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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극장을 침입한 현실을 긍정하는 방식 - 영화 <너와 극장에서>

카메라의 탄생을 목도했을 때부터 우리는 현실에서 느껴 온 염증과 권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했을지 모른다. 내가 지나친 시간과 공간을 붙잡아두는 이 기계장치에 대한 무수한 실험들은 그래서 당연했다. 피사체를 향한 카메라의 방향과 거리를 바꾸어 보고, 그 안의 필름을 이리저리 요래조래 겹쳤다 뗐다를 반복하면서 기대는 확신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종국에 이 필름들이 영화라는 이름으로 작은 빛을 통과해 거대한 스크린을 채우고, 광광 울려대는 소리로 사람들의 숨 쉴 틈까지 비집고 들어갔을 때 영화는 신(神)이 되었다. 경외의 대상. 영화는 그렇게 사람들을, 사람들은 기꺼이 영화에 홀려갔다.

그러나 영화에 미쳤다, 혹은 홀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공평치 않은 일이다. 영화에 빠진 이들의 경험 한 켠에는 늘 영화에 대한 기억과 함께 극장에서의 촉감의 기억이 함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옛날 그 퀴퀴한 냄새가 났던 극장에서 보았던 액션, 거대한 스크린 빛에 취해 좌석 뒤에 숨었다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았던 이름 모를 영화, 음악이 터져나가는 순간 온몸에 오르내렸던 흥분. 이 모든 것은 필름을 체험으로 실현시키는 극장의 존재로 가능한 것이었다. 바깥과는 완전히 차단된 채 내 몸에 촘촘히 각인된 기억의 공간, 그래서인지 극장은 늘 그 기억 속 감정들과 연결되는 그러니까 현실과는 다른 떨리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던 그때의 그곳, 혹은 다가올 그곳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극장을 중심에 놓은 영화들은 늘 행복을 꿈꾸는 이야기를 해왔다. 로맨틱하면서도 아련함을 끌어내는 감정이 몽글거리는 공간. 평소 꺼내지 못하던 마음을 몰래 숨어 고백할 수 있는 공간이거나(<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 중 <곽씨네 하우스> 등),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쌓아올린 삶의 조각이거나(<씨네마 천국>(1988)), 영화의 존재방식을 담아낼 연희(演戱)의 무대(<홀리 모터스>(2012))로의 표현은 영화의 공간을 영화만의 것으로 받아들인, 혹은 그런 바람이 담긴 것이었다. 물론 극장은 그런 공간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극장은 감정과 환상으로부터 차츰 멀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이는 극장 탓은 아니다. ‘극(劇)’장을 단지 ‘상영(上映)’만 하는 곳으로 생각하며 극장을 영화와 떼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계산의 결과다. 극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 잡음들, 어디가나 똑같아져버린 극장의 모양새, 상영관을 억지로 늘리면서 생겨난 쪼개진 스크린과 사석(死席)들, 영화 선택의 박탈 등. 이 모든 것은 극장 속에 완벽히 분리되어야 할 현실을 끼얹었고, 그만큼의 추억을 앗아갔다. 이제 환상과는 멀어져 버린 극장이라는 공간은 어떻게 스크린에 자리 잡아야 할까. <너와 극장에서>(2018)가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하고 있는 즉, 우리가 원하는 극장이라기보다 현재의 극장에 대한 에세이라는 점 때문이다.

<극장 쪽으로>(유지영 감독), <극장에서 한 생각>(정가영 감독), <우리들의 낙원>(김태진 감독>, 이렇게 세 영화가 묶인 <너와 극장에서>는 내용에 있어서도, 그 배열에 있어서도 현재의 극장, 또 앞으로의 극장에서 현실을 배제하지 않는다. 현실이 가장 진하게 스며든 <극장 쪽으로>는 일 때문에 서울에서 대구에 홀로 내려가 살고 있는 선미(김예은)의 날들과 극장을 연결한다. 선미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아침에는 늘 문 앞으로 배달 온 우유와 빵을, 점심은 작은 분식집에서 혼자 오므라이스를 먹으며, 저녁에는 홀로 영화를 본다. 분식집 주인이 매일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 지겹지 않느냐고 물을 만큼 그의 하루는 예상할 수 있으며 그만큼 지루하다. 

