 현실이라는 것이 언제나 원하는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는 것도 느끼고 있다. 그 격차에 분노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는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때로는 자신을 꾸미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상황을 모면하려고 못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못가 다 들통날 수준의 악행일 뿐이다. <레이디 버드>는 자충우돌 속에서 안간힘을 쓰면서 겨우 성인이 되는 한 여성의 성장담이다.

고등학교 졸업반을 다니고 있는 17살의 크리스틴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달라고 말한다. 미국의 서부 새크라멘토에 살지만 늘 동부의 도시-뉴욕을 꿈꾸며 넓고 휘황찬란한 그곳의 대학을 진학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수학 실력이 대단하지도 특별히 연극 같은 특기에서 두각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늘 다정하지만 실직을 한 아빠와 병원에서 일하지만 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는 애증의 대상이다. 입양된 오빠는 UCLA를 나왔으면서도 취업이 안돼서 동거녀와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철로 옆의 작은 집’이나 낡은 차는 친구들에게 숨기고만 싶다. 엄청난 반항아는 아니지만 그녀에게 카톨릭 계열의 학교는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어린 아이였을 때 바라던 것들의 크기와 종류는 어른들 특히 부모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들일 확률이 높았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 약간의 장난감, 단 맛의 캔디, 예쁜 옷 정도로도 정서적 포만감은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춘기가 지나고 성인이 되기 직전에 서게 되면 내면은 어느새 자아로 가득 차게 되고, 그런 자아를 감당하기에는 지금까지 지내온 둥지가 아주 협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작은 모이를 물어다 주던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만족감마저 사라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작은 둥지를 새는 떠나야 한다. Baby bird는 이제 ‘Lady bird’로 자라난 것이다.  

영화 <버드맨>에서 주인공 리건 톰슨에게 ‘버드맨’은 지나간 화려한 시절의 상징이자 분신으로, 다르게 살고자 하는 현재의 그에게 집요하게 따라붙는 환각의 존재이다. 그러나 ‘레이디 버드’는 여주인공이 자기 스스로 명명한 이름이다. 자신을 옥죄는 현실에서 벗어나 날아가고자fly하는 욕망을 담고 있는 긍정적인 자기 암시의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서사적 리듬과 감정의 교차

이 영화는 서사와 편집의 흐름을 조율하는 리듬이 좋다. 레이디 버드의 집과 학교를 중심으로 1년 여 간의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찬찬히 따라 가면서도 장면의 마무리에 과도하게 힘을 주지 않는다. 틴에이저 무비에서 클리셰처럼 다뤄지는 서사들, 가령 촌스러운 소녀가 특별한 계기로 학교에서 인기 있는 그룹에 끼게 된다든지, 그러면서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소원해진다든지 하는 내용들이 이어지면서도 그러한 전개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그 공식들에서 벗어난다. 인물들 간의 관계나 사건의 연결이 짐작할 만하게 이어지다가도 돌연 태도를 바꾸어 버린다. 널뛰는 감정들을 부딪치게 하거나 일종의 말장난 같은 대사로 상대의 말을 되받아치게 하는 등의 장면을 통해 긴장감과 유머러스함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개성 강한 인물의 성격만큼이나 독특한 상황 전개로 서사적 역동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특히 레이디 버드와 엄마의 갈등 장면에서 그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말들이 두 사람 사이에서 이어지면 긴장이 고조되며 애증이 섞인 감정들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엄마와 자동차에서 싸우다가 화가 난 레이디 버드가 갑자기 차에 뛰어 내리는 장면이나 둘이 빈티지숍에 드레스를 사러 가서도 계속 말싸움을 하다가 예쁜 옷을 발견하고 동시에 기뻐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그러다가도 공항으로 배웅하러 가는 장면이나 아침에 성당을 나와 엄마에게 전화 거는 장면들에서는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면서 정서적 여운이 느껴지도록 표현되기도 한다. 절대적인 사랑을 주는 엄마와 감사하는 순종적 딸이라는 모녀관계의 환상 대신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더욱 고통스럽기도 한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에 명백하게 긍정적 감정을 고양시키고 느릿한 호흡으로 제시되는 부분들도 있다. 아버지가 레이디 버드를 응원하는 장면, 친구 줄리와의 대화 나누는 장면, 데니의 할머니댁 방문 장면 등에서는 냉소적인 거리두기를 잠시 멈춘다. 대신 그녀가 인정과 사랑에 목마른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것임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복잡한 내면을 가지게 된 레이디 버드의 감정의 너울거림은 그녀를 혼란에 빠지게 하고 갈등을 빚게 하나 결국 성장시킨다. 이는 비로소 어른이 된 한 개인이 세계를 구성하는 전체의 힘에 자기의 존재력을 만들어 맞서 나가는 힘겨운 싸움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친밀함의 감정교육

