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customer center

070.8868.6303

[송연주] <부라더> 웃음 끝에 발견하는 존엄한 ‘삶과 죽음’

 
영화 부라더 포스터

(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죽음에 대한 관심


2018년 2월 4일 ‘존엄사법(연명의료법)’이 시행된 이후, 최근 tvN 토일 드라마 <라이브(Live)>와 SBS 월화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가 ‘존엄사’를 다루며 주목받았다. 두 작품 모두 멜로드라마 장르로 ‘삶’과 ‘죽음’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이에 ‘죽음’을 코미디 장르로 다룬 최근작 <부라더>(2017)를 되짚어 본다.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2008)를 각색한 영화 <부라더>는 코미디 장르에 미스터리 요소를 얹어 ‘죽음’을 풀어냈다. ‘죽음’에 대해, 진지한 ‘인지(認知)’로 접근하는 시작을 ‘무지(無知)’에서 비롯한 ‘오해’와 웃음으로 채우고, 진정한 ‘애도(哀悼)’로 향하는 관문에 미스터리를 배치한 독특한 영화다.

 

2. 무지로 인한 오해


오해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면서 살아가기는 어렵다. 어떠한 정황으로 말하지 못하는 속내들, 진실들이 존재한다. 생략된 정보, 왜곡된 진실 앞에서 우리는 오해를 하고 오해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된다. 바보 같지만,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우리가 바보라는 것 자체도 인지하지 못한다. <부라더>의 형제도 그렇다.

밝은 음악과 함께 12월의 따스한 햇볕이 드는 한옥 어느 방, 목판본, 난 화분 등 고풍스러운 이미지로 영화는 시작한다. 햇살과 바람이 드는 창가에서 거산 종택 19대 종손(宗孫) 이춘배가 정성 어린 손길로 목판을 새기다가 앉은 자세 그대로 옆으로 푹 쓰러져 죽음을 맞는다. 이 우스꽝스러운 죽음은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춘배의 두 아들 석봉과 주봉은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도 슬퍼하지 않는다. 왜 하필 이때 돌아가셨을까 싶을 뿐이다. 학원에서 국사를 가르치며 집도 없어서 ‘인생(살림살이)’을 캐비닛에 넣고 사는 석봉, 보물을 도굴할 장비를 사느라 1억의 빚을 지고 망하기 일보 직전에 받은 아버지의 부고 앞에서 석봉은 “이 와중에!!!”란 말이 절로 나온다. 한편, 건설회사에 다니는 동생 주봉은 ‘서울-안동’ 간 고속도로 건설에 문중 소유의 동산을 피해서 공사하자는 계획을 발표하다가 해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돌겠네, 진짜!”라고 뱉어버린다.

아버지의 부고를 받는다면 슬퍼하는 것이 상식적인 감정이지만, 형제는 슬퍼하기 이전에 아버지에 대해 미움이 앞선다.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제가 알고 있는 아버지는 평생을 종가(宗家)를 위해 살았고, 어머니를 종가에 희생시켰으며, 돈이 아까워 암에 걸린 어머니를 치료조차 시키지 않았고, 어머니의 죽음을 형제에게 알리지도 않아 어머니의 장례에 형제가 오지 못하게 만들었던 매정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형제는 아버지의 문상객을 응대하면서 곡소리도 성의 없게 하며, 심지어 곡소리 중에 농담까지 한다.

아버지에 대한 ‘오해’는 형제간의 관계에도 갈등의 소지가 되었다. 형 석봉의 입장에서는 차(次)종손이 되라며 부담만 주는 아버지였고, 동생 주봉의 입장에서는 형만 위하며 자신은 찬밥으로 대했던 아버지였다. 무엇이든 받고 자란 형 석봉과 무엇이든 빼앗기고 자란 동생 주봉은 앙숙으로 자랐다. 장례 동안에도 이들은 계속해서 갈등하며 웃음을 만들어낸다.

 

  
 

영화에는 한 번의 죽음이 더 깔려있다. 바로 석봉과 주봉의 어머니인 순례의 죽음이다. 형제는 순례의 죽음도 ‘오해’를 하고 있다. 순례가 평생을 제사하느라 힘들게 살았고, 결국은 암에 걸렸으나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세상을 떠났다고 잘못 알고 있다.

어머니 순례의 죽음, 이후 아버지 춘배의 죽음, 영화가 다루는 두 번의 죽음에서 형제는 진지하게 애도(哀悼)하지 못한다. 순례의 장례 때는 연락을 제대로 받지 못해 뒤늦게 찾아와 아버지와 다투느라 애도를 놓쳤고, 춘배의 장례 때는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애도를 놓치고 있다.

