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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영화평

<그랜토리노>-끝까지 미국적인 이스트우드에 대하여

<그랜 토리노>-끝까지 미국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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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랜 토리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크리스토퍼 칼리, 비 방, 아니 허
    개봉
    200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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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어도 나에게 있어 그랜 토리노는 쉽지 않은 영화였다. 영화를 모두 보고난 뒤 과연 이스트우드가 이번에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끝임 없이 되묻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주인공인 월트 코왈스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얼마나 불통이고 괴팍하며 또 외로운 인간인지 묘사하는 초반부, 그리고 그에게 접근하는 몽 족 소년 타오에게 점점 마음을 열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중반부까지 영화는 아주 좋은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때까지도 월트의 집에 꽂혀있는 미국 국기가 지속적으로 의미심장하게 프레임에 들어올 때마다, 그리고 한국 전쟁에 참전했고 포드에서 근무한 늙은 남자가 일본차를 타는 자신의 아들에게 뭐라고 한다는 사실에서 신경이 집중되는 순간들은 있었지만) 그러다가 영화의 후반부에 들어서 어떤 사건이 터지고 이를 계기로 급격하게 물살을 타는 그랜 토리노의 움직임을 보며, 그리고 최후의 파국을 거쳐 카메라가 월트의 그랜 토리노를 물려받은 몽 족 소년 타오를 비추는 엔딩을 지나며 이 영화를 단순히 잘 만든 드라마로 상대해 보기에는 난감한 구석이 없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너무나도 진부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든 생각은 결국 그랜 토리노 역시 미국에 관한 영화, 더 엄밀히 말하면 미국을 바라보는 이스트우드 세대의 영화라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보아야할 사실은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상대는 바로 이스트우드 자신이 직접 연기한 월트 코왈스키라는 점이다. 월트의 존재감은 절대적인데 인물에게서 불가피하게 읽혀지는 것은 미국과의 공통점이다. 그는 전쟁의 트라 우마에 빠져있는 사람이다. 한국전쟁에서 사람을 죽인 기억이 썩 유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명백해 보이고 타오를 향해 외치는, 너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뭔지 모른다는 대사에서 우리는 한국전쟁을 기준으로 월트의 인생은 나뉘며 그 이후의 삶에서 그로 인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렇듯 전쟁의 기억 속에서 뒤척이는 존재는 자연 미국을 떠올리게 한다. 2차 세계대전이후 새로운 패권국이 치러낸 두 번의 전쟁인 한국전과 베트남전, 특히 패배로 끝난 베트남전은 그 후 미국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여러 흔적들을 남겼다. 월트에게 한국전의 기억은 곧 미국에게 베트남전의 기억이다. 전쟁이 주위를 맴돌며 그 자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한다는 점에서 월트와 미국은 유사성을 보인다. 굳이 전쟁의 테마가 아니더라도 나이든 백인 남성으로서 집에 성조기를 내걸고 미국을 대표하는 산업인 자동차 산업, 그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포드에서 근무한 월트를 미국 보수주의 진영에서 얼마 안 되는 유명인사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연기했다는 사실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을 미국으로 치환해서 보는 시선을 충분히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월트의 시선으로 본 그의 마을, 다시 말해 영화 속에 나오는 마을은 현재 미국을 바라보는 이스트우드의 심정이 될 것이다. 그랜 토리노에 등장하는 많은 갱 무리들 중 백인 갱들이 없다는 사실은 사소하지만 신경 쓰인다. 대신 몽 족 갱들은 있다. 흑인 갱들도 있고 멕시코 갱들도 있다. 갱들은 총을 들고 차를 몰고 다니며 마을에서 각자의 구역을 정해놓고 다닌다. 몽 족 갱과 멕시코 갱은 서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흑인 갱이 몽 족을 위협하기도 하는데 다행히도 아직까지 몽 족을 구해주는 일은 백인 남성 이스트우드의 몫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가 보는 미국은 이제 더 이상 그의 세대 것이 아니다. 젊고 피부색이 다른 어떤 사람들이 구역을 나누어서 자신의 것을 지키고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 백인 갱들은 보이지 않는다. 월트가 몽 족 소녀를 구해주기는 했다만 그건 그저 구해주었을 뿐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마을이 유색 갱들에게 점령당한지는 상당히 오래된 듯 보인다. 거리의 갱들이 아니더라도 월트를 힘들게 하는 일들은 많다. 당장 오프닝 시퀀스만 보더라도 월트는 자신의 이후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일본차를 몰고 다니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옷을 입은 손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들과 그 아내는 자신을 실버타운에 보내려 하고 필요한 티켓을 얻기 위해서만 전화한다. 그랜 토리노의 월트는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거리에는 유색 갱들이 같은 유색인종들을 위협하고 있고 아들 세대에게서는 소외받고 있다. 그의 미국은 암울하다.

