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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향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녀들의 지는 싸움을 위하여-영화 <허스토리>

  
 

* 이 글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다룬 영화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영화들은 그것이 전면화되든지 부분적으로 처리되든지 간에 민족적 공분을 추동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는 그 자체가 피해/가해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전히 제대로 사과받지 못한 고통이 피해자들에게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 시리즈처럼 이러한 소재는 초창기에 르포르타주(reportage) 같은 고발성 다큐영화로 다루어졌는데 실제의 인물과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사실 전달이라는 목표가 늘 영화라는 장르에 초과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최소한의 사실에 입각한 정보와 사회적 관심 모두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분명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이후 점차 피해 인물들을 극화시켜서 당시 상황을 재현해 내는 영화들인 <마지막 위안부>(임선, 2014), <귀향>(조정래, 2015), <눈길>(이나정, 2015) 등이 등장한다. <귀향>은 이러한 소재의 영화가 가진 낮은 대중적 호응도에 대한 예상을 뒤엎고 350만 이상의 흥행스코어를 기록했으며 위안부의 문제를 일본군 성노예 문제로 재인식하게 하는 국민적 공감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폭력적인 상황이 선정적으로 전시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개봉된 <눈길>은 “끔찍한 폭력의 순간을 ‘영화적 스펙터클’로 이용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는 감독의 인터뷰를 남길 만큼 잔혹한 상황 자체보다는 전쟁의 비극과 피해자에 아픔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인 영화였다. 하지만 여전히 ‘소녀’인 극 중 인물들을 순결 이데올로기라는 상징적 차원으로 묘사해 피해를 단일하게 이미지화하는 측면이 있었다. 작년에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2017)가 돌파한 지점은 피해자를 꺾인 꽃 같은 소녀의 이미지로 낭만화하는 데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피해자 ‘옥분’을 살아남아 우리의 곁에서 같이 살고 있는 노년의 여성으로 현실화하고 무엇보다 그녀에게 목소리를 부여해 울음과 회고의 소극적 태도를 넘어선 질책의 음성을 내게 했다.

이제 제법 레퍼런스가 쌓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재의 영화들은 만듦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문제의식과 영화적 재현의 차원에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관부재판을 다룬 <허스토리>에 대해서는 거의 매해 나오고 있는 위안부 소재의 영화로서 기대치가 덜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또 다른 측면에서 같은 소재의 영화들을 넘어서는 지점이 있고 그 성취에 우리는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녀가 중심이 된 그녀의 이야기

영화 <허스토리>는 본 내용에 앞서 ‘관부재판’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애니메이션과 자막을 제시한다. 일본군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를 구분하고 각각 3명과 7명이 관부재판(關釜裁判)의 원고가 되었다는 실제의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실화 기반인 영화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는 영화적 서사화의 한계에 명확히 선을 긋는 것인데, 주인공과 세세한 사건들에 상당 부분 극적 상상력이 적용되더라고 실제 재판의 과정이나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는 점,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완전히 허구인 이야기들과는 달리 실제감이라는 측면에서의 신뢰성을 획득하게 한다.

  
 