예상치 못하게 날아들어 그를 공격하는 유일한 것은 소리이다. 항공기지에서 나는 소리는 대구에 살고 있는 ‘우리’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소리이지만 선미에게는 귀를 틀어막고 진저리를 칠만큼의 공격으로 작용한다. 일터에서도 누구와 어울리지 않고, 어울릴 생각도 없어 보이는 선미의 고립은 유지영 감독의 전작 <수성못>(2018)을 떠오르게 한다. 대구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던 희정(이세영)의 모습은 대구에서 이방인처럼 떠돌며 소리로 괴롭힘을 당하는 선미의 모습과 어렵지 않게 겹친다. 이처럼 <극장 쪽으로>에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살고 있는 이들, 낯선 곳에서의 황망함과 외로움이 진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가 늘 꿈처럼 품고 있을 극장조차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선미를 구해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어느 날 선미는 그의 자리에 붙어 있는 ‘오오극장’에서 만나자는 포스트잇 한 장을 발견한다. <극장 쪽으로>는 고민 끝에 지하철을 타고 극장을 나서는 선비의 뒷모습에 불안한 음악을 딸려 보낸다. 흑백으로 처리된 화면에서 들리는 불안한 음악, 그리고 타인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선미의 모습은 극장에 들어서서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잠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들어선 골목에서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며 극장을 찾지 못하는 선미의 모습은 숨이 막힐 만큼의 답답함을 전달한다. 같은 자리를 돌고 있다는 거울이라는 표지, 대구의 여름 날씨, 도무지 어디로 들어서야 할지 모를 만큼 비슷비슷하게 생긴 좁은 골목, 거기에 항공기지에서 들리는 것이라는 비행 소리는 결국 선미를 주저앉게 만든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선 극장에서 선미가 발견한 현실은 그래서 더욱 허탈하다.

<극장 쪽으로>는 그 모든 일을 겪은 이후의 아침, 선미가 전과 다름없이 문도 열지 않은 채 현관문에 나 있는 우유투입구로 배달된 우유를 집어 드는 손을 보여주며, 그의 삶이 극장을 가기 전과 후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선미의 집뿐만이 아닌 다른 집의 현관문의 우유투입구에서도 우유를 집어 들기 위해 손만 삐죽이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며 고립된 이들이 비단 선미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폐쇄적으로 그려지는 대구의 공간, 그리고 이방인의 고립은 ‘극장 쪽으로’ 가는 그 순간에도 결코 떨칠 수 없는 것이었다.

바로 다음 이어지는 <극장에서 한 생각>은 숨 막히는 GV현장으로 관객들을 데려간다. 열정과 열기로 인한 후끈함이 아닌 불편함에서 오는 숨 막힘. <극장에서 한 생각>에서의 불편함에 끼어드는 것 역시 내가 사는 그 현실이다. 가영(이태경)은 멜로영화를 찍어오다 ‘극장살인사건’이라는 추리물을 연출한 감독이다. 영화 직후 진행되는 GV에서는 흔히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이 어색함이 가시지 않을 만큼의 간격을 두고 이어진다. 어떻게 처음 이런 생각을 하셨냐, 혹은 팬인데 언제 다시 이전과 같은 작품을 만들 것이냐와 같이 예의 그 뻔한 질문들에 가영은 그리 어렵지 않게 대답을 이어간다.

그러나 감독이 어렵지 않게 대답을 이어간다는 것이 GV가 편안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영이 대답을 하면서 내놓는 답변들은 분명 솔직한 것이지만 어딘가 불편함을 자아내면서 점점 극장 공간을 살얼음판으로 만든다. 가영은 극장과 멀어진지 오래되었다든지, 영화인들에게 토렌트가 스승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이들 중에는 토렌트에 업로드 하는 이도 있다든지, 자신도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를 받아 본다든지와 같은 대답을 조근 조근 표정변화 없이 이야기한다.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영화’‘감독’에 대한 상(像)을 가영은 너무도 무표정하고 편안하게 일순간에 무너뜨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극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극장살인사건’에서부터 드러나듯 가영은 영화라는 것, 그리고 극장이라는 곳을 현실과 분리되지 않은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혹은 그곳은 불안을 담지한다. 질문과 큰 상관없이 유부남을 좋아했었다는 갑작스런 고백, 언젠가는 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지도 모르겠다는 가영의 이야기는 이 연애담의 전말을 알고 있는 공격적인 관객과 부딪히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극장에서 한 생각>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 GV현장을 매우 효과과적으로 전달한다. <극장에서 한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영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영화는 가영이 별스러운 대답을 할 때나 갑작스런 폭탄선언을 할 때에도 관객들이나 사회자에게 카메라를 돌려 그들이 당황했다거나 어이없어한다는 식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때문에 내가 참석한 GV에서 감독이 이런 대답을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당혹스러움과 불안함은 고스란히 관객의 몫이 된다.