한 개인이 가족을 떠나 세계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려고 할 때 새로운 관계의 중심으로 대체되는 것이 바로 친구와 연인일 것이다. 공적-사회적 관계가 학교나 직장 등에서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내적 친밀함의 영역에는 이 두 존재가 들어오게 된다. 이 영화에서 친구 줄리와의 관계는 갈등과 봉합의 관계가 비교적 익숙한 서사적 공식을 따르고 있다. 그에 반해 연인관계의 측면에서 만나게 된 대니와 카일과의 관계가 좀 더 흥미롭게 전개된다. 
 
  
 
대니는 완벽한 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는 남자친구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원하는 것들만을 환상 속에서 본 것이었다. 결국 그가 카페에 찾아와 울음을 터트렸을 때 그녀는 자신처럼 그도 미숙한 인간일 뿐임을, 아직 채 자신의 둥지를 만들지 못한 어린 새에 불과함을 느끼고 그의 등을 두드려 다독여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카일은 좀 더 이채로운 성격이다. 지적인 매력으로 관심을 끌고 솔직함 속에서도 어딘가 음울함을 지닌 까닭에 그녀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끝내 이기적이기도 하다. 카일의 냉소적인 태도는 웃자란 소년이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친 보호막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역시 부단히 자신과 싸우고 어른이 되려는 또 한 명의 ‘레이디 버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타인이 관계를 맺는 일은 나와 타인의 거리를 재는 일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그러한 감정들이 격렬한 파고가 되어 존재를 고통스럽게 하기도 한다. 레이디 버드에게 이는 나와 상대의 사랑이 방향이 일치하지 않거나, 서로 완전하게 합일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감정교육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크리스틴’으로- 

결국 ‘레이디 버드’는 원하는 대로 지긋지긋한 고향을 떠나 도시의 대학으로 간다. 이제 자신을 가두고 억누르던 것들이 전부 없어져 버린 자리, 그토록 갈구했던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레이디 버드’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크리스틴’이라 소개한다. 그러나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그녀가 ‘샌프란시스코’로 정정해서 대답하는 장면은 놀라움을 준다. 우리들은 그녀가 ‘새크라멘토’에서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는지 영화를 보면서 따라왔던 것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이를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한 수치심의 장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레이디 버드’에서 ‘크리스틴’으로 내려온 현실계의 감각이 시골인 ‘새크라멘토’ 대신 번화한 ‘샌프란시스코’로 명명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관객의 차원에서는 인물의 이해에 있어 익숙해졌다고 판단되었을 무렵 예기치 못한 인물의 태도에 직면하게 한다. 감독은 예상 가능한 내용을 다시 비틀어 관객들의 호기심을 끝까지 유발한다.

  
 
정신없이 취하고 쓰러져서 병원에서 깬 그녀에게 맞은편 침대 맡에 보인 이국의 소년은 고향의 (인종이 달랐던) 오빠를 생각나게 한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향한 곳은 지겹던 새크라멘토 가톨릭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게 하는 성당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성가를 들으며 그 시절을 아프게 회상한다. 떠나왔고, 한때는 외면했지만 늘 그곳에 남아 있는 고향이라는 존재는 이렇듯 눈의 잔상으로, 귀의 소리로 남아 그녀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되었다. 그녀는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결코 전부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지만. ‘레이디 버드’라는 좌충우돌 대신 ‘크리스틴’으로 살아가야 할 그녀의 삶의 향배는 알 수 없으나, 그녀를 둘러싼 거대한 세계에 맞서 자신의 존재의 자리를 점점 넓혀갈 그녀의 날개짓은 계속될 것이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레이디 버드>
* 이수향: 영화평론가. 201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 웹진 문화다 편집 동인. 공저로 『영화광의 탄생』(2016), 『1990년대 문화 키워드 20』(2017).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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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05-08

조회수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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