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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이 영화는] <제로 다크 서티>, 아카데미가 철저하게 외면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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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이 영화는] <제로 다크 서티>, 아카데미가 철저하게 외면한 사연

캐서린 비글로우의 신작 <제로 다크 서티>는 많은 감정의 수식어가 필요한 작품이다. ‘불편한’ 혹은 ‘불쾌한’이란 단어가 먼저 생각난다. ‘영웅적인’ 아니면 ‘반영웅적인’이라거나 ‘반미적인’ 혹은 그 반대로 ‘친미적인’이란 서로 상반된 단어가 동시에 떠올려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9.11 이후 미국이 숱하게 저지른 그 야만적 범죄의 오류에 대해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그 부분에 대한 평가가 상당이 엇갈리게 영화를 찍었다. 그건 아마도 비글로우가 의도적으로 모호할 만큼 중립적인 입장을 보여서인데 결국 그게 사람들에게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주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한편으로 영화가 상당히 좌파적이다 라거나 동시에 우파적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어떻게 보면 민주당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보면 늘 국가를 위한다는 따위의 말을 들먹이는 공화당원의 시선이 영화 속에서 느껴지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실제로 주인공 마야(제시카 채스테인)가 그런 얘기를 두번쯤 떠든다. 그녀는 자기의 주장을 밀어 붙일 때마다, 자신의 상관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국가와 가족을 위해 어쩌고 하며 떠든다. 인간적인 고뇌나, 철학적이거나 역사적인 고민없이 오로지 빈 라덴을 잡겠다는 식의 조직내 성취 동기만을 갖고 있는 여자 마야는 그렇다치고, 그렇다면 과연 캐서린 비글로우는 마야 편인가 아니면 반대 편인가. 결국 어느 쪽 편인가. 우리 편인가, 아니면 미국의 입장만을 옹호하는 것인가.

아마도 비글로우는 그런 식의 태도가 또 다른 편견과 적대감의 발로일 뿐이며, 그로 인해 결국 전쟁이 유발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듯 하다. <제로 다크 서티>는 그래서, 소름이 끼친다. 비글로우는 그 누군가 혹은 어떤 세력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 비판의 실재(實在)에 근접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이 그 실체적 존재가 어떤 일을 저질렀고 또 그렇게 저지른 일이 어떤 가공할 결과를 가져 왔는 가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오프닝 장면부터 30분 넘게 이어지는 한 알 카에다 조직원에 대한 고문에서 마야는 그 현장에 참여한다. 보통의 일반영화 같았으면 허구의 제스처, 대사들이 이어졌을 것이다. 마야가 선배 조직원이자 고문 가해자인 남자에게 ‘이제 그만해’ ‘그만하면 충분해’ ‘잘못하면 사람 죽이겠어’라는 등등의 대사를 쏟아 내고 고문방을 뛰쳐 나오는 장면 같은 것이다. 그런데 비글로우 감독은 끝까지 마야를 그 자리에 있게 한다. 비록 처음에는 보기 힘든 표정을 짓게 한다든가, 심한 고문에서는 외면하게 한다든가 하게 하지만 사실은 마야 역시 그 고문을 해야 한다는 CIA 조직의 원칙과 주의에 대해 절대적으로 동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마야는 이후 간접적인 고문 가해자에서 직접적인 고문 가해자로 동선을 이동하기 시작한다. 마야가 주도하는 고문 장면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저렇게 고문을 해서라도 테러를 막아야 한다는 미국 CIA의 자칭 영웅주의적인 입장을 이해하든지, 아니면 그들에게 고문을 당하면서 개처럼 비참해지는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든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이다. 비글로우가 요구한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실체적 진실을 원한다면 실재했던 존재의 바로 옆에서 그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로 다크 서티>는, 그 이전에 나왔던 짝퉁 영화 <코드네임 제로니모>와 달리 CIA 현장요원인 마야라는 인물을 통해 2003년부터 자행됐던 미국의 대테러 작전, 더 나아가 오사마 빈 라덴의 제거 작전을 말 그대로 가감없이 보여준다. 2시간 30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빈 라덴에 대한 군사작전은 후반 30분일 뿐(<코드네임 제로니모>는 그 군사작전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해병대들의 활약(?)에만 초점을 맞췄다.) 앞의 2시간 가량은 마야와 CIA가 빈 라덴의 소재를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다. 거기엔 가감이 없다.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영화는 약 10년간의 추적 과정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어떠한 평가나 해석을 개입시키지 않으면서 캐서린 비글로우는 이른바 국가권력의 사용에 대한 도덕적 사고를 불러 일으킨다. 국가는 과연 누구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국가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가 무소불위일 수 있는가. 그런데 그 자격은 과연 누가 부여하는 것인가.

영화는 의도적으로 사건에 대한 평가 혹은 해석을 극단적인 거부하고 동시에 그 강박증을 내비침으로써 오히려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예컨대 오사마 빈 라덴은 단순한 테러리스트라기 보다는 이슬람 입장에서 보면 전쟁 지휘자이자 따라서 전범의 케이스에 해당하는 인물일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그를 생포해서 국제재판소에 전범으로 회부시키는 것이 절차상으로 옳았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처음부터 그를 제거하는 것이 미국의 목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누가 명령했는가. 누가 국제법을 어겨서라도 그를 살상하고 미국만의 이익만을 지키라고 지시했는가. 비글로우는 그 부분 역시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라고 말한다.

당시 오사마 빈 라덴이 은둔하고 있었던 곳은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였다. 여기에 미국 해병이 침투한다. 엄연한 국가 침략이다. 미국에게 누가 그런 자유와 권한을 줬는가. 왜 그 점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가. 비글로우의 <제로 다크 서티>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척 사실은 이의를 제기해야 맞지 않느냐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만든다.

영화는 전율이 일 만큼 정교하고 완벽하다. 엄격하고 철저한, 그리고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9.11 이후 알 카에다와 회교권를 공격했던 미국사회의 광기를 증명하려 애쓴다. 흔히들 괴물을 없애려다가 자신도 괴물이 됐다고들 하지만 <제로 다크 서클>을 보면 과연 괴물이 있기나 했었는가에 대한 의문까지 든다. 오히려 괴물은 미국 자신이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평가나 해석없이 사실의 나열만 가지고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캐서린 비글로우야말로 진정한 괴물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카데미가 철저하게 이 영화를 외면한 이유를 영화를 보면 확실히 깨달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런 영화를 시장에 내놓게 하는 점이야말로 미국사회의 이상한 위대함이라는 것도 곰곰히 생각하게 만든다. 이래저래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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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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