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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의 시네마 크리티크]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


스티븐 소더버그, '컨테이젼'(2011)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지만 숙명적으로 더불어 또 함께 살아가야 할 딜레마를 안고 산다. 인간은 서로를 믿지 않는, 그러나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믿음 없음, 불신은 우리에게 고통과 번민만을 남길 뿐이다. 만약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이 의심을 갖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그런 의심은 당연하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어떤 물건을 살 수가 있겠고, 어떤 음식을 함부로 먹을 수 있으며, 어떤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으로 시작해 불신으로 끝날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컨테이젼>은 우리에게 유용한 영화가 될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우리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컨테이젼>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뒤흔드는 어떤 힘에 대하여, 그 힘에 반응하는 인간에 대하여 적나라케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를 통해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믿고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최초에 말이 있었다.

영화 <컨테이젼>의 줄거리는 한 줄로 요약 가능하다. 원인 모를 병이 발생했고, 그 병으로 사회의 혼란이 가속되다가 항체의 발견으로 끝난다. 너무도 간단해 할 말마저 없을 지경의 이 영화엔 일종의 믿음이 개입되어 있다.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 병이 걸리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그들은 말을 믿는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 다니는 말을 말이다.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베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사망하고, 그녀의 남편 미치가 원인을 채 알기도 전에 아들마저 죽음을 당한다. 그러나 미치는 아내와 아들이 죽어가는 동안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병을 빗겨간 사나이, 그는 정부로부터 격리되고 그가 안전하다는 확진을 받기까지 수일을 병원에서 담담히 기다린다.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혹시라도 죽은 아내와 아들에게서 옮겨온 바이러스를 다른 이들(특히나 하나 남은 딸)에게 옮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불가사의한 증상을 보이며 죽어간다. 마른기침과 고열, 발작과 뇌출혈, 그러다가 결국 사망. 그 숫자는 미니에폴리스, 시카고, 런던, 파리를 지나 홍콩, 도쿄에 이르기까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병의 전염보다도 빠른 말의 전염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사실은 하나였다. 병에 걸리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물론 이는 충분히 근거 있는 주장이었다. 이는 권위 있는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말이었으며, 그들이 내린 결론에 의하면 바이러스의 첫 감염자 베스로부터 시작된 병원균이 온 세계로 펴져나간다는 점과 이를 막기 위해 각국의 나라가 머리를 모아 힘을 쓰고 있다는 점을 전한다. 그러나 말은 말을 낳고, 공포를 조장한다는 점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숫자로, 더 잦게 목숨을 잃는 사례가 많아지자 온갖 미디어는 온갖 추측성 보도를 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자 하는 말들을 믿기 시작했다. 여기서 탄생한 사람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크럼위드였다. 그는 전염을 막아내는 백신과 그것을 어느 나라가 먼저 갖느냐에 대한 문제가 이미 거론되었을 뿐 아니라, 진실이 은폐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 또한 빠른 시일 내로 퍼졌다. 세계는 그의 말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양분화 되었고, 그가 주장하는 정부 음모론의 공포 또한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원인불명의 전염병만큼이나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각자의 소견대로 수용하기

사람들은 병에 대해, 병이 옮기는 말에 대해 어떤 해석을 가지고 있는가? 불신과 맹목이 한데 뒤섞여 있다. 일단 사람들의 몸에 들어가 변이를 거듭하는 병원균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연구자들이 총동원된다. 앨리 박사는 백신을 연구하는 일을 맡아서 진행하고, 치버 박사는 경험이 뛰어난 미어스 박사를 최전방 현장, 그러니까 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비롯해 병을 앓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급파하는 한편, 세계보건기구의 오란테스 박사는 최초의 감염경로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미어스 박사와 오란테스 박사 모두 문제를 만나게 된다. 미어스 박사는 많은 환자를 만나는 와중에 병에 전염된다. 약은 없고 몸은 점점 더 병으로 악화되는 상황. 그녀는 치버 박사에게 자신의 상황을 보고했지만, 상위 위원을 태우러 간 질병통제센터의 비행기는 오지 않았고, 그녀는 결국 눈을 치켜 뜨고 죽는다. 오란테스 박사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병의 최초 감염 경로를 조사하기 위해 홍콩으로 가서 일을 하던 중, 홍콩 사람에게 붙잡혀 인질이 되고 만다. 그가 원하는 조건은 단 하나였다. 자신의 마을 사람들이 백신을 최대한 빨리 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줄 것.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방법으로 병을 낫기 위해 애를 썼고, 이제까지 지켜온 법과 규율, 규칙이 하나 둘 어긋나기 시작한다.

