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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녜스 바르다와 JR이 찾은 얼굴들과 장소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은 프랑스의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와 사진작가 JR의 협업과 여정이 담겨있는, 그 자체가 두 사람의 공동작업인 영화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라는 표현으로 주로 알려진 아녜스 바르다는 1960년대부터 이어져온 자신의 영화적 여정과 삶의 우연들에서 발견하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영화에 새겨오며 최근까지도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나이든 영화감독이다. JR은 거리예술, 혹은 사진벽화라고 할 만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젊은 사진가로 그의 작업이란 건물의 외벽이나 바닥과 같은 커다란 캔버스에 인물들의 초상을 프린트해 붙이는 것이다. 55살 차이의 이 두 예술가가 만나 JR의 포토트럭을 타고 프랑스의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얼굴들과 장소들을 사진과 영화에 담기 시작한다. 이들의 여행과 놀이, 삶과 죽음에 대한 대화, 우연과 시간의 흐름이 모여 한 편의 영화가 된다. (영화의 원제는 ‘Visages villages’로 ‘얼굴들 마을들’ 혹은 ‘얼굴들 장소들’ 정도로 번역된다.)


영화를 보고난 후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건 두 사람이 찾아간 장소들의 얼굴들이 간직한 사연과 그들의 모습, 거대한 사진벽화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과 어우러지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다. 이 조우는 대체로 우연에 맡겨지는데, 대도시가 아닌 마을을 향한다는 간단한 조건만을 가지고 바르다와 JR의 여정은 시작된다. 곧 철거될 광산촌을 지키는 마지막 주민, 아버지로부터 종탑의 연주를 물려받은 청년과 바닷가 마을 카페의 종업원, 화학공장의 수많은 노동자들과 마을에서 마을로 소식을 전해주며 수십 년을 살아온 집배원, 염소들에게 최대한 친화적인 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와 항만 노동자들의 아내들까지. 이들의 얼굴에는 지나간 세월과 그 세월을 거치며 나름의 방식대로 만들어진 주름이 있고, 현재 당면한 삶을 살아가는 풍부한 표정들이 있다. 소박하지만 당당한 자부심을 가진 이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모험은 종종 유쾌하고 감동적이며 다음 행로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한다. 

  
 
이 우연한 조우들을 딱히 명료한 언어로 정리하려 노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바르다가 일하는 사람들을 찍고 있다며 작업에 대해 설명하는 순간을 떠올리며, 이때 말하는 ‘일’에 대해 몇 마디 덧붙여보고 싶어진다. 공장과 부두에서, 농장과 거리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바르다가 말하는 일하는 사람들이란 이들 노동자들을 느슨하게 포함하는 더 큰 범주의 사람들이다. 생산과 결부된 전통적인 노동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온갖 움직임들이 영화 안에서 빛난다. 이를테면 각 종의 이름을 설명하며 온몸을 다해 종들을 울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청년의 움직임이나, 자신의 예명을 ‘포니’라고 소개한 최소생계보장비로 생활을 이어가는 나이든 남자가 온갖 것들을 주워 모아 만든 알록달록한 그의 거처를 소개할 때, 영화 안에선 그 무수한 움직임들이 일정한 위계를 벗어나 동등하게 다뤄진다. 자기 자신도 무언가 줍는 사람이라고 말하던(<이삭줍는 사람들과 나>(2000)) 바르다의 움직임이나, 사진을 찍는 것 보다 비계 위에 올라 벽에 풀칠을 하고 사진을 붙이는데 오랜 시간을 쏟는 JR의 움직임도 여기에 겹쳐진다.

