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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산책하는 침략자, Before We Vanish> - 외계인의 지구침략을 가정한 언어공포물

 
 

8월 16일 개봉 예정


구로사와 기요시(黒沢清) 감독의 SF 드라마 <산책하는 침략자, Before We Vanish, 散歩する侵略者, 130 min, 2017>는 외계인의 지구 침략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간다천음란전쟁>(1983)으로 데뷔한 그는 J-호러로 국제적 인지도를 쌓아왔다. 63세의 나이를 잊은 감독의 작품은 젊은 감독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고, 그는 인간의 심리적 내면을 분석하여 영화에 반영하는 섬뜩한 일본 공포영화를 만들어내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우뚝 서있다. 

기요시의 대표작으로는 최면으로 살인을 유도하는 내용이 담긴 <큐어>(CURE, 1997), 컴퓨터에서 유령을 본 후 자살한 청년을 다룬 <회로>(回路, Pulse, 2001,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상), 한 가족을 통해 일본 붕괴를 조망하는 <도쿄 소나타>(Tokyo Sonata, 일/네 합작 2008), 실종 3년 만에 귀가한 남편과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아내를 그린 <해안가로의 여행>(Journey to the Shore, 일/프 합작, 2015, 칸영화제 주목할시선 부문 감독상)이 있다.

  
 
  
 
<산책하는 침략자>에서 묘사된 자극과 반응, 자극과 상상에 걸친 처절한 파괴와 반성적 수습은 일본 정서를 반영한다. 감독은 일관된 톤으로 자신의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인류의 파멸을 막을 외계인과의 공존을 모색한다. 일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긴 호흡으로 이어가는 감독의 솜씨는 탁월하며, 심각함 속에 코미디적 요소가 즐비하게 깔린다. 일본 도깨비 오니(鬼)의 난폭함을 대하는 듯한 파괴의 형태는 한국 도깨비의 ‘골탕 먹이기’와는 정서가 다르다.   

<산책하는 침략자>에서 우리는 철학하는 연출자의 모습을 본다. 지구침략을 겨냥, 인간사회에 침투한 외계인이 인간의 ‘개념’을 수집하기 시작하고 ‘개념’을 수집 당한 인간은 뇌장애를 앓거나 초기치매증상을 보인다. 영화의 서막은 뜰채에 포획된 금붕어를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가는 외계인 여고생, 그로테스크한 방에는 금붕어가 카페트 바닥에서 할딱거리고 옷과 입가에 피가 가득 묻은 상태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외계인들이 인간을 금붕어처럼 없앨 수 있다는 상징이다. 피 묻은 세일러 교복을 입고 질주하는 차량들 사이를 활보하는 외계인 여고생(츠네마츠 유리)의 모습에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그 여고생의 냉소를 깔고 영화는 본론에 진입한다. 부인 나루미(나가사와 마사미)와 함께 병원에 온 남편 신지(마츠다 류헤이)는 잡지를 거꾸로 들거나, 부인에게 존대하며 이상행동을 보인다. 

 

  
 
  
 

신지는 귀가 때에도 물건을 떨어트리고 주저앉는 등 갈등을 유발한다. 영화는 인간과 사회의 존재 기반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타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유사 동작과 장면들을 보여준다. 시대나 장소가 다른 곳으로부터 우주 진입, 특별한 감정을 표현할 때 변하는 신체, 초능력을 보여주는 힘, 비정상에 대한 불감 같은 스키마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행방불명되었다가 귀가하여 외계인 타령을 벌이던 신지가 나루미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평화와 사회회복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신지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바뀌고, 검지를 이마에 대고 “이제 당신은 사랑이란 개념을 잃어버립니다.”라고 하는 장면이 <블랙 맨>의 기억 지우개와 오버랩 된다. 얼굴은 같으나 영혼이 다르게 나온 영화는 무수하다.  