1990년대 부산에서 여행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이자 부산여성경제인엽합이라는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는 문정숙(김희애 분) 사장은 고교생 딸 혜수(이설 분)를 홀로 키우는 워킹맘이자 배포가 큰 인물이다. 가사도우미 배정길 할머니(김해숙 분)는 늘 바쁘게 사는 그녀를 대신해서 집안일을 돌보고 반항심 많은 혜수도 잘 어우르며 친밀하게 지낸다. 어느 날 뉴스에서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방송되는데 문 사장은 그 할머니의 처지를 부정적으로 말하며 혜수를 힐난한다. 이후 갑자기 배 할머니가 메모를 남긴 채 일을 그만둬 버리고, 문 사장은 할머니의 집을 찾아가나 문전박대를 당한다. 한편 기생관광 문제로 영업 정지를 당한 문 사장은 같은 모임의 후배 신 사장(김선영 분)의 권유로 회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위안부 및 정신대 피해 신고 센터’를 사무실에 마련하고 신고 전화를 개통한다. 이곳에 배 할머니가 찾아오고 문 사장은 그녀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에 크게 놀란다. 문 사장은 여직원 류선영(이유영 분)과 함께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면서 참여를 독려하고, 박순녀(예수정 분), 서귀순(문숙 분), 이옥주(이용녀 분) 등의 할머니들이 모인다. 문 사장은 사재를 털고 재일교포 변호사 이상일(김준한 분)의 도움을 받아 일본 정부에게 사죄를 받아내기 위한 재판을 시작하는데 이는 6년간 23차례나 이어지게 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부산여성경제인연합 회원들이 모여서 떠들썩하게 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문 사장은 성공을 늘 남성의 공로로 돌리는 회원들에게 여자들도 스스로 잘난 척을 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영화라는 여성주의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장면이다. 같은 소재의 영화들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주인공이 전면에 제시되는 만큼 고통을 겪어 온 그녀의 삶이 현재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측면이 강조 된다면, 이 영화는 피해자가 아닌 여성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며 그녀가 경제력을 지니고 적극적인 행동력마저 갖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를 프로포션과 발성, 연기력의 여러 측면에서 김희애 배우가 열연해낸다. 또한 이러한 소재의 영화가 더 이상 개별적인 개인들의 과거사적인 불행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전혀 다른 상황과 처지에 놓인 여성들과도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스피박은 공식적인 역사에서 지워진 채 파편화된 대중의 기억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반기억(countermemory)’(1)의 전략을 강조하는데 공식적인 역사에 항거하여 그동안 망각되었던 타자의 목소리들을 복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시대적 아픔의 희생자’ 정도의 말로 그들을 타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같이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자 같은 여성으로서 그들의 삶에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관부 재판을 이끌어가는 6년 동안 할머니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경제적 도움을 베푼 사람들은 주로 여성들로 묘사된다. 특히 극 중 신 사장과의 워맨스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녀는 이재에 밝은 사업가답게 일본 사람들을 도외시하고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문사장이 재판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것을 말리기도 하지만, 인지상정을 지닌 사람으로 할머니들의 처지를 동정하고 동료애로서 문사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는다. 유쾌한 성격의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전체적으로 무거운 영화의 분위기도 환기되고, 문 사장의 자금줄에도 숨통을 트이게 된다. 결국 사재까지 털어가며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는 문 사장의 선의와 결단력이 재판을 이끌어가는 동력이라면, 그녀의 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그녀에게 현실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같은 여성인 신 사장과 경제인모임의 후원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기념관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도 문 사장인데, 끝까지 이들의 편에 서고 있는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하여 만들어진 인물이므로 연대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결국 허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의미를 지닌다.


증언의 세대론적 전승

기존에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영화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를 다룬 우리 영화의 대부분은 일본에 대한 민족적 분노를 전경에 깔고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허스토리>에서는 가해자인 일본의 사죄하지 않음에 대해 분명한 비판을 제기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 정치적으로 결정된 한일관계의 여러 문제적인 지점들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특히 문 사장이 ‘기생 관광’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위안부 신고센터를 열게 된 계기가 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패전 이후의 일본이 한국 전쟁으로 인한 군수 사업을 통해 경제적 회복을 이뤘듯이 박정희 정권 아래 이뤄진 굴욕적 한일 협정(1965년)은 경제적 부흥이라는 목적을 내세우며 일본과의 교류를 가능케 했고 일본 정부에 보상금을 받으면서 전쟁 책임을 면피하게 했다. 이러한 한일 교류에 의한 경제적 이익 창출에 ‘기생관광’으로 명명된 여성 성 노동 즉, ‘국가 주도 수출 지향적 성의 프롤레타리아화’(2)문제가 관여되었다. 70년대 산업화의 ‘빛나는’ 명성이라는 것 안에는 남성 중심의 착취 구조인 ‘기생관광’이나 호스티스 등의 ‘서비스 노동(Service Economies)’(3)의 문제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극중 위안부 피해자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재판을 하지 못하고 개개인의 자격으로 임한 것은 이미 일본에 ‘보상’이라는 명분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피해를 다룰만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전범국의 식민지 피해보상의 차원이 아니라 ‘도의적 국가로서의 책임’을 통해서만 재판이 가능했던 것이다. 한 인간이자 여성의 인권 문제로 재판을 돌파해 나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여기에 있다.