우연은 두 사람을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고 즐거운 만남을 가능하게 하지만, 때로 냉엄하고 쓸쓸한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염소 목장에서의 경험이 불러일으킨 바르다의 옛 추억을 따라 향한 노르망디 해변에는 과거 독일군이 설치했던 벙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있고, 두 사람은 여기에 어떤 사진을 붙일지 의논한다. 젊은 시절 바르다가 직접 찍은,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역시 사진작가인 기 부르댕의 사진을 벙커에 비스듬히 붙이는데, 다음날 다시 그 장소를 찾은 이들 앞에는 밀려들어온 밀물이 사진을 쓸어가 검은 흔적만이 남아있는 벙커가 쓸쓸하고도 음산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덩그러니 남겨져있다. 사진벽화는 일시적인 것이며 삶은 유한하고 우연들은 그와 같은 사실을 이처럼 불현 듯 깨닫게 한다. 이제는 사라져갈 탄광촌을 지키는 마지막 주민인 자닌, 채 완성되지도 못한 채 버려진 집들, 생각보다 이르게 퇴직을 맞아 착잡한 심정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노동자와 100세가 된 JR의 할머니, 카르티에 브레송의 무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르다 자신의 노쇠한 육체가 끊임없이 영화를 가로지르며 그러한 사실들을 구체적인 것으로 불러일으킨다. (아녜스 바르다는 1928년 생으로 올해 90번째 생일을 맞았다.)

  
 
바르다가 JR과 나누는 대화와 관계에는 두 사람 사이의 시간의 격차, 젊고 나이든 육체의 차이와 같은 것들이 어쩔 수 없이 부착되어 있다. 물탱크에 붙인 물고기의 사진을 보기 위해 계단을 천천히 또 힘겹게 오르는 바르다를 찍은 장면이 있다. JR은 그녀를 가뿐히 가로질러 이내 화면 밖으로 사라질 만큼 단숨에 높은 곳까지 올라버리지만, 곧 바르다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여기서 보는 풍경도 좋다며 시선의 높이를 맞춘다. 혹은 장 뤽 고다르의 영화 <국외자들>(1964)을 떠올리며 루브르에 간 이들은, 함께 갤러리를 뛰어다니지는 못하지만 JR이 바르다가 앉은 휠체어를 힘껏 밀며 갤러리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이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들과 얼굴들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바르다와 JR이 영향과 영감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건네는 선물들로 이루어진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늘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JR을 보며 바르다가 처음부터 떠올린 하나의 얼굴이 있다. 함께 영화를 만들고 오랜 세월을 지나온 친구이자 동료인 장 뤽 고다르의 얼굴이다. 흔히 프랑스 누벨바그 세대라고 불리는 일련의 영화감독들 중 바르다와 고다르 오직 이 두 사람만이 현재까지 살아있다. JR의 얼굴에서 고다르를 떠올린 바르다에게는 그러나 어떤 난관들이 존재하는데, 무엇보다 그녀의 눈에는 노화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병이 있어 눈앞의 사물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또는 현재의 동료인 JR의 고집으로 인해 선글라스를 벗은 그의 얼굴과 눈을 볼 수 없다는 점도 있다. 영화의 막바지 이들은 스위스에 위치한 고다르의 집으로 향한다. 언제나 예측불허였던 고다르와의 만남은 끝내 실패하고, 바르다가 떠올린 얼굴에게로 향하지 못하는 카메라는 어느 호수 앞에 나란히 앉은 바르다와 JR을 바라본다. 바르다는 상심해있고 JR은 그런 그녀를 위해 선글라스를 벗지만 여전히 바르다의 눈은 초점을 명확히 맞추지 못한다. 그러나 그 다음 그녀는 당신이 잘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보인다고, 이제 함께 호수를 보자고 말한다. 영화는 이들과 함께 한 여정의 끝에서 어느새 두 사람의 얼굴로 돌아와 있고, 이들은 각자의 조건들을 껴안은 채 서로를 마주본다. 이들이 함께 바라보는 호수는 두 사람을, 우리를 그리고 영화를 이제 또 어느 곳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

글 : 손시내
2016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활동 중.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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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10-09

조회수7,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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