나루미는 재택근무를 하는 디자이너이다. 외계인 신지는 매일 어딘가로 산책을 나가고, 마을에서는 어느 가족이 무참히 살해된다. 취재차를 타고 ‘주간월드’의 기자 사쿠라이(하세가와 히로키)가 등장하고, 외계인 아마노(타카스기 마히로)가 가이드가 되어달라고 접근한다. 기자의 호기심과 외계인의 출현이라는 소재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감독은 갑작스런 혼돈을 피하기 위해, 서서히 이야기의 단계를 구축한다. 세 명의 외계인이 파견된 동방 일본, 세 명의 외계인은 신지, 여고생, 아마노로 밝혀진다. 외계인과의 힘든 싸움은 부부 사이에 일어나고 있었고, 관찰자 사쿠라이의 호기심은 젊은 외계인 둘과 연결된다. 아노미의 어머니는 이미 언어 개념을 상실한 지구인으로 비정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처제 아스미의 방문으로 벌어지는 단어, 언어 개념 ‘가족’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웃집으로 들어가려는 신지의 행동에서 ‘소유’의 개념이 발생하고, 형사와 소녀 사이의 격투에서 자신과 타인의 개념이 생긴다. 상황을 정리하는 신에서는 반드시 검지 행위가 이루어진다. 풍력발전기가 있는 차안에서 기자는 주변의 상황이 외계인의 침략이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단어와 개념을 뺏기면서 생기는 이상행동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희생과 사랑이란 단어가 파생시킬 다음 상황이 궁금하게 만든다. 외계인 신지는 나루미가 일하는 회사로 가서 그녀를 괴롭히는 사장으로부터 일의 개념을 뺏는다. 이후 사장은 이상 행동을 보인다. 후생 노동성 관리가 사쿠라이에게 신형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입하여 의식장애환자를 양산한다고 경고한다.  
 
자위대 차량과 우주물리학자 요시카와가 이동하면서 전쟁이 시작을 알린다. 인간의 몸에 침투한 외계인 아마노는 자신을 취재하는 사쿠라이에게 ‘지구침략’이 목적임을 알린다. 진실을 알리려는 사쿠라이 기자의 외침은 허무해지고, 3분 침략 계획이 3일 간다는 푸념 속에 아마노는 ‘공존’의 개념을 생각해낸다. 외계인 소녀는 잠복한 경찰에게 총격을 가한다.  

  
 
감독은 ‘사랑’이란 단어 개념을 끄집어 내기위해 찬송가를 부르는 어린이 성가대를 등장시킨다. 아이들의 사랑에 대한 개념은 1)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것 2) 세계평화에 필요한 것 3) 사랑은 하트 모양, 색깔은 핑크고, 폭신폭신 한 것 4) 집요하면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시편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사랑’은 빼앗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침략은 진행되고 있었다.  

GPS 발신기가 속임수를 쓰고 같은 인류를 함정에 빠트렸다는 기자는 아마노의 비아냥거림을 듣는다. 한편 외계인 신지는 부인이 차린 지구 음식을 맛있게 먹음으로써 사랑의 감정을 조금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외계인의 침공은 진행된다. 병원은 각양각색의 환자가 즐비하고, 상황의 긴박감 속에 봉사 대원 자체도 환자가 되어 간다. 

마침내 부부와 마주친 기자는 남편과 외계인들이 만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경고하지만 세 사람은 만난다. 소녀는 통신기를 완성시켜 50년이 아닌 빠른 시간 내에 지구를 멸망시킬 것을 부탁하겠다고 한다. 잠든 신지를 나루미는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하야시 유스케(林祐介) 음악의 ‘사랑의 테마’가 흐른다. 
 
외계인들의 침략을 확인하고 기자는 샘플로 살려줄 것을 부탁한다. 전선은 확장되고, 총격전이 벌어지며, 다른 인간으로 옮겨갈 수 있는 외계인도 통신선을 연결한 기자도 총에 맞는다. 나루미는 최후의 선택으로 외계인 신지에게 사랑의 개념을 빼앗아 가도록 목을 조르라고 부탁한다. ‘못하겠다’는 신지의 말에 잔잔히 깔리는 하야시의 음악은 애절하다. 

  
 
  
 
부부가 같이 온 바다가 보이는 언덕, 먹구름 속에 불덩이가 날아든다. 감독은 인류가 왜 침략을 받았는지, 그 답은 인류가 지닌 문제점에서 기인함을 알린다. '사랑' 개념을 포기한 나루미의 희생, 지구 침공 중단 이후 외계인 신지는 지구인들에게 음식봉사를 하고 있다. 병실에 들른 신지는 나루미의 어깨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오렌지 냄새를 맡게 한다. 

“언제나 옆에 있을 깨! 마지막까지”하고 신지의 말에 사랑의 개념을 빼앗긴 나무리의 공허한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영화는 종료된다. <산책하는 침략자>는 외계인 3인방을 등장시켜 인류가 저지른 죄악을 종식시키고자 지구 침략을 감행하였지만, 신지의 절반의 배신과 동정으로 인류는 수명을 연장하게 되었다. 현란한 언어유희가 상상적 움직임으로 치환된 영화는 영화 논문 한 편을 읽는 느낌을 던져 주었다. <산책하는 침략자>는 일본 작가주의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가 영화를 대하는 진지한 자세와 예(禮)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장석용
영화평론가, 무용평론가, 시인,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장 역임,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PAF 영화평론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상 수상, 르몽드 영화평론상 수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서경대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소속, 이태리 황금금배상 심사위원, 다카영화제 심사위원,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등 다수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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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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