  
 

나아가 이는 ‘아들’에 희생당한 딸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극 중 이옥주 할머니는 끌려가던 날의 아침을 회상하며 “내 고향 복사꽃이 유명한 도화마을. 끌려가던 날, 아부지가 꽃신을 사 오고는 대를 이으려면 머스마가 남아야 하지 않겠나. 미안타 했다”라고 증언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를 비난하는 대신 “나는 꼴을 다 못 베고 가는 게 미안해서…”라고 회상할 뿐이다. 그녀는 결국 끌려갔고 돌아와 여전히 지속되는 고통에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다. 이러한 사례가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겠지만 결국 일본이라는 절대적인 거악이라는 항 밑에는 젠더적 위계가 작동하고 있었음을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대상에 그리고 현재도 이어지는 연대의 흐름에 여성을 놓게 되는 것이다.

극중 노년의 할머니들-중년의 문 사장-젊은 세대인 여직원 류선영과 혜수반 교사(한지민 분)-10대인 혜수로 이어지는 세대 간의 공감대를 세심하게 고려한 부분도 지적되어야 한다. 할머니들의 증언을 일본의 재판부에 전달하기 위해 문 사장은 통역을 하는데 이때 실제 할머니들의 슬픔과 고통, 분노까지도 전달해 내려 애쓴다. 이 과정을 통해 할머니들의 증언은 문 사장의 입으로 재발화된다. 류선영은 극 중 재판을 망설이는 할머니들에게 일상적으로 불편한 일을 당해도 늘 아무 말도 못 하고 소극적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고백하며 할머니들의 용기를 북돋고, 수업 시간에 배할머니의 강연을 소개하는 교사는 이러한 할머니들의 증언을 다음 세대에 전달할 의무를 수행한다. 배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수요집회에 나가 ‘History’에 가려져 있던 ‘Herstory’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혜수의 역할도 증언의 세대론적 전승과 기억이라는 측면에서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균열된 피해자와 인물의 각성

이 영화의 후반 재판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배 할머니의 위증 문제이다. 이것은 재판의 유일한 전략이 할머니들의 증언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도 큰 패착이며, 한결같이 할머니들의 주장을 거짓말로 몰아온 일본 측의 주장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피해 사실에 공감하여 선의로 힘껏 도와온 문 사장에게 배신감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또한 같은 목적을 향해 달려온 그들의 관계에 균열을 가져오게 된다는 점에서 밀도 높은 긴장을 조성하는데 그간 피해자의 윤리적 완결성에 의심을 가하지 않았던 서사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위증 문제만이 아니라 같이 재판을 하는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위안부였는지 근로정신대였는지를 놓고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극 초반 문 사장이 찾아갔던 홍 여사(박정자 분)처럼 처음엔 위안부로 갔으나 나중엔 중간 포주 역할을 했던 존재도 있었음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피해자 할머니들이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서로에 대한 완전한 합의와 이해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배 할머니의 위증은 남다른 사연 때문이었음이 밝혀지긴 하지만, 이렇듯 피해자의 어떤 증언에 의구심이 생겨날 경우 가해지는 집단적 린치의 예를 우리는 현재의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우에서 무수히 보게 된다. 사건 전체와 맥락이 놓인 방향의 폭력적 피해지점을 고찰하지 않고 개개인의 언술과 행동의 한 부분에 비판이 가해질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와 도치되고 가해자를 단죄하던 목소리들은 피해자를 향해 더 극심한 폭력적 언술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다.