 

 

 

 그런 그에게 접근해오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몽 족이다. 처음에는 그들을 부담스러워하고 피하지만 외로운 월트 에게 이들은 점점 소중한 존재로 다가온다. 영화 속 그의 행동이나 대사들을 미루어 볼 때 월트가 극단적인 인종주의자까지는 아니어도 타 인종에 너그러운 백인이 아니라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후반부의 서사는 몽 족과의 일들을 계기로 서서히 그들과 친밀해지며 월트가 변화되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결국 가장 미국적이었던 백인 남성 월트가 아시아인들과 교감을 나누며 새롭게 변모하는 교과서적 내용을 탄탄히 뒷받침하는데 일조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서 슬쩍슬쩍 보이는 것은 결국 이 모든 내용이 다시 한 번 이스트우드가 탐구해왔던 무언가의 연장선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현대 미국에서 지금 원주민들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들은 영화매체가 탄생하기도 십 수 년 전에 이미 어딘가 궁벽한 곳으로 쫓겨난 지 오래다. 그렇기에 지금의 미국은 원주민이 아닌 이주민의 나라다. 전 세계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몰려든 사람들이 현재의 미국을 만들었다. 근본적인 시선에서 모든 미국인들은 어디로부터 건너온 외부인이라는 점에서 몽 족이다. 그래서 몽 족을 위해 희생하는 월트의 죽음은 가장 미국적인 남자가 마음을 열고 변화하는 결정판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 미국성을 더욱 강화하는, 철저히 미국적인 죽음이다. 이스트우드가 생각하는 미국의 정체성은 다인종주의 이며 애초에 그들 모두는 몽 족처럼 이주해 와 사는 처지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금발의 백인 미녀가 아닌, 아시아 소년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영화가 가장 미국답다고 이스트우드는 생각한다. 이는 미국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라는 질문으로 들리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월트가 희망을 보는 대상은 배꼽에 피어싱을 한 그의 손녀가 아닌 몽 족 소년 타오이다. 꼭 백인에게서만 희망을 보지 않고 모든 땅의 모든 인종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그랜 토리노의 자세야 말로 이스트우드의 정신이다.

 

 

 

 

 

 

결국 몽 족을 위해 스스로 죽는 월트의 선택은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의 근원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곱씹는 이스트우드의 질문이자 답변이다. 그는 줄곧 미국의 정체성과 주소를 주지시키려 하지만 그랜토리노에서 알 수 있듯 그 것은 결코 소위 WASP이라 불리는 청교도를 믿는 앵글로색슨계 백인 남성이 아니라 몽 족이 될 수 도 있고 흑인이 될 수도 있다. 모두가 월트의 그랜토리노를 부러워하고 갖고 싶어 했지만 결국 그 것을 차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상기시켜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앞서 언급했듯 월트가 미국의 대변이라면 그가 가장 아끼는 그랜토리노는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이다. 이스트우드는 애초에 미국의 주인은 없기 때문의 미국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예를 들어 근면한 노동현장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품기 시작한 타오) 그것이 누구에게든 들어 갈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철저하게 미국의 가치를 함의하고 있음에도 타자의 시선에서 유추되는 몇몇 혐의들에서 자유로운, 얼마 되지 않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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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박웅

등록일2013-05-11

조회수47,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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