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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여성들이 누리는 통쾌함을 위하여 - <오션스8>(2018)

 
 

자본주의 사회는 외롭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과 높이 솟은 건물들로 구성된 도시이미지는 자본주의 상징이다. 밤이면 외로운 사람들로 인해 술집은 흥청망청 거리고, 자정이 넘은 시간 불꺼진 거리엔 냉기만 차오른다. 자본주의 상징은 돈이며 고독이다. 영화 <오션스 8>은 잠들지 않는 자본주의, 남자들이 지배하는 허영의 도시를 조롱하듯 도둑질해대는 여성도둑들을 통해 돈의 평등함과 잃었던 소중한 가치 자매애를 재확인하는 영화다.  

<오션스 8>(2018)  시작은 <오션스 일레븐>(2001)이다. 둘 사이엔 무려 17년이란 세월이 놓여있다. <오션스 8>과 <오션스 일레븐> 차이는 숫자 차이 보다도 더 중요한 주제 차이가 놓여있다. 그동안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는 여러 편 있었지만 여성버젼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션스 일레븐>  주제가 소비사회, 신분계층사회에 대한 조롱과 풍자였다면 <오션스 8>은 여성 유대감을 강조함으로써 여성차별과 여성소외에 대한 주제를 강조한다.

페미니즘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을 보면 남성과 여성에 대한 젠더개념이 전복된다. 그 결과 제한적이거나 구속적이던 여성 역할이 확대되고 여성에 대해 더 이상 고정된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 힘센 일은 남성이 하고 섬세한 일은 여성이 한다는 따위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돈은 남자가 벌고 가사는 여성이 맡아서 한다는 신화가 깨지는 것이다. 영화는 마치 [이갈리아의 딸들]에 나오는 이상국가 이갈리아에서처럼 여성이 더 힘이 세고 머리도 좋고 남성은 무시 당한다. 여성이 계획을 하고, 여성이 실행하고, 여성이 승리한다. 영화 한 축에는 도둑질 외에 여인이 추구하는 복수도 놓여 있다. 자기를 속여 골탕 먹였던 남자를 똑 같은 방식으로 복수하는 이야기다. 이렇게 통쾌하게 여성들만을 위한 영화면서 마지막에도 영화는 여덟 여인들이 바라는 소박한 삶을 보여주며 끝난다.  

  
 
여성관객성을 중시하는 영화가 지금 시점에 나타난 것이 최근 헐리우드발로 시작된 미투운동과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 것일까? 여성참정권을 기록한 역사는 100여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일상에서 여성들은 원한감정을 갖고 있다. 여성들은 남성이 휘두르는 기득권에 억압되어 우울하고 억울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듯 하다. 영화는 보편적으로 관객이 공감할 만한 감정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대중오락이 추구하는 기능을 충분히 갖고 있는 매체다. 남성관객들에게 주어지던 쾌락을 이제는 여성관객에게 돌려주고 싶어하는 텍스트가 갖고 있는 욕망이 읽힌다. 그것은 또한 시대적 징후이다. 

여성인물들이 소유한 관점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여성영화다. 여성영화는 당연히 여성관객 동일시를 끌어내고 쾌락을 선사한다. 주인공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는 점도 여성연대감에 대한 상징성으로 읽을 수 있다. 과거 영화에는 남성, 여성을 적당히 섞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여기선 여자만을 고집한다. 중간에 남자를 포함시키자는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남자는 절대 안 된다는 대사와 함께 남자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 완고함은 여성영화로 가려는 감독의 의도외에 다른 게 아니다. 그동안 남녀 혼용 영화는 많았고, 이제 이 영화는 여성버젼으로 간다. 그게 감독의 멧세지다. 

하지만 남성관객은 이 영화를 싫어할까? 그렇지 않다. 줄거리로는 분명 여성관객성을 의도하지만 이미지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 적용된다. 수려하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백인 여성인물들은 여성관객에겐 자존심을 불러 일으키겠지만, 남성에겐 이성으로서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산드라 블록, 앤 해서웨이의 이미지는 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서 설정된 것이라 본다. 영화는 두 마리 토끼를 추구한다.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여성관객용이지만 이미지를 통해 남성관객도 흡인할 수 있는 장치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헐리우드의 역사에 많이 존재한다. 1980년대 이후로 유행했던 <에일리언>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 주인공 시고니 위버는 영화속에서 여성전사 서사와 이미지를 구사한다. 여성전사는 당시 남성전사들 서사에 대한 일종의 저항적 선택이라고 보여진다. 근육질 남성전사들이 1980년대 미국 레이건시대 정치이념적 표상이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 실베스터 스탤론  등이 했던 역할들이 미국행정부 위력을 전세계에 과시했다. 존 웨인 서부극 영웅을 소환한 1990대 부르스 윌리스 <다이 하드> 시리즈가 풍미한 것도 그런 정치 이데올로기와 그 표상으로서 백인 남성 전사 이미지였던 것이다. 강한 남성, 강한 미국 서사와 이미지는 지배이데올로기를 따라가는 헐리우드영화 문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에 대한 대안적 이미지로 등장한 <에일리언2>(1986), <에일리언3>(1992) 여성전사는 여성관객성을 지향하는 새로운 이미지 였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남성관객들에게도 성적 환상과 호기심 대상 여성전사로서도 동시에 통용될 수 있었음을 인식할 수 있다. 힘이 있고 리더쉽이 있는 전사이긴 하지만 그녀는 동시에 아름답고 섹시하다. 성적인 매력을 통해 남성관객들은 시고니 위버같은 여성전사를 또 다른 흥미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이 여전히 이 영화속에서도 흐르고 있다는 점은 비판할 만한 부분이다. 

또한 다이아몬드를 분해하는 역 흑인여성, 소매치기 명수 아시아여성, 해커 흑인여성 등은 전면이 아닌 후면에 위치한 인물로서 인종적 열등의식을 부추기는 잘못된 인종이미지다. 여전히 이 영화는 백인 중산층들이 선호할 만한 백인 미녀 배우를 전면에 배치하고 끌어나간다. 산드라 블록과 케이트 블란쳇이 그들이다. 그들은 이 영화속 두 주인공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젠더나 계급성에서 선진성은 있으나 인종성에 있어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 여전히 백인 중산층 이미지를 전시하며 백인중산층 관객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독일계 혈통 산드라 블록을 기용한 것에서 와스프(WASP)중심 백인여성이미지에 살짝 변화를 주긴 했지만 큰 변화라고 볼 수는 없다. 

글·정재형
영화평론가이며 동국대 교수이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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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10-09

조회수6,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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