한편, 재판을 이겨서 반드시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겠다는 문 사장의 의욕은 법정에서 다소 충격적인 방식으로 서귀순 할머니의 과거를 드러내게 한다. 이 변호사는 그녀의 목적 지향적인 태도가 가진 맹점을 지적하며 과정도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이긴다는 것에만 매달릴 때 승자였던 일본의 착취구조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그녀를 비난한다. 이 과정에서 문 사장은 맹목적 목적으로 달려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이미 요원한 그 목표를 향해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는다. 이를 통해 ‘지는 싸움’을 계속해야 할 당위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인물의 각성이라는 성장 서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배 할머니의 변화 역시 동일하게 성장 서사의 특징을 보여준다. 배 할머니는 위안부라는 과거 때문에 평생을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며 남편에게도 아들에게도 늘 당당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경제적으로 그녀에게 의탁하고 살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아들이지만 그의 뇌병변 장애마저도 자신의 탓인 양 미안해하며 그를 감싸 안는다. 이는 근본적으로 이 세대 여성들이 부계의 권위가 주는 사회적 울타리를 문제의식 없이 수긍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판의 과정을 거치면서 억누르고 감춰두었던 과거를 발화하게 되면서 자신은 그저 살려고 했을 뿐 잘못은 일본에 있는 것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얻게 된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본이 준 위로금을 받으려는 아들에게 화를 내고 수령증을 찢어 버린다. 그간 아들의 폭력에도 두둔할 만큼 그에게 종속된 삶을 살던 배 할머니가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고 자신의 의지를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은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배 할머니도 남자의 얼굴을 한 전쟁과 그로 인해 배태된 남성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준다.


불가능한 것의 경험으로서의 윤리학

문 사장은 할머니들을 위해 무료로 변론하는 이 변호사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차별과 불합리를 용서하기 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배 할머니의 마지막 발언에서 “지금 기회를 줄게. 인간이 돼라.”라고 말한 지점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가해국으로서 일본의 태도는 인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이성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인식인 것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이 영화가 민족적 감정을 건드려 신파조의 눈물을 짜내지 않는 이유가 뚜렷해진다. 스피박은 “타자의 정치학은 재현이 빠뜨리거나 배제한 현실에 주목하여 권력의 담론 이분법적 논리를 통제할 뿐 아니라, 지배와 식민주의의 영향에 대한 주관적 경험과 지배당하고 주변화된 하위집단의 객관적 역사(즉 대항적 역사counter-histories)를 통해 침묵 당한 타자의 역사를 복원한다.”(4)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연민과 공감의 연대를 통해 관계를 맺어야 할 ‘타자’에 위치시키고 이를 통해 침묵을 강요당한 그들의 역사를 다시 복원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가진 미덕은 피해/가해의 이분법과 단순한 공분 차원이 아니라 젠더적 위계와 계급적 위계 속에 겹겹이 쌓인 피해자의 다양한 층위를 인정하고 복잡하게 놓인 문제들을 의식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일본이 과거사를 사죄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주장하는 ‘이미 피해를 배상했다’-‘우리도 피해자이다’-‘증언이 일률적이지 않으므로 그들은 거짓을 말하고 있다’라는 논리적 흐름에는 이러한 피해와 가해의 윤리적 도치 혹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연상시키는 검증 가능성에 대한 함정이 놓여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더라도 싸움을 계속하며 이를 통해 끊임없이 자아의 반경을 넓혀 포기나 절망을 넘어서서 타자와의 관계를 도모하는 것이 나 아닌 타인과의 공감이 가능해지는 지점이자 ‘불가능한 것의 경험으로서의 윤리학’(5)의 차원인 것이다.

‘타자’와의 자기 정초적 ‘대화’의 시도는 고통스러운 것이므로 여성 인물들은 성장 서사의 궤적을 겪는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들의 관계 맺기의 과정은 결국 확실한 답을 찾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한 대답이나 최종적인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그 질문을 계속 제기”(6)하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여성의 삶에 가해진 균열을 인식하고 관계 맺기의 지난한 여정을 감당하는 것은 결국 자기 주체를 온전히 인식하게 되는 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스토리>가 각별한 지점은 위안부 피해자들에 관한 서사를 그러한 보편성의 차원에까지 끌어올리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를 통제하는 민규동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할머니들 역할을 맡은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배우의 열연도 인상적이다.


(1) 김상구 외, 『타자의 타자성과 그 담론적 전략들』, 부산대학교출판부, 2004, 108-109쪽.
(2) 이진경, 앞의 책, 173쪽.
(3) 위의 책, 46쪽.
(4) 김상구 외, 앞의 책, 110쪽.
(5) 위의 책, 79쪽.
(6) 주디스 버틀러, 양효실 역, 『윤리적 폭력비판』, 인간사랑, 2013, 77쪽.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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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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