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영화평론가) 사랑은 무엇일까?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사랑을 언어게임에 비유하곤 했다. 마치 외국어를 쓰는 외국인에게 자국어, 모국어의 의미를 설명하듯 그렇게 자신을 통역하라. 통역과 오역, 번역 가운데서 나는 미지수로 오해되기도 하고 나보다 더 큰 존재로 오인되기도 한다. 결국, 사랑은 당신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인 것이다.
'하이- 소'는 그런 점에서 사랑을 통해 나를 찾고 싶은 한 남자를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아난다는 태국 국적을 가졌지만 여러 해외에서 청소년기를 보낸다. 배우가 된 아난다는 고향 태국의 해변가 작은 마을에서 촬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촬영지에 그의 미국인 여자친구 조가 찾아 온다.
워낙 궁벽한 마을이라 조가 머물고 있는 호텔엔 손님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영어가 통하는 사람도 없다. 호텔직원이라고 해도 간단한 주문이 가능할 정도, 게다가 남자 친구인 아난다는 늘 촬영 때문에 바쁘다. 무엇보다 그녀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말하는 아난다이다. 조는 아난다의 태국어 대본을 들여다보며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자신과 있을 땐 영어를 쓰는 남자친구이지만 태국어를 쓸 땐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이는 아난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조의 생활방식과 태도가 익숙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낯설기도 하다.
조와의 만남이 끝난 몇 달 후 아난다는 영화홍보일을 하는 메이와 만나게 된다. 영화라는 일도, 태국어도 잘 이해해주는 메이이지만 메이는 한편 아난다의 미국식 라이프 스타일이나 친구를 만나서는 낯설어한다. 아난다 태국인이지만 태국인이 아니기도 하며 미국적이지만 미국인은 분명 아니다.
아난다와 메이, 아난다와 조의 만남은 마치 거울처럼 대조적으로 서로를 비춘다. 궁벽한 시골 호텔과 허물어져 가는 도심 아파트, 영어를 쓰는 여자와 영어를 전혀 모르는 여자처럼 그들은 다르면서도 같은 이미지를 공유한다. 이는 메이 역시 영자신문을 보는 아난다에게 그 의미를 묻는 장면에서도 확인된다. 조가 대본을 물어보듯 메이는 영자 신문을 보는 아난다를 낯설게 쳐다본다.
아난다는 누구나에게 상냥하고 모두에게 다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두고 전 세계를 떠도는 어머니에게서 그 빌미를 잠시 찾기도 한다. 결국 아난다는 조도 그리고 메이도 떠난다. 그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은 존재라는 큰 모자이크 중의 작은 교집합에 불과하다. 어쩌면 아난다는 이미 마음 속에서 완전한 합일이나 만남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포기한다고 해도 사람은 결국 나라는 언어를 완전히 이해해 줄 단 한사람을 갈구한다. 나란 무엇일까, '하이-소'는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새롭고도 신선한 대답을 들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