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customer center

070.8868.6303

미하엘 콜하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마르틴 루터(1483-1546)1517년 독일 비텐부르크 성당 정문에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95개 항을 붙임으로써 종교개혁의 첫 단추를 꼈다. 그는 두고두고 개신교의 영웅으로 받들어지는데 오늘날에도 종교개혁이라 하면 누구보다 마르틴 루터를 대표적인 인물로 꼽곤 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당시 봉건영주의 압제에 시달리다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이 도움을 청하자 루터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던 그의 사상에 비추어보면 의외의 일이었다. 루터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미하엘 콜하스라는 단편소설을 썼고 이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Michael Kohlhaas, 아르노 데 팔리메르 감독, 역사극, 프랑스/독일, 2013, 122)이다. 배경 설명이 좀 길어졌다.

독일 작센 주의 말 중개상인 미하엘 콜하스(매즈 미켈슨)는 말을 팔러 가던 중 갑작스레 나타난 남작의 시종들에게 다리 통행료를 요구받는다. 통행료 조로 말 두 마리를 맡겨두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보니 그 사이 힘든 일을 시켜 말들의 상태가 형편없어졌음은 물론, 원래 있지도 않은 통행료를 남작이 자의로 책정했음을 알게 된다. 이에 분노한 미하엘은 말을 찾으려 남작을 고소했으나 과격한 남편의 성격을 아는 부인이 대신 나섰고 남작을 찾아갔던 부인은 흠씬 두들겨 맞아 사경을 헤매는 지경에 이른다. 미하엘의 행동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미하엘이 농민들과 함께했던 투쟁의 목표는 영주 체제의 전복이 아니었다. 단순히 담보로 맡겼던 말의 건강을 정상으로 만들어 돌려달라는 요청이었고 아내를 결국 숨지게 만든 남작에게 책임을 물어달라는 정당한 투쟁이었다. 하지만 사태는 미하엘이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번져나가 미하엘과 규합했던 농민들이 무차별 살인을 자행해 결국 정의는 표류하고 만다. 영화 중간쯤 등장한 마르틴 루터(드니 라방)가 지적한 대로 폭력을 통한 복수는 해결책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 때가 미하엘이 무장 투쟁을 멈추고 모든 무기를 거두어들인 시점이기도 하다.

16세기 독일은 종교적으로는 가톨릭교회가 힘을 발휘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지방영주들이 힘을 갖고 있었다. 이는 통일왕국을 이루었던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다른 형태로, 이를테면 작은 왕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나라였다. 후에 비스마르크(1815-1898)가 등장해 독일을 통일하기까지 늘 나라가 어수선했다. 특히, 절대 권력을 갖지 못한 영주들은 미하엘 같은 평민들을 잘 구슬려야만 했다. 그러니 미하엘이 농민들을 결집해 영주에 대항하면 영주 쪽에서도 마냥 무시하지는 못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영화의 의도에 조금 더 다가설 필요가 있다.

<미하엘 콜하스>에서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불의에 맞선 인간은 어때야 하는가? 자신의 가족과 재산이 위험에 노출되면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 마땅하지 않는가? 찍어 누르면 누르는 대로 숨죽이고 살면 그만큼 적들을 더욱 활개를 치지 않는가! 따라서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고 그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투쟁을 해야 한다. 미하엘은 처음부터 불의한 타협을 거절한 인물이다. 미하엘의 선택은 그 점에서 우리의 인식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 한 가지 질문. 루터는 왜 도움을 거절하고 농민 봉기를 평정해달라고 영주들에게 부탁했을까? 내적으로는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영주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던 터라 그랬을 수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농노들의 인권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절대로 루터의 편을 들지 않는다. 오히려 감독은 미하엘에게 끝까지 신뢰의 시선을 보냈던 사령관(부르노 간츠)에게 호의를 표한다. 비록 미하엘의 사형 집행관으로 등장하지만 그는 분명하게 미하엘의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영화의 서사대로 농민반란 사건은 루터에게 불명예를 안겼고, 종교적 자유의 획득이라는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아킬레스건처럼 그의 뒷덜미를 잡고 있다.

법은 정의의 실현을 그 기본으로 한다. 만일 법이 기본을 망각하고 힘 있는 자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되어 보편성과 이성을 위반하면 불복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하엘 콜하스는 근대 법철학이 등장하기 훨씬 전의 인물이지만 그가 이루려했던 정의는 결코 과거의 것이라 할 수 없다.

66회 칸 영화제에서는 <미하엘 콜하스>를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렸다. 극적인 재미나 풍부한 볼거리 없이 그저 건조하게 진행된 사실주의 영화(사실 관람 중에 조금 졸기까지 했다)에겐 대상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그만큼 <미하엘 콜하스>가 보여준 문제의식을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중량감 넘치는 주제의 영화를 보았다. 정의를 향한 미하엘 콜하스의 투쟁과 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박태식

등록일2014-05-29

조회수6,458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