애도 이전에 형제는 각자의 목적이 우선이다. 형은 가보를 찾아 팔아버릴 생각이고, 동생은 문중 동산을 팔아버릴 생각이다. 형제가 서로를 속이며 목적 달성에 매진하는 동안, 관객은 형제를 탓하거나 나무랄 수 없다. 형제와 같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형제의 행동에 동참하며 보게 된다. 만약 관객이 내막을 다 알아버려서 형제보다 많은 정보를 갖게 된다면, 형제는 비웃음의 대상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관객에게 비웃음의 대상은 형제가 아니라 종택 어른들이다. 그들 역시 두 번의 죽음 앞에 애도는 없다. 누구보다 예(禮)를 중시하는 어른들이지만, 그들이 추구한 예란 진심에서 나온 예가 아니라 남존여비의 사고방식과 시대착오적인 허례허식일 뿐이다. 순례의 장례와 춘배의 장례 모두 당숙과 재종조 및 노옹(老翁)들은 형제에게 ‘후레자식’이라며 효를 다하지 못했다고 나무랐다. 부모를 잃은 형제에게 위로는 없었다. 평생을 종가를 위해 살아온 종부 순례와 종손 춘배의 죽음에 애도하는 모습도 없다. 형제를 나무라며, 상복을 왜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교가 앞설 뿐이다.

종택 어른들에게 대들고 가보에 동산까지 팔아먹으려 드는 비상식적인 형제와, 형제의 목적을 모른 채 고리타분한 말을 늘어놓으며 속아 넘어가는 종택 어른들의 모습이 마치 ‘톰과 제리’를 보듯 웃음을 자아낸다.

 

  
 

3. 무지와 인지의 경계, 미스터리

미스터리는 알 듯 말 듯 신비하고 불확실하게 정보를 감추는 것이다. 오해로 가득한 형제는 무지에서 인지로 나가야하지만, 웃음과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스터리한 상황마저 개입하면서 정보의 지연으로 더욱 긴장감을 갖게 된다. 바로, 오로라의 존재다. 형제는 영화 시작부터 오로라와 마주친다. 마치 삼각관계를 만들 듯 형제의 곁을 맴돌며 기이한 행동을 하는 오로라는 영화 내내 비밀스러운 존재다. 형제가 부고를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 보라색 코트를 입은 오로라를 차로 치게 된다. 문화재청 직원 명함을 가지고 있고, 서울에서 온 여자이며, 거산 종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여자, 춘배와 한때 동거를 했던 여자, 형제의 꿍꿍이를 도와주는 여자다. 아버지를 오해하고, 아버지의 장례를 귀찮은 행사쯤으로 여기는 형제에게 각자의 목표를 자극하면서 문제적 상황을 해결해줄 힌트를 주는 사람이 바로 오로라다.

 

  
 

빚에 쫓기며 내려온 석봉은 오로라에게서 종택에 황금 쌍불이 있다는 정보를 얻고, 그것을 발굴해서 가져가려 한다. 해고 압박에 시달리는 주봉은 종택 어른들의 동의서를 받는 방법을 오로라에게서 듣고 동산을 넘길 동의서를 받기 위한 작전을 실행한다. 이 꿍꿍이는 관객에게 정보를 모두 주면서 ‘관객과 석봉’, ‘관객과 주봉’이 각자 한편이 되어 작전에 참여하게 만든다. 석봉과 주봉이 서로의 계략을 모르고 하는 리액션에 관객은 웃을 수밖에 없고, 형제의 꿍꿍이를 전혀 모르면서 속아 넘어가는 종택 어른들의 모습도 관객은 비웃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초상 이틀째 밤 오로라의 존재가 드러나고 만다. 오로라는 형제에게만 보이는 귀신이었다. 오로라가 귀신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영화는 교묘하게 춘배가 종가의 혈통이 아니라 입양된 사람이라는 정보와 함께 제시한다. 그로 인해 형제는 오로라에 대한 미스터리를 건너뛰고, 동시에 아버지의 진실에서 한 발 짝 더 멀어진다. 혈통도 아니면서 ‘종가에 충실한 개’로 살아온 아버지를 추모할 생각은 전혀 없는 형제. 그들은 각자의 목표에 더욱 충실하게 움직인다. 석봉은 가보를 훔쳐 달아나고, 주봉은 석봉을 잡아 올 테니 동산을 넘기는 동의서를 달라고 당숙과 거래를 한다.

차에 잔뜩 가보를 실어 달아나는 석봉의 앞길을 막은 것은, 완연히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난 오로라다. 선산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도록 유도해서 주봉이 석봉을 잡게 만든다. 그 바람에 주봉은 동산을 넘기는 동의서를 받아 회사에 제출하고 독일지사 발령을 꿈꾼다. 이때 형제에게 인지의 순간이 동시에 다가온다. 가보를 제자리에 놓아두는 석봉은 아버지가 새겨놓은 목판을 발견하고, 동시에 주봉도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발견한다. 춘배는 아내와 아들을 아꼈던 아버지였고, 오로라는 죽은 순례였다. 이제 웃음으로 채워졌던 시간, 미스터리의 시간은 끝나고, 형제는 진지한 인지의 세계로 나아간다.

