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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사 도

 

박태식(영화평론)

 

정조의 화성행차! 1795년 윤29일부터 16일까지 7일간 이어진 이 여정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화성능행도華城陵幸圖>(정선, 비단에 채색, 1795 정조 19, 151.5x66.4)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정조는 창덕궁을 출발하여 화성행궁으로 향했는데 총 길이만 4km에 이르는 성대한 행렬이었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행렬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갖추어진 격식과 예법에 있어 조선 역사 최고의 행차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행렬의 목적지는 일곱 날 동안 뒤주에 갇혀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1735~1762)가 묻혀있는 현륭원顯隆園이었다.

왜 정조는 불명예스럽게 죽은 아비를 찾아가는 데 그렇게 엄청난 돈과 노력과 시간을 들였을까? 영화 <사도>(思悼, 이준익감독, 극영화/역사물, 한국, 2014, 124)를 마감하는 장면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문근영)가 보는 앞에서 정조(소지섭)는 아비의 무덤에서 고인의 넋을 위로한다. 뒤주에 갇혀 죽을 때까지 마시지 못했던, 그리고 소년 정조가 건네주려다 실패한 물 한 대접을 아비의 무덤 위에 뿌린 것이다. 어찌 보면 그 장면 하나를 위해 영화가 숨 가쁘게 달려왔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왕이 남자2005><황산벌2003>을 만든 바 있는 이준익 감독이 기울인 정성을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사실 영화는 두 시간 내내 관객을 긴장 속에 잡아두었다. 영화는 사도세자(유아인)가 아버지 영조(송강호)를 시해하려 경희궁으로 향하고 이어서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가두어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사도세자가 생을 마감했던 일곱 날 중 첫 날인 것이다. 그 후로 하루하루 날을 짚어가면서 과거와 현재가 숨 가쁘게 오간다. 흔히 플래시백flashback’이라는 영화기법으로 불리는데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데 효과적이다. 세자는 창덕궁 휘령전徽寧殿 앞에 덩그러니 놓인 뒤주 안에서 날이 갈수록 기운이 쇠하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리고 어좌에서 이를 내려다보는 영조도 날이 갈수록 회한에 접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사가 주마등처럼 두 사람에게 오갔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물며 여기는 한 때 세자를 앞에 앉히고 영조가 대리청정을 하던 곳이지 않은가.

 

대리청정 첫날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영특했던 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눈 밖에 난 이야기, 아들을 지키기 위해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가 겪은 온갖 수모, 세자를 음해하고자 쏟아졌던 수많은 모함들, 그리고 뒤주 안에서 아버지 살려주세요.’라고 한 세자의 마지막 울부짖음. 거기에다 필자가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에 기대어 들었던 출처불명의 이야기들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이야기가 만들어진 일곱 날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아버지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잔혹한 방법으로 자식을 죽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차 왕좌를 이어받기로 예정되어 있던 아들인데 말이다. 그래서 사도세자에게 뒤주대왕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이제까지 사도세자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많은 소설들이 쓰였고, 그에 못지않은 라디오 연속극과 TV 드라마와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어차피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까닭에 대부분의 내용이 허구일 수밖에 없었다. 실록에 기록된 몇몇 구절을 확대하느라 그리 된 것이며, 실록 뒤의 진실은 여전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숨겨진 진실에 도전장을 던진다. 바로 영조와 사도세자를 심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희로애락이라는 보편적인 정서와 부자父子사이라는 일반적인 관계에 기초했으니, 적어도 당시 실제로 있었을 법한 감정의 흐름에 근사하게 접근한 셈이다.

영조는 왕위를 이어갈 아들에 대한 간절한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제왕의 법도를 가르치려 했으나 아들은 왠지 어긋나기만 한다. 그렇다고 아들을 한사코 미워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종묘로 데려가 선대의 왕들이 어떻게 왕좌를 유지했는지 알려준다. 거기서 중요한 원칙을 밝히는데 왕이 되려면 가족의 연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나라의 안녕을 위해서!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어디 쉽게 자식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아버지로서 무엇인가 아들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영조는 부족한 자식을 위해 대리청정代理聽政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왕세자는 왠지 공부를 등한시 했다. 게다가 제왕학帝王學 따위는 더더욱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과 어울리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고 싶었다.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 사실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눈치를 보아하니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그래서 결혼도 잘하고 공부하는 흉내도 냈지만 아버지의 예리한 눈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아버지가 결심이라도 한 듯 대리청정을 자처하고 나서는 게 아닌가.