정부 또한 수상한 움직임을 취한다. 베스가 죽은 곳이자 병의 근원지로 지목된 시카고 사람들을 통제하고 도시 자체를 잠정적 폐쇄하기로 결정 내렸던 것이다. 이는 조용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졌으며, 아무도 알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치버 박사는 시카고에 사는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아무도 만나지 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당신 혼자 조용히 시카고를 빠져 나오라.” 그러나 아내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로, 친구는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로 수없이 많은 말이 전달되고 퍼지면서 시카고는 그야말로 도시를 떠나기 위한 사람들로 아비규환이 된다. 도시는 아무런 법과 규칙이 작동하지 않는 세계가 되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해석대로 자신이 살 방법을 모색해 나갔다. 시카고에 완전히 갇힌 사람들, 정부로부터 사실상 버려진 시카고 사람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았고, 밖으로는 더더욱 나오지 않았다. 병원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가진 사람들로 차고 넘쳤고, 돌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이 믿고 있는 세계에 대해, 특히나 정부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고 혼돈은 시작됐다. 사람들은 남의 것을 약탈하기 바빴고, 그 와중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세계는 완전히 파멸로 치닫고 있었다. 사람들은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었고, 각자의 법과 각자의 체계 속에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정부 음모론으로 유명세를 탄 크럼위드는 자신이 개나리 액으로 병을 나았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자신의 상태를 매 시간 체크해 사람들에게 생방송을 하고, 그 중간중간에 개나리 액을 먹어가며 병을 이겨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비췄던 것이다. 그의 사기는 그야말로 대 성공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사람들은 급속도로 그의 말을 믿어갔고, 그와 계약한 제약회사 사장은 큰 돈을 벌어 들인다. 개나리 액에 끝없는 소비! 사람들은 병을 고칠만한 말들, 병을 고칠 만한 이야기는 뭐든 믿었고, 뭐든 맹신했다. 정부는 개나리 액의 효능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노라 주장했으나, 그렇다고 딱히 효능이 있는 약을 내놓은 것 또한 아니었다. 그러니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카더라 뿐인 말이었다. 사람들은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하는가? 정부인가? 미디어인가? 아니면 몇몇의 목소리 큰 개인들? 사람들은 온통 자신이 살기 위해, 이 위험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떤 말들을 붙들었고, 각자의 방식대로 수용해 갔다.

말보다 무서운 인간별종

사회는 절망적인 분위기였고, 사람들은 살기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발버둥 쳤다.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행동이 전부였다. 자신이 살면 그것으로 전부였다. 법과 제도가 무너진 세계에서 법과 규칙을 지킬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불길하고 암울한 세계의 풍조에 의해 휩쓸려 버렸을 뿐, 자신의 삶을 구현할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통제 불능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에 맞게 행동한 사람이 나타난다. 앨리 박사와 그의 아버지 수스만 박사가 그러한데 그들 모두 이름 모를 바이러스를 알아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녀는 정부 기관에 소속된 사람으로 병이 너무나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아버지에게 바이러스 연구에 손을 뗄 것을 권하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항체를 사용해서 면역 백신의 윤곽을 잡아냈고, 딸은 아버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백신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던 것. 그러나 아버지 또한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딸은 자신의 몸에 바이러스-백신을 꽂아 넣는다. 그 결과 인류를 종말로 치닫게 했던 병을 잡아낸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의사의 본분이었다고 말할 뿐이다.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으라는 치버 박사의 말에 그녀는 한마디 던진다. “의사가 다리에 주사를 꽂아 넣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앨리 박사처럼 행동을 한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바로 오란테스 박사가 그렇다. 그녀는 약이 개발될 때까지 홍콩 사람들에게 인질로 붙잡혀 있었다. 백신이 만들어지고 약이 상용화되자, 그녀는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아버지는 딸을 만나기 위해 백신을 들고 홍콩으로 들어오고, 딸과 백신을 뒤바꾼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들에게 쥐어준 약이 가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로 뛰어간다.

사회의 법이 무너지고 규범이 작동되지 않는 세계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윤리를 지키고자 하는 삶,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사회가 무너져 내렸을 때, 혼돈 상태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값지다.

글: 이 호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한국문인 인장박물관> 학예실장.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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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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