 

  
 

4. 진지한 인지, 진정한 애도(哀悼)

진정한 애도는 오해와 미스터리를 걷어내고 무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지의 세계로 들어선 순간 가능해졌다. 영화 내내 정보를 공유하며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관객과 형제에게 춘배와 순례에 대해 몰랐던 세계가 열린다. 암이 아니라 치매를 앓았던 순례, 끝까지 아들들에게 자신의 투병 사실을 숨기려 한 순례의 부탁으로 형제에게 순례의 아픔을 알리지 못 한 춘배, 마지막까지 종택을 지켰던 종부 순례의 이름을 몰라 위패조차 못 쓰는 종택 어른들의 실체를 보고 실망했던 춘배, 아들들만큼은 자신의 길을 걷지 않도록 순례의 장례 때 일부러 형제를 부르지 않았던 춘배의 비밀이 펼쳐진다.

오로라에 대한 미스터리가 풀리고, 형제가 부모의 진실을 인지하며 오해를 바로잡고 자신을 반성하는 순간, 형제는 앙숙 관계를 풀고 부모의 죽음에 진심 어린 애도를 하게 된다. 춘배의 하관(下棺) 때 형제가 “아버지도 한번 다녀가세요!”, “엄마 아버지 손 놓지 말고, 꼭 잡아, 나 까먹지 마 엄마.”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형제가 했던 그간의 악행이 해소된다. 그러나 죽은 사람 챙기느라 산사람 죽어나는 시대착오적인 제사 문화를 고수한 종택 어른들은 끝까지 춘배와 순례의 진실을 모르며 인지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풍자의 대상으로 남는다.

<부라더>는 ‘죽음’을 육체는 소멸했지만,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는 영역으로 바라본다. 종택에서 ‘제례(祭禮)’에 힘을 쓰고, ‘조상신(祖上神)’을 모시는 영화의 배경이 그러하고, 종손이 되기 싫어 출가(出家)해버린 진짜 종손 형배를 활용하여 귀신과 내세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도 그렇다. 오로라로 나타난 순례의 영혼도 육체는 죽었으나 정신은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오로라는 ‘웃음’이 가득한 ‘삶’의 세계에 끼어들어 형제의 오해를 풀어주고 형제를 인지의 세계로 끌어들여 ‘살아있는’ 역할을 했다.

 

5. <부라더>의 죽음, 웃음의 가치


요즘은 ‘삶의 질’만큼 ‘죽음의 질’도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례와 춘배의 죽음은 ‘죽음의 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춘배는 목판을 새기고 있었다. 그것은 종부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였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으나 진실로 아름다운 삶을 산 사람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남기고 싶어서”라고 춘배는 헌신적인 종부로 살다 간 순례를 추모한다. 또한, 자신에 대해 오해하고 있을 형제에게, “나의 바램은 하나다. 여기는 잊고 너희는 너희의 길을 가라.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을 지키다 가겠다. 그것이 나의 자유다.”라는 말을 남긴다. 종택에 양자로 입적되어 평생 종손으로 매여 살았던 춘배의 존엄한 목소리다. 이는 형제의 마지막 모습에서 ‘삶의 질’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된다. 종손으로서의 삶이 싫은 석봉은 여전히 탐사를 다니는 삶을 선택한다. 종손으로 대우받는 형을 부러워했던 주봉은 종택을 지키며 효(孝) 체험 교실을 준비 중이다.

<부라더>가 주는 웃음의 가치는, 진정한 인지와 발견에 있다. 오해와 미스터리로 정보가 지연되고, 그로 인한 긴장감을 인지의 순간이 해소해버린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도 오해 때문에 슬퍼하지 않으며 곡소리마저 장난처럼 했던 형제, 미스터리한 상황으로 진실에서 더 멀어졌던 형제는 모든 진실이 열린 인지의 순간에 진정한 애도로 나아간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진실에서 나아가 자신들의 바보 같았던 행동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반성한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연결된다. 오로라를 둘러싼 미스터리, 춘배와 순례의 진실은, 존엄한 삶과 죽음의 가치란 무엇인지 웃음 끝에 울림을 던져 주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 영화 – 부라더 – 포토

 

글: 송연주
‘The Last Emperor(1987)’, ‘Hand that rocks the cradle(1992)’, ‘돈을 갖고 튀어라(1995)’, ‘The Rock(1996)’, ‘파이란(2001)’ - 인생영화 100편 中.
세종대학교 영상예술전공 박사과정.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 기획 작가.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05-08

조회수8,482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