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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 그레타 거윅의 여성 성장영화 ‘레이디 버드’

 
 

영화 <레이디 버드>는 제75회 골든 글로브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으로 2관왕을 차지하고, 3월에 열린 제90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5개 부문에 후보에 오른다. 비록 무관에 그쳤지만 이 후보 지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 중요한 흔적을 남겼다. 그레타 거윅은 감독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역대 다섯 번째 여성 감독이다.

여성이 감독상 후보로 오른 건 오스카상 90년 역사상 다섯 번에 불과하다. 또 극적인 일탈이나 무거운 역사나 사회적 이슈 없이, 10대 소녀의 성장담만으로 작품상 후보에 오른 신인감독은 전례가 없다. 결과적으로 아카데미상 수상은 못 했지만 거윅은 작가이자 배우로 ‘인디영화계의 연인’이라 불리다, <레이디 버드>로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차세대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영화는 2002년 캘리포니아 주도 새크라멘토에 있는 가톨릭 사립학교에 다니는 17살 크리스틴, 일명 ‘레이디 버드’의 성장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거윅은 미국 독립영화계의 최고 스타 배우이다. 거윅은 노아 바움백과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자신이 주연한 <프란시스 하>(2012), 배우 아네트 베닝과 호흡을 맞춘 <우리의 20세기>(2016) 등 주로 독립·예술영화에서 작가이자 배우로 활동해왔다.

 

  
 

10대 여성 캐릭터의 독특함은 <라이딩 위드 보이즈>(2002)의 드류 베리모어와 <지랄발광 17세>(2017)의 헤일리 스타인펠트가 이미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레이디 버드>에서 시얼샤 로넌은 지나치게 독특하거나 극단적인 사고를 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은 자신을 자신이 지은 이름인 ‘레이디 버드’로 불러주길 바랄만큼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 그는 간호사인 엄마(로리 멧칼프)의 잔소리와 따분한 가톨릭 고등학교가 있는 지루한 도시에서 벗어나 뉴욕에 있는 대학으로 가서 자유롭게 살기를 꿈꾼다.

차 안에서 엄마와 소설 『분노의 포도』를 테이프로 들으며 함께 울고 죽이 잘 맞다가 갑자기 사소한 말로 언쟁이 시작된다. 엄마는 내가 최고로 잘되라고 끊임없이 충고한다. “근데 엄마, 지금 이 모습이 내 최고 모습이라면? 그러니 충고를 위장한 잔소리 좀 그만하시고, 제발 날 좀 그냥 내버려 둬요.” 엄마의 잔소리가 심해지자 차에서 뛰어내리는 레이디 버드, 야단 좀 쳤다고 달리는 차 문을 벌컥 열고 뛰어내리는 딸을 보는 엄마 메리언의 속도 부글부글 끓는다. 모녀가 모두 만만치 않다. 가족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상처도 더 많이 줄 수 있는 꺼리나 방법도 많다.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히게 할 수 있다.

 

  
 

영화는 기존의 하이틴 무비와 다른 맛이 있다.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는 여정을 아주 완만하고 그리는 속도감과 무엇보다 엄마와 딸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진 시선에 있다. 소녀의 성장담에 무엇보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온 소년의 자리를 조금 한편으로 물리고 엄마를 앉혀놓았다. 거윅은 “소녀 성장담의 중심엔 한 소년이 있어야 마땅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여성 대부분은 청소년 시절 어머니와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 모녀지간은 가장 격정적인 로맨스 중 하나다.”라는 작품 의도를 드러낸 바 있다.

175cm에 건장한 체구의 서른네 살 뉴요커 그레타 거윅은 실제 새크라멘토 출신으로 어머니가 간호사인 거윅은 이 영화를 “떠나온 고향에 부치는 러브레터”라고 말한다. <그린버그>(2010) <프란시스 하>(2012)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까지 세 편을 함께한 동료이자 연인 바움백 감독이 말한, “평범한 삶이 주는 기쁨을 바라보는 거윅의 낭만적인 시선”은 이번 영화에서도 빛난다.

연인인 노아 바움백 감독과 공동각본과 주연을 맡아 그레타 거윅의 이름을 널리 알린 <프란시스 하>가 뉴욕이란 대도시에서 댄서로서 자질이 부족해 좌절했던 젊은 시절의 고군분투를 그린 자전적 성장영화였다면, <레이디 버드>는 그녀가 고향을 떠나오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거윅은 자신이 성장기를 보냈던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를 배경으로, 레이디 버드가 지긋지긋한 고향을 벗어나 뉴욕의 한 대학으로 떠난 직후까지의 이야기를 찍었다. 영화에는 대학에 간 레이디 버드가 고향을 묻는 한 친구에게 “샌프란시스코”라고 거짓 대답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거윅이 각본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장면이라고 한다. 영화는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면서 느끼는 수치심으로부터 발전해 나갔다.

고향을 떠나 자신의 고향을 부인했던 여성. 감독 스스로가 성장한 새크라멘토를 배경으로 그녀 스스로가 청소년기에 느낀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려 노력했다. 자전적 요소가 있지만, 인물들의 특징과 사건은 거윅의 과거와 꼭 같지는 않다. 하지만 고향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각, 학창 시절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에서 오는 감정들, 고향을 떠나는 정서는 거윅이 중요하게 여기고 묘사한 것들이다. 그래서 <레이디 버드>는 감독, 주인공, 내러티브가 온전한 여성 서사다. 영화는 불완전한 소녀에서 성인이 되는 길목을 통과했으며, 부정하고 미워했던 자기 자신의 뿌리를 비로소 받아들이고 화해하는 ‘진짜 여성’ 이야기로, 관찰이 아닌 체험으로 만들어진 그레타 거윅의 여성영화이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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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05-08

조회수7,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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