대리청정의 첫날이 밝았다. 왕세자는 몇몇 그럴듯한 정책을 준비해 두었고 설혹 정책을 실행 하는 데 있어 반대에 부딪치더라도 바로 뒤에 든든하게 버티고 앉은 아버지가 나서서 해결해 줄 것이었다. 그런데 사태해결은 고사하고 아버지는 세자를 몹시 꾸짖는 게 아닌가. ‘도대체 상황판단이 그렇게 안 되느냐?’는 것이었다. 세자는 혼란에 빠져들었고 급기야 나약하게 쩔쩔매는 모습까지 제신들 앞에서 보이고 말았다. “왕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야. 신하들의 결정을 윤허하고 책임을 묻는 자리다.”

 

뒤주 마지막 날

이준익 감독은 언제 어디서부터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는지 알려준다. 바로 대리청정 첫날, 세자가 정치적인 맥락을 전혀 읽지 못한 데서였다. 그렇기에 진즉에 공부를 부지런히 해두라고 귀에 못이 막히게 이야기해 두었건만. 영조는 대리청정을 걷고 왕좌에 복귀했고, 세자는 회복 불가능한 절망에 빠져들고 만다. 그 뒤로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순전히 시간문제였다.

영조는 자식을 뒤주에 가두고 정신을 어느 정도 차리면 풀어 주리라는 주변이 기대를 저버린 채 결국 자식이 말라죽게 만든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세자는 역모의 뜻을 품고 아버지를 폐위시키려 한밤중에 칼을 들고 경희궁으로 군사를 이끌고 찾아간다. 그 때 창문 밖에서 영조와 자신이 아들(훗날의 정조)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동물적인 직감으로 알아차린다. 자기가 죽어야 아들이 살아서 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세자는 아비를 축출한 불효막심한 아들이 될 뻔했던 순간을 피해나갔다.

역모가 실패한 다음날, 자신을 시해하려던 자식을 앞에 놓고 결단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영조에게 찾아왔다. 이렇게 잔인한 운명에 놓였던 아버지가 이제까지 있었을까? 곧이어 뒤주가 들어오고 세자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뒤주 속에 들어간다. 스스로를 죽여 아버지에게 복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까지 느껴졌다. 영조는 매일 한번 씩 뒤주에 가까이 가 자식의 상태를 확인한다. 드디어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뒤주에 다가온 영조는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자신의 속마음을 처음으로 아들에게 드러낸 것이다. “너를 보면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아온 내 심정을 네가 아느냐?”

이 장면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유아인이 연기도 뛰어났지만 상황을 적절하게 그려내는 송강호의 목소리와 표정과 몸짓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화판에 떠다니는 강호불패라는 말이 괜스레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대체 이 배우는 어떻게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실제로 죽어가는 자식 앞에서 회한에 빠진 영조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말문이 딱 막히고 말았다.

 

정조가 화성행차를 한 진짜 까닭은 아버지를 죽게 만든 정적들에게 세를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다. 정조는 행차가 끝나던 날을 용서와 화해의 기점으로 삼아 자신의 치국治國 전망을 밝혔다. 그리고 정조의 멋들어진 부채춤이 이어졌다. 평생 살얼음판을 걸어온 어머니의 환갑을 축하하는 춤사위였다. 어린 시절 궁에 들어와 남편의 비극적인 죽음이 있은 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을 지켜낸 어미를 위로하는 춤이기도 했다.

문자 기록이 알려주는 역사는 정보가 부족해 이곳저곳 구멍이 많다. 후대에 혼란을 주기 십상이다. 이때는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구멍을 메워 넣어 혼란을 최소화 시켜야 한다. 이준익 감독이 가진 상상의 눈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두 사람의 심리변화를 통해 보았고, 매우 그럴듯한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재능 있는 배우 문근영의 역할이 변변치 않았고 사도세자의 후일담을 설명하는 에필로그가 너무 긴 단점은 있지만 송강호와 유아인과 전혜진(영빈)과 김혜숙(인원황후)의 연기가 어느 정도 단점을 보충해주었다. 사실 이 세상에 완벽한 영화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역사를 왜곡시켜 우스개로 만드는 풍조(그 이름마저 이상한, 이른바 팩션Faction)가 판치는 우리나라 영화계에 정통 사극이 부활한 느낌이다. 영화 <사도>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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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박태식

등록일201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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