가영의 현실은 곧 그의 영화와 극장에 침투하면서 어디까지가 그의 삶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영이 살고 있던 삶이 가상의 영화에 들어왔을 뿐인데 가영은 왜 맨날 그의 멜로 영화 속 설정이 진짜냐는 질문을 들어야 하며, 영화는 가상일뿐이라고 이야기해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가영은 분노하게 되는가. 관객들은 왜 ‘가영’의 삶이 자신들이 생각하던 ‘감독’의 것이 아니라고 해서 당황해야만 하는가. <극장에서 한 생각>은 이처럼 짧은 GV현장 속에 영화와 현실,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영화(인)들에 대한 모습들과 영화를 보며 이들에 대해 판단내리고 있는 관객들의 생각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가영의 GV현장을 스크린으로 보고 있는 또 한 겹 현실, 연인 관계인 유부남 기자와 여성 감독의 대화를 들려주며 영화와 현실이라는 또 한 번의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너와 극장에서>는 극장이 우리의 환상을 충족시켜주고, 원하는 대로 영화의 의도가 전달되며, 그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으로 두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실망하고, 또 누군가는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빼앗기기도 하는 곳. ‘너와 극장에서’ 보낼 시간이 당연하게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가능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극장에서>에 드러나는 영화에 대한 사랑은 당연히 감춰지지 않는다. 영화를 볼 수 있는 그곳, 떠올리는 순간 울컥 솟아오르는 무엇인가가 숨어 있는 그곳, 그곳이 극장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이 영화는 대구의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가로수길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극장 ‘이봄씨어터’, 많은 이들이 영화에 대한 꿈을 꾸며 드나들었을 ‘서울아트시네마’를 등장시키면서 <너와 극장에서>를 즐길 곳이 적어질 수는 있지만 <너와 극장에서>의 기쁨이 작아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준다. 가장 마지막, <우리들의 낙원>은 <너와 극장에서>가 긍정하는 극장의 힘이다.

낙원이었으면 좋겠지만, 낙원에서 살지 못하는 은정(박현영)은 금전출납부를 들고 사라진 민철(오동민)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집에도 없고, 연락도 되지 않는 그를 찾기 위해 민철의 친구들과 함께 그를 찾아 돌아다니는 곳은 작은 영화들을 상영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가 서울아트시네마에 있을 것이라는 지인의 말로, 모두는 그곳으로 향한다. 은정은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이 일 때문에 왜 회사에서 이렇게까지 혼나야 하는지 도무지 모른다. 아니 그저 혼나고 사과하는 것이 이골이 난 듯 그가 전화를 대처하는 폼은 익숙하기만 하다. 이런 생활에 쫓기는 것이 은정의 일상이었다면 아마도 은정이 극장을 가야겠다고 떠올리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은정은 민철을 찾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그의 친구들을 찾아다니고, 예상치 못하게 그들에게 위로도 받으며 서울아트시네마로 들어선다. 은정이 민철이 영화광이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에서도 드러나듯 그들은 그리 친하지도, 혹은 친할 필요도 없던 사이일지 모른다. 게다가 극장에서 나오던 민철이 은정을 본 후 당황하던 것과 허둥대던 것을 생각한다면, 민철의 회사생활도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본의로 극장으로 도피한 민철이나, 본의 아니게 극장으로 호출당한 은정은 결국 하나의 스크린을 마주 보고 앉아 영화를 보며 잠시 그들의 현실을 잊는다. “조용히 좀 해. 영화 좀 보자.”의 속삭임, 그것이 그들이 극장에서 찾을 수 있는 위안이었을 것이다.

  
 
<우리들의 낙원>은 현실에서의 팍팍함을 고스란히 극장으로 들고 왔으면서도 그것이 영화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특히 재패니메이션 캐릭터를 책상 한 가득 붙여 놓은 채 개인 게임방송을 하던 민철의 친구 ‘탑 헌드래드 Bj’ 정우(서현우)와 그의 여자친구이자 ‘bj 스크립트’ 혜진(김시은)의 코믹함은 낙원에 살지 않는 은정과 민철과 대비되면서 흥미를 끌어낸다. 은정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은정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끌어 내고, 그것에 보태 낙관적이면서도 세상에 중심에 선 듯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정우와 혜진의 모습은 서울아트시네마를 드나들던 누군가의 모습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선 은정과 민철도 아마도 그날 하루, 혹은 영화를 본 그 시간만큼은 <우리들의 낙원>이 극장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종종 극장이 많은 것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 때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서 억울하기도 하지만, 이 와중에도 극장은 자신을 느끼고 만지고 기억해줄 관객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극장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너와 극장에서>가 2018년의 극장을 다시 이야기하는 방식은 이제는 추억으로 묶어내기엔 힘들어진 극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어떤 자신감이다. 젊은 감독들이 바라보고 있는 극장, 그리고 세 편 모두 여성 주인공을 내세웠음에도 굳이 이를 특별하지 않게 다루는 당연함은 <너와 극장에서>가 이끌어낸 또 다른 극장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너와 극장에서>(2018)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 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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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10-09

